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 이미지는 글의 내용과 상관없음을 밝힌다.

처음 시작한 교직생활에서 거대한 폭풍우를 경험한 뒤로 ‘절이 싫으면 중이 떠나야 한다.’는 생각을 했다. 그래서 공립학교 임용고시를 몰래 준비했는데, 결과는 불합격이었다. 당장 학교를 그만두고 싶었지만 내 생활뿐만 아니라 가족의 생계까지 책임지고 있는 마당이라 그것은 쉽지 않은 일이었다.

그래서 다른 사립학교의 모집공고를 보고, 역시 임용고시를 볼 때처럼 주위에 알리지 않고 원서를 넣었다. 겨울방학 동안 그 학교에서 시험과 면접을 봤고, 그렇게 며칠이 흘렀다.

“너, OO학교에 원서 넣었더라?”

교감이 날 호출하자마자 던진 이야기였다. 이미 학교를 그만 둘 생각은 하고 있었지만 뭔가 몰래 추진하던 것이 들켜버렸을 때의 당혹감은 분명 있었다.

“너 여기 뜨려고? 그거 쉽지 않아! 사립에서 사립으로 옮기는 일은 거의 없다고 봐도 돼. 모르는 것 같아서 가르쳐주는거야.”
“뭐 언젠가는 아실거라고는 생각했지만 잘 되었네요. 그럼 지금 바로 그만두겠습니다.”
“아니 이 사람아, 이야기를 끝까지 들어. 내가 부른 이유는 너 그만두지 말고 여기 남으란 소리야. 근데, 그만두려는 이유는 뭐야?”
“지금의 교장과는 교육관이 달라서 도저히 함께 할 수 없습니다. 그뿐입니다.”
“아, 그거였어? 그럼 됐네. 그냥 여기 남어. 그 사람 이제 그만두니까, 나랑 같이 하면 돼.”

그제서야 알았다. 사립학교끼리는 서로 간에 인재를 빼돌리면 안 된다는 어떤 불문율이 있다는 것을. 요즘은 그런 것들이 깨졌고 사람의 이동이 스카웃의 형태로 이루어진다는 이야기를 듣긴 했는데 당시에는 그런 불문율이 철저하게 지켜지던 시대였다.

학교를 옮길 수 있는 방법은 공립학교 임용고시를 다시 보거나 최소 5년을 근무한 이후 공립학교에서 실시하는 ‘특채시험’에 합격하거나, 그게 아니면 그냥 퇴직을 하고 약간의 공백을 가진 뒤에 다른 사립에 응시하는 방법밖에는 없었다.

떠나려는 사람을 누군가가 붙잡아 주는 것은 그리 기분나쁜 일은 아니었지만, 왠지 ‘개미지옥’에 빠진 것은 아닐까하는 느낌도 들었다. 사표를 던지지 않고서는 곱게 나갈 수 없는 곳.

어쨌든 학교를 떠나려고 결심하게 만든 가장 중요한 문제가 해결되었다는 말에, 나는 꾸려놓았던 짐들을 다시 풀고 또 그곳에서 몇 년의 시간을 보내게 되었다. 그래도 언젠가는 반드시 이곳을 떠나리라는 마음을 굳게 먹으면서 말이다.

홍경종 교사  webmaster@ecumeni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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