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주간 연이어 성서 가운데 그리스도교 신앙을 형성하는 데서 요체가 되는 말씀을 마주하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 말씀 또한 그리스도교 신앙의 요체를 형성한 가장 명료한 말씀 가운데 하나입니다.

레위기는 미묘한 책 가운데 하나입니다. 한편으로는 복잡한 제사 규정과 더불어 각종 금기사항을 포함하고 있어서 현대적 관념으로는 도무지 이해하기 쉽지 않습니다. 그러나 또 다른 한편으로는 이웃과 더불어 살아가는 삶의 현실 가운데서 지켜야 할 기본 법도를 명쾌하게 제시하고 있어 그 대목을 접할 때는 어렵지 않게 이해할 수 있습니다. 본문 말씀은 그 가운데 하나입니다.

요컨대 레위기는 종교적 제의와 관련된 규정과 윤리적 규범을 함께 포함하고 있습니다. 레위기는 전반부의 제의적 규정과 후반부의 윤리적 규정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단순하게 말하면 제사장과 같이 선택받은 거룩한 백성으로서 지켜야 할 도리를 말하고 있는 것이 레위기의 기본 취지입니다.

계약법전(출애 20:22~23:19), 신명기법전(신명 12~26장)과 더불어 또 하나 중요한 법전으로서 성결법전(레위 17~26장)을 포함하고 있는 레위기는 이스라엘 백성이 경험한 역사적 현실을 배경으로 하는 중요한 통찰을 담고 있습니다.

레위기는 현재 성서의 구성상 출애굽 사건과 가나안 정착 사이의 여정에서, 계약법전에 이어 전해 받은 하나님의 말씀으로 배치되어 있지만 사실은 세 법전 가운데 가장 늦은 시기에 형성된 것으로 여겨집니다. 계약법전이 정착 시대 초기 상황을 반영하고, 신명기법전이 왕국의 번영기를 반영한다면, 성결법전은 포로기 이후의 상황을 반영하고 있습니다. 구약성서의 전반적 내용은 출애굽이라는 극적인 사건의 경험을 바탕으로 하고 있습니다.

여기에 더하여 레위기는 또 한 차례의 극적인 역사적 경험, 곧 자신의 정체성이 완전히 해체되고 부정당한 역사적 경험을 반영합니다. 나라가 멸망에 이르고 신앙의 정체성을 드러낼 수 있는 가시적인 제의마저 온전히 준수될 수 없었던 조건 가운데서 레위기는 그 정체성을 형성하기 위한 문제에 집중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그 관심을 드러낸 것이 제의 규정과 각종 금기사항입니다.

하지만 그것은 단지 형식적인 규정이 아니었습니다. 생명과 우주에 관한 세계관을 그 바탕에 깔고 있었으며 그것을 제의적으로 반영하는 뜻을 지니고 있습니다. 물론 그것이 오늘의 과학적 진실과 부합하느냐 하는 것은 별개입니다. 당대의 관념을 반영한 것입니다.

여기에서 중요한 하나의 원칙이 정·부정의 법칙입니다. 정결한 것과 부정한 것을 구분하는 것입니다. 부정한 것을 배제하고 정한 것을 받아들여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훗날 정결법의 근거가 되어 사람들을 옭아매는 족쇄 역할을 하게 되었지만, 그것의 본래 뜻은 생명에 대한 경외에 있었습니다.

온전한 생명을 보존하기 위해서 해야 할 일과 해서는 안 될 일을 구분한 것입니다. 삶과 죽음을 동반한 생명의 질서 안에서 삶을 위한 길이 어디에 있는지를 일깨우는 취지를 지닌 것입니다. 이어지는 성결법전, 곧 윤리적 규정은 그 정신을 일상의 삶 가운데서 구체화하는 방도에 관한 것입니다.

그 미묘한 성격만큼 레위기는 상반되는 이중의 영향을 끼쳐 왔습니다. 한편으로는 이른바 정결법 개념의 기원으로서 엄격한 율법주의를 형성하는 데 결정적 역할을 해 왔습니다. 그러나 동시에 “네 이웃을 사랑하라”라는 말씀이 함축하듯 너무나 분명한 타자의 윤리를 일깨워주는 기원이 되어 왔습니다.

그리스도교가 계승한 것은 어떤 것일까요? 두말할 것 없이, 종교적 제의 전통과 율법주의가 아니라 이웃 사랑의 보편적 윤리입니다. 우리는 착한 사마리아 사람 이야기(누가 10:25~34)를 통해 이웃 사랑의 보편적 윤리를 형성하는 데 레위기가 얼마나 결정적 역할을 하였는지 알 수 있습니다.

한 율법학자가 영생의 길을 묻자 예수님은 율법에 어떻게 기록되어 있는지 반문합니다. “네 마음을 다하고 네 목숨을 다하고 네 힘을 다하고 네 뜻을 다하여, 주 너희 하나님을 사랑하여라.”(신명 6:5) “네 이웃을 네 몸같이 사랑하여라.”(레위 19:18) 율법학자의 그 명답에 예수님께서는 그대로 하라고 이릅니다.

그러자 율법학자가 묻습니다. “내 이웃이 누구입니까?” 바로 그 물음에 대한 답이 착한 사마리아 사람 이야기입니다. 이 이야기는 강도 만난 사람을 돌보지 않은 제사장과 레위 사람, 그리고 그를 돌본 사마리아 사람을 대비합니다.

이 이야기는 당대 유대인들의 이웃에 대한 통념을 무너뜨리는 이야기이자 동시에 진정한 의미에서 보편적 사랑의 종교로서 그리스도교의 탄생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예수님께서 그 핵심적 근거로 삼은 것이 바로 레위기의 말씀입니다. 그것은 나아가 원수 사랑에 대한 가르침으로 이어집니다.

이 근거는 사도행전과 이후 사도들의 이야기에서 계속 되풀이됩니다. 그뿐 아니라 오늘날 하나님 나라의 원형으로 여겨지는 희년의 정신(레위 25:8~13)도 레위기에 근거합니다. 생명에 대한 경외를 밑바탕으로 하는 레위기의 정신은 바로 오늘 보편적 사랑의 종교로서 그리스도교 신앙의 핵심적 근거가 된 것입니다.

본문 말씀은 그 정신을 일상의 삶 가운데서 구체화한 생활률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17~22장에 이르기까지 계속 이어지는 내용의 일부입니다. 19장 첫머리는 거룩한 백성의 길을 확인합니다. 하나님께서 거룩하니 그 백성도 거룩해야 한다는 대전제입니다. 19장은 전반적으로 십계명의 정신을 함축하면서 보다 구체화한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많은 내용을 포함하지만, 오늘 우리가 직접 읽은 본문에 한정해 그 내용을 확인합니다.

이 규정들은 법률과 도덕률의 경계를 넘나듭니다. 그것은 모호성을 뜻하는 것이 아니라 근본 동기와 행위의 결과를 동시에 함축하는 성서 율법의 성격을 나타냅니다. 이웃을 억누르거나 착취해서는 안 됩니다. 구체적으로 노동자의 임금을 체불해서는 안 됩니다(13). 이웃과의 기본적인 관계에 관한 규정이자 동시에 일하는 사람의 정당한 권리 보장에 관한 규정입니다.

▲ Balthasar van Cortbemde, 「Parable of the Good Samaritan」 (1647) ⓒWikipedia

듣지 못하는 사람을 저주해서는 안 되고 보지 못하는 사람을 방해해서는 안 됩니다(14). 장애를 지닌 이들에 대한 편견과 차별이 있어서는 안 된다는 말씀입니다. 재판은 공정해야 합니다(15). 편향적이거나 임의적이어서는 안 됩니다. 절차상의 공정성은 엄격히 지켜져야 한다는 의미입니다.

남을 헐뜯는 이야기를 해서는 안 되고 이웃의 생명을 위태롭게 해가면서 이익을 보려해서는 안 됩니다(16). 사람의 관계는 신뢰와 존중을 바탕으로 해야 한다는 것을 뜻하며, 이용 대상으로 삼아서는 안 된다는 것을 말합니다. 특별히 이웃의 생명을 위태롭게 하면서까지 이익을 보려 해서는 안된다는 말씀은 오늘 우리에게 더욱 절실하게 다가옵니다. 노동권의 온전한 보장과 중대재해처벌법의 취지가 모두 이 정신에 부합니다.

동족을 미워해서는 안 되고 이웃의 잘못을 일깨워 바로 잡도록 해야 합니다(17). 공동체를 형성하는 데 신뢰를 바탕으로 해야 할 뿐 아니라 공동의 책임을 늘 의식해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분열과 갈등을 부추기는 세력을 향하여 질책하는 것은 이 말씀의 정신을 따른 것입니다.

한 백성끼리 앙심을 품고 원수 갚는 일을 해서는 안 됩니다. “너의 이웃을 네 몸처럼 사랑하여라.”(18) 보편적 사랑의 윤리 대강령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너희도 남을 대접하라”(마태 7:12)고 말씀하셨습니다. 타인을 나를 아끼고 존중하듯 똑같이 여기라는 것입니다.

그 사랑의 보편 윤리는 이방인에게도 그대로 적용되어야 합니다. “외국 사람이 나그네가 되어 너희의 땅에서 너희와 함께 살 때에, 너희는 그를 억압해서는 안 된다. 너희와 함께 사는 그 외국인 나그네를 너희의 본토인처럼 여기고, 그를 너희의 몸과 같이 사랑하여라. 너희도 이집트 땅에 살 때에는, 외국인 나그네 신세였다. 내가 주 너희의 하나님이다.”(33~34).

오늘 한국 사회에 250여만 명의 외국인이 함께하고 있고, 그 가운데 40여만 명이 미등록 외국인으로 함께하고 있는 현실에서 이 말씀 역시 중요한 의미를 지니고 있습니다. 지난 주간 한국기독교사회문제연구원 주최 에큐메니칼 포럼 “한국사회 속의 타자, 이주민”을 주제로 함께 토론할 기회가 있었습니다. 법조인은 미등록 외국인을 줄일 수 있는 효과적인 법적 대처의 필요성을 말했지만, 목회자들은 보편적 인권의 관점에서 ‘사면’과 더불어 외국인을 생활인으로 동등하게 받아들이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는 것을 역설하며 대안을 찾고자 하였습니다.

다시 착한 사마리아 사람 이야기를 환기합니다. 율법학자가 던진 물음입니다. “내 이웃이 누구입니까?” 유대인들에게 이 물음은 중요했습니다. 그 이웃이 동족의 범위 내에 있는 것인지 아니면 그 범위를 벗어나는 것인지 하는 물음입니다. 오랫동안 유대인들에게 그 범위가 선민의 범위를 넘어선다고 생각한 경우는 드물었습니다.

사실 ‘이웃’이라는 말 자체가 그 미묘한 의미를 동시에 함축하고 있습니다. 한편으로 나와 가까운 사람을 뜻하는 동시에 또 다른 한편으로는 나와는 다른 타인이라는 의미를 함축하고 있습니다. 레위기의 본문에도 그 긴장이 서려 있습니다.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는 이웃이 18절의 말씀에서는 동족의 범위 내에 있는 것처럼 보인 반면 34절의 말씀에서는 명시적으로 외국인이라고 되어 있어 그 범위를 벗어납니다.

착한 사마리아 사람 이야기에서 예수님께서는 그 긴장을 해소해 버립니다. 그야말로 동족으로 여기지 않고 따라서 이웃의 범주에 포함되지 않는 주인공을 진정한 이웃으로 선포합니다. 이로써 보편적인 사랑의 종교로서 그리스도교 신앙이 형성된 것입니다.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여라.” 이 말씀은 오늘 그리스도인에게 너무 익숙하기에 그 말씀이 갖는 충격을 쉽사리 느끼지 못합니다. 그러나 사실 이웃은 그저 나와 가까운 어떤 사람이라는 통념에 사로잡혀 있는 사람들에게 그 범위를 넘어설 수 있다는 사실을 처음 직감할 경우 그것은 충격적일 수밖에 없습니다.

프로이트는 그 사태를 두고 이렇게 말했습니다. “우리가 마치 이러한 요구를 난생 처음 듣는 것처럼, 순진하고 소박한 태도로 생각해보자. 그러면 우리는 놀랍거나 당황스러운 느낌을 억누를 수 없을 것이다.” “이웃을 사랑하라.” 그것도 “네 몸과 같이!” 그것이 전적으로 낯선 타인에게 해당한다고 하면 그렇게 당황스러운 것이 당연하지 않겠습니까?

“이웃을 사랑하라.” 그것도 “네 몸과 같이!” 사랑할 만한 사람이 있고 그렇지 않은 사람이 있다고 생각하는 통념에서는 당혹스럽습니다. 그러나 본문 말씀은 그 당혹스러운 사태를 넘어, 곧 자기 세계를 넘어 하나님께서 인도하시는 세계로 나아갈 것을 일깨워줍니다.

그렇게 전적으로 낯선 타인마저도 자기 자신을 사랑하듯 대할 수 있을 때 하나님의 생명 질서가 구현된다는 것을 뜻합니다. 그것이야말로 거룩한 하나님이 거룩한 백성 가운데 현존하는 징표가 된다는 뜻입니다.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여라.” 이 말씀은 레위기의 한가운데 박힌 가장 값진 보석이요, 그리스도교 신앙의 정수입니다.

그 핵심을 비켜 가며 임의로 선택한 성서의 자구를 따라 불변의 규율로 삼고자 한다면 성서의 본뜻을 제대로 이해한 것이 아닙니다. 한국교회의 현실입니다. 레위기 17~20장에 이르기까지 수없이 많은 생활률은 주목하지 않고 특정한 성행위를 문제시하는 딱 두 구절(18:22; 20:13)만을 꼬집어 그것을 근거로 특정한 성적지향을 금기시하는 것은 정당하지 않습니다. 그것은 당대의 관념에서 특정한 성행위를 문제시하는 것일 뿐 성적지향과는 상관없습니다.

더 나아가 성서에 3,000번 이상 가난의 문제에 대해 언급하고 있는 것은 외면한 채 해석상 논란의 여지가 많은 네 군데(레위 18:22; 20:13, 로마 1:26~27; 고전 6:9) 특정 성행위를 문제시하는 구절을 두고 성소수자를 정죄하는 근거로 삼는 것 역시 정당하지 않습니다. 성서의 대의를 부정하고 현저히 균형을 잃어버린 해석일 뿐입니다.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여라.” 이 말씀은 끊임없이 우리를 타인 앞에 내세우며, 그것은 동시에 끊임없이 하나님 앞에 서도록 요청하고 있습니다. 그 요청은 우리의 통념을 넘어 진정한 생명의 길을 찾으라고 촉구합니다. 내 앞에 다가오는 타인의 얼굴을 어떻게 맞이할 수 있느냐, 바로 거기에서 생명의 길이 열립니다. 우리가 그 길을 회피하지 않고 정진하기를 바랍니다.

최형묵 목사(천안살림교회)  chm1893@cho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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