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채수일의 ‘기고만장’입니다.

지난 시간에는 토마스 아퀴나스의 주저인 《대이교도대전》(Summa Contra Gentiles)을 살펴봤는데요, 오늘은 그의 또 다른 대작인 《신학대전(Summa Theologiae)》의 요약판이라고 할 수 있는 《신학요강(Compendium Theologiae)》을 보겠습니다.

《신학대전》과 《신학요강》은 어떤 책인가

《신학대전》(Summa Theologiae)은 토마스가 1268년부터 그의 생애 마지막인 1273년까지 약 5년에 걸쳐 저술했지만, 완간하지는 못했습니다. 본래 12권을 목표로 했지만, 3권까지만 완성했습니다. 구상한 대작을 완성하지 못한 정확한 이유는 알 수 없지만, 토마스가 세상을 떠나기 전에 환상을 보고나서 ‘나는 더 이상 나아갈 수 없다. 내가 본 것에 비하면 내가 쓴 것은 모두 왕겨처럼 보인다.’고 말했다니(1), 무언가 특별한 계시체험이 영향을 끼쳤거나, 건강 악화가 원인이었을지 모릅니다.

《신학대전》 한국어 번역은 한국성토마스연구소가 집중적으로 하고 있는데요, 아직 완간되지 않았습니다. 제1권(하느님의 존재)이 1985년 정의채 교수신부님의 번역으로 출간된 후, 40권(종교와 경신 2, 윤주현 역)이 2024년 6월까지 출간되었지만, 아직도 완간되지 않았으니, 《신학대전》의 방대함을 족히 상상할 수 있을 것입니다.

번역된 《신학대전》을 다 소개한다는 것은 시간적으로나 내용적으로 ‘기고만장’의 범위를 벗어나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신학대전》의 요약판이라고 할 수 있는 《신학요강(Compendium Theologiae)》(2)을 중심으로 토마스의 신학사상을 살펴보겠습니다. 

가톨릭대학 박승찬 교수가 번역한 《신학요강》은 ‘믿음에 대하여’와 ‘소망에 대하여’ 두 부분으로 구성되었고, ‘믿음에 대하여’는 다시 ‘신론’, ‘삼위일체론’, ‘창조론’, ‘선과 악’, ‘천사론’, ‘물질세계와 인간론’, ‘그리스도론’, ‘최후심판’, ‘천국과 지옥’ 등을 다루고, ‘소망에 대하여’는 ‘기도론’을 중심으로 전개됩니다.

《신학대전》을 다 읽을 수 없는 독자들에게 《신학요강》은 토마스의 신학사상을 일별할 수 있는 장점이 있지만, 그러나 《신학요강》도 결코 읽기에 쉬운 책이 아닙니다. 현란할 정도로 논리적이면서도 동시에 논리의 비약이 있기 때문입니다.

토마스의 신학에서 가장 잘 알려진 명제는 신 존재증명 논리입니다. 토마스는 다섯 가지 테제로 신 존재 증명을 제시합니다.(3):

첫째, 운동의 원인으로서의 신 논증입니다. 모든 것은 움직이며, 움직이는 것은 반드시 다른 것에 의해 움직여지는데, 이런 연쇄적인 움직임에는 시작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다른 어떤 것한테서도 움직여지지 않는 어떤 제1동자에 필연적으로 도달하게 됩니다. 그리고 모든 사람은 이런 존재, 이른바 부동의 원동자를 신으로 이해한다.”는 것이지요.(4)

둘째, 효과의 원인으로서의 신 논증입니다. 모든 것은 어떤 원인에 의해 만들어집니다. 그렇다면 일종의 무한회귀가 발생합니다. 이런 무한 회귀를 피하기 위해서는 모든 것의 근원이 되는 첫 번째 원인, 즉 스스로 존재하는 존재가 있어야 하는데, 우리는 이것을 신이라고 부른다.(5)

셋째, 가능과 필연, 혹은 우연과 필연의 신 논증입니다. 세상에는 우연적인 존재와 필연적인 존재가 공존합니다. 만약 모든 것이 우연에 의해 존재한다면 세상에는 아무 것도 존재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따라서 모든 우연적인 존재의 근원이 되는 필연적인 존재, 즉 “자기 필연성의 원인을 다른 데에서 갖지 않고 다른 것들에게 필연성의 원인이 되는 어떤 것, 즉 그 자체로 필연적인 어떤 것을 인정할 필요가 있는데, 이런 존재를 모든 사람은 신이라고 부른다.”는 것입니다.(6)

넷째, 사물계에서 발견되는 단계에서 취해지는 논증입니다. “사물계에서는 선성(善性)과 진성(眞性)과 고상성(高尙性)에 있어서 더하고 덜한 사물들이 발견됩니다. 서로 다른 여러 사물들에 대해 더하고 덜하다고 하는 것은 최고도로 있는 어떤 것에 여러 가지 모양으로 접근하는 데 따라 말해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어떤 영역에 있어서 최고도의 것으로 불리는 것은 그 영역에 속하는 모든 것의 원인입니다. 어떤 사물의 경우이든 그 존재와 선성과 모든 완전성의 원인인 어떤 것이 있는 데, 이런 존재를 우리는 신이라고 부른다.”는 것입니다.(7)

다섯째, 목적의 원인으로서의 신 논증입니다. 자연계의 모든 존재는 어떤 목적을 향해 나아가는 것처럼 보입니다. 이러한 목적을 향한 운동은 우연히 발생할 수 없고, 모든 목적의 원인이 되는 지적인 존재가 있어야 합니다. “모든 자연적 사물을 목적에로 질서지어 주는 어떤 지성적 존재, 이런 존재를 우리는 신이라고 부른다.”는 것입니다.(8)

토마스의 신존재증명을 위한 다섯 가지 길은 흥미롭기는 하지만, 신을 이미 전제하고 증명하는 개념의 순환론에 빠져 있고, 토마스가 말하는 신이라는 개념이 너무 추상적이고 모호하며 구체적인 증명의 대상이 될 수 없다는 비판을 받습니다. 그러나 토마스의 신존재증명만이 아니라, 신의 명칭의 다양성, 영혼과 몸의 관계, 부활한 몸에 대한 상상력, 신의 섭리의 확실성이 사물로부터 악을 배제하지 않고, 악을 허용한다는 것이 신의 선성을 손상하지 않는다는 등의 논증은 매우 흥미롭습니다. 육체에 있는 자연적인 결함은 부활하는 인간의 육체로부터 없어진다는 것이다.(9)

장애를 가진 이들의 부활에 대한 해석도 흥미롭습니다. 토마스는 “몇몇 인간들이 이 세상의 삶에서 어떤 지체를 결여하거나 아직 완전한 신체 크기에 도달하지 못했을지라도-얼마나 작은 크기로 그가 죽었던지 상관없이-, 그들은 부활할 때에 신의 힘에 의해 지체와 신체 크기가 필요로 하는 완전성을 얻게 될 것이다.”고 주장합니다.(10) 인간이 죽은 이후에는 영원하지 않은 일종의 정화의 벌이 존재한다고 토마스는 생각합니다.(11) “영원하지 않은”이라는 단서가 희망을 주기도 합니다.

신존재증명에서부터 가톨릭 교리의 기초에 이르기까지 방대한 주제를 ‘계시에 의해 조명된 이성’과의 대화를 통해 집대성한 토마스 아퀴나스는 가톨릭 신자들에게만 재미있는 책이 아닙니다. 저의 신학생 시절을 생각하면, 아우구스티누스 이후 마틴 루터에 이르기까지 거의 1000년의 그리스도교 사상사를 거의 배운 적이 없었습니다. 오늘의 개신교 신도들에게도 아마 중세 신학사상은 일종의 ‘잃어버린 고리’(Missing Link)일지 모릅니다. 그런 분들에게 토마스 아퀴나스를 읽기를 권합니다.

토마스 아퀴나스: 영향과 평가

토마스의 사상은 가톨릭교회의 공식적인 신학 체계로 채택되어 오늘날까지도 중요한 영향력을 지니고 있습니다. 지금까지의 이야기를 다음과 같이 간단하게 정리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토마스의 신학사상은 아리스토텔레스 철학을 기독교 신학과 결합하여 신앙과 이성의 조화를 강조하면서 교리를 이성적으로 설명하는 특징을 가지고 있습니다. 특히 후 세대에 영향을 끼친 신학사상은 은총과 자유의지, 영혼불멸, 그리스도론 등입니다.

토마스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철학을 신학에 접목시켰을 뿐만 아니라, 아리스토텔레스의 철학을 기독교적 관점에서 재해석하여 새로운 철학적 시스템을 구축하는데 기여했습니다. 그의 독창성은 변경을 최소화하면서 아리스토텔레스의 철학을 그리스도교 교리에 맞게 개조한 작업에서 나타납니다.(12) 특히 인식론, 존재론, 윤리학 등이 철학발전에 중요한 기여를 한 것으로 평가됩니다. 오늘날까지 영감을 주는 그의 사상은 자연법 개념, 인간 존엄성에 대한 것입니다.

그러나 토마스의 신학에 대한 비판도 강력합니다. 무엇보다 그가 이성과 신앙의 조화를 강조하지만, 결국 이성을 신앙에 종속시킨다는 비판이 그것입니다. 이성에 호소하는 경우도 도달해야 할 결론을 미리 정해놓았다는 점에서 철학자로서 불성실하다고 버트런드 러셀은 비판합니다.(13) 왜냐하면 결론이 미리 주어진 논증의 발견은 철학이 아니라 특별한 변론에 지나지 않기 때문이라는 것이지요. 그래서 러셀은 토마스 아퀴나스가 그리스와 근대 양 시대의 최고 철학자들과 어깨를 나란히 견줄 만한 철학자는 아니라고 평가합니다.(14)

그리고 그리스도교 교리를 이성적으로 증명하려는 토마스의 시도는 오히려 신앙의 초월성을 약화시키고 인간의 이성을 제한한다는 비판도 있습니다. 토마스의 자연법 개념은 보편적인 윤리적 기준을 제시하기는 하지만, 구체적인 상황에서는 어떻게 적용해야 하는지에 대한 명확한 지침을 제시하지 못합니다. 그의 인식론은 인간의 추상적 사고와 창의적인 능력을 충분히 설명하지 못하고, 영혼불멸설을 주장하지만, 영혼과 육체의 관계에 대한 그의 설명이 명확하지 않은 한계도 있습니다. 여성과 여성사제직에 대한 아퀴나스의 태도는 가톨릭교회의 전통 선상에 머물러 있었습니다. 당대의 봉건 사회구조를 자연스러운 질서로 받아들인 것도 토마스 역시 시대의 한계 안에 있음을 보여줍니다.

지난 시간에 말씀드린 것처럼, 토마스는 스콜라 신학의 역사에서 전무후무한 위대한 신학자였습니다. 토마스 이전에 그와 같은 시도를 한 신학자가 없었고, 토마스 이 후 그의 영향력이 르네상스까지만 승리를 보장했다는 의미에서 그렇게 평가한 것이지요. 르네상스 시대에는 플라톤이 중세 시대보다 더 많이 알려지게 되면서 철학자들 대부분의 견해 속에서 플라톤이 다시 최고의 권위를 획득했기 때문입니다.(15)

그러나 사실 토마스의 스콜라주의에 대한 반대는 스콜라주의가 절정에 달한 시기에도 이미 있었습니다. 신비주의, 자연과학, 범신론도 교회의 많은 학자들을 끌어당겼습니다. 프란체스코회 소속의 아우구스티누스적 플라톤주의자이자, 신비주의자였던 보나벤투라(John Fidanza, 1221-1274),  프란체스코 수도사였고 옥스퍼드와 파리에서 훈련받은 영국의 자연과학자 로저 베이컨(Roger Bacon, 1220-1292), 철학적 진리와 신학적 진리를 구별하고 이 둘이 서로 모순될 수 있으며 각각은 자신의 영역에서 참되다고 주장하는 이른바 ‘이중진리론’이 토마스의 스콜라 철학에 도전했고, 이런 사조의 유행은 스콜라주의의 궁극적 몰락의 전조이자, 신학과 철학의 종합의 실패에 대한 전조였습니다.(16)

13세기 이후, 스콜라 신학은 급격하게 몰락의 길을 갔습니다. 토마스의 신학은 비록 가톨릭교회의 공식 교리가 되고 많은 지지자를 얻었지만, 토마스주의의 패권이 흔들린 것은 무엇보다 프란체스코회가 아우구스티누스주의적-플라톤주의적 전통을 고수하면서, 아리스토텔레스주의의 새로운 체계의 주장과 결론을 많이 반대했고, 이로써 학자들이 경쟁적인 양진영으로 분열되었기 때문입니다. 프란체스코회는 종교의 실천적, 정서적, 신비적, 개인적, 헌신적 측면을 강조했습니다. 그들에게는 지성이 의지보다 중요하지 않았고, 그리스도교의 윤리적, 종교적 내용이 신앙의 이론적 구성보다 중요했습니다. 프란체스코회 신학의 대표적 인물이자 토마스주의 체계를 반대한 신학자는 잉글랜드 혹은 아일랜드 태생의 요한네스 둔스 스코투스(John Duns Scotus, 1265/1266-1308)였습니다.(17)

‘예리한 박사’(subtle doctor)라는 칭호를 받을만큼 변증론적 기술과 비판적 통찰력이 남달랐던 둔스 스코투스는 토마스와 의견을 같이하는 부분도 많았습니다. 그러나 둔스 스코투스는 이성의 영역을 제한한다는 점에서 토마스를 훨씬 넘어섭니다. 그는 신적 본성, 신적 목적, 신적 예지와 예정, 영혼의 불멸성 등에 관련된 명제들을 이성적으로 증명할 수 있는 것으로 보지 않았습니다. 그런 문제들에서 그는 신앙만이 우리에게 확실성을 줄 수 있다고 주장한 것이지요.(18)

둔스 스코투스의 후계자들은 그보다 더 급진적으로 나아가 신학에서 증명할 수 있는 것은 전혀 없다고 주장했습니다. 신학은 전혀 학문이 아니며, 교의는 증명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심지어 이해될 수도 없고, 우리는 교의를 합리화하려고 노력하기보다, 순종하는 태도로 그것을 믿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19)

이런 결론을 이끌어내고 새로운 유명론적 철학을 전개한 대표적 인물은 둔스 스코투스의 제자로서 ‘존엄한 창시자’, ‘무적의 박사’라고 불린 오컴의 윌리엄(William of Ockham, 1287-1347)이었습니다.(20) 오컴의 윌리엄은 스콜라주의 철학은 유사(가짜) 학문이며, 신앙의 전체 내용은 이성이 접근할 수 없는 것이라고 선전했습니다. 토마스주의와 스코투스주의자들의 전투는 실재론자와 유명론자의 전투로 바뀌었고, 전투는 100년 이상 격렬하게 전개되었습니다.(21)

간단하게 설명하면 실재론(實在論)은 보편이 모든 개체보다 앞서 존재한다는 이론이고, 유명론(唯名論, nominalism)이란 모든 개별자가 우선하고 보편은 그 개체에서 추상하여 종합한 개념으로 실재성이 없다는 이론입니다. 실재론은 ‘보편적인 것’이 실재한다고 보는 것이고, 유명론은 ‘보편적인 것’은 이름뿐이라고 주장하는 것이지요.

토마스주의의 약화에 기여한 또 다른 인물은 파두아의 마르실리우스(Marsilius de Padua, 1275/80-1342)였습니다. 그는 교황에 적대적인 아리스토텔레스주의자였습니다. 아퀴나스가 신앙과 이성, 성과 속이 조화를 이루고, 사회는 신에 기반을 둔다고 한 데 반해, 마르실리우스는 사회는 교회와는 독립적이라고 주장했습니다. 신앙의 진리와 이성의 진리는 근본적으로 구분된다고 주장하면서 종교를 내면화하고 사적이며 비정치적인 것으로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모든 사회활동은 국가의 통제를 받아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22)

토마스의 스콜라주의의 몰락을 가속화시킨 것은 14세기의 신비주의였습니다. 지나치게 논리적이고 추상적인 스콜라 신학에 대한 불만이 감정과 의지에 대한 관심을 크게 만들었고, 신비주의가 하나의 대안이었던 것이지요. 유럽에서 14세기 동안 신비주의는 두 지류로 발전했습니다. 하나는 교회에 순복하고 빅토리네스와 성 보나벤투라가 열어 놓은 길을 따르는 라틴적(남유럽) 신비주의였고, 다른 하나는 교회의 교리와 정치에 대해 좀 더 독립적인 태도를 취하는 게르만적(북유럽) 신비주의였습니다.(23)

라틴적 신비주의의 대표적인 인물은 피에르 다이(1350-1425), 그의 제자 장 제르송, 사번드의 레이먼드(Raymond of Sabunde) 등이고, 게르만적 신비주의의 대표적인 인물은 마이스터 폰 에크하르트(Meister von Eckhardt, 1300-1361), 하인리히 주조(Heinrich Suso), 요한 타울러(Johan Tauler, 1300-1361) 등 독일 신비주의자들과 얀 판 로이스브루크(Jan van Ruysbroek, 1293-1381), 게르하르트 드 흐로트(Gerhard de Groot), 공동생활형제단, 토마스 아 켐피스(1380-1471) 등 네덜란드 신비주의자들이 포함됩니다.(24)

이 신비주의 운동에서 가장 위대한 인물은 마이스터 폰 에크하르트(Meister von Eckhardt, 1300-1361)입니다. 도미니크 수도회 소속이었던 에크하르트는 자신의 라틴어 저술에서는 전문적 형식과 스콜라주의적 전통으로 자신의 견해를 제시하지만, 독일어 설교와 소책자에서는 개인적이고 정서적이며 대중적인 표현을 담아 자신의 생각을 말합니다. 에크하르트는 신플라톤주의와 더불어 하느님을 파악 불가능하고, 정의 불가능한 영적 실체, 모든 사물이 그 안에서 통일되어 있는 무제한적 능력으로 봅니다.(25) 이 시기 신비주의자들은 범신론적이고 유명론적인 견해를 취했고, 가시적 교회의 스콜라주의적 체계와 영향을 크게 약화시켰습니다.(26)

에크하르트의 삶과 사상에 대해서는 별도로 다룰 예정이기에, 여기서는 자세하게 소개하지 않겠습니다. 다만 스콜라 신학이 14세기에 급격하게 쇠락하게 된 역사적 배경에 신비주의가 있었다는 점만 지적하고 넘어가겠습니다. 

끝으로 스콜라 신학의 몰락 배경으로 교황의 권력이 쇠퇴하고 황제권력이 강화되면서 세속주의와 자유사상이 진보한 것을 들 수 있습니다. 교회의 권력은 교황 인노켄티우스 3세(1198-1216)와 그레고리우스 9세, 그리고 이노켄티우스 4세 치하(1198-1254)에서 절정에 도달했습니다. 이 교황들은 오토 4세 황제와 프리드리히 2세 황제와의 갈등에서 승리함으로써 광범위한 권한을 획득했습니다. 공직 임명과 조약에 대한 감독권, 전쟁과 평화에 관한 문제에 대한 발언권, 과부와 고아의 부양에 대한 감독권, 이단들에 대한 처벌권과 그들의 재산을 몰수할 권리, 그리고 교회와 사회질서에 저항하는 반란에 개입할 권리 등이 그것입니다. 그러나 교회가 우위를 차지한 상태가 영원히 지속될 수 없었습니다.(27)

프랑스의 필립 4세(1285-1314)는 교황 보니파키우스 8세와 전쟁에서 승리했고, 교황청을 아비뇽으로 옮기게 했습니다. 교황청의 아비뇽의 바빌론 유수(1309년부터 1376년까지) 기간과 분열은 교회에게 끔찍한 재난을 의미했고, 민족주의가 서서히 발흥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28) 13세기, 특히 프랑스 성직자들은 교황의 종복으로서가 아니라 프랑스인으로서 처신하기 시작했습니다. 나라에 대한 충성심이 교황에 대한 신심보다 강해진 것이지요. 국민국가가 보편적인 기독교적 신앙공동체보다 강한 정치적 통일체로 등장했습니다.(29)

교황권력의 쇠퇴와 국가권력의 강화, 세속주의, 계몽주의의 등장과 함께 토마스 아퀴나스의 스콜라 신학도 몰락의 길을 걸었습니다. 그러나 1300년 동안 플라톤 철학의 기초 위에서 신학을 정립해온 중세 신학이 새로운 도전과 변화를 겪게 한 것은 토마스에게서 집대성된 스콜라 신학의 영향이라고 하겠습니다. 비록 토마스의 스콜라신학이 이성과 신앙의 조화를 추구하면서도, 결국 이성을 신앙에 종속시켰고(30), 결론이 미리 정해진 논증이라는 한계를 보여주었지만, 이성과 신앙의 대화의 한 범례를 형성한 것은 높이 평가받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채수일(전 한신대 총장)  sooilchai@hanmail.net

<저작권자 © 에큐메니안,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