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누구도 다른 이들을 막대할 권리나 자유는 없다. ⓒGetty Images

1.

요즘 제가 소속한 기장 교단 내에서는 서명운동이 하나 벌어지고 있습니다. 이번 달에 있는 교단 총회에서 “동성애와 동성혼에 반대한다”는 결의를 해 달라는 서명운동입니다. 다른 교단처럼 종교재판 벌어지고 이러지는 않습니다만 기장 교단 내에서도 성소수자 혐오세력이 계속 혐오 행각을 벌여 왔는데 이번에 뭔가 일을 벌이고 싶은 모양입니다.

저는 평소에 교단 게시판에서 이 혐오세력과 많은 논쟁을 했었습니다. 그 중 최근에 올린 글 하나를 밑에 옮겨 와 볼까 합니다. 밑에 옮겨 오는 글의 제목이 오늘 칼럼의 제목입니다.

2.

간단한 이야기 하나로 시작을 하겠습니다.

“결혼을 했습니다. 그런데 혼인신고를 안 받아 줍니다. 아파서 병원에 갔습니다. 수술을 해야 된답니다. 수술동의서에 배우자가 사인을 하려고 했습니다. 안 된답니다. 법적으로 아무 관계도 없기 때문이랍니다. 멀리 살고 있는 부모님께 부랴부랴 연락을 드려야 했습니다. 수술이 끝나고 오랜만에 부부가 함께 교회에 갔습니다. 광고 시간에 담임 목사님이 이런 말씀을 하시네요. 동성애 동성혼 반대를 위한 서명운동에 담임 목사님과 장로님들이 참여하기로 했답니다. 오랫동안 정들었던 교회인데 이제 떠나야 하나 싶네요. 물론 이 교회를 떠난다고 하나님의 은총이 사라질 리야 없다는 것은 알고 있지만요. 문득 언젠가 언니와 나누었던 대화가 떠오릅니다. 왜 굳이 여자와 사랑해서 결혼까지 했냐고. 그냥 남자를 사랑하고 결혼하면 안 되는 거였냐고. 그 때 언니에게 이렇게 반문했었죠. 언니는 왜 굳이 지금의 형부와 사랑해서 결혼까지 했냐, 다른 사람 사랑해서 결혼하면 안 되는 거였냐, 이렇게 자기가 물으면 언니는 뭐라고 반응을 할 거냐고. 말뜻을 알아들은 언니가 멋적은 웃음을 짓던 기억이 납니다.”

가상으로 만들어 낸 이야기입니다만 상황은 모두 실제로 일어났고 지금도 일어나고 있는 상황만 가져 온 겁니다.

뭐 이 이야기를 읽는다고 동성애 동성혼 반대운동 이런 걸 하던 분들이 갑자기 자기가 틀렸다는 걸 알게 될 거다라고 생각하거나, 반대하는 사람에게 동정심이라도 끌어내겠다고 이 이야기를 쓴 건 아닙니다. 다만, 한 가지는 명확히 해 두고 싶습니다.

이 게시판에 “동성애는 쾌락의 추구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닐 것입니다”라는 글을 같은 사람이 두 번 올린 적이 있었는데요. 쾌락의 추구 운운하는 것에서 암시되는 것은 ‘동성애’를 어떤 (일시적인) 일탈행동으로 취급하겠다는 말일 것입니다. 서두의 이야기를 쓴 이유는 ‘동성애’를 비롯한 성소수자, LGBTQ+에 관한 이슈는 어떤 일탈행동을 다루는 이슈가 아니라 저러한 삶의 존재 방식을 가진 인간 집단에 대한 이슈라는 점을 확실히 해 두고 싶어서입니다.

그러면, 한 인간 집단에 대해서 서두의 이야기 같은 일들이 벌어진다면, 이걸 두고 그 인간집단을 막 대하고 있다는 말을 하지 않을 수가 없을 겁니다. 혼인을 해도 혼인신고도 안 받아 주고, 수술동의서에 사인도 안 된다 그러고, 다른 부부에게 하면 실례인 질문을 뭔가 자연스러운 것처럼 할 수도 있고, 이런 일들이 계속 벌어진다면 말입니다. 동성애 동성혼 반대 서명운동 운운하는 일들은 말하자면 그 집단은 그렇게 막 대해도 되는 게 맞다라고 주장하는 일이 될 테구요.

제가 앞에서 동정심이라도 끌어내겠다는 게 아니다라고 쓴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필요한 건 동정심 따위가 아니라 도대체 이런 상황을 만들고 또 유지하려는 인간들이 누구인지 밝혀 내고 책임을 묻고 회개를 촉구하는 일일 터이니 말입니다.

동성애ㆍ동성혼 반대 서명운동 운운을 하는 사람들은 흔히 “사랑해서 반대한다”느니 “동성애는 혐오하지만 동성애자들은 하나님의 사랑으로 품어야 한다”느니 등으로 자신들이 ‘동성애자’라는 ‘사람’까지 미워하는 건 아니다라는 변명을 하려고 합니다. 그러나 결국 저런 말들은 ‘동성애자’들을 서두의 이야기처럼 막 대하는 것이 옳다는 거고 막 대하는 대접 받기 싫으면 ‘동성애자’임을 포기하라는 의미로 귀결됩니다. 그러니 여기서 “동성애만 혐오하지 동성애자를 혐오하는 건 아니다”라는 변명이 엉터리로 귀결되지 않을 도리가 있겠습니까.

동성애 동성혼 반대 서명운동 운운하는 것과 연결되는 것이 차별금지법 반대죠. 이리 돌리고 저리 돌리고 해 봐야 결국 차별금지법 반대의 논리는 “동성애 반대의 자유를 막는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앞에서 이야기한 대로라면 이 말은, “우리에게 동성애자들을 막 대할 수 있는 자유를 달라”는 말로 귀결됩니다. 일반인이라고 해도 이게 무슨 막말인가가 될 터인데, 하물며 그리스도인이 이런 ‘자유’를 주장해서야 되겠습니까.

그런데 정말로 그런 ‘막 대할 수 있는 자유’를 주장하고 싶은 소위 목사나 장로라는 분들도 있나 봅니다. 성서에 몇 구절 되지도 않는 소위 ‘남색’ 반대 구절들을 자기가 해야 할 논증이나 주장 대신 들이대고 말거나, 아예 토에바니 뭐니 하면서 ‘동성애’가 하나님이 특별하게 미워하는 중죄다 뭐 이런 이야기를 하는 분들까지 있으니 말입니다.

결국 “동성애자”라는 특정한 사람 집단을 하나님이 특별하게 미워하니 그리스도인은 그런 인간 집단을 막 대해도 된다 정도도 아니라 아예 막 대해야 된다 이런 걸 ‘신학적 결론’이라고 내놓겠다는 건데요. 이런 ‘신학적 결론’은 요즘 미국에서 트럼프에 대해 돌고 있다는 말대로 “이상한” 소리가 아닐 수가 없겠죠.

게다가 그런 목사나 장로라는 분들의 입에서 가짜 뉴스까지 오르락내리락합니다. 아직도 에이즈를 “동성애 탓”이라고 돌리는 이미 몇십 년전에 파탄났지만 꿋꿋이 반복되는 거짓말(이런 거짓말을 하는 분들은 HIV 감염과 에이즈 발병의 차이가 뭔지 아시기는 하나요?), 그 거짓말의 최신판 시도인 엠폭스 운운을 들먹이는 이야기들, “동성애는 의학계에서도 병으로 인정된다”는, 50년 전에나 해당될 이야기를 대놓고 사실인 양 말하는 것 등등등.

성서 구절 몇 개를 아무리 들이대봐야, 그 결론이 사람을 막 대해도 된다는 거고, 그 결론을 지탱하겠답시고 이렇게 가짜 뉴스까지 마구 오르락내리락하는 일들만 벌어지는데, 이쯤 되면 성서 구절 몇 개를 들이대는 게 오히려 자기들이 저지르는 이런 죄들을 죄가 아니라고 부인하기 위한 수단밖에 안 되는 것이겠죠.

지금까지의 글을 읽고 나서도 “동성애 반대”를 하시는 분들은 여전히 “동성애 반대”를 하시겠죠. 사람이 자기 의견을 바꾸는 일은 거의 하나님의 영역에 가까운 일이어서 말이죠.

그래도 한 가지는 명심하시기를 다시 못박아 둡니다. “동성애 반대”는 곧 “동성애자 반대”이고, 그건 하나님의 형상으로 만들어지기는 마찬가지인 성소수자라는 한 인간 집단을 막 대한다는 것이라는 점 말입니다.

3.

그런데 위에 옮겨 온 글이 올라온 바로 그 날, 교단에서는 앞으로 게시판에 성소수자 관련 글이 올라오면 모두 비공개 처리하겠다는 결정을 내렸습니다. 성소수자 관련 논쟁이 너무 과열되어 교단의 여러분들이 많이 걱정을 한다는 이유를 대면서 말입니다. 그래서 위에 옮겨 온 글도 비공개가 되었습니다.

그 며칠 뒤에, 저 서명운동을 주도하는 조직의 위원장인 목사가 “제보를 받아서” 올린다면서 한신대 인권센터에서 “남자, 여자, 그리고 우리 모두”라는 말을 사용했다는 제목의 글을 올렸습니다. 제가 보았을 때는 이미 비공개 처리가 되어서 무슨 내용인가 했는데, 알고 보니 최근의 딥페이크 성폭력 사태에 대해서 한신대 인권센터에서 학교 구성원들에게 이 사태로 인한 악영향이 없도록 노력하겠다는 문자를 보내면서 이 문제는 남자, 여자, 그리고 우리 모두의 문제니 최선을 다하겠다 이런 표현을 한 것이었더군요.

남자, 여자, 그리고 우리 모두라고 했으니 남자/여자 아닌 다른 성적 정체성이 존재한다는 걸 한신대가 인정하고 있다 이래서야 되겠느냐고 ‘고발’을 하는 글이었던 모양인데요. 딥페이크 성폭력 사태라는 엄중한 상황을 앞에 두고 성소수자를 인정하냐 안 하냐 이런 것만 눈에 들어와서 제보니 고발이니 이러고 있냐 이런 생각도 들었거니와, 이걸 가지고 트집을 잡을 거면 한신대 인권센터는 성소수자 구성원들은 나 몰라라 하라는 어처구니 없는 이야기 아니냐라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이것 역시 성소수자들을, 즉 사람을, “막 대하는” 하나의 예가 아닐 수 없겠지요.

이렇게 사람을 막 대하는 ‘자유’를 주장하는 사람 중 하나가 다른 자리도 아니고 국가인권위원장이 되는 일이 벌어지기도 할 판이니, 더욱 더 열심히 싸워야겠다 다짐해 봅니다.

황용연(사회적 소수자 선교센터 무지개센터 대표)  webmaster@ecumeni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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