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시아종교평화학회와 원광대 평화연구소가 공동으로 주최한 국제학술회의 “적의 계보학”을 마친 한일 양국의 참석자들은 현대 사회 전쟁과 분쟁의 원인을 각 종교의 전통을 따라 살펴보았다. ⓒ장성호

“애국심과 민족주의는 비슷하지만, 그 기반과 결과는 다르다.”

“적의 계보학: 우리에게 적은 무엇인가”라는 주제로 아시아종교평화학회와 원광대 평화연구소가 공동으로 주최한 국제학술회의 세 번째 세션에 첫 발표자로 나선 데라바야시 오사무 전 오타니대학 교수가 애국심과 민족주의를 구별할 것을 촉구했다.

데라바야시 교수는 “애국심과 내셔널리즘”이라는 주제를 다루며 “애국심이 고향에 대한 애착, 전통, 역사, 종교와 연결되어 있으며, 현대 사회에서는 환경 파괴와 공동체 붕괴로 인해 고향의 재생을 바라는 민중의식으로 나타난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애국심이 정치적으로 의무화될 경우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특히 데라바야시 교수는 “민족주의가 자신의 나라가 다른 나라보다 우월하다는 신념에 기반한다.”고 말했다.

그는 민족주의가 국가 간 갈등을 부추기며, 애국심과 민족주의의 차이를 분명히 이해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두 개념을 구별하지 못하면 다양한 국제적 분쟁의 원인이 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이와 관련해 종교적 내셔널리즘이 아프리카, 유럽, 중동, 인도 등지에서 분쟁의 원인이 되고 있다고 우려를 표명했다.

그는 냉전 이후의 정치적 변화를 언급하며, 종교가 국가 정치에 미치는 영향에 주목했다. 구 유고슬라비아의 해체와 보스니아 전쟁, 아프가니스탄의 이슬람 정권 등은 종교적 내셔널리즘의 영향 아래에서 발생했다고 지적했다. 특히 2001년 9.11 테러 이후 서방 국가들 또한 정치적 우경화와 종교적 테러에 직면하고 있다고 경고했다.

▲ 사진 왼쪽부터 국제학술회의 세 번째 세션에서 발표를 맡은 데라바야시 오사무 교수, 원영상 소장, 오하시 겐지 기자 ⓒ장성호

두 번째 발표자인 원영상 원광대 평화연구소 소장은 “적과 전쟁에 대한 불교의 인식”에서 불교와 전쟁의 관계를 조명했다. 그는 불교가 종종 관념적인 종교로 여겨지지만, 역사적으로 불교에도 적 개념이 존재했다고 설명했다. 그 이유로 불교가 운명론적 요소를 극복하기 위한 설득의 과정이라는 점을 들었다. 또한 대승불교의 공업 개념을 통해 불교 교단이 사회적 죄악에 대한 해결 과정을 형성했다고 말했다.

원 소장은 대승불교가 정의로운 전쟁을 인정하며 일본불교의 전시교학으로 나타난 부정적 사례도 있다고 덧붙였다. 그는 불교가 현실에 적용되는 종교임에도 불구하고 현대 불교는 이러한 역할에서 상당히 부족하다고 지적했다. 그러나 그는 불교사상의 현대적 재해석을 통해 인게이지 불교와 같은 참여적 불교가 활발히 나타나고 있다고 강조했다.

마지막 발표자인 오하시 겐지 기자는 “신 부재의 문명과 내면의 적”을 주제로 발표를 이어갔다. 그는 일본에서 ‘적’ 개념을 많이 생각할 기회가 적었다고 하면서도, 신자유주의가 득세하는 현대 상황에서 진정한 적 개념을 고민하게 되었다고 말했다. 그는 현대 문명이 기술과 경제적 가치에 의해 지배되며, 이는 사회적 불평등과 갈등을 초래한다고 비판했다.

오하시 기자는 하이데거의 “게슈텔” 개념을 인용하며 모든 존재가 유용성의 척도로 판단되는 현대 사회 구조를 비판했다. 이어 칼 슈미트와 이반 일리치의 말을 인용해, 대립이 새로운 전쟁을 초래할 수 있다는 우려를 표명했다. 그는 현대 문명의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인간의 가치를 경제적 척도로만 평가하는 시장 신학에 대항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마지막으로 이어진 종합토론에서는 종교와 신학의 역할에 대한 논의가 이루어졌다. 참가자들은 종교가 인류의 삶을 본질적으로 바꿀 수 있다는 기대를 내려놓아야 한다는 의견을 나누었다. 또한 종교가 적을 만들어가는 역사에 기여한 점에 주목하며, 이를 극복하기 위해 상대방을 이해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적'의 개념을 넘어선 대화와 이해가 평화를 유지하는 핵심이라고 결론지었다.

장성호  webmaster@ecumeni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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