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보티첼리의 <비너스의 탄생> (1485, 캔버스에 템페라, 172.5×278.5cm, 우피치미술관, 피렌체)과 고야의 <벌거벗은 마하> (1795~1800, 캔버스에 유채, 98×191cm, 프라도미술관, 마드리드)

인간은 죄인이다. 그것이 기독교적 인간관의 출발이다. 따라서 인체를 보는 시선도 다르지 않다. 중세 천년이나 세상을 지배한 교회는 인간과 인체를 죄악시하였다. 피부를 드러내는 일은 경망스럽고 부끄러운 일이라고 가르쳤다. 믿음이 좋을수록 검은 의복으로 피부를 가려야 했다. 이런 때에 인류 최초의 누드화가 등장하였다. 바로 보티첼리(1455~1510)의 <비너스의 탄생>(1482~1486)이다. 그렇다고 르네상스 때에 누드화가 보편화된 것은 아니다. 오직 신화와 성서 속 이야기만 미술의 소재가 되었고 인체의 이상적 아름다움만 표현해야 했다.

일반인의 누드화가 등장한 것은 그로부터 300년도 더 지난 후 에스파냐 화가 프란시스코 고야(1746~1828)의 <벌거벗은 마하>1800~1805에 의해서이다. 고야의 누드화는 로마가톨릭교회의 수호자를 자처하는 에스파냐 정부의 검열 대상이 되었기에 작품의 소장자인 재상 마누엘 고도이(1767~1851)는 비밀 전시실에 은밀히 보관하였다. 그가 권력에서 밀려나 프랑스로 망명하자 창고에 있던 그 작품은 당시 사회의 금기를 어긴 죄로 종교재판소에 압수되었다. 고야는 음란물을 그린 죄로 종교재판소에 소환되어 화형에 처할 위기에 처하기까지 하였다.

그 후 60여 년이 지난 후 다시 누드화가 논란이 된 사건이 일어났다. 1863년 프랑스 살롱전에서 떨어진 그림들을 모아 <낙선전>을 열었는데 에두아르 마네(1832~1883)의 작품 <풀밭 위의 점심 식사>(1863)가 전시되었다. 이 그림을 본 파리 사람들은 경악하였다. 당시 프랑스 미술은 신고전주의가 대세였고 특히 역사화가 주류를 이뤘다. 신고전주의의 터치로 그려진 누드화는 많았다. 자크 루이 다비드(1748~1825)의 <큐피드와 프시케>(1817), 앵그르(1780~186)7의 <그랑 오달리스크>(1814), <터키탕>(1862), 카바넬의 <비너스의 탄생>(1863) 등이 있지만 이때의 누드화는 한결같이 인체의 아름다움을 이상화하였다.

▲ 마네 <풀밭 위의 점심 식사> (1863, 캔버스에 유채, 208×264.5cm, 오르세미술관, 파리)

하지만 <풀밭 위의 점심 식사>는 달랐다. 마네는 신고전주의와 다른 붓질로 작품을 그렸다. 관람객들은 익숙하지 않은 화풍이 불편하였다. 아직 인상파를 이해하기에 시대는 느렸다. 화풍보다 도발적인 것은 화면의 여성이다. 캔버스 속 여인은 잘 차려입은 두 남자 사이에 나체의 앉은 자세로 관람객과 눈을 마주치고 있다. 그녀는 마주친 눈을 피하지 않고 있다. 도발적이고 대담하다. 부끄러움은 도리어 관람객의 몫이다.

그동안 누드화의 주인공은 실재하지 않는 상상 속 인물이 대부분이다. 하지만 마네는 실제 인물을 그리므로 당시 프랑스 사회의 위선과 가식을 비꼬았다. 오늘날 누드화는 보편적이며 영원한 가치를 표현하는 수단으로서 아름다움의 척도로 보는 시선이 많다. 그리스도교의 관점에서 보아도 크게 어색해 보이지 않는다. 인격과 인체는 하나님의 정교한 작품 아니던가!

신학에서는 인간의 신분을 죄인과 의인으로 구분한다. 하나님은 범죄한 아담과 하와에게 옷을 입히셨고, 예수 그리스도는 죄인 된 인류의 칭의의 옷이 되셨다. 옷을 벗으면 누구나 똑같다. 미국의 소설가 마크 트웨인의(1835~1910) 《왕자와 거지》의 왕자 에드워드의 옷을 바꿔 입은 거지 소년 톰 캔티처럼 그리스도인은 신분의 변화와 수준의 변화 사이에 고민하는 존재다. 바리새인처럼 위선의 옷을 입고 다른 이를 정죄하며 살 수도 있고, 수치를 가릴만한 최소한의 영적 감각도 없이 염세적 패배주의자가 되어 스스로 절망할 수도 있다. 물론 자기가 입고 있는 옷에 걸맞는 품격을 유지하여야 마땅하다.

사람을 긍정하는 신학은 잘못된 신학이 아니다. 사람을 부정하는 신학이야말로 왜곡된 신학이다. 기독교 세계관의 골자인 ‘창조-타락-구속-회복-완성’ 관점에 따라서도 사람은 아름다운 존재다. 타락 이전의 사람은 옷을 입지 않았다. 최초의 사람 아담과 하와를 그린 루터의 친구이자 종교개혁 시대의 화가로서 루터의 동역자인 루카스 크라나흐(1472~1553)의 <아담과 하와>, 북유럽의 르네상스 화가 알베르히트 뒤러(1471~1528)의 <아담>과 <하와>(1507)는 아름답고 섬세하게 묘사하였다. 특히 뒤러의 정면성의 원리를 따른 <자화상>(1500)은 사람을 긍정하는 근대 인간관의 신호탄이기도 하다.

이즈음에 슬며시 드는 도발적 질문이 하나 있다. 하나님의 나라에서도 옷이 필요할까? 만일 옷이 필요 없다면 인체는 아름다울까? 흉할까? 각자의 신학과 신앙이 답을 주겠지만 궁금하다.

최광열(기독교미술연구소)  webmaster@ecumenian.com

<저작권자 © 에큐메니안,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