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광야 이스라엘 성막공동체는 성막으로 중심으로 각 지파가 배치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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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시간에 민수기의 처음 이야기를 시작하면서, 출애굽의 행진과는 전혀 다른 성격의 행진을 시작한다는 말을 했습니다. 출애굽의 행렬은 물론 구원받은 백성의 행렬이긴 합니다만, 갑작스럽게 멋도 모르고 그저 무작정 떠난 행렬이었습니다. 그런데 민수기의 행렬은 전혀 달랐죠. 지휘체계를 갖추고, 행군의 순서도 정하고, 진지를 구축하는 계획도 세우고, 무엇보다도 정확한 목적지를 향해서 떠나는 행렬입니다. 그러기 위해서 지파별로 가문별로 정확하게 군대 병력을 계수합니다. 그래서 민수기라는 책의 제목부터가 <백성들의 수를 세었다>는 의미입니다. 백성들의 수를 세고, 체계적인 행렬을 시작하는 것입니다.

이 체계의 중심에 있는 것이 바로 ‘성막’입니다. 성막은 출애굽기에서 우리가 이미 살펴보았습니다. 하나님을 만나러 시내산 위에 올라간 모세에게 하나님께서 여러 가지를 명령하시는데, 그 명령의 중심에 있는 것이 바로 ‘성막을 만들어라’라는 것이었습니다. 성막을 만들고 그 안에 지성소를 만들어 놓으면, 그 지성소 앞에서 하나님께서 우리를 만나주시겠다는 것이죠. 하나님께서 우리를 만나주시는 지성소, 지성소를 모신 성막. 민수기가 보여주는 체계는 바로 그 성막을 중심으로 한 체계입니다.

그래서 광야에서의 이스라엘 공동체를 다른 말로 ‘성막공동체’라고도 부릅니다. 조금 성급한 결론입니다만, 민수기가 우리에게 말해주고자 하는 것은, ‘우리는 하나님을 우리 안에, 우리 중심에 모신 공동체가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의 삶의 모든 계획, 준비, 질서, 꿈꾸는 것, 바라는 것, 실제로 사는 것, 그 모든 것이 ‘하나님을 중심에 모신 사람들로써 살아야 한다’는 것이죠.

그 준비와 계획의 실천을 민수기는 ‘군대 병력을 계수’하는 일로 표현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게 계수한 군대 병력의 숫자가 총 ‘육십만 삼천 오백 오십 명’입니다. 20세 이상의 남성만 셌으니까, 여성과 아이도 포함하면 적어도 150만 명에 육박하는 대규모의 공동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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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오늘 말씀에는 예외 사항이 등장합니다. 모든 지파를 가문별로 가족별로 한 사람도 빠짐없이 그 숫자를 세도록 하셨는데, 사실 빠진 지파가 있습니다. 레위 지파입니다. ‘레위 지파는 인구조사에서 빼라’ 하십니다. ‘이스라엘의 징집자 명단에 올리지 말아라’ 하십니다. 그 이유를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레위 지파에게는 특별한 임무가 주어졌기 때문입니다. 바로 하나님을 모신 성막을 관리하는 임무를 맡은 것입니다.

그런데 조금 이상하지 않습니까? 저는 군대를 안 다녀왔지만, 군대에서 전체 병력 인원을 점검하면서, 누구는 빼놓고 세는 경우가 있습니까? ‘우리 중대는 전원 200명입니다. 취사병은 따로 7명입니다.’ 그럽니까? ‘전체 200명 중에 취사병은 7명입니다’ 그러지 않나요? 임무가 다를 수는 있지만, 전체 군대 병력에 함께 계수해야 하는 것 아닙니까? 일단 숫자는 전부를 다 세고 나서, ‘너는 무슨 임무, 너는 무슨 임무’ 그렇게 임무 배분을 하는 것이지, 임무가 다르다고 아예 전체병력에서 제외하는 법은 없습니다.

그런데 오늘 성경은 그 이상한 방식을 적용하고 있습니다. 모든 지파의 군인수를 일일이 다 세서 모두 ‘육십만삼천오백오십명’이다. 하고 땅땅땅. 결론까지 내려놓고는, ‘그런데 레위 지파는 따로 세는 거야’ 하시는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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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방식이 전혀 이상하지 않다면 상관없지만, 이상하다면 그 이유를 설명한 부분을 눈여겨봐야겠지요.

레위 지파를 따로 떼어 놓는 일은 사실 억지스런 일입니다. 2장을 보면 군대 배치방식이 나오는데, 성막을 중심으로 동서남북 네 방향에 각각 세 지파씩을 배치합니다. 이스라엘이 총 열 두 지파니까 딱 맞겠지요? 맞습니까? 아니죠. 안 맞잖아요. 레위지파를 빼버렸으니까 열 한 지파 밖에 안 되죠. 그래서 억지로 요셉 지파를 에브라임과 므낫세 지파로 둘로 나눠서 열 둘을 맞춥니다. 왜 굳이 이런 불편한 일을 하느냐는 것이죠.

이상하면 그 이유를 살펴봐야 한다고 했죠. 그 이유가 뭡니까? 레위지파에게는 특별한 임무가 있다는 거죠. 50절의 말씀이 이렇습니다. “그들은 성막을 돌보며, 성막 둘레에 진을 치고 살아야 한다.”

우리는 바로 이 말씀을 눈여겨봐야 합니다. ‘하나님의 성막을 돌보는 일’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해야 하는 여러 가지 수많은 임무 중에 한 가지가 아닌 것입니다. 그것은 특별한 일인 것입니다.

- ‘레위 지파는 무슨 일을 해?’ 
- ‘응, 이 일도 있고 저 일도 있고 일이 많은 데 가만 보자. 아~ 레위 지파는 성막을 돌보네~’

이런 게 아니라는 것입니다.

‘군대 중에 보병도 있고, 포병도 있고, 취사병도 있고, 행정병도 있고, 운전병도 있는데, 그 중에서 나는 취사병이야.’ 이런 것하고 전혀 달라요.

그래서 애초에 이상했던 것입니다. 레위 지파에게 맡겨진 일을, 군인이 하는 여러 가지 임무 중에 하나처럼 생각하니까, 그렇게 생각하고 접근하니까, 레위지파만 특별하게 따로 떼어놓은 것이 이해가 안 됐던 겁니다. ‘왜 취사병을 따로 세? 다 세어 놓고 몇 명에게 임무를 맡기면 되지?’ 이런 생각이 들었던 거죠.

애초에 레위 지파에게 맡겨진 일은 군인의 일이 아닙니다. 군대의 일이 아니에요. 그래서 군대에 계수하면 안 되는 겁니다.

저는 여러 가지 번역본을 비교하면서 성경을 보는데요. 개역성경, 새번역성경, 가톨릭 성경, 공동번역, 영어성경도 보구요. 잘 모르지만 히브리어, 헬라어 성경도 떠듬떠듬 봅니다. 요즘 새한글성경이라고 새롭게 번역된 성경이 나왔는데, 그 성경도 아주 번역이 좋습니다. 그 중에서 새번역 성경을 제일 좋아하는데요. 다 좋은데, 조금 불만인 게 있습니다. 중간중간에 성경 단락마다 소제목을 달아놓았는데, 그 소제목이 좀 맘에 들지 않은 것이 가끔가다 있습니다.

오늘 우리 말씀 앞에 뭐라고 되어 있나요? “레위 지파의 병역 면제” 이렇게 되어 있지요? 이게 참 잘못되었어요. 병역 면제라고 하면 무슨 뜻이죠? ‘누구나 다 군대에 가야 되는 데, 레위 지파는 면제해줬다.’ 이런 뜻이죠? 병역 면제라는 제목을 보고 나서 이 말씀을 읽으면 무슨 생각이 들까요? ‘아 이스라엘 백성은 다 군대에 가야 되는 데, 레위 지파는 하나님 섬기는 일을 한다고, 병역 면제를 해 줬구나~’ 이러지 않겠어요? 말씀의 진짜 의미를 오해하게 됩니다.

저보고 제목을 달라고 하면 이렇게 하겠습니다. “레위지파에게 부여된 성역.” 지금 오늘 이야기는 레위지파가 병역을 면제 받는 이야기가 아니라, 성역을 부여받는 장면입니다요. 이 말씀을 읽으면서 우리는 ‘레위지파는 군대 면제됐네 좋겠다’ 그러는 게 아니라, ‘레위지파는 세상적인 일과 완전히 차원이 다른 하나님의 일을 맡았구나’ 이렇게 이해해야 하는 것입니다.

사실 ‘계수해라. 수를 세라’는 히브리어 자체가 ‘임무를 맡긴다’는 의미가 있습니다. 그냥 숫자를 세는 것이 아니라, 임무를 부여하는 것입니다. 모든 백성에게 부여된 임무가 있다는 거죠. 어떤 임무를 가지고 살아가느냐? 어떤 임무가 부여받았느냐?

민수기가 오늘 레위지파의 이야기를 통해서 우리에게 건네는 말이 이겁니다. “당신은 하나님께 무슨 일을 받았습니까? 어떻게 살아가라고 하나님께서 당부하셨습니까? 그래서 이 세상 한평생 살아가면서 당신은 도대체 뭘 하면 됩니까? 뭘 하고 살 생각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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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수기의 제목이 ‘백성의 수를 센다’는 거죠. 그런데 히브리 성경의 제목은 조금 다릅니다. 히브리 성경의 제목은 ‘민수기’가 아니라 <광야에서>라고 되어 있습니다. 광야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느냐? 이스라엘 백성이 광야에서 도대체 어떤 삶을 사느냐? 어떤 일을 경험하고 어떤 일을 겪어내길래 그들이 하나님의 백성이 되느냐? 하는 겁니다.

광야는 하나님의 시선으로 보면, 해방의 공간이요, 소망의 공간입니다. 죽음에 허덕이는 백성들에게 새생명을 주시는 공간입니다. 그런데 다른 한편 광야는 불순종의 공간입니다. 실패의 공간이요, 좌절의 공간입니다. 하나님께서 구원해 주시고 새생명을 주시는데도, 그 구원을 제대로 살아내지 못하고, 새생명을 가지고서 도로 죽음으로 뛰어드는 그런 공간입니다.

광야는 하나님의 끝없는 구원과, 인간의 끝없는 실패가 어우러지는 곳입니다. 인간이 끝없이 실패함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 끝없이 포기하지 않고 구원하시는 곳입니다. 바로 그 하나님을 증언하는 것이 민수기입니다. 인간의 일과 하나님의 일이 어우러져 있는 것입니다.

민수기는 광야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느냐를 말하기에 앞서서, 지금 먼저 큰 판을 짜고 있습니다. 인간적인 영역의 일과 신적 영역의 일을 나눠놓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일이 있고, 인간의 일이 있습니다. 이 두 가지 영역은 우리 안에 있지만, 함부로 섞어 버릴 수도 없고 혼동해서도 안 됩니다. 그런데 실은 이 두 가지 영역의 일이 우리 안에서 아름답게 조화될 때, 구원이 일어납니다.’ 하는 것입니다.

‘이건 인간적인 영역의 일입니다. 하나님과 상관없습니다’ 할 때, 여지없이 무너지고, 가차없이 실패합니다. ‘그거 하나님의 일이라고 하는데, 아무나 해도 되는 거 아닙니까? 뭐 그렇게 대단한 거라고 싸고 앉았습니까?’ 그렇게 교만하고 소홀할 때, 하나님의 진노의 심판이 여지없이 강타합니다. 레위사람들은 군대 면제됐대~ 하고 사소하게 넘어가면, 이 민수기의 핵심을 다 놓쳐버립니다.

우리 삶에는 하나님께서 부여하신 인간적인 영역의 소명이 있습니다. 그 일을 열심히 해야 합니다. 그래야 광야에서 물도 얻고 식량도 얻습니다. 그래야 우리를 위협하는 적들도 물리칠 수 있습니다. 그래야 우리에게 허락하신 땅을 손에 넣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 그것만 가지고는 안 됩니다. 우리 삶에는 인간적인 영역의 일과는 전혀 다른 차원의, 신적 영역의 성역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특별히 부여하신 하나님의 일이 있어요. 그 일에 소홀하면, 그 일을 제대로 하지 않으면, 그 일을 업신여기면, 60만명 대부대가 아무리 용써봐야 아무것도 못 한다는 겁니다.

그래서 이스라엘 백성이 그냥 공동체가 아니라, ‘성막공동체’입니다. 하나님을 성소에 모시고, 그 성소를 내 중심에 목숨같이 모시고, 부적처럼 붙들고만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만나고 하나님과 이야기하고,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하나님의 명령을 따르고, 하나님과 하나 되어 살아가야 하는 겁니다. 살아가라는 겁니다. 50절 맨끝을 보세요. ‘성막을 지키고 돌보는 게 레위지파의 임무다’ 그러지 않아요. ‘성막 둘레에 진을 치고 살아야 한다’ 뭐라구요? ‘살아야 한다!’ 성막에서 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민수기에 나오는 이야기들은, 광야에서 있었던 여러 가지 우여곡절들을 그냥 쭉 적어놓은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을 중심에 모시고 하나님과 하나 되어 살았을 때에, 우리의 삶에서 일어나는 구원의 신비를 증언하는 겁니다. 하나님과 하나 되지 못하고 내 멋대로 살았을 때 광야에서 일어났던 비참한 우리들의 절망을 증언하고 있는 것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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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오늘 이야기를 마치면서 한 가지 질문이 더 남아있습니다. 왜 성막인가? 왜 성막을 돌보는가? 왜 레위지파인가? 왜 레위지파에게 맡기셨나?

여러 가지 설명은 있을 수 있겠습니다만, 정답은 없습니다. 중요한 것은 그 질문을 붙들고 우리가 진지하게 고민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왜 나인가? 왜 나에게 이 일을, 이 삶을 맡기셨나?

누구라도 언제라도 그 일을 하기만 하면 되는 것이 아니에요. 내가, 지금 맡겨진 일을 해야해요. ‘성막을 옮기는 것도 레위사람이, 성막을 세우는 것도 레위 사람이!’ 왜 지금 나를 이렇게 살게 하시는가? 왜 이 일을 하게 하시는가? 왜 이곳에 나를 세우셨는가?

답을 찾자는 것이 아니라, 고민하자는 겁니다. 그 고민을 가지고 하나님 앞에 엎드려 기도하자는 겁니다. ‘이거 주세요 저거 주세요’ 하는 쓸데없는 기도 말구요. ‘나는 왜 지금 이 자리에서 이렇게 살고 있는가요? 하나님, 왜 나를 이렇게 살게 하시나요? 지금 내 삶 속에서 나는 어떻게 살아야 하나요?’ 이 질문을 끝까지 붙들고 기도하는 저와 여러분이 되길 기도합니다. 그 간절한 기도의 끝에, 과연 하나님께서 허락하시는 광야에서의 구원이 우리 삶에도 임하시리라 믿습니다.

주재훈 목사(생명교회)  lewisciper@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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