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국가폭력 피해자들이 서울 지법 앞에서 기자회견을 개최하고 피해자들도 모르는 보도자료 사과로 그친 국가의 행태에 대해 1722명의 탄원서를 대법원에 제출하고 정의로운 판단을 촉구했다. ⓒ장성호

“1983년 군에 입대해 보안대에서 폭력과 사상 전향 강요를 당했습니다. 국가의 존재 이유는 국민의 생명과 인권을 보호하는 것입니다. 대법원이 이 비극을 종지부 찍어주길 바랍니다.”

박만규 목사가 11월 27일, 오전 11시 서울 중앙지방법원 앞에서 열린 “강제징집·프락치강요 공작 등 국가폭력 국가의 권고사항 이행의무애 대한 대법원 판결을 촉구하는 1722명의 탄원서 제출 기자회견”에서 이같이 호소했다.

이번 기자회견은 ‘녹화공작·강제징집 국가폭력 피해자들을 위한 기독교대책위원회’, ‘강제징집·녹화·선도공작 진상규명위원회’, ‘(사)제주4.3범국민위원회’, ‘한국전쟁전·후 민간인피학잘전국유족회’, ‘삼청교육대전국피해자연합회’ 등의 과거사 단체들이 공동으로 주최한 것이다.

강제징집·프락치강요 공작 등의 사건은 군사독재정권 시절 대학생들을 대상으로 한 불법 강제 징집에서 비롯된 것으로 40년 넘게 은폐되어 있었다. 하지만 고 이종명 목사와 박만규 목사 노력으로 2022년 진실화해위원회의 조사를 통해 전모가 드러났다.

진실화해위는 이들을 국가폭력 피해자로 인정하고, 정부를 향해 ▲ 국가사과, ▲ 병역의무 이행과정에서 부당한 인권침해 재발 방지, ▲ 피해회복 조치, ▲ 피해사실 조사기구 설치, ▲ 의료접근권 강화 등 5가지 조치를 권고했다.

하지만 2년이 지난 지금, 형식적인 보도자료 사과를 제외한 나머지 권고 사항은 이행되지 않고 있다. 국가사과 역시 피해자들에게 직접 전달되지 않았고, 당사자들은 사과 내용을 제대로 알지 못하는 상황이다. 이에 국가폭력 피해자들은 정부의 실질적인 사과와 ‘과거사정리 기본법’에 따른 의무 이행을 촉구하며, 대법원에 탄원서를 제출하기 전 기자회견을 열었다.

전남병 목사(고난함께)의 사회로 시작된 기자회견에서 법무법인 원곡 최정규 변호사는 “진실화해위원회는 국가가 사과하고 피해자들의 명예를 회복하라고 권고했지만, 국가는 6개월 동안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고 비판했다. 이어 “1, 2심에서 승소했지만, 국가는 여전히 사과하지 않고 있다.”며 대법원의 정의로운 판결을 촉구했다.

▲ 기자회견을 마친 각 단체 대표들은 탄원서를 직접 대법원에 제출했다. ⓒ장성호

또한 이날 기자회견에는 또다른 국가폭력 피해자들도 참석해 증언에 나섰다. 이만정 삼청교육대 전국피해자연합회 이사장은 “국가가 진실화해위원회의 권고를 이행하지 않는 것은 국가 자신의 정체성을 부정하는 것”이라며 “역사 청산 없이는 국가의 발전도 없다.”고 강조했다.

김형보 강제 징집 녹화 선도 공작 진상규명위원회 대표는 “국가는 피해자들에게 진심으로 사과한 적이 없다.”며 “대법원이 국가의 뻔뻔한 행위를 바로잡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백경진 제주43 범국민위원회 이사장은 “정부 기관들이 진실화해위원회의 권고를 이행하지 않는 것은 법률 파괴 행위”라며 “대법원이 정의로운 판단을 내려주길 기대한다.”고 덧붙였다.

이정우 한국전쟁 전후 민간인 학살자 전국유족회 운영위원장은 “정부가 권고 사항을 이행하지 않는 것은 피해자들의 인권을 말살하는 행위”라며 “대법원이 정부의 위법성을 명확히 밝혀주길 바란다.”고 호소했다.

마지막으로 김진수 EYCK(한국기독청년협의회) 총무는 기자회견문을 낭독하며 피해자들의 입장을 대변했다. 그는 “한국전쟁 전후, 권위주의 시대와 군사독재 시절, 국가폭력은 피해자들의 삶을 철저히 짓밟았다.”며 “수많은 사람들이 국가의 폭력으로 고통받고, 씻을 수 없는 상처를 입었다.”고 지적했다.

이어 피해자들은 “진실화해위원회의 조사와 권고를 통해 회복의 길이 열리는 듯했지만, 정부의 무성의한 태도와 관계기관의 2차 가해로 다시금 절망하고 있다.”며 “정부는 국가폭력 피해자와 가족들에게 진심 어린 사과와 책임 있는 이행 조치를 보여야 한다.”고 촉구했다.

그들은 또한 “대법원이 정부의 무책임한 대응과 권고 이행 거부를 바로잡아야 한다.”며 “국민의 생명과 인권을 보호할 책임이 있는 국가가 정의와 화해를 통해 피해자들의 명예와 권리를 회복하도록 엄중한 판결을 내려줄 것을 기대한다.”고 강조했다.

기자회견문은 마지막으로 “국가폭력 피해를 입은 이들이 더 이상 고통받지 않는 사회를 만들기 위해, 정부는 진실화해위원회의 권고를 이행하고, 대법원은 정의로운 판단을 통해 국가의 책임을 명확히 해야 한다.”며 “이번 판결이 피해자들에게 회복과 위로를 줄 뿐 아니라, 한국 사회에 정의를 실현하는 전환점이 되길 바란다.”고 마무리했다.

기자회견 후 참석자들은 1,722명의 서명을 담은 탄원서를 대법원에 직접 전달했다. 이들은 “대법원의 정의로운 판단이 피해자의 권리와 명예를 회복하고, 더 나아가 국가폭력을 근절하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고 입을 모았다.

장성호  webmaster@ecumeni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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