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광복회가 내놓은 뉴라이트의 9가지 주장 ⓒ화면 갈무리

R. 태가트 머피는 《일본의 굴레》(글항아리, 2021)라는 책에서 동일한 전범(戰犯) 국가인 독일과 달리 일본은 주변 국가인 한국과 중국 등의 비난을 여전히 받고 있다고 하였습니다. 그 이유는 일본은 독일과 달리 과거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정확하게 이해하고, 진정한 자기 성찰을 통해 과거의 실수와 죄악을 인정하고, 형식적인 사과가 아니라 진심이 담긴 사과를 반복하고, 그런 일이 다시는 거듭되지 않을 것이라는 확신을 주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하였습니다(603-604쪽). 독일은 나치의 만행을 지속적으로 교육하고, 나치 찬양 처벌을 법제화하고, 과거의 잘못을 거듭 사과하는 데 반해, 일본은 과거사를 지우거나 왜곡하여 미화할 뿐 아니라, 독도에 대한 영토 야욕을 노골적으로 드러내고 있기 때문입니다.

40년 동안 일본에 살면서 대학의 교수로 재직했던 저자는, 일본의 ‘가장 큰 굴레’는 1930년대에 자신들이 ‘어쩔 수 없이’ 2차 세계대전에 휩쓸려 들어갔다는 ‘정치적 무책임 의식’이라고 분석하였습니다. 그리고 메이지 유신을 주도한 이들은 대동아(大東亞) 공동번영이라는 구호를 앞세우고 식민지 지배를 통해서라도 한국과 중국과 같은 미개한 주변 국가를 근대화시켜야 한다고 주장하였는데, 이것이 ‘일본의 원죄’라고 하였습니다.

그래서 지금도 식민지근대화론에 반발하는 한국과 중국을 혐오하는 가두 시위나 저서 출판에 정부 지원이 있을 정도라고 합니다. 그리고 ‘전쟁 수행 능력을 금지한’ 일본 헌법(9조 2항)을 파기하려고 시도해 왔으며, 무엇보다도 일본은 2차 세계대전의 전범(戰犯)이 아니라 원자 폭탄의 피해자라며 주장합니다. 일본은 가해자이면서 ‘피해자 코스프레’를 하고 있다는 것이지요.

이러한 ‘일본의 굴레와 원죄’에는 소련을 견제하기 위해 일본을 방패로 사용하려 했던 미국의 책임도 크다고 보았습니다. 전후 7년간 일본을 실제로 통치한 미군정(연합군총사령부)는 천황(天皇)을 면책하고 그 직위를 유지하게 하였습니다. 아울러 일본의 군국주의자들과 반공주의자들을 등용하고, 언론 자유나 노조 설립, 보통 선거권과 남녀평등 등을 필사적으로 막았다고 합니다. 그래서 일본은 그동안 민주 항쟁이 한 번도 없었고, 25년 동안 총리가 19명이나 바뀌었지만 실제적인 정권교체가 한 번도 없었던 ‘어찌 보면 일당 독재 국가’(434 쪽)라고 규정하였습니다. 이는 일본의 언론과 검찰, 그리고 미국 정부가 방조했기 때문에 가능했던 일이라고 합니다.

이 책에서는 다루지 않았지만 일본은 식민지 지배를 사과하기는커녕 민간 단체를 앞세워 전쟁 범죄를 왜곡하고 미화하여 왔습니다. 그 중심에는 ‘일본재단’(Nippon Foundation)이 있습니다. A급 전범(戰犯)으로 3년 간 수감되었다가 풀려난 사사카와 료이치(笹川良一)는 도박사업으로 번 돈으로 1962년 일본재단을 세워 일본의 역사 왜곡에 조직적으로 관여하였습니다. 가마가제 특공대를 제안한 당사자로 알려진 사사카와는 일본재단의 기금으로 ‘새역사를 만드는 모임(새역모)’을 지원하여 일본의 역사 교과서 왜곡하고, ‘난징대학살’를 허구라고 주장한 <난징학살: 허구와 진실>이라는 책을 전 세계에 보급한 것으로도 유명합니다.

한국의 경우 연세대가 일본재단으로부터 아시아연구기금 10억 엔을 받은 것이 알려지자, 2005년 5월 연세대 교수협의회는 “‘새역모’의 온상인 ‘일본재단’과 손잡은 정창영 총장과 관련자들은 국민들 앞에 사죄하라”는 성명서를 통해 아시아연구기금 해체와 관련자 문책을 촉구하였습니다. 이런 반대에도 불구하고 2011년 3월 연세대는‘이승만연구원’을 세웠고, 류석춘 교수가 초대 원장으로 취임합니다. 그는 뉴라이트 전국연합의 공동대표를 맡은 적이 있는 대표적인 식민지근대화론자이며, 2019년 9월 연세대 수업 시간에 일제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을 자발적 ‘매춘부’로 비유하여 큰 물의를 일으켰던 인물입니다. 고려대 역시 1987년 일본재단의 설립자의 이름을 딴 ‘사사카와 영-리더(Young-Leader) 장학금’을 지원받고 있답니다.

최근 독립기념관장으로 그레이스교회 담임목사와 총신대 교수를 역임한 김형석을 임명하였습니다. 친일파의 명예회복을 주장한 《끝나지 않은 역사 전쟁》을 저술하고, “일제 강점기 때 우리 국민들은 일본 국민이었다.”고 강변한 친일 뉴라이트 인사라는 이유로 광복회를 비롯한 48개의 단체에서 임명 철회를 촉구한 바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난 8월 29일 윤석열 대통령은 국정 브리핑을 통해 “저는 솔직히 뉴라이트가 뭔지 잘 모릅니다”라는 무지하고 무책임한 발언으로 또 다른 물의를 일으켰습니다.

그래서 광복회가 규정한 뉴라이트의 정의를 소개하려고 합니다. 광복회에 의하면 뉴라이트는 해방 후 이승만 정부부터 지금까지 우리 정부가 일관되게 주장해 온 “일제 강점기 일본의 국권 침탈은 불법·무효이다.”라는 입장을 뒤엎어, 일본 정부의 주장대로 ‘식민지배 합법화’를 꾀하는 자나 단체라고 뉴라이트라고 규정하고, 구체적으로 ‘뉴라이트 9대 정의’를 광복회 홈페이지에 게시하였습니다.

여기에 “안중근 장군이나 김구 임정 주석을 ‘테러리스트’라고 폄훼하는 자나 단체”를 더하여, 10가지 사항 중 어느 하나라도 해당하는 뉴라이트는 헌법 전문에 명시된 “3.1운동으로 건립된 대한민국임시정부의 법통”을 부정하는 반민족적 헌법 유린자들이 분명합니다.

되돌아보면, 2000년대 초에 등장한 ‘뉴라이트’가 전국연합을 결성한 것은 2005년 11월 7일입니다. 2007년 대선을 앞두고 “좌파 세력의 재집권을 막고 보수세력 집권에 기여할 것”을 목표로 출발한 ‘뉴라이트 전국연합’에는 상임의장 김진홍 목사를 비롯하여 일부 목사들과 이영훈 서울대 교수와 류석춘 연세대 교수 같은 식민지근대화론을 주장하며 일제강점기를 옹호하고 독립운동가를 폄훼는 다수의 인사들이 참여하였습니다.

이어서 2006년 6월 29일 산하 단체로 ‘기독교 뉴라이트’가 발족했는데, 상임대표는 오필환 백석대 교수였습니다. 2007년 7월 27일에 창립한 ‘뉴라이트 기독교연합’의 수석상임회장은 엄신형 목사이었습니다. 다음 해 7월 25일에 엄기호 목사가 차기 대표회장으로 취임했습니다. 2기 뉴라이트 기독교연합의 임원 명단이 최근 SNS을 통해 퍼지고 있는데, 잘 알려진 개신교 목사 다수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이종찬 광복회장은 ‘친일 뉴라이트’ 논란에 휩싸인 김형석 독립기념관장 임명 철회를 주장하면서 정부 주관의 제79회 광복절 행사에 불참을 선언하였습니다. 그는 “뉴라이트라는 것은 현대판 밀정”이라고 질타하며, “용산 어느 곳에 일제 때 밀정과 같은 존재의 그림자가 있는 것이 아닌가?”라고 반문하였습니다. “독립운동 선상에서 일본군에게 받은 피해보다 밀정에 의해서 받은 피해가 더 많았다. 우리 가족이 그렇다. 우리 할아버지가 대련에 도착하자마자 붙잡힌 이유가 뭐냐. 밀정에 의한 공작이다. 우리 숙부도 밀정에 의해서”라고 상기시켰습니다. 그리고 “대통령 주변 ‘친일’ 일진회 같은 인사들을 청산하라”고 촉구하였습니다.

실제로 윤석열 정부의 여러 안보 외교 관련 부처와 역사 관련 기관 임원 수십 명이 ‘식민지근대화론의 본산’인 낙선대경제연구소, ‘종북주사파와 문재인 정권의 국가반역행위를 조사하고, 훼손된 자유 체제 수호에 앞장선다’는 한국자유회의, ‘아시아의 새로운 평화 질서를 구축’한다는 신아시아학회 관련 친일 뉴라이트 인사들이 차지한 것으로 확인되었기 때문입니다. 아울러 퇴임을 앞둔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의 9월 초 한국 방문에 앞서, 여러 공공 기관에 설치된 독도 조형물이 조직적으로 철거된 것도 속속 드러나고 있습니다. ‘독도를 반일의 상징’으로 보는 일본 극우에 아부하는 노릇입니다.

일제 강점기에 밀정들을 매수하듯이, 일본재단은 연구 및 장학 기금으로 국내의 친일 세력을 지원해 왔으며, 2008년 이명박 정부 이후 일본의 ‘국제문제기본연구소’가 중심이 되어 몇몇 전직 국정원 출신을 포섭하고, 이들을 앞세워 뉴라이트 단체를 지원하여 왔다고 합니다. 송병준이 만든 친일파 단체 일진회(一進會)가 한일합방을 건의한 것처럼, 친일로 무장한 뉴라이트 집단이 윤석열 정부의 남은 임기가, 미국이 원하는 ‘한미일군사동맹’을 추진하기 위한 마지막 기회라고 생각하고 있다는 것이, 호사카 유지 교수(세종대)의 분석입니다. 용산의 안보실 모 인사의 주도로 이 모든 일이 무리하게 획책 되고 있다는 지적도 있습니다.

이명박 정권 수립에 기여했던 뉴라이트가 박근혜 대통령 탄핵과 문재인 정부를 거치면서 잠시 주춤하더니, 윤석열 정부에서 노골적으로 재등장하여 여러 공직을 차지하고 득세하는 것 같지만 결국 실패할 것입니다. 그들은 마침내 일진회나 이완용과 같은 반민족적(反民族的) 신친일파(新親日派)나 매국적(賣國的) 신밀정(新密偵)이라는 역사의 준엄한 평가를 받을 것입니다.

일제 강점기에 일부 목사들이 신사참배에 앞장섰던 것처럼, 지금은 일부 저명한 목사나 신학대학 교수들이 앞장서서 ‘뉴라이트 전국연합’과 ‘뉴라이트 기독교연합’을 만들고, 손꼽히는 기독교대학이 ‘일본재단’으로부터 거액의 기금을 받았다는 것이 통탄스러울 뿐입니다.

허호익(연세신학연구회 종신회장)  webmaster@ecumeni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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