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윤석열의 12·3 내란사태를 옹호하고, 2차 계엄을 요구하는 교회 단체가 고발당했다.

유럽 철학사에서 실존철학이라는 분야를 개척하고 이 분야에서 가장 두각을 나타낸 학자들을 꼽는다면 독일의 ‘마르틴 하이데거(Martin Heidegger)’와 ‘칼 야스퍼스(Karl Jaspers)’와 프랑스의 ‘장-폴 사르트르(Jean-Paul Sartre)’일 것이다. 이들은 모두 인간 존재의 의미와 자유, 그리고 사회 속에서의 개인의 역할에 대해 깊이 고찰했다. 이들 중 야스퍼스는 실존철학을 넘어서는 사회의 공공성 개념을 철학적으로 정립해 하이데거와 사르트르의 공공성 개념과는 차이를 보였을 뿐만 아니라, 특히 야스퍼스의 공공성 개념에 대한 학문적 정리 작업은 현대 공공성 분야의 시조새와 같다.

하이데거는 현존재의 존재론적 분석을 통해 ‘세계-내-존재’의 의미를 탐구하며 공동체와의 관계를 강조했지만, 사회적, 정치적 차원의 공공성 논의에는 소극적인 태도를 보였다. 그는 개인의 실존적 경험과 진정성에 집중해, 사회 참여나 정치적 행동보다는 ‘본래적인 자기’를 찾는 것을 강조해 나치 정권에 대한 그의 침묵과 옹호로 이어져 많은 비판을 받았으며, 그의 철학이 지닌 정치적 한계를 드러냈다. 반면, 사르트르는 실존적 자유와 책임을 강조하며 개인의 선택과 행동이 사회에 미치는 영향을 분석했지만, 구체적인 공공성의 개념을 제시하지는 않았다.

이에 반해 야스퍼스는 실존철학을 넘어 사회적, 정치적 차원의 공공성 개념을 철학적으로 정립했다. 그는 실존적 소통과 책임, 그리고 초월적 가치 추구를 통해 공동체의 유지와 발전을 위한 구체적인 방향을 제시하며, 현대 공공성 논의의  토대를  마련했다. 이러한 야스퍼스의 공공성 개념은 오늘날에도 여전히 유효하며, 다양한 사회 문제 해결에 필요한 통찰을 제공한다.

또한 야스퍼스의 공공성 개념은 이러한 사회의 공공성을 넘어 종교 공동체가 현대 사회에서 어떤 역할을 수행해야 하는지에 대한 중요한 시사점을 제공한다. 종교는 전통적으로 공동체의 가치관 형성과 사회 통합에 중요한 역할을 담당해 왔지만, 현대 사회의 다원화된 가치관과 급변하는 환경 속에서 새로운 도전에 직면하고 있다. 야스퍼스의 철학은 이러한 종교의 공공성을 새롭게 조명하고, 그 역할을 재정립하는 데 유용한 틀을 제공한다.

그렇다면 종교의 공공성을 왜 논의해야 할까. 한국의 예를 들자면, 지난 팬데믹 기간 동안 일부 교회들은 ‘교회의 사명은 예배’라고 주장하며 대규모 감염의 진원지가 되어 사회적 지탄의 대상이 되었다. 또한 얼마전 윤석열과 김용현으로 대표되는 윤 정권의 수장들이 국회 해산을 시도하고 영구 집권을 획책한 ‘12.3 내란’을 도모했음에도 한국의 대형 교회를 비롯 주류 기독교는 윤석열을 비판하기는커녕 그를 옹호하는 모습을 보여 한국사회에서 공공의 적이 되어 버렸다.

한마디로 한국 교회는 공공성 개념을 상실해버렸다. 물론 대중에게 영합할 필요는 없다. 하지만 사회의 공공성이 공격받고 위기에 처했을 때 종교가 공공성을 보호하고 공동체를 회복해야 역할이 있는 것은 분명하다. 그럼에도 종교의 공공성은 전통적 교리와 합치하지 못하고 갈등을 겪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를 어떻게 해결해야 할까. 야스퍼스의 공공성 개념을 고려해 종교의 공공성 개념을 살펴보자.

실존적 소통과 공공성: 진정한 소통의 결여와 한국기독교의 문제

야스퍼스는 실존적 소통을 공공성의 핵심으로 보았다. 실존적 소통은 단순한 정보 전달이 아니라, 개인이 자신의 생각과 감정을 진솔하게 드러내며 타인의 존재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과정이다. 그는 이러한 소통이 공동체 형성과 발전에 필수적이라고 강조했다. 실존적 소통은 개인주의적 고립을 넘어, 타인과의 공감을 통해 진정한 공동체를 구축하는 토대가 된다.

그러나 한국기독교는 실존적 소통의 중요성을 간과하고 있다. 교회 내부에서는 수직적 구조와 권위주의적 문화가 개인의 자율성과 자유로운 소통을 억압한다. 특히 목회자의 권위 아래 교인들의 의견이나 비판은 억눌리기 일쑤다. 이러한 상황은 공동체 구성원 간의 신뢰와 공감을 저해하며, 공동체의 건강한 소통 구조를 방해한다.

외부적으로도 교회는 사회와의 진정한 소통을 거부하거나 형식적으로만 유지하려는 경향을 보인다. 대중의 비판에 대해 방어적 태도를 취하거나, 교회의 이미지를 보호하기 위한 수단으로 소통을 왜곡한다. 종교적 언어로 이들을 저주하기까지 한다. 이러한 태도는 더 이상 교회를 대화 상대자로 여기지 않는 사회적 분위기에서 극명하게 드러난다.

특히 윤석열 내란 사태는 이러한 소통 부재를 극명하게 드러낸 사례다. 교회는 이 사태의 본질을 묻고 사회적 책임을 논의하기보다는, 특정 정치 세력을 옹호하며 사회적 단절을 심화시켰다. 이는 실존적 소통을 거부한 결과로, 교회가 사회적 신뢰를 잃게 된 주요 원인이다.

한계상황과 책임: 공공적 책임을 회피하는 한국기독교

야스퍼스는 인간이 한계상황에 직면했을 때 자신의 유한성을 깨닫고, 타인과 공동체에 대한 책임을 자각한다고 보았다. 한계상황은 죽음, 고통, 질병, 자연재해와 같은 인간의 통제 밖에 있는 조건들을 포함하며, 이를 통해 개인은 자신의 행위와 선택에 대한 책임을 자각하게 된다. 야스퍼스는 이러한 책임감이 공동체의 유지와 발전에 필수적이라고 강조했다.

야스퍼스의 관점에서 볼 때, 한계상황은 개인과 공동체가 자신의 한계를 인식하고 이를 극복하기 위해 책임을 다해야 하는 순간이다. 그러나 한국기독교는 이러한 기회를 놓치고, 오히려 자신의 이익을 보호하려는 태도로 일관했다. 윤석열 내란 사태라는 한계상황에서 교회가 보여준 책임 회피는 공공성을 상실한 대표적인 사례로 두고두고 회자될 일이다.

▲ 보수단체 집회 연설하는 전광훈 목사 ⓒ연합뉴스

포월자와 초월적 가치: 보편적 가치를 외면한 한국기독교

야스퍼스의 철학에서 “포월자”는 인간이 자신의 한계를 넘어 초월적 가치를 지향하도록 이끄는 존재를 의미한다. 그는 인간이 포월자를 지향하며, 정의, 평등, 사랑과 같은 보편적 가치를 추구할 때 진정한 공공성이 실현된다고 보았다. 이러한 보편적 가치는 공동체를 넘어 사회 전체의 발전에 기여한다.

그러나 한국기독교는 이러한 초월적 가치 실현에 실패하고 있다. 전통적 교리 수호라는 미명하에 사회의 공공성을 무너뜨리는 모습을 수도 없이 노출해왔다. 한국기독교의 이러한 모습은 마치 정통의 입장에서 보면 이단이라고 하는 집단이 공공성을 훼손하지 않고 자신들의 신념을 지키는 것보다 열등하게 보일 정도이다.

기독교의 시작은 사실 그리스-로마 종교라는 관점에서 보자면 초대기독교는 이단 사설이었다. 하지만 윤리적 우월성과 초월적 가치를 가지고 있던 초대기독교는 로마 사회에 결국 정착하고 정식 종교로 인정받는 상황을 맞이했었다. 이른바 로마 사회의 무너지는 공공성을 초대기독교는 윤리적 우월성과 초월적 가치로 공공성을 보존했다고 이야기할 수 있다.

또한, 특정 정치 세력과의 유착 관계를 통해 교회의 입지를 강화하려는 시도는 보편적 가치를 외면한 행위라 할 수 있다. 윤석열 내란 사태에 대해 교회는 침묵하거나 오히려 이를 지지하는 모습을 보이며, 공공성을 훼손하고 있다. 이는 교회가 사회적 정의와 평등이라는 초월적 가치를 지향하지 않고, 특정 집단의 이익을 대변하는 도구로 전락했음을 보여준다.

열린 소통과 공론장 참여: 사회와의 단절과 독단적 태도

야스퍼스는 열린 소통과 공론장에서의 참여를 공공성 실현의 핵심 요소로 보았다. 그는 다양한 의견을 수렴하고, 상호 존중을 바탕으로 공동의 문제를 해결해 나가는 과정을 통해 진정한 공공성이 실현된다고 강조했다. 이러한 열린 태도는 공동체 내부와 외부 모두에서 요구된다.

그러나 한국기독교는 이러한 열린 소통과 공론장 참여에서 멀어진 모습을 보인다. 교회 내부에서는 권위주의적 구조가 소통을 억압하며, 외부에서는 사회적 이슈에 대한 독단적이고 편향된 태도로 공론장과 단절되어 있다. 예를 들어, 환경 문제, 성소수자 인권, 여성의 권리와 같은 현대 사회의 주요 쟁점에 대해 교회는 대화를 거부하거나 극단적인 입장을 고수하며 갈등을 조장한다.

특히, 한국기독교가 특정 정치 세력을 옹호하거나 대중의 목소리를 무시하는 태도는 공론장 참여를 저해한다. 교회는 공론장에서 사회적 합의를 이끌어내는 데 기여하기보다는, 자신들의 이익을 대변하는 데 집중하며 공동체와의 단절을 심화시킨다. 윤석열 내란을 옹호하는 집단으로 낙인 찍힌 한국기독교는 더욱 게토화된 집단으로 전락하게 되었다.

한국기독교의 공공성 회복을 위해

야스퍼스의 공공성 개념은 한국기독교의 문제점을 분석하고 이를 극복하기 위한 유용한 틀을 제공한다. 실존적 소통의 부재, 한계상황에서의 책임 회피, 초월적 가치의 외면, 공론장에서의 단절 등은 모두 한국기독교가 공공성을 상실하게 된 주요 원인이다. 교회는 야스퍼스의 철학적 통찰을 바탕으로 이러한 문제를 직시하고, 공공성을 회복하기 위한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교회가 공공성을 회복하기 위해서는 첫째, 권위주의적 구조를 해체하고, 구성원 간의 실존적 소통을 촉진해야 한다. 둘째, 위기의 순간에서 공동체와의 연대를 실천하며, 책임 있는 행동을 통해 신뢰를 회복해야 한다. 셋째, 보편적 가치를 재발견하고 이를 통해 사회적 정의와 평등을 구현해야 한다. 넷째, 공론장에서 열린 태도로 사회와 소통하며 공동의 문제 해결에 적극 참여해야 한다.

이러한 변화 없이는 한국기독교는 공공성을 회복하기 어려울 것이며, 사회적 신뢰를 회복하는 데에도 실패할 것이다. 교회가 지금의 위기를 극복하고 진정한 공동체로 거듭나기 위해 교회의 공공성을 다시 점검해야 한다. 이는 차후의 문제가 아니라 지금 여기에서 노력해야 할 사안이다.

이러한 변화 없이는 한국기독교는 공공성을 회복하기 어려울 것이며, 사회적 신뢰를 회복하는 데에도 실패할 것이다. 교회가 지금의 위기를 극복하고 진정한 공동체로 거듭나기 위해 교회의 공공성을 다시 점검해야 한다. 지금 여기에서 시작하지 않는다면, 교회의 미래는 없다.

이정훈  typology@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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