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진 위 왼쪽부터 시계방향으로) 평화교회연구소가 13년째 이어가고 있는 “고난받는 이들과 함께 하는 새벽송”을 2024년에는 지혜복 교사, 명동 재개발 2지구 상가 세입자 ‘이안헤어’ 남현 사장, 이태원참사 유가족을 찾았다. ⓒ장성호

“차디찬 거리와 골목에서 노동할 권리, 가르칠 권리, 장사할 권리, 살아갈 권리를 되찾기 위해 쉬지 않고 투쟁해온 동료들을 잊지 않고 기억합니다. 이 땅에 모든 고난받는 이들에게 정의와 평화의 왕으로 오신 그리스도의 기쁜 소식을 함께 노래합시다.”

박형순 목사(평화교회연구소)의 인사말처럼, 2024년 12월 24일(화), 추운 겨울 속에서도 고난의 현장에서 삶을 위한 투쟁을 이어가는 이들을 위로하고 격려하기 위한 새벽송 행사를 평화교회연구소가 개최했다. 오전 11시, 평택에서 <한국옵티칼 하이테크 해고 노동자>들을 위한 1부 새벽송을 시작으로, 오후 7시부터는 서울지역의 투쟁 현장을 방문하는 여정이 이어졌다.

▲ 지혜복 교사는 학교 내에서 지속적으로 이루어진 성폭력 사건을 제보했지만 그에게 돌아온 것은 전보와 부당 해임이었다. ⓒ장성호

지혜와 용기로 빚어낸 희망의 선율: 지혜복 교사와 함께

2부 새벽송의 첫 번째 순서는 향린교회에서 <성폭력 공익제보교사 부당해임 지혜복 교사>와 함께하는 시간이었다. 지혜복 교사는 A학교 재직 당시, 오랜 기간 지속된 여학생 성폭력 피해 사실을 공론화하고 2차 피해 방지를 위해 노력했다. 하지만 학교 측은 사건 해결보다는 지혜복 교사를 부당 전보 조치하며 사건을 무마하려 했다.

지혜복 교사는 부당 전보에 맞서 새 학교에 출근하지 않았고, 서울시 교육청은 이를 무단 결근으로 간주, 징계위를 열어 지난 9월 27일 해임 조치했다. 그녀는 공익제보자로서 부당 해임 및 전보 철회, 형사고발 취하를 요구하며 서울시 교육청 앞에서 매일 아침 1인 시위를 이어가고 있다. 또한 서울시 내 학교 성폭력 실태조사와 포괄적 성평등교육과정 마련을 위한 조직 구성을 촉구하고 있다.

지혜복 교사는 새벽송을 통해 자신을 위해 모인 사람들에게 감사를 표하며, “힘든 순간에도 함께 싸워주는 사람들 덕분에 울지도 못했는데, 오늘 이 자리에서 큰 위로를 얻었다. 오늘만큼은 마음껏 울겠다”라고 전했다. 주최 측은 지혜복 교사와 <A학교 성폭력사안 교과운영부조리 공익제보교사 부당전보철회를 위한 공대위>에 선물을 전달하며 격려했다. 특히 공대위에 속한 미술 전공 제자가 그린 지혜복 교사와 공대위 동지들의 그림은 참석자들에게 깊은 울림을 전했다.

▲ 벌써 2년을 넘긴 이태원참사는 여전히 책임자 처벌은 멀어 보인다. ⓒ장성호

별이 된 이들을 기억하며: 10.29 이태원 참사 유가족과의 연대

두 번째 새벽송 장소는 이태원 10.29 참사 추모공간 ‘별들의 집’(적선현대빌딩 1층)이었다. 새벽송 참석자들은 이태원 참사 특별법안에 의해 조성된 ‘별들의 집’에서 10.29 이태원 참사 유가족들을 격려하는 시간을 가졌다.

유가족들은 “작년 성탄절은 날씨도 마음도 너무 추웠지만, 올해는 따뜻하고 감사하다. 무책임한 정부 대응과 극우 인사의 비난 속에서도 수많은 분들의 연대 덕분에 여기까지 올 수 있었다. 새벽송 참석자들 덕분에 큰 위로를 받는다”고 전했다.

이정민 회장(10.29 이태원 참사 유가족 협의회)은 “남태령 사건도 시민 연대가 없었다면 해결되지 못했을 것이다. 고난받는 사람들과의 연대는 무엇보다 중요하다. ‘별들의 집’은 추모를 넘어 기억의 공간이 되길 바란다. 기억은 힘이 세다. 서울의 봄 시절, 계엄에 대한 기억이 온몸으로 계엄을 저지하게 만들었듯, ‘별들의 집’을 통해 이 사건을 기억하고 다시는 이런 일이 없도록 해야 한다”라고 강조했다.

더불어, “무도하고 무책임한 윤석열을 대통령직에서 끌어내려 다시는 이런 참사가 없도록 해야 한다”라며 참사의 원인과 책임을 대통령과 정권에 물었다. 새벽송 참석자들은 유가족들과 함께 캐럴을 부르고 선물을 전달하며 위로와 격려를 전했다.

▲ 한겨울 무서운 칼바람 속에서 강제 퇴거를 당한 명동 재개발 2지구 상가 세입자들. ⓒ장성호

강제집행의 칼바람 속, 생존권을 외치다: 명동 재개발 2지구 상가 세입자

세 번째 새벽송 순서는 명동 재개발 2지구 상가 세입자와 함께하는 시간이었다. 지난 12월 18일, ‘이안헤어’에 대한 기습적인 강제집행이 이루어져, 철문에는 경고문과 함께 출입 금지를 알리고 있었다.

서울시와 국가인권위원회는 인권 보호를 위해 동절기 강제퇴거 집행 금지 조례를 시행하고 있지만, 이번 강제집행은 이를 무시하고 40여 명의 용역원을 동원해 이루어졌다. 항의하던 옥바라지 선교센터 활동가들은 험한 말과 욕설을 들어야 했다.

‘이안헤어’ 사장 남현(70) 씨는 “건물주는 만날 수 없는 상황에서 재계약이 이루어지지 않고 명도소송장이 왔다. 계고장도 없이 강제집행이 이루어졌다. 13년간 언니와 함께 일해온 미용실에 대한 생존권은 전혀 존중되지 않았다”라고 토로했다. 그는 강제집행 당일, 아픈 손녀 때문에 응급실에 가느라 급박한 상황을 겪었다고 덧붙였다.

남 씨는 자신 때문에 험한 말을 들은 옥바라지센터 활동가들에게 울먹이며 미안함을 전하는 따뜻한 모습을 보였다. 새벽송 참석자들은 서울시의 강제집행 금지 조례를 무력화하는 무능과 무원칙을 규탄하고, 세입자의 생존권이 재산권만큼 존중받아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13년째 이어지는 희망의 발걸음

이번 새벽송 행사는 2011년부터 시작되어 올해로 13년째를 맞이한다. 성탄절 전날, 억울하게 고통받는 사람들의 현장을 찾아 위로와 격려를 전하는 이 행사는 추위 속에서도 많은 사람의 참여를 통해 고난받는 이들에게 따뜻한 희망을 전하고 있다.

이번 행사는 평화교회연구소 외에도 고난받는이들과 함께하는 모임, 광야에서, 새민족교회, 중실대학교 작당모의, 영등포산업선교회, 장로회신학대학교 신학대학원 사회선교모임, 촛불교회, 한국교회인권센터, 한국기독청년협의회(EYCK), 한국기독학생회총연맹(KSCF), 한국기독정년학생연합회, 한신대학교 신학대학원 민중신학회, 협성대학교 예수걸음 등이 공동 주관으로 함께했다.

장성호  webmaster@ecumeni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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