▲ 우리 사회 소위 민주진영 내에서도 정체성 정치에 대한 혐오가 넘치고 있다. ⓒMBC뉴스 화면 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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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미니즘, 혹은 페미니스트라는 말의 앞 두 글자를 잘라먹어 ‘페미’라고 말하는 사람 치고 그 말을 멸칭으로 쓰지 않는 사람은 거의 없지요. ‘페미’라는 말을 멸칭으로 사용하는 사람들은 ‘페미’란 ‘군대도 가지 않는 주제에’ 남자를 어떻게든 해꼬지할 궁리만 하고 여자만 우월하다고 말하는 사람들이며 사회를 남자와 여자로 갈라서 서로 심각하게 싸우게 만드는 사람들이라고 생각합니다.

이 ‘페미’란 말을 저렇게 멸칭으로 사용하는 사람들의 대부분은 평소 민주당을 비롯한 소위 ‘민주진영’이 ‘페미’를 서포트해준다고 생각하고 이를 그 ‘민주진영’에 대한 반대의 정당화 이유 중 하나로 삼습니다. 자연히 그런 사람들의 상당수가 이번 계엄내란 정국에서 윤석열 지지의 입장에 서기도 하고 말입니다.

하지만 소위 ‘민주진영’의 ‘남자’들 중에도 저런 ‘페미’라는 멸칭을 사용하거나, 사용하진 않더라도 저 멸칭이 담고 있는 의미에 동의하는 사람들이 꽤 있지요. 그런 사람 중에 10여년 전 [나는 꼼수다]부터 정치적 영향력을 가진 사람이 된 극동방송PD 출신 김용민 씨가 있습니다. [나는 꼼수다]의 파워를 업고 국회의원에까지 도전했다가, 시청역 엘리베이터를 다 없애서 시위하러 오는 노인이 못 오게 하자느니, 유영철을 미국에 풀어서 부시, 럼즈펠드, 라이스 등 당시 미국 정부 요인을 성폭행해서 죽이자느니 하는 막말이 문제가 되어 낙선했지요. 그 이후 필자의 교단인 기장의 목사가 되어 교회 목회를 하고 있지만 여전히 SNS를 통해 정치적 영향력을 행사하려 시도하는 모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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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김용민 씨의 최근 SNS 중에 이런 말이 있다고 합니다. 정의당도 ‘페미’가 들어가서 ‘페미당’으로 망가지고, 민주노총도 ‘페미’가 들어가서 ‘페미노총’으로 망가지고, 한국교회 인권센터도 ‘페미’가 들어가서 ‘페미인권센터’로 망가지고 등등등. 한 마디로 “신천지만 그런가. 페미가 들어가도 모든 게 망가진다”는 말을 했답니다.

정의당, 민주노총, 한국교회 인권센터 등등이 과거보다 페미니즘/소수자 문제에 조금 더 전향적인 모습을 보이는 건 사실이죠. 그런데 그 정도했다고 페미당이니 페미노총이니 페미인권센터니 하는 말이 붙을 정도인지도 의문이거니와, 그래서, 도대체 망가지긴 뭐가 망가졌다는 겁니까? 여전히 정의당은 진보정당으로 있고(의석은 없어졌지만), 여전히 민주노총은 민주노조운동의 총본산이고, 여전히 한국교회 인권센터는 그리스도교 인권운동 조직으로 잘 활동하고 있는데요? 이쯤 되면 망상이라고 하지 않을 도리가 없을 것 같습니다만.

김용민 씨의 SNS의 다른 글을 보니 두 가지 이야기를 하는 모양이더군요. 백자라는 가수가 김건희를 두고 그가 성매매 여성이었다는 식으로 풍자하는 노래를 만들었다가 민주노총에서 섭외금지를 결정한 것. ‘페미의 권익을 지키기 위해 애써 왔던 박원순 시장’을 장례 당일까지 ‘모욕’했다는 것. 이런 것들이 ‘페미’가 민주노총 등등을 ‘망가뜨리는’ 예인 모양입니다.

그 와중에 기억이 편집된 것인지, 자기 자신도 한국교회 인권센터의 국가보안법 폐지 운동에 참여하려 했다가 ‘페미가 장악한’ 인권센터에서 ‘김건희라는 여성을 혐오했다는 취지로’ 거부를 당했다는 말도 한 모양입니다. 그 때 인권센터가 김용민 씨를 거부한 이유는 그가 최순실 사건의 증거인 태블릿PC 조작설을 꾸준히 퍼뜨리는 변희재 씨와 어울려 다니며 윤석열 반대운동을 한다는 것과 박원순 사건 피해자에 대한 2차 피해를 조장한다는 것이었는데 말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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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김용민 씨가 박원순이니 김건희니 등등을 언급한 걸 보니 이걸 김용민 씨 개인의 문제로 다룰 게 아니라는 생각도 듭니다. 우선은 박원순 성추행 사건을 두고 아직도 사건 당사자의 언행에서 가해자를 옹호할 만하다고 자의적으로(당연히 여성혐오적으로) 해석한 건덕지들을 찾아내어 이런 건덕지들이 있는데 왜 성추행이냐 혹은 성추행으로 확정된 것처럼 말하냐 혹은 당사자의 해명이 필요하지 않느냐 등등의 2차 피해를 조장하는 시각이 소위 ‘민주진영’ 일각에 분명히 존재하고 있기 때문입니다(저런 식으로 2차피해를 조장하다 유죄판결을 받은 김민웅 씨가 최근의 계엄내란 정국에서 집회 발언대에 서려 했다가 제지를 받은 일이 있기도 했죠). 또한 박원순 씨가 결국 모란공원에 이장된 것처럼, 저 성추행 사건의 흔적을 지우고 박원순 씨를 그저 ‘민주인사’로만 기억하려는 움직임이 아직도 존재하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한번 이렇게 묻고 넘어가겠습니다. ‘페미’ 운운하는 멸칭을 쓰는 사람들의 단골 레퍼토리 중의 하나가 여성이 피해자인 사건이 발생했을 때 밑도끝도 없이 “여성단체는 이런 사람들 안 도와 주고 뭐하냐 이런 걸 보니 역시 제대로 된 여성단체란 없네” 이런 말들을 내뱉는 건데요. 박원순이란 이름을 가리고 박원순 성추행 사건을 보았을 때, 사건 당사자에 대한 2차 피해 조장과 가해자 추앙 분위기 등등에 반발(김용민씨가 장례 당일까지 모욕 운운한)이 없었다면, 저 단골 레퍼토리 또 나오지 않았겠냐고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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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다음 김건희 관련 이야기를 보면, 물론 김건희가 주가조작을 비롯한 각종 범죄에 가담한 범죄자인 것은 거의 분명해 보이고, 윤석열이 계엄내란을 일으킨 큰 이유 중 하나가 김건희 특검을 막기 위한 것이라는 게 거의 정설이긴 하죠. 그런데 김건희를 두고 쥴리 운운하며 마치 그가 성매매여성이었던 게 확실한 것인 양, 그리고 그것이 확실하기 때문에 여성혐오적 모욕을 해도 되는 양 생각하는 언행이 소위 '민주진영'에 많이들 퍼졌었습니다. 그러면서 김건희를 그렇게 모욕하는 것이 마치 김건희의 남편인 윤석열을 비판하는 중요한 이슈의 하나라도 되는 양 생각하는 풍조가 퍼졌었죠. 

당시 저런 풍조를 비판한 어떤 여성 신학 교수의 페북에서 다른 여성 신학 교수(나이가 더 많은)가 왜 그걸 비판하냐고 반론을 제기하는 걸 본 적이 있었습니다. 반론을 제기한 교수는 이 문제를 ‘페미니즘이 더 큰 사회적 대의와 어떻게 조화될 것인가’의 문제로 규정하려 애를 쓰더군요. 한국 신학계에서의 페미니즘 담론에 대해서라면 자신도 비교적 ‘선구자’ 격에 속한다는 이야기까지 하면서요. 김용민 씨가 이걸 봤더라면, 아 괜찮은 ‘페미’도 있네 이랬을까요.

저렇게 말하면서까지 김건희에 대한 쥴리 운운하는 말들을 포기하지 못했던 걸 보면 사실은 쥴리 운운하는 말들의 의도는 김건희를 모욕함으로써 윤석열을 모욕하려는 것이었겠다 싶습니다. 윤석열이 조국이라는 ‘민주진영’의 ‘스타’를 수사하여 그의 이미지에 흙탕물을 끼얹은 것을 그 '민주진영'에 귀속감을 갖고 있는 자신들 모두에 대한 모욕으로 받아들이고 그 모욕을 되돌려 주려는 마음이었겠다 싶은 겁니다.

나중에 최강욱 같은 사람들의 입에서 김건희를 두고 아예 ‘암컷’ 운운하는 말까지 나오기도 했던 걸 보면 더더욱 그렇게 보입니다. 한 걸음 더 나가면, 윤석열이 ‘민주진영’에 가했다는 모욕을 그 ‘민주진영’이 힘을 썼다는 ‘민주주의’에 대한 반동으로 해석하여 윤석열이 마땅히 사회적 응징의 대상이 되어야 한다는 생각으로까지 나아갔던 걸로 보이구요.

그래서 앞에서 언급한 김민웅 씨 등등은 윤석열이 당선된 지 얼마되지도 않았을 때부터 윤석열 퇴진과 탄핵을 주장하는 매주 집회를 열기도 했습니다. 윤석열이 계엄내란을 일으킨 지금, 매주 열리는 집회에 참석하는 사람들 중 상당수는, 윤석열의 계엄내란을 보니 역시 김건희를 쥴리 운운하는 말은 문제 없었다, 역시 조국 수사는 민주주의에 대한 윤석열의 반동이었다. 역시 윤석열은 그 때부터 ‘우리들’의 사회적 응징을 받는 게 맞았다고 생각할 것 같습니다. 물론 제가 언젠가 이 에큐메니안 지면에 썼듯이, 제가 보기엔 이 모든 생각이 미운 놈이어서 나쁜 짓을 할 거다라고 찍어 놓고 실제로 나쁜 짓을 하니 저런 나쁜 놈이어서 미워했던 거다라고 앞뒤를 슬쩍 바꿔 놓으려는 짓입니다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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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원순 사건이나 김건희 건에 대해서 이렇게 말하고 보니, 이런 건들을 건덕지로 해서 김용민 씨 같은 사람들이 소위 페미노총이니 페미인권센터니 하는 망상을 할 수 있다는 게 무슨 의미일까 하는 생각을 해 보게 됩니다. 즉, 이 때 ‘페미’ 운운하는 망상의 언어에 담긴 실체는, ‘민주진영’의 생각과 말들이면 모두 옳고 그래서 ‘당연히’ 먹혀야 하는데 안 먹힌다는 거구나 싶은 겁니다.

그런데 그 ‘당연히’ 안 먹히는 다른 경우는 그냥 민주주의에 대한 반동이다 치부해 버리면 되는데 페미니즘 이슈는 반동이다 치부해 버릴 수 없지요. 그래서 쉽게 말이 먹힐 리가 없구요. 그러니 말 안 먹힌다는 답답함이 그만큼 더해지고 어떤 사람들은 그게 열받음으로 바뀌면서 저런 망상까지 다다른다는 예를 김용민씨가 보여 주는구나 싶네요.

그래서 글을 맺으면서 이런 이야기를 해야겠다 싶습니다. 결국 중요한 것은 한국 사회의 소위 ‘민주진영’이 사회적 정당성을 독점하고 있다고 믿는 믿음 자체가 문제가 아니겠냐는 것입니다. 특히 윤석열 계엄내란 때문에, 소위 ‘민주진영’이 그런 독점에 대한 믿음을 더 강화하기 쉬운 이런 때이므로, 더더욱 그 독점에 대한 믿음의 문제를 생각해야 될 때 아니겠냐는 것입니다.

그나저나, 이런 글이 나가면 이제 김용민 씨 눈엔, 에큐메니안도 ‘페미’가 망가뜨려서 ‘페미’에큐메니안이 된 걸로 보일까요?

황용연 목사(기장 총회 사회선교사)  webmaster@ecumeni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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