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KSCF 내장산 여름대회 사진 ⓒ김혜숙 제공

황주석 선배님!

대답을 들을 수 없음을 알면서도, 불러봅니다. 시대적인 어려움 속에서 하나님 뜻대로 살기 위해 교회와 사회 참여로 두 세사람의 몫을 살며, 마지막 기운을 다할 때까지 최선을 다하신 분, 우리들의 영원한 기독 청년 운동가. 선배님 생각하면, 열정, 정의감, 순수함, 리더십과 추진력, 자유로운 영혼… 이런 단어가 떠오릅니다.

1971년 풋내기 신입생 시절, 종로5가 기독교회관 K사무실을 열심히 드나들 때 사무실에서 선배님을 처음 만났었지요. 다부진 몸매에 까만 뿔테 안경의 신학생! 그 후에도 기독교회관 져네브 다방에서 여럿이 차를 나누며, 학생운동에 대한 얘기, 대학 생활에 관한 많은 얘기를 나눴지요.

그해 여름, 전국적으로 K회원이 총집결한 <내장산 여름대회>에서 선배님을 다시 만났습니다. (그때가 KSCF의 전성기였다는 생각이 듭니다.) K전국지구 부회장, 학사단(학생사회개발단) 단장님을 맡으시며 변화하는 사회현실에 대응하기 위한 학생운동의 시도로 정치적 사회구조적으로 확대해 문제의식을 민중학적 운동으로 발전시켜야 한다며 열변을 토하셨어요. 가자! 보자! 행동하자! 우리의 그 구호가 제 마음을 움직였기에 저 역시 학사단운동에 관심을 갖고 참여했습니다. 동지애를 발휘하시는 선배님이 계셨기에 가능했던 것 같습니다.

선배님이 섬기셨던 명륜동 ‘창현교회’에 와보라고 성화를 하셔서 몇 달 나갔었고, 활동하셨던 야학에도 기웃거렸던 기억이 어렴풋이 납니다.

71년 10월 위수령 조치로 제적당하시고 12월엔가 육군 강제 입대 후 훈련 중 <유행성출혈열>이라는 심각한 병으로 육군통합병원으로 긴급 후송 되시며 조금씩 회복 기미 보이실 즈음, 제게 문병하러 오라는 전화를 주셨지요. (올 때 맛있는 거 잔뜩 갖고 오라며) 마침 1월 초 이틀이었기에 집에 음식이 많았습니다. (그 전날 교장으로 계신 아버지 학교 교직원 전원을 식사 초대한 다음 날이었으므로) 저는 맛있는 음식을 바리바리 싸 들고, 절친 정영순(후에 정상복 목사님 사모)와 그 당시엔 먼 거리였던 국군통합병원을 찾아갔습니다.

생명이 위험할 수도 있는 병이라 많이 걱정했기에 목소리만 들어도 반갑고 고마웠거든요. 근심 어린 표정으로 쳐다보는 우리에게 하신 말씀 생각나세요? 이 병으로 하나님이 나를 데려가시면 하나님한테는 큰 손해라서 차질이 있으실 테니 그럴 일은 없을 테니 걱정하지 말라며 오히려 우리들을 위로하셨지요. 아직 하나님 일을 해야 할 게 너무 많다며 자신만만하고 당당하셨던 그 모습!. 위축은커녕 그 당당한 뚝심이 참 멋있었지요.

EYC 초대 회장 하실 때 <꽃들에게 희망을>이란 주제로 프로그램을 기획하실 때 미술대 출신이니 포스터와 팸플릿을 제작해 달라고 부탁하셨을 때 나름 구상도 해야 하고 디자인색도 맞춰야 하므로 시간이 필요했음에도 성격 급한 선배님은 매일 독촉 전화로 빨리해달라고 저를 달달 볶으셨어요. 결국 만사 제치고 우선순위로 끝냈고 한참 후에 그 대가로 떡볶이와 오뎅을 사주셨던 기억이 납니다.

뜻을 둔 일에는 박력과 추진력으로 주저함이 없지만, 반듯하지 않은 것에 불같이 화를 내셨던 모습도 기억납니다. 힘들고 소외된 계층, 가난한 민중의 벗이 되어 그들의 삶을 더 좋게 만들려고 애쓰신 선배님! 세상의 탁류를 무관심하게 지나치지 않으시고 또한 불의한 세상과 타협할 줄 모르신 선배님!

한순간도 쉼 없이 자기 몸을 아끼지 않았던 선배님께 저는 너무 무리하신다고 걱정하면 내가 고교 시절 기계체조 선수로 다져진 몸이라 괜찮다고 내 이름 주석은 주춧돌같이 단단한 돌이라고 하시며 하하 웃으셨지요!

그 후 각자의 삶으로 바쁜 시간을 보내며 가끔씩 전화로 안부를 나누었을 때도 여전히 호기심 많은 영원한 소년처럼 활기찼었는데 뜻밖에 비인강암 발병 소식을 들었지요. 언젠가는 툭툭 털고 다시 예전의 일상으로 돌아오기를 간절히 바랐습니다.

박종렬, 신대균, 이광일 선배님과 일산암센터로 문병하러 갔을 때 내색안하고 의연하게 앉아계셨지만 힘든 기색이 역력했고, 이미 병색이 짙어 목소리도 제대로 안 나오신 걸 보며 얼마나 안타까웠는지 모릅니다.

그 단단한 몸을 무자비하게 무너뜨린 병마! 그 병마와 싸울 때 얼마나 외롭고 두려웠을까요?
문병 다녀온 일주일 후인가? 소천 소식을 듣고는 슬픈 마음으로 장례식장으로 달려갔던 기억이 납니다.

삶은 어쩌면 짧은 만남 끝에, 긴 이별을 견디어내는 것인지도 모릅니다. 누구보다도 세상을 사랑하신 분, 팍팍한 삶의 무게를 고스란히 소외된 자들과 아이덴티티(identity) 해야만 이 사회가 조금씩 나아진다고 강조하신 선배님! 혼신의 힘을 다 쏟고 떠나신 열정의 선배님!

선배님을 만난 건 제게 축복이며 행운이었습니다. 보고 싶습니다.

김혜숙(70년대 KSCF 서울지구 부회장)  webmaster@ecumeni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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