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난롯가에서 책을 읽는 남자> (1881 에텐, 종이에 목탄과 분필로 담채, 47.5×56.1cm)

빈센트는 어렸을 때부터 아버지의 목사관에서 독서 습관을 익혔다. 아버지의 방을 가득 채운 책들은 빈센트에게 더할 나위 없이 자유와 상상의 나래를 펼 수 있는 좋은 놀이터였다. 목사관에 저녁이 되면 가족들의 책읽는 소리가 들렸다. 빈센트는 자주 동생들에게 소리내어 책을 읽어주곤 하였다.

어른이 되어서도 빈센트의 독서 습관은 여전하였다. 셰익스피어와 찰스 디킨스, 괴테, 하이네, 에밀 졸라, 빅토르 위고, 알퐁스 도데, 모파상 등 당대의 문학과 친밀하였다. 동생 테오와 주고받은 편지뿐만 아니라 친구 라파르트와 베르나르 등에게 보낸 편지에도 책 이야기는 단골 메뉴였다.

독서와 관련하여 빈센트는 아버지와 갈등을 빚기도 하였다. 칼뱅의 신학 사조가 기본인 네덜란드 개혁교회의 길을 오롯이 걸어온 아버지에게 문학은 세속화의 상징으로 비쳤다. 한때 목사를 꿈꾸었던 아들이 방황한다고 생각하였고 내버려두면 큰일이라고 판단하여 주의를 주고 책망하기도 하였다. 이 무렵 빈센트가 읽었던 책이 에밀 졸라의 《삶의 환희》이다.

아버지의 꾸지람 속에서도 빈센트는 책 읽기를 그만두지 않았다. 1885년 봄 아버지의 죽음 이후에 그린 <성경이 읽는 정물>(1885)은 혹자들이 말하듯 아버지와의 갈등과 대립 국면을 표현한 게 아니다. 프로이트가 말한 오이디푸스 콤플렉스의 대립각으로 설명할 수 없다. 도리어 이 그림은 아버지의 가치와 빈센트의 지향이 일맥상통하고 있음에 대한 묘사이다.

펼쳐진 성경이 이사야서 53장이라는 사실이 친절하게 이를 입증한다. 앞에 놓은 노란색의 소설은 에밀 졸라의 《삶의 환희》이다. 빈센트는 그 책을 이사야서 53장의 현대적 버전으로 이해하였다. 그는 이 그림을 통하여 아버지와의 갈등을 해소하고 뜻을 일치하는 상징으로 그렸다고 봄이 타당하다.

빈센트는 성경의 특별한 가르침이 문학의 보편성에 녹아있을 수 있다고 생각했다. ‘아버지, 우리는 달라서 갈등한 게 아니에요. 소통의 방법이 미숙했을 뿐이에요. 아버지의 생각과 내 생각은 크게 다르지 않아요. 거룩한 하늘은 땅에서 이루어져야 해요.’

흔히 빈센트를 해바라기의 화가, 또는 별과 태양의 화가로 생각하지만, 사실 그는 책의 화가이다. 그 자신이 독서광일 뿐만 아니라 작품 속에 책 읽는 장면을 즐겨 담았다. <난로 가에서 책을 읽는 남자>(1881), <책 읽는 노인>(1882), <책을 읽는 남자>(1882), <서서 책을 읽는 남자>(1882), <세 권의 소설>(1887), <장미가 꽂혀있는 유리잔과 프랑스 소설책 더미>(1887), <프랑스 소설책 더미>(1887), <조각상이 있는 정물>(1887), <유리컵에 담긴 아몬드나무와 책>(1888), <서양 협죽도와 책이 있는 정물>(1888), <아를 공원의 입구>(1888), <소설 읽는 여자>(1888), <아를의 여인>(1889), <양파 접시가 있는 정물>(1889), <양파 접시가 있는 초상>(1889), <지누 부인의 초상>(1890), <닥터 가셰>(1890) 등에서 책을 그렸다.

“가슴 속에 만 권의 책이 들어있어야 그것이 넘쳐서 글씨가 되고 그림이 된다”고 한 추사 김정희의 말이 가장 잘 어울리는 화가가 빈센트 반 고흐이지 싶다.

최광열(기독교미술연구소 연구원)  webmaster@ecumeni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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