彪(표)범 ․ 호랑(虎狼)이의 표상과 상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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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랑이(寅 ․ 虎)는 고양이科(과) 동물 가운데 가장 큰 맹수로, 순수한 말로 ‘라이’인 감과 범이라는 별칭이 있다. 漢字(한자)로 虎狼(호랑)이라고 썼지만 우리 민족은 본래 ‘虎(호)’를 ‘호랑이’라고 부르기보다는 범이라고 부르기를 좋아했다. 일제 강점기 때 일본인들이 한국에서 성스러운 동물로 여기던 범을 대대적으로 사냥하면서 한국인의 반발을 없애기 위해 맹수 사냥이라는 핑계를 대고 범(虎)과 늑대(狼)를 묶어 호랑(虎狼)이라고 부르던 것이 어느덧 범을 가리키는 말로 굳어졌다. 호랑이에게 범이 밀려난 꼴이다. 호랑이라 하면 줄범만 지칭하는 말인데 반해 범은 줄범(호랑이), 돈범(표범)을 함께 부르는 말이다. 때문에 호랑이 표범 등을 한 종류로 보고 그것들을 확실히 구분지어 부르기보다는 범하면 호랑이나 표범 모두를 일컫게 된다. 호랑이 새끼는 개호주라고 부른다.
호랑이는 야행성으로 황혼이나 새벽에 사냥을 한다. 호랑이의 식성은 자신이 잡은 신선한 야생동물(멧돼지, 노루, 산양, 곰, 사슴)의 고기만 먹는데 시장기가 날 때에는 죽은 고기, 오래된 고기도 먹는다. 호랑이는 짐승들이 싫어하는 냄새로써 다른 야생동물들에게 마비와 공포를 주게 되어 다른 동물들을 마치 최면술에 걸려든 것 같이 도망가지 못하게 하여 먹이감을 얻으며, 여름부터 가을에는 산림 속의 감초 외에 도토리, 머루나 다래와 때로는 물가의 물고기도 먹는다.
우리 나라 최초의 호랑이 기록은 『삼국유사』 권1 고조선 조에 보이는 단군신화이다. 즉 곰과 호랑이가 사람이 되고자 환웅에게 빌어 곰은 신의 계율을 지켜 사람이 되었고, 호랑이는 그러지 못했다는 내용이다. 이에 대한 해설은 다양하나 토템으로 보아 호랑이 부족은 곰부족과는 달리 환웅 부족에 반발하여 반골의 혈통으로 지속된 것으로 볼 수 있다.
호랑이가 인간으로 변신한 설화로는 『삼국유사』에 실린 신도징 얘기, 김현감호(金現感虎) 설화가 있다.
『조선왕조실록』에 등장하는 ‘호랑이’ 단어로 검색 할 수 있는 단어는 모두 635건이다. 이 기록의 내용 중에 흥미로운 사실은 조선 초 태종부터 단종 대에 호두(虎頭)로 기우제(祈雨祭)를 지냈다는 기록이 15회나 된다. 즉 용소(龍沼)가 있는 곳에 호랑이 머리를 넣게 했는데, 주로 한강, 양진(楊津), 박연(朴淵)이었다.
호랑이를 신비의 대상으로 여기는 경향은 우리네 전설에서 많이 볼 수 있다. 효성이 지극한 효자 성묘길 인도, 부모의 무덤가에서 봉양하는 효자 지켜주기 등 효행을 장려하는 설화에서 호랑이와 저승과의 관계를 엿볼 수 있다. 여기서 호랑이는 여기서 호랑이는 살아 있는 자를 죽은 자의 세계로 인도하는 ‘영혼의 인도자’이거나 저승의 영역을 보호하는 신의 심부름꾼, 혹은 사경의 문지기 역할로 볼 수 있다.
우리가 잘 아는 ‘호랑이와 곶감’ 이야기는 우는 아이에게 어머니가 곶감을 주자 아이의 울음소리가 그치는 것을 지켜 본 호랑이가 자신보다 더 무서운 것이 곶감이었다고 생각하고는 그 집에서 부리나케 달아나 버린 얘기는 범을 어수룩한 존재로 만들어 버린 것이다. 이 설화에 등장하는 호랑이는 친근한 동물로 희화화(戱畵化)된 것은 (虎患)의 두려움을 덜어보고자 하는 민중의 의식에 기인한 것이 아닐까?
또한 『삼강행실도(삼강행실도)』에는 범에게 부모, 자식, 남편 등을 잃은 가족이 그 원수를 갚고 시신을 찾아오는 설화가 많이 실려 있는 것은 호환을 당한 가족들을 끝까지 지키는 유교 윤리 의식의 반영이라 하겠다.
흔히 ‘아주 오랜 옛날’이란 말의 의미는 본래 ‘호랑이 담배 태우던 시절’이란 말에서 유래했다. 여기에 다음과 같은 전설이 내려오고 있다.
한 호랑이가 늙어서 사냥하기가 힘들어지자 산행하는 사람을 잡아먹으면서 갑자기 사람이 되었다. 그 호랑이는 마을로 내려와 벼슬아치로 행세했다. 그러던 어느날 호랑이를 잡으러 다닌다는 사람을 만났는데 알고 보니 그는 옛 친구였다. 정체가 드러날 상황이 되자 벼슬아치는 친구에게 혹시 담배 있으면 달라고 했다. 이에 친구로부터 담배를 얻어 태우면서 자신의 신세를 불쌍하게 말해 위기를 벗어났다는 내용이다. 이 전설은 말도 되지 않은 일들이 연속 벌어지는 세상을 풍자한 것인데, 훗날 그 내용은 없어지고 ‘호랑이 담배 피우던 시절에’ 라는 구절만 남았다. 담배는 임진왜란 때 왜병을 통해 전해진 것으로 알려졌다. 이 시기는 매우 어지럽고 살기가 힘든 상황이라 온갖 불법과 편법이 벌어져 죽은 양반의 신분증이나 문서를 훔쳐 신분을 속이기도 하고 잔인한 살인이나 도둑질을 하기도 하여 불합리한 때를 상징적으로 표현한 말이다. 하지만 세월이 흐르면서 ‘불합리한 시절’이 ‘아주 오랜 옛날’이라는 뜻으로 바뀐 것은 어떤 연유일까? 그 배경은 산이 많은 우리네는 예부터 산신령이 호랑이를 타고 다닌다고 생각을 했다. 사찰 근처의 산신각에 모셔진 신신령의 그림 속에 산신이 호랑이를 타고 앉아 있는 모습에서 찾아진다. 여기서 호랑이는 산신의 심부름꾼이자 때로 산신이 변한 모습이기도 하다. 이런 속신이 호랑이와 담배와 착종되어 신선이 호랑이로 변신하여 담배 태우는 모습을 상상하기에 이른 것이다. 게다가 산신은 아주 오래 살아온 성스러운 존재이므로 ‘호랑이 담배 피우는 시절’은 마땅히 ‘아주 오래 전 세월’로 통하게 됐다.
호랑이는 재앙을 몰고 오는 포악한 맹수로 이해되기도 하지만 사악한 잡귀들을 물리치는 영물로 인식되기도 했다. 또한 범은 산신도(山神圖)나 까치와 호랑이 등의 세화(歲畵)는 희보(喜報)라는 길상(吉祥) 문구를 벽에 걸어서 액운의 방패막이와 함께 신년을 맞이함에 있어서 즐거움으로 보답함을 알리는 그림이다.
매년 정초에 대궐이나 민가 할 것 없이 호랑이 그림이나 ‘호축삼재(虎逐三災), 용호오복(龍虎五福)’이라는 글자를 기둥이나 출입문에 붙이는 것은 귀신을 쫓고 액땜을 하고 복을 비는 풍속에 기인한다.
호랑이는 예로부터 태몽(胎夢)에 종종 등장한다. 태몽 속의 호랑이는 아이의 신분, 운수 등을 표시하고, 명예, 권리, 승리 등을 상징하기 때문에 ‘호랑이와 잠자리를 같이 했다’, ‘호랑이와 싸워 이겼다’, ‘호랑이에게 물렸다’ 등 직접적인 접촉을 하면 길몽(吉夢) 중의 길몽으로 친다.
이규경의 『오주연문장전산고(五洲衍文長箋散稿)』에는 “호랑이를 산군(山君)이라 하여 무당이 진산(鎭山)에서 도당제를 올렸다.”고 하였다. 은산별신제의 상당에 모신 신격 중 가운데 산신과 호랑이가 함께 있다.
범굿(호탈굿)은 범에게 물려 죽은 영혼을 위로하고 호환을 예방하기 위한 것이다. 상여나 무덤가에 장식된 호상(虎像)은 벽사기복(辟邪祈福)의 소망을 담은 옛사람들의 숨결을 느낄 수 있는 것들이다.
음력 정월의 첫 범날에는 여자의 출입을 삼가는 것은 남의 집에서 대소변을 보면 그 집 사람이 호환(虎患)을 당한다는 속신(俗信) 때문이다.
호랑이의 털가죽을 신행 때 신부의 가마 위에 덮는 것은 미리 잡귀의 범접을 막고자 하는 의도이다.
윤선도의 시조 ‘일모요(日暮謠)’ ‘석양이 넘은 후에 산기는 좋다마는 …(중략)… 아해야 범므서온디 나다니지 말아라’의 구절에서 호환(虎患)에 대한 예비를 읽어낼 수 있다.
박지원의 ‘호질(虎叱)’은 숲속에서 먹이를 구하는 범과 그에 답하는 창귀(倀鬼)와의 대화 장면, 북곽과 동리자의 밀회와 그것을 목격한 동리자의 다섯 아들에게 쫓겨나는 장면, 도망나온 북곽이 범을 만나 혼이나는 장면으로 구성된 작품으로, 위선적(僞善的)인 유학자인 북곽을 꾸짖을 때 전(全) 인간의 비행을 폭로함으로써 모든 인간의 악폐가 드러남과 동시에 북곽의 행위 자체가 강하게 풍자되어지는 이중의 효과를 나타냈다.
우리네 속담에서 활용되고 있는 호랑이는 대개 권위나 위엄, 위대한 존재를 상징할 때 쓰이는 대상물이다. ‘호랑이 없는 굴에 여우가 논다’(힘센 권위자와 위정자로 호랑이를 빗대는말), ‘호랑이 입보다 사람 입이 더 무섭다’, ‘호랑이 늙으면 쥐가 깔본다’, 호랑이 불알이 동지부터 얼었다가 입춘에 가서 녹는다 등의 속담은 호랑이의 생태적 특징을 비유로 하여 재치나 해학의 세계를 보여준다. ‘범굴에 들어가야 범을 잡지’(큰 목적을 이루려면 그만한 위험과 수고를 겪어야 됨), ‘범도 제 소리 하면 오고 사람도 제 말하면 온다’(어느 장소에서든 남의 흉을 보지 말라는 의미), ‘범 모르는 하룻강아지’(철없이 무서운 줄 모르며 함부로 날뛰는 것을 이름), ‘범에게 물려가도 정신을 차려라’(아무리 위험한 지경에 이르러라도 정신만 차리면 살아날 도리가 있다), ‘사람은 죽으면 이름을 남기고 범은 죽으면 가죽을 남긴다’(사람은 살아 있을 때 훌륭한 일을 하면 그 이름이 후세에까지 빛나기에 마땅히 선행을 해야 한다는 말), ‘함정에 든 범(마지막 운명을 기다리는 처지)’, ‘이빨 빠진 호랑이’, ‘발톱없는 호랑이’, ‘늙은 호랑이’ 등의 속담은 권세에서 몰락한 사람은 남들이 멸시하게 된다는 말이다.
일찍이 우리 민족의 지형은 대부분 산으로 이루어져 있기 때문에 호랑이가 많이 서식한다 하여 ‘호랑이의 나라’로 일컬어지기도 했다. 1988년 서울 올림픽에서 행운을 가져다주는 동물로 호돌이가 선정되기도 했다.
호랑이의 형상은 선사시대 청동기와 암각화, 대구(帶鉤), 토우와 12지신상, 고려시대의 동경(銅鏡), 석관, 조선시대 능묘 등에 나타나고 조선 후기 공예품이나 의식주 용품과 신앙의례 기물, 연희용 오락기구, 악기 등의 장식이나 현재 고려대학교 로고, 기아타이거스 프로야구팀 로고, 군부대 명칭(백호나 맹호)이나 깃발, 정예특정 공수부대의 상징물로 쓰이고 있다.
다음으로 성서에 나타난 범의 형상을 살펴보자.
구약 아가서 4장 8절 “레바논에서 오너라. 신부야! 레바논에서 오너라. 어서 오너라. 아마나 꼭대기에서 스닐과 헤르몬 꼭대기에서 사자들이 사는 굴에서 표범들이 사는 언덕에서 내려오너라”의 구절은 신랑(솔로몬)이 신부(술람미)를 맞이하며 노래하는 대목인데, 신부가 살던 지역은 육식동물인 사자와 표범이 사는 동굴과 산의 언덕임을 언술하고 있다.
예레미아 5장 6절 “그러므로 사자가 숲 속에서 뛰쳐 나와서 그들을 물어 뜯을 것이다. 사막의 늑대가 그들을 찢어 죽일 것이다. 표범이 성읍마다 엿보고 있으니 성 바깥으로 나오는 자마다 모두 찢겨 죽을 것이다. 그들의 죄가 아주 크고 하나님을 배반한 행위가 매우 크구나”의 구절은 유다에 사는 백성들의 불의하고 추악한 상태를 부각시켜 심판의 불가피성을 강조한 것인데 사나운 성질을 가지고 있는 사자와 표범의 무서운 징계를 예언하고 있다.
예레미야 13장 23절 “에티오피아 사람이 자기의 피부 색깔을 바꿀 수 있느냐? 표범이 자기의 반점들을 다르게 바꿀 수 있느냐? 만약 그렇게 할 수만 있다면, 죄악에 익숙해진 너희도 선을 행할 수가 있을 것이다”의 구절에서 표범이 몸의 줄무늬 색깔을 바꾸는 것은 주변 환경의 적응에 따른 생존의 보호와 사냥꾼에게 들키지 않기 위한 위장술 때문일 것이다. 이대목에서 에티오피인(구스인)이 천성적으로 타고난 그의 검은 피부와 표범의 반점이 변할 수 없는 것처럼 오랫동안 익숙해진 유다 백성들의 죄악을 개선할 수 없는 불가능한 상태에 이르렀음을 직시하고 있다. 그러나 그들의 죄악을 개선하기 위해서는 여호와를 경외하고 자신들의 과오를 뉘우친다면 비록 그들의 피부와 범의 반점은 변할 수 없으나 그들의 삶은 변화될 수 있음을 역설하고 있다.
호세아 13장 7절 “그래서 내가 그들에게 사자처럼 되고, 이제는 표범처럼 되어서 길목을 지키겠다.” 구절 또한 진노한 여호와께서 교만함으로 가득찬 무리들은 사나운 동물의 대명사가 된 사자와 표범의 표적이 될 수밖에 없음을 선언하고 있는 대목이다.
하박국 1장 8절 “그들이 부리는 말은 표범보다 날쌔고 해거름에 나타나는 굶주린 늑대보다도 사납다. 그들의 기병은 쏜살같이 달린다. 먼곳에서 그렇게 달려온다. 먹이를 덮치는 독수리처럼 날쌔게 날아온다.”의 구절에서 범이 굉장히 빠른 동물임을 밝히고 있다.
중국의 『易經(역경)』에는 “구름은 용을 따르고, 바람은 호랑이를 따른다”는 말이 있는데, 호랑이와 바람과의 관계를 암시한 말이다. ‘바람의 여신은 호랑이를 타고 다닌다’는 속설이 있는데 이 말에서 유래하여 매우 빠른 동작을 의미하는 ‘비호(飛虎) 같다’는 말이 생겼다.
실제로 범은 하루에 80~100km를 달리며, 한번의 도약이 4m, 다른 야생동물 쫓아갈 때는 7~8m, 큰 바위나 높은 곳에서 아래로 도약할 때는 10m까지도 뛰어내린다고 한다.
이사야 11장 6절 “그 때에는, 이리가 어린 양과 함께 살며 표범이 새끼 염소와 함께 누우며, 송아지와 새끼 사자와 살진 짐승이 함께 풀을 뜯고, 어린 아이가 그것들을 이끌고 다닌다.”의 구절에서 어린아이, 표범, 양, 염소 등의 무리들을 견주어 여호와 하나님을 진실하게 믿고 의지하는 자들은 메시아 시대에 이르게 되면 강자나 약자나 함께 평화의 나라에서 공의(公義)롭게 살 것임을 언약한 것이다.
다니엘 7장 6절 “○그 뒤에 내가 또 살펴보고 있는데, 또다른 짐승이 나왔다. 그것은 표범처럼 생겼으나, 등에는 새의 날개가 네 개나 있었고, 머리도 네 개나 달려 있었으며, 아주 권위가 있었다”의 구절은 다니엘이 꿈속에서 네 마리 짐승에 대한 환상(이상)을 그려낸 것이다. 위 예문의 짐승은 표범으로 백성들을 보호해주는 수호신(통치자)의 이미지이고, 신상의 놋 부분에 해당하는 헬라 제국을 가리키고, 새의 날개 넷 날개는 신속한 기동력을 가리키고, 머리 넷은 알렉산더 대제 이후 그 나라는 넷으로 나뉨을 형상화한 것이다.
신약 요한계시록 13장 2절 “내가 본 짐승은 표범과 비슷한데, 그 발은 곰의 발과 같고, 그 입은 사자의 입과 같았습니다. 그 용이 자기 힘과 왕위와 큰 권세를 이 짐승에게 주었습니다.”의 구절에서 용은 생물학적 존재보다는 문화적 상상의 동물로 한 나라의 통치자(수호신)의 역할이나 여기서는 국가 혹은 교회를 핍박하는 거짓 지도자나 사탄 즉 다시 말하면 그리스도의 적을 의미한다.
이상에서 보듯 범(호랑이)은 산신령, 산신의 사자(使者), 기우제(祈雨祭)의 희생물, 효와 보은(報恩)의 수호자, 용맹함, 날렵함, 벽사(辟邪), 절대적인 권위와 힘, 포악(사나움), 어리석음, 호국신, 친근미, 그리스도의 적, 국가, 평화, 거듭남 등 다양한 비유의 상징으로 쓰이고 있다.
홍성남(한신대학교 국어국문학과 외래교수/고전산문전공)
홍성남 위원 webmaster@ecumeni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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