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Juan de Flandes, 「Temptation of Christ in the Wilderness」 (1500) ⓒWikipedia

우리는 성서에서 광야가 그저 텅 비고 아득한 곳, 정적만 가득히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던 그런 곳이 아님을 알고 있습니다. 그곳은 오히려 희망과 미래가 피어나고, 새 출발이, 새 역사가 일어나는 곳이었습니다. 그곳에서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만나 주셨고, 그 억눌리던 자들을 이끌어내 그들의 하나님이 되어 주시고 그들과 함께 새로운 사회를 만들어 가셨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광야는 하나님 편에서나 이스라엘 편에서나 좋은 기억만 있던 곳은 아닙니다. 오늘 본문에서처럼 하나님은 광야의 모든 길에서 부모가 자식을 품에 안고 돌보듯 이스라엘에게 그리하셨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에게 광야는 불확실성과 불평거리고 가득해 보였고, 크고 작은 위기에 직면해 불평하고 원망할 때마다 하나님이 그들을 인도하시고 그들의 필요를 채워 주셨지만 그들은 하나님을 전적으로 신뢰하지 못합니다. 그런 이스라엘을 하나님은 언제까지나 용납할 수 없었고, 그들에게 분노하시거나 벌을 내리시기도 합니다.

가나안 땅을 정탐한 후에 이스라엘의 불평과 불신은 하나님의 계획 자체를 의심하고, 하나님이 자신들을 죽이려고 광야로 이끌어냈다는 생각에까지 이르게 합니다. 높은 성벽과 철기문명을 가진 가나안 사람들에게 맞설 만한 것이 그들에게는 전혀 없었기 때문에, 두려움이 앞서고 원망이 터져 나오는 것은 이해 못할 일은 아닙니다. 그래서 모세는 두려워하는 이스라엘을 달래고 용기를 북돋아 주기 위해 지금까지 그들의 하나님 경험에 호소합니다.

그동안 그래 왔듯이 하나님께서 그들을 대신해 싸우실 것이므로 무서워하지 말라고 설득합니다. 그동안의 하나님 경험이 주로 자연 환경에 따른 먹고 마시는 문제와 관련되었기 때문에 지금 새로운 군사적 위기 앞에서는 그 경험이 더 이상 유효하지 않다고 생각했을까요? 이스라엘은 끝내 두려움과 불신을 극복하지 못합니다. 그 결과 하나님은 분노하시며 이 출애굽 세대를 그의 계획에서 완전히 배제하십니다. 하나님을 신뢰하며 가나안 정복을 가능하게 여긴 갈렙과 여호수아만이 그 땅을 밟으리라는 약속을 받습니다.

갈렙과 여호수아의 하나님 경험이 다른 사람들의 그것과 다르지는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 경험 속에서 그들은 하나님이 어떤 분인지 깨닫고 그의 계획과 뜻에 자신을 일치시킬 수 있었으리라 생각합니다. 그렇기에 새로운 위기와 도전 속에서도 두려움과 불신을 이기고 하나님의 뜻을 위해 그들 자신을 내던질 수 있었을 것입니다. 하나님은 그런 그들을 야훼를 온전히 따르는 자라고 부르십니다.

광야 여정은 그런 사람을 키우는 과정입니다. 거기서 일어난 온갖 사건에서 보듯이 하나님이 함께 계신다고 해서 언제나 순탄하고 평안할 수는 없지만, 이를 인정하며 우리의 기대를 내려놓고 하나님을 기다릴 수 있도록 자신을 단련하는 과정입니다. 어렵고 고통스러울 때도 적지 않겠지만, 정의와 공의의 꿈으로 가득한 하나님과 마음을 같이하며 그에게서 기쁨과 위로를 얻으며 이겨낼 수 있을 것입니다.

우리는 또한 예수에게서 그렇게 살아갈 희망과 능력을 입을 수 있습니다. 우리는 이 예수 안에서, 자기 자신을 위해 하나님을 이용하라는 유혹을 거부하고 하나님의 뜻을 위해 자신을 완전히 내던지는 한 인간을 봅니다.

공적 삶을 시작하기 전 요한에게 세례를 받으러 나오신 예수는 하나님의 기뻐하는 목소리를 듣고 하나님의 아들로 선언됩니다. 여기에 뒤따르는 것은 우리가 기대할 만한 것과 달리 예수의 광야 생활과 시험입니다. 게다가 그에게 임한 성령에 이끌려서 악마에게 받는 시험입니다.

굶주린 예수에게 악마는 돌로 빵을 만들어 보라고 시험합니다. 이스라엘은 광야에서 굶주릴 때 하나님을 원망하고 불평했지만, 그와 달리 예수께서는 그가 돌로 빵을 만들 능력을 가졌을 수 있으나 악마의 요구를 거부하고, 이스라엘이 광야 여정에서 정말 배워야만 했던 그 말씀으로 대응하십니다.

이 시험이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로서 자신을 단련시키고 하나님의 선언을 확인하는 과정이라면, 진정한 하나님의 아들이란 이적을 행하고 하나님께 어떤 요구를 할 권리를 가진 것이 아니라, 오히려 전적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따르며 자기를 내려놓고 모든 것을 하나님께 맡기는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또한 여기서 우리는 진정한 인간됨을 볼 수 있을 것입니다.

요한은 자신에게 세례를 받으러 나오시는 예수를 보고 당혹스러워하지만, 예수께서는 그렇게 함으로써 우리가 “모든 의”를 이루는 것이 옳다며 세례를 허락하라고 말씀하십니다. 이후 예수의 길은 이 모든 의를 이루는 길입니다. 그 길은 마태복음 6,33(“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에서 예수께서 명령하시듯 우리가 가야 할 길이기도 합니다.

연약한 우리이지만, 우리와 같은 연약함 속에서 진정한 인간됨으로 하나님의 나라와 그의 정의에 자신을 복종시킨 예수에게서 우리의 희망을 발견할 수 있을 것입니다. 예수와 연합하며 우리 서로 연대하는 가운데 우리의 길을 끝까지 갈 수 있을 것이라 믿습니다. 예수의 시작과 예수의 삶에서 다시 우리의 길을 찾고 의의 열매를 풍성히 거둘 수 있기를 간절히 빕니다. 하나님께서 시작하신 정의와 공의의 꿈을 쫓기를 포기하지 않고 하나님과 함께 그 길을 끝까지 갈 수 있기를 빕니다.

이경훈 목사(백합교회)  webmaster@ecumeni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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