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평양 대동강변의 야경. 맞은 편에 주체사상탑이 보이고 좌우의 건물 꼭대기에 '일심''단결'의 구호가 보인다.

문: 주체사상에도 숭배가 있나요?

답: 주체사상은 ‘숭배’를 사회적 존재인 사람의 본성으로 봅니다. 사회적 존재인 사람은 본성 상 숭배하는 존재라는 것입니다. 그 이유는 ‘숭배’가 사회적 존재인 사람의 본질적 속성인 ‘자주성’과 연결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이 부분은 주체사상이 맑스주의와 구분되는 지점 중 하나입니다.

맑스주의에는 ‘숭배’에 대해 따로 관심을 가지고 해명하려는 노력이 없습니다. 주로 ‘종교’가 허황한 관념론의 일종임을 비판하였습니다. ‘숭배’에 대해서는 ‘종교’가 극복되면 자연스레 소멸되는 부수적인 것으로 보고 별도로 다루지 않았습니다.

주체사상도 ‘숭배’가 종교와 일정한 관련이 있다는 것을 부정하지는 않습니다. 다만, ‘숭배’가 ‘종교’와만 배타적으로 연관되어 있다고는 보지 않습니다. 전통종교 이전에도 숭배는 존재하였으며, 전통종교 이후에도 숭배는 존재한다고 봅니다. 

주체사상이 말하는 ‘자주성’은 사회적 존재인 사람의 본질적 속성 중 하나입니다. ‘자주성’은 사람이 자기 운명의 주인이 되려는 속성입니다. 따라서 사람은 필연적으로 자기 운명의 구원 방도를 밝혀주는 ‘구원자’를 찾게 됩니다.

‘구원자’는 자기 운명의 주인이 되지 못한 사람, 인민대중을 노예의 처지에서 건져내어 자기 운명의 주인이 되도록 구해주는 존재입니다. 사람, 인민대중은 자기 운명의 구원자를 생명의 은인으로 고백하고 높이 받들어 모시게 됩니다. 이러한 행동방식이 ‘숭배’입니다. 

맑스주의는 ‘숭배’를 철학의 전면에 제기하지 못하였습니다. ‘철학의 사명’이 ‘사람의 운명문제 해결’에 있다고 정식화하지 못한 까닭에 ‘구원자’에 대한 철학적 탐구를 이어갈 이유도 겨를도 없었기 때문입니다. 사람 운명의 ‘구원자’에 대한 ‘숭배’ 문제의 해명은 철학의 사명이 ‘구원’에 있다고 정식화한 주체사상의 몫으로 남게 되었습니다.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에는 백과사전을 편찬하는 ‘백과사전출판사’가 있습니다. 백과사전출판사는 조선로동당의 지도를 받는 기관입니다. 조선로동당은 ‘온 사회의 주체사상화’라는 목표를 잣대로 하여 출판물들의 내용을 지도합니다. 

백과사전출판사에서 가장 최근에 출판한 백과사전은 ‘조선대백과사전’입니다. 조선대백과사전 제15권은 2000년에 출판되었습니다. 조선대백과사전 제15권에는 ‘숭배’라는 표제어가 실려 있습니다.

조선대백과사전은 ‘숭배’라는 표제어에 대해, “믿고 따르는 마음으로부터 높이 우러러 존경하고 떠받드는 행동방식. 자기 운명을 생사기로에서 구원해준 은인을 절대적으로 믿고 몸과 마음을 다바쳐 받들고 따르는 것을 말한다. 숭배는 은인에게 진정으로 완전히 매혹되었을 때 생긴다. 그 어떤 도덕적 의무감이나 론리적인 사고의 귀결로서는 결코 숭배가 나올 수 없다”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숭배’는 ‘운명의 구원자’를 대하는 ‘행동방식’이라 봅니다. 

그리스도교는 ‘숭배’를 ‘구원자’에게만 바치는 것으로 가르칩니다. ‘구원자’가 아닌 대상을 숭배하는 것은 ‘우상숭배’라고 하여 금지되어 있습니다. ‘구원자를 절대적으로 믿고 몸과 마음을 다바쳐 받들고 따르는 것’이 ‘숭배’라는 주체사상의 설명은 “마음을 다 기울이고 정성을 다 바치고 힘을 다 쏟아 너의 하느님 야훼를 사랑하여라”라는 신명기 6장 5절의 말씀과 비슷합니다. 요컨대, ‘숭배’의 맥락과 대상은 다를지라도 그 무늬와 결은 유사하다는 것입니다.

조선대백과사전은 역사적으로 존재했던 비과학적인 숭배의 형태로 ‘자연 숭배’, ‘신 숭배’, ‘개인 숭배’를 열거하고 있습니다. 사전의 분류에 의하면 그리스도교를 비롯한 전통종교의 숭배는 ‘신 숭배’에 해당합니다. ‘자연 숭배’는 전통종교의 발생 이전에 존재했던 숭배의 한 형태입니다. 

조선대백과사전은 이상에서 열거한 모든 숭배는 ‘비과학적’인 것이며, 진정으로 ‘과학적’인 숭배는 바로 ‘수령 숭배’라고 진리주장을 하고 있습니다. 이는 곧 주체사상이 ‘수령 숭배’만을 과학적인 진리라고 주장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신앙세계에서 가장 깊숙한 ‘지성소’에는 ‘수령 숭배’가 놓여 있습니다.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신앙세계’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수령 숭배’를 이해해야 합니다.   

조선대백과사전은 ‘가장 과학적이며 숭고한 숭배’는 다름 아닌 ‘위대한 수령에 대한 혁명전사들, 인민대중의 숭배’라고 설명합니다. 그 이유에 대해서는 ‘수령’이 ‘전사들에게 고귀한 사회정치적 생명을 안겨주고 자주적이며 창조적인 생활을 마련해주며 인민대중의 운명을 구원해주고 영원히 보살펴주는 위대한 은인이기 때문’이라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영원한 ‘생명’을 부여하고, 풍성한 ‘생활’을 마련해주고, 운명을 ‘구원’해주는 은인이 ‘수령’이므로, 숭배받기에 합당한 존재라는 고백입니다. 

조선대백과사전은 ‘수령에 대한 인민대중의 숭배’에 대해 ‘수령의 사상의 위대성과 령도의 현명성, 고매한 덕성의 뜨거움에 대한 완전한 매혹으로부터 흘러나오는 가장 진실하고 깨끗하며 확고한 숭배’라고 부연하고 있습니다. ‘숭배’는 ‘완전한 매혹’으로부터 흘러나온다는 것입니다. ‘완전한 매혹’이라는 개념은 주체사상이 ‘숭배’를 설명할 때 구사하는 독특한 개념입니다. 

이와 유사한 설명을 그리스도교 신학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프리드리히 슐라이어마허와 루돌프 오토는 그리스도교 철학자이자 신학자입니다. 슐라이어마허는 종교의 본질을 ‘절대적인 의존의 감정’에서 찾았고, 루돌프 오토는 거룩한 것의 속성을 ‘두렵고도 동시에 매혹적인 신비’에서 찾았습니다.

주체사상이 말하는 ‘완전한 매혹’은 ‘절대적이고 완전하다’는 점에서는 슐라이어마허를, ‘매혹적이다’는 점에서는 오토를 닮았습니다. 서로의 정의가 닮아 있는 까닭은 모두가 동일한 개념, 즉 ‘숭배’를 설명하려고 하였기 때문입니다. 이들의 정의에는 일정한 차이도 존재합니다. 

주체사상이 말하는 ‘숭배’의 원천이 되는 ‘완전한 매혹’에는 슐라이어마허가 말하는 ‘의존’이 없고, 오토가 말하는 ‘두려움’이 없습니다. 이는 주체사상과 그리스도교의 숭배 대상이 서로 다르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교의 신학자들인 슐라이어마허와 오토는 숭배의 대상인 ‘신’을 ‘형이상학적인 절대 타자’로 고백했습니다. 쉽게 말하여 ‘하늘 저 편에 계신, 나로서는 감히 범접하지 못할 분’으로 고백했다는 것입니다. 그런 분은 ‘두려운’ 마음을 가지고 전적으로 ‘의존’해야 할 분입니다. 

이와는 달리, 주체사상은 숭배의 대상을 ‘수령’으로 고백합니다. 인민대중에게 있어 ‘수령’은 ‘형이상학적인 절대 타자’가 아니라, 인민대중과 ‘혼연일체’를 이루어 운명의 주인이 되도록 이끄는 존재이기에 ‘상호 의존’적인 존재이며, ‘친밀한’ 존재입니다. 따라서 주체사상의 ‘완전한 매혹’에는 ‘절대 의존’도, ‘두려움’도 없습니다. 

주체사상에 의하면 인민대중이 수령을 숭배하는 한편, 수령은 인민대중을 하늘로 삼고 인민대중을 섬기며 인민대중을 위하여 온 몸과 마음을 다 바칩니다. 수령이 인민대중을 하늘로 삼고 섬기는 것을 ‘이민위천’이라고 하며, 수령이 인민대중을 위하여 온 몸과 마음을 다 바치는 것을 ‘위민헌신’이라고 합니다. 한마디로 말하여 수령은 인민대중을 숭배합니다. 

수령과 인민대중은 삼위일체, 혼연일체의 관계를 맺고 있기에 숭배에 있어서도 서로 섬기는 상호 숭배의 관계에 놓여 있습니다. 그리스도교의 삼위일체는 역사 바깥에서 역사를 주관하며, 사회 바깥에서 사회를 심판하는 절대 타자로 고백되기에, 숭배의 방향은 사람에서 신으로, 땅에서 하늘로 향합니다. 주체사상의 삼위일체는 수령, 당, 인민대중이 사회역사 내부에서 현존하는 운명공동체, 하나의 생명줄로 이어져 있는 ‘사회정치적생명체’를 이루고 있다고 고백되기에, 숭배의 방향은 수령과 인민대중이 서로 섬기면서 수령의 주위를 인민대중이 둘러싸고 있는 동심원을 이루고 있습니다. 

한마디로 말하여, 주체사상이 말하는 ‘숭배’는 ‘인민대중의 수령숭배’와 ‘수령의 인민대중숭배’가 혼연일체를 이루고 있다는 점에서 ‘상호 숭배’이며, 사회역사 속에서 현존하는 운명공동체 내부에서 일어난다는 점에서 ‘내재적 숭배’이며, 숭배의 역동이 일어나는 과정이 관념 세계가 아닌 현실 세계의 운명개척 과정이라는 점에서 ‘과학적 숭배’라고 평가할 수 있습니다.

정대일 박사(그리스도교-주체사상대화연구소 연구실장  webmaster@ecumeni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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