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한국교회는 ‘교회개혁기념 주일’을 맞아 차별금지법과 동성애를 반대하기 위해 광화문 연합예배를 계획하고, 2백만 명을 동원하고자 혈안이 되어 있다. 찬양과 큰 기도회로 구성된 이 연합예배에 참석해서, 동성애로 붕괴될 수 있는 가정을 보호하고, 희망이 없어 보이는 저출산 국가의 미래를 바르게 세울 것을 선동하고 있다.

연합예배에 참석하는 사람들은 바알에게 무릎을 꿇지 않은 신앙인이지만, 참석하지 않는 사람들은 바알에게 무릎을 꿇는 비신앙인인 것처럼 이분법적으로 나누는 분위기마저 띄고 있다. 긴박감을 조성하는 홍보영상의 음악을 들어 보면, 연합집회에 참석하지 않으면 안 되겠다 할 정도의 압박감을 주고 있다.

1517년 시작된 교회개혁은 성베드로 성당 건축을 위해 면죄부를 판매함으로 산자는 물론이고 죽은 자까지 구원을 보장하는 황금만능의 교회를 반대하는 것에서 출발했다. 당시 교회는 유전무죄, 무전유죄의 상황을 연출했던 셈이다. 돈이 없으면 구원을 받는 것이 어려운 지경이 되었다. 죽음의 문제를 돈으로 해결할 수 있다고 광고한 것이었다.

오늘 한국교회는 돈을 가진 자, 권력을 가진 자, 세상의 명예를 가진 자를 존중하고, 그렇지 못한 사람들을 홀대하고 있다. 권사나 안수집사, 장로로 임직하기 위해서는 공시가격처럼 일정액의 헌금을 내도록 강요하고 있다. 가난한 자를 위한 십일조의 본래 목적은 간과한 채로, ‘돈 놓고 돈 먹기’식의 샤머니즘적 구복 신앙을 부추기고 있다. 10월 27일 예정된 한국교회 연합예배에서도 200만 명의 참석과 200억 원의 사회기부를 위한 모금이 강조되는 현실을 보면, 교회개혁 당시의 상황과 별로 다를 바 없어 보인다.

교회개혁은 성경을 독점하고 자기들만 해석의 주체로 행세한 교권주의자들을 반대하는 과정이었다. 당시 교회는 라틴어로 번역된 성경을 공식적으로 사용했고, 성경을 읽을 수 있었던 사람은 라틴어를 배운 사제나 소수의 식자(識者)들 말고는 어려웠다. 더욱이 성경을 해석하고 강론할 수 있는 것은 사제들의 배타적인 권한이었기에 성경을 직접 읽고 하나님의 뜻을 이성의 바탕 위에 제대로 이해한 선각자들의 새로운 해석을 교회에 대한 이단적 도전이라고 몰아붙이며 박해했다.

오늘 한국교회에서는 근본주의적 입장 위에 성경을 문자적으로 해석하는 가부장적인 목회자들이 강단을 점령하고 있다. 한국교회의 60% 이상을 차지하는 여성을 대변할 여성 목회자는 배제되고 있다. 남성 목회자들은 자신을 하나님의 대리자로 포장하고, 성경의 가르침과 상관없이 자기 목적을 위해 교인들에게 지시해도 되는 것처럼 행동하고 있다. 그러니 주일인데도, 연합예배라는 명목으로 교인들을 동원해 정치집회를 주도하는 것이 아닌가.

또한 교회개혁은 고해나 금욕과 같은 외형적인 종교 행위가 구원을 이끄는 것이 아니라, 믿음과 은혜가 구원을 이끈다고 강조하며 교회 관행을 거부했다. 교회개혁자 마틴 루터는 당시 교회가 가르친 금욕과 고행을 적극 실천해 보았지만, 구원의 확신과 성숙한 신앙에 이르기는커녕 절망만을 경험했고, 드디어 믿음에 의한 의로움과 하나님의 무조건적인 은혜만이 구원을 가능하게 한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그렇다고 루터가 사랑의 실천적인 삶을 외면했던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그는 죄에서 자유로워진 신도들이 이웃을 사랑으로 섬기는 자발적인 종으로서의 자유를 역설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오늘 한국교회는 사회적 약자들을 위로하고 격려하며 대변하기는커녕 오히려 그들을 차별하고 정죄하는 모습으로 하나님의 무한한 은혜를 왜곡하고 있으며, 사랑의 행함이 동반되지 않는 믿음만을 강조하고 있을 뿐이다.

특별히 교회개혁은 인간 삶의 목적이 공적을 쌓아 자신을 자랑하는 데 있지 않고, 오직 하나님께만 영광을 돌리는 데 있음을 천명한 결단이었다. 인간의 모든 행위나 성취는 하나님의 은혜로부터 전적으로 초래된다는 것이 기독교 신앙이다. 인간은 사실상 자신을 높이거나 자랑할 만한 것이 전혀 없다. 인간의 존재 의미는 자신에게서 비롯되지 않고, 자신에 대한 하나님의 뜻과 기대치에서 비롯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인간의 삶은 창조주로서 인간을 주관하시는 하나님을 중심으로 구성되어야지, 인간을 중심으로 하나님을 도구화하는 주객전도가 되어서는 안 된다. 그러나 오늘 한국교회의 대형교회 목사들과 대형교회를 꿈꾸는 적지 않은 소형교회 목사들에게 하나님은 안중에 없고, 그들은 자신이 교회의 주인인 양, 자신을 높이고 교회를 자신의 업적이나 소유물처럼 여기며, 교인들에게는 하나님 대하듯이 자신을 대접하라고 요구하고 있다.

이처럼 오늘의 한국교회는 1517년 교회개혁 당시의 부패한 교회가 자행했던 동일한 오류를 반복하고 있다. 이제 한국교회는 교회개혁기념 주일을 맞아 더 이상 세속적 권력과 재물에 휘둘리지 말아야 할 것이고, 사회적 약자들에 대한 차별을 거부할 뿐 아니라, 그들을 사랑하고 배려하며 환대하는 일에 앞장서야 할 것이다.

교회 지도자들은 자신의 정치적 욕망을 위한 정치집회에 신도들을 동원하는 일이나, 세속 권력과 결탁해서 부정부패 불의한 권력자들을 지지하고 축복하는 일을 멈추어야 할 것이다. 또한 한국교회는 교회개혁의 근본 원리로 돌아가, 스스로 정화하고 개혁하며, 세상의 소금과 빛이 되는 일에 충실해야 할 것이다. 교회 지도자들은 제사장으로서 절망하는 이들을 위로하는 일과 예언자로서 부정부패 불의한 권력자들을 비판하는 일, 왕으로서 사회적인 약자들을 섬기는 일을 균형있게 감당해야 할 것이다.

정종훈 교수(연세대학교)  webmaster@ecumeni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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