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내란 우두머리 혐의로 체포된 윤석열이 출석한 가운데 구속 전 피의자심문(영장실질심사)이 열린 지난달 18일 서울 마포구 서울서부지법에서 윤 대통령 지지자들이 법원 담장을 넘고 있다. ⓒ연합뉴스

1.

지난 달에 일어난 서부지법 폭동 사건은 많은 분들에게 충격을 주었지요. 그 충격을 표현한 언어들을 살펴 보면 그 충격이 양적인 것이라기보다는 질적인 것이 아니었나 하는 생각도 하게 됩니다. 말하자면, 그 사건을 겪고 나니 지금의 이 내란/탄핵 정국을 보는 관점이나 나아가서는 한국 사회를 보는 관점 자체가 달라져야겠다고 생각하는 분들이 꽤 많아지지 않았나 하는 생각입니다. 극우파의 폭력이 언제든지 일어날 수 있는 사회라는 점에서 말입니다.

‘극우파’의 폭력이라고 써 놓고 나니 이런 생각이 듭니다. 앞에 ‘극’자를 붙일 필요가 과연 있을까. 어떻게 보면 지금 내란을 진압하고 탄핵시켜서 구해야 한다고 하는 대한민국이라는 이 나라의 성립 자체부터가 극자를 안 붙여도 되는 우파의, 민간인 학살과 전쟁이라는 폭력에 기반한 것이 아니었나 싶거든요.

중요한 것은 그런 폭력을 저질러 놓고도 그 폭력은 사회를 어지럽히고 전복하려는 자들에 대해서 정당한 권위에 의해 행사된 당연한 폭력이라 하는 말(요즘도 자주 밈으로 보이는 “빨갱이는 죽여도 돼”라는 말 같은)이 이 대한민국이란 나라의 디폴트 상태가 되었다는 것이겠구요. 지금도 ‘극자를 안 붙여도 되는’ 우파들 상당수가 그런 생각을 하고 있다는 것이 현실이기도 한 것 같습니다. 이렇게 본다면 12월 3일의 그 계엄부터가 저런 ‘당연하다고 생각되는 폭력’의 한 큰 예였겠지요.

이러한 배경 위에 각자가 생각하는 ‘당연한 폭력’이 겹치지고 있는 것이 지금의 상황인 것 같습니다. 중국인이 어쩌고 하는 말이 자꾸 나오고 전통적인 적인 북조선보다도 중국이 많이 적으로 언급되는 것도 그러한 ‘당연한 폭력’과 얽혀서 벌어지는 일이라고 하겠습니다. 상대편을 한국인이 아니라 중국인인 셈 치겠다는 이야기고 그렇다면 불순하게 끼어들었다는 말이 되지 않을 수 없으니 폭력을 행사해서라도 밀어내는 게 당연하게 되는 거 아니겠습니까.

이렇게 생각하면 무슨 ‘손가락’이 어쩌고 해 가면서 자기들 눈에 그런 ‘손가락’이 보이면 가차없이 인터넷으로 공격해서 사과를 받아내는 게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남자들’이 저런 ‘당연한 폭력’의 자리에 많이 끼는 것도 이상한 게 아니겠지요. 여기서 자기는 탄핵에 찬성한다고 하는, 즉 ‘극’우파는 아니라는 어떤 ‘남자’ 정치인이 그것만 빼면 저 손가락 운운하는 자들의 폭력을 당연한 폭력이라고 주장해 왔다는 점도 짚어 둘 만 하겠습니다.

2.

그런데 이렇게 써 놓고 보니 한편으로는 다른 생각이 듭니다. (극)우파들이 상대편을 한국인이 아니라 중국인인 셈 친다고 했는데요. 지금 윤석열 탄핵을 열렬히 주장하는 사람들에게 상당히 넓게 퍼져 있는 말이 상대편을 한국인이 아니라 일본인 취급하는 말들이기 때문입니다. 아예 총선거 때 웹자보로 이번 선거는 한일전이라고 하는 말들이 공공연히 돌 지경이었지요. 물론 그래서 상대편에서도 언제부터인가 이번 선거는 한중전이라는 말을 퍼뜨리기 시작했고 그 영향이 앞에서도 말했듯이 지금 이 내란/탄핵 정국에도 미치고 있습니다만.

‘손가락’이 어쩌고 하는 폭력에 관해서도, 사실 윤석열 탄핵을 주장한다는 사람들 중에도 ‘남자들’ 상당수는 저 폭력의 동기에 동조를 하고 있는 것도 현실이거니와, 이런 사람들 사이에는 또 이런 사람들의 생각대로 ‘가차없이 인터넷으로 공격’하는 대상들이 또 부지기수로 있거든요.

특히 지금 당장 지지율 1위를 하고 있는 정치인의 앞길을 막는다고 생각하는 대상에겐 상당히 가혹하죠. 그래서 좀 웃긴다는 생각이 드는 것이, 지금 지지율 1위를 하고 있는 정치인이 8년 전에는 이 소위 '민주진영'에서 가장 오지게 욕을 먹는 사람 중의 하나였는데 지금은 그의 지지자들이 가장 오지게 다른 이들을 욕하는 사람 중의 하나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번 서부지법 폭동을 보면서 이런 생각은 하게 되었습니다. (극)우파라는 진영과 ‘민주진영’이라는 양 진영 모두 이렇게 상대를 외국인 취급하고 자기들만 ‘찐’ 한국인이라고 여기는 건 마찬가지고 그에 따라서 가차없는 공격을 가하는 것도 마찬가진데, 한 쪽은 그 폭력을 '물리적'으로도 일으키고 다른 한 쪽은 ‘물리적’ 폭력까지는 생각을 못 하는 것 같다는 겁니다. 역시 우파의 폭력으로 건설된 대한민국이라서, 우파의 폭력이 진본이고, 소위 ‘민주진영’은 그것의 모방에 그친다고 할 수 있을까요.

3.

매주 열리는 윤석열 탄핵 집회에서 여성과 소수자들의 발언이 늘어나고 있습니다. 발언할 때 ‘나는 여성이다’, ‘나는 장애인이다’, ‘나는 성소수자다’, 특히 ‘나는 트랜스젠더다’ 이렇게들 말하고 시작을 하는데요.

예를 들어 “나는 여성이다”라고 할 때, 그것이 발언자의 주민등록번호가 2 혹은 4로 시작한다는 말, 즉 나는 이런 사회적 위치를 갖고 있는 사람이다는 말을 하려는 건 아니겠죠. “여성이다”라고 말하는 건 자기의 삶이 이런 삶이었으며 그런 삶을 살면서, 살고 있기 때문에 여기 나와서 당당하게 발언한다는 서사를 말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장애인, 성소수자, 트랜스젠더라고 말하는 사람들 역시, 그 말을 함으로써 자신의 삶의 서사를 말하는 것이겠구요.

여성과 소수자들의 발언에 관해서 특히 ‘안전’이란 말이 많이 언급됩니다. 여성과 소수자들이 발언을 해도 그 발언을 묵살하지 않아 그들의 존재를 존중한다는 의미인데요. 여성과 소수자들이 그런 '안전'을 누리지 못한 구석이 많았기에 특히 중요한 것이겠고, 그런 누리지 못한 경험이 여성/소수자들의 서사의 중요한 형성 요소이기도 할 것입니다.

현재 윤석열 탄핵 집회의 주최측은 적어도 공식적으로는 그런 '안전'을 지키려고 하는 것 같습니다. 물론 뒤에서는 지난 번 칼럼에서도 이야기했지만 특히 트랜스젠더에 대한 이런저런 험담들이 오고간다고 합니다만.

이렇게 서사라는 점을 주목하고 보니 지금 폭력에 얽혀 있는 사람들을 이 서사라는 관점에서 바라본다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어쩌면 이들에게는 자기의 삶에 근거한, 이렇게 살아왔으므로 나는 고통스럽기도 했지만 당당했다는 서사가 부족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 보게 되는 겁니다. 그리고 그런 점에서, 특히 이 폭력에 연루된 사람들에 대해 주로 ‘사회적 위치’를 이리저리 뜯어 보려는 이야기들만으로는 부족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해 보게 됩니다.

윤석열 탄핵은 결국 새로운 사회를 만들어 가야 한다는 하느님의 명령이기도 하겠지요. 결국 사회는 나는 당당하게 살고 있다는 사람들에 의해서, 그러므로 같이 당당하게 살아가자고 손을 내미는 사람들에 의해서 만들어져 갈 것입니다. 그러니 여성과 소수자들의 서사야말로 새로운 사회의 당연한 시작점이지 않을까요.

황용연(사회적 소수자 선교센터 무지개센터 대표)  webmaster@ecumeni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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