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서양 문명은 어떻게 몰락하는가?

영국 BBC의 ‘서양 문명은 어떻게 몰락하는가(How Western Civilization could collapse)’라는 기사가 있습니다(2017. 3.18). 이 기사는 ‘개인의 자유’, ‘사회적 관용’, ‘다당제 민주주의’ 등을 가치 기반으로 삼은 서양 문명이 두 가지 이유로 위기에 처할 수 있다고 주장합니다. 한 가지는 기후변화이고, 다른 한 가지는 빈부격차의 확대입니다. 『문명의 붕괴: 과거의 위대했던 문명은 왜 몰락했는가』(김영사, 2016)에서 재러드 다이아몬드(Jared M. Diamond)도 문명 붕괴에 관여하는 다섯 가지의 요인을 제시하는데, 곧 ‘기후변화’, ‘적대적인 이웃’, ‘주요 무역 상대자의 몰락’, ‘환경 문제’, ‘환경 문제에 대한 적응 실패’가 그것입니다. 이렇게 몰락의 이유는 비슷합니다.

먼저, 환경 위기는 너무나 많이 논의되는 것이라 논외로 하고(다음 주부터 시작되는 창조절기의 주제가 되기도 합니다만), 이 시간 우리가 살펴볼 것은 경제의 문제, 곧 분배의 문제에서 멸망입니다. BBC나 재러드 다이아몬든 교수 역시, 역사적으로 엘리트 그룹이 자신들의 부의 증가에만 집중하고 대다수의 생활에 무관심하게 된다면 그런 체제는 결국 소멸하게 된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가령 BBC는 미국과 영국에서(저는 대한민국을 포함합니다만) 빈부격차 추세가 지금처럼 계속될 경우, 2050년쯤에는 중산층이 줄어들고, 국민이 부유-빈곤 두 부분으로 분열되면 서양 문명이 몰락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결국, 빈부격차 확대는 국내뿐 아니라, 세계적으로도 함께 일어나는 현상이라는 것입니다.

놀라지 마세요. 현재 미국에서 가장 부유한 10명의 재산을 합친 금액은 전 세계 인구의 하위 50%인 36억 명의 재산을 합친 것을 능가하고 있다고 합니다. 더 이상 성장은 중요하지 않죠? 제대로 된 분배가 한 국가 내를 넘어, 국제적으로 이루어져야 합니다. 따라서 하나님 나라를 사모하는 모든 그리스도인에게 정의로운 성령의 음성은 이렇게 우리를 부릅니다. “만국의 그리스도인이여! 단결하라!, 그리고 분배 정책을 마련하라!” 또한, 미국의 그리스도인들에게도 이렇게 외칩니다. “미국의 그리스도인이여! 일어나라!, 그리고 초대 교회 성령의 역사에서 교훈을 얻어라!”

▲ 그림 그래프024 옥스팜 부의 불평등 보고서 <불평등 주식회사> ⓒOxfam

가능할까요? 미국의 그리스도인들은 정의로운 성령님의 음성을 듣지 않을 것입니다. 또한, 우리 그리스도인들도 성령의 음성을 거부할 것입니다. 그래서 서양 문명의 몰락과 그리스도교의 소멸은 피할 수 없는 것입니다. 중국과 인도, 그리고 동남아시아 등 아시아에서 새로운 가치관이 나오기를 바라는데, 그것 역시 비관 섞인 희망으로 남습니다. 이렇게 정의의 실현은 험난합니다.

아무튼, 오늘 말씀은 ‘정의로운 성령님’이 주제인 누가복음 다해 마지막 말씀입니다. 교회력으로도 성령강림절 마지막 주일이죠? 성령강림 절기 마지막 몇 주간 성령을 통한 새 소망의 비전을 돌아보았는데, 이제 9월 첫 주일 창조절이 시작되면 성부 하나님의 새로운 창조의 역사가 시작됩니다. 따라서 오늘 성령강림절 열넷째주일은 새 소망의 비전을 돌아보고 새 창조의 희망을 기대하는 날입니다. 그것은 바로 ‘정의’와 ‘사랑’입니다. 사랑은 교회력 ‘라’해인 요한복음 해의 주제인 ‘사랑의 교회공동체’에서 나온 것입니다.

아무튼, 오늘 세본문 말씀도 지난주에 이어 ‘정의’(와 사랑)가 말씀의 주제가 되는데, 구약 미가서 말씀은 정의롭지 못한 예언자에 관한 책망의 말씀입니다. 그리고 이 책망은 오늘 우리 그리스도인들에게 주시는 질책입니다. 따라서 참 예언자이신 예수님께서 오셔서, 정의로운 사명을 선포하시는 것이 복음서 말씀이 됩니다. ‘주의 은혜의 해’를 선포하시죠? 그리고 사도행전 말씀은 예수께서 다시 오실 때까지 예수님의 이러한 정의로운 사명을 잘 감당하라 권면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 주 예수님께서 다시 오실 그날까지 정의로운 성령님과 동행하며 이 땅에 하나님의 정의를 바로 세우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먼저 구약 말씀부터 볼까요?

2. 여호와의 영으로 말미암아 능력과 정의와 용기로 충만하라!

“내 백성을 유혹하는 선지자들은 이에 물 것이 있으면 평강을 외치나 그 입에 무엇을 채워 주지 아니하는 자에게는 전쟁을 준비하는도다. 이런 선지자에 대하여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그러므로 너희가 밤을 만나리니, 이상을 보지 못할 것이요. 어둠을 만나리니, 점치지 못하리라 하셨나니, 이 선지자 위에는 해가 져서 낮이 캄캄할 것이라.”(미 3:5-6)

▲ 예언자 미가

거짓 예언자들은 입에 먹을 것이 있으면 평강을 외치고, 없으면 전쟁을 외쳤습니다. 이것이 몰락의 징조입니다. 이렇게 미가 예언자 당시, 남 유다의 부패와 타락상은 최고조에 이르렀습니다. 이때가 주전 8세기인데(1), 이 당시는 경제적 풍요가 남 유다와 북이스라엘 모두에 가득 찼습니다. 이 당시 북 왕국에는 아모스와 호세아 예언자가, 남 왕국에는 미가와 제1 이사야 예언자가 활동하였는데, 그리스에서는 주전 776년에 첫 번째 올림픽이 열렸고 훗날의 알렉산더 대왕이 즐겨 읽었다는(물론, 오늘날도 서양 최고의 고전인) 『일리아드』와 『오디세이』가 태동하던 시기였습니다.

이 시기 중반에 이스라엘 예언은 새로운 현상이 일어납니다. 곧, 예언자의 메시지가 책으로 보존된 것입니다. 오늘 성경에 나오는 대선지서 4권(이사야, 예레미야, 에스겔, 다니엘)과 소선지서 12권(호세아부터 말라기까지)이 그렇습니다. 따라서 자신의 이름으로 기록을 남기지 않았던 초기 선지자들(가령, 사무엘, 나단, 미가야, 엘리야와 엘리사 등)과 자신의 이름으로 예언을 남겼던 선지자들을 구분하기 위해서, 후자의 예언자들을 ‘문서 예언자’, ‘고전적 선지자’, ‘정경적인 예언자’라는 명칭을 사용합니다.

이 문서 예언자들은 더 이상 특정 왕이나 그 밖의 개인들 운명에 대해서만 선포하지 않고 이스라엘과 유다 전체를 상대로 예언을 선포합니다. 엘리야와 엘리사가 아합 왕조에 대해 비판의 목소리를 냈다면, 이제 문서 예언자들은 온 이스라엘과 만국에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하는 것입니다(우리가 지난 2주 동안 살펴본 요나, 나훔 예언자가 그렇습니다).

그러나 주전 8세기 예언자들의 예언과 질책은 왕권과 지배층을 향합니다. 문제는 일반 백성들이 아니라, 지도자들이라는 것이죠? 특히 종교 지도자들의 부정이 문제입니다. 따라서 오늘 미가 선지자도 당시 남 유다의 지도자와 선지자들의 죄를 고발합니다. 특히 본문 말씀은 거짓 예언자들의 타락상에 관한 고발입니다(3장 가운데 앞부분인 1-4절은 탐닉에 도치한 치리자들의 부패상을, 9-12절은 지도자들의 타락을 고발하며 임박한 심판을 재촉합니다). 결국, 미가는 여호와의 영으로 말미암아 능력과 정의와 용기로 충만해져서 그들의 죄를 들춰냅니다. 말씀을 볼까요?

“선견자가 부끄러워하며 술객이 수치를 당하여 다 입술을 가릴 것은 하나님이 응답하지 아니하심이거니와 오직 나는 여호와의 영으로 말미암아 능력과 정의와 용기로 충만해져서 야곱의 허물과 이스라엘의 죄를 그들에게 보이리라.”(미 3:7-8)

결국, 미가의 외침은 오늘 우리 그리스도인들을 거짓 예언자라 꼬집고 있는 것입니다. 이렇게 주전 8세기도 그렇지만, 예수님께서 공생애를 펼치셨던 2,000년 전도 마찬가지입니다. 지난주 말씀처럼 메리토크라시와 플루토크라시가 판을 치는 세상이었던 것입니다. 따라서 공생애를 시작하며 외쳤던 예수님의 음성을 누가는 이렇게 기록합니다. 복음서 말씀을 볼까요?

3. 주의 성령이 내게 임하셨으니

“주의 성령이 내게 임하셨으니 이는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시려고 내게 기름을 부으시고 나를 보내사 포로 된 자에게 자유를, 눈먼 자에게 다시 보게 함을 전파하며 눌린 자를 자유롭게 하고 주의 은혜의 해를 전파하게 하려 하심이라 하였더라.”(눅 4:18-19)

너무나 유명한 말씀입니다. 성령충만의 비밀을 잘 보여줍니다. 대부분의 한국교회 성도들은 “성령 받았다”, 혹은 “성령세례를 받았다.”라는 표현을 ‘뜨거운 체험’, ‘신비 체험’으로 생각합니다. 그래서 기도원에 가서 금식도 하고 영적 체험을 하기 위해 열심을 내기도 하며 몸부림칩니다. 그런데 오늘 말씀을 보면 성령이 예수님께 임하면 어떤 일이 벌어집니까?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시며 포로가 된 자에게 자유를, 눈먼 자에게 다시 보게 함을 전파하며 눌린 자를 자유롭게 하고 ‘주의 은혜의 해(ἐνιαυτὸν Κυρίου δεκτόν)’를 전파하는 것입니다.

우리말 성경은 데크톤을 은혜로 번역했지만, 영어 성경은 ‘Faver’라고 번역했습니다. 은혜는 영어로 ‘Grace’죠? 그런데 데크톤은 그레이스보다는 페이버입니다. 우리 말로는 ‘호의’로 번역되는데, 쉽게 말해 주의 은혜의 해는 ‘주께서 좋아하는 해’, 혹은 ‘주께서 기뻐하는 해’라고 번역하면 좋습니다. 그렇다면 주님께서 좋아하고 기뻐하는 해(year)는 어느 해인가요? 바로 희년(禧年, jubilee)입니다.

▲ 주의 은혜의 해인 희년

히브리어로 ‘요벨(יובל)’이라고 하는데, ‘뿔 나팔 소리(양각 나팔 소리)’를 의미합니다. 곧, ‘나팔을 불어서 자유의 기쁨을 선포하는 해’인 것입니다. 포로가 자유를 얻고, 눈먼 자가 다시 보고, 눌린 자가 해방되는 해입니다. 그리고 이 해방의 해가 내일이 아니라, 먼 미래가 아니라 바로 오늘이라고 예수님께서 선포하십니다. 이어지는 복음서 말씀을 볼까요? “책을 덮어 그 맡은 자에게 주시고 앉으시니 회당에 있는 자들이 다 주목하여 보더라. 이에 예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시되 이 글이 오늘 너희 귀에 응하였느니라 하시니(눅 4:20-21)”

이후 예수님의 본격적인 공생애가 시작됩니다. 그러나 이 은혜의 해는 어떤 이들에게는 심판의 해입니다. 따라서 부유한 자들, 포로 삼는 자들, 잘 보인다 하는 교만한 자들, 다른 사람을 억압하는 이들에게는 ‘자기들이 싫어하는 해’, ‘자기들이 미워하는 해’가 됩니다. 결국, 이들에 의해 예수님은 십자가 처형을 당합니다. 그러나 이러한 사망 권세를 깨뜨리신 예수님은 부활하셨습니다. 그리고 승천하시면서 자신의 사명을 제자들에게 부탁하십니다. 이 놀라운 ‘주의 은혜의 해’를 증거 하라고 제자를 부르신 것입니다. 저와 여러분도 부르시는 것입니다. 오늘 사도행전 말씀이 바로 그 말씀입니다. 말씀을 볼까요?

4. 예수의 증인이 되리라!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 이 말씀을 마치시고 그들이 보는데 올려져 가시니 구름이 그를 가리어 보이지 않게 하더라. 올라가실 때에 제자들이 자세히 하늘을 쳐다보고 있는데 흰옷 입은 두 사람이 그들 곁에 서서 이르되, 갈릴리 사람들아! 어찌하여 서서 하늘을 쳐다보느냐? 너희 가운데서 하늘로 올려지신 이 예수는 하늘로 가심을 본 그대로 오시리라 하였느니라.”(행 1:8-11)

▲ 렘브란트, <승천>(1636)

오늘 본문 말씀은 누가가 자신의 첫 번째 책인 누가복음과 사도행전 말씀을 서로 연결하는 서론의 말씀입니다. 부활 승천하신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주신 성령 약속과 지상명령, 주님께서 약속하신 성령을 기다리며 기도에 힘쓰는 성도들의 내용입니다. 이렇게 우리는 주어진 사명을 잘 감당해야 합니다. 그리고 그 사명은 오늘 세본문 말씀에 의하면 정의입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우리는 이도 저도 아닌 신앙생활을 합니다. 요한계시록에 라오디게아 교회처럼 살아갑니다. 결국, “내가 네 행위를 아노니, 네가 차지도 아니하고 더웁지도 아니하도다. 네가 차든지 더웁든지 하기를 원하노라. 네가 이같이 미지근하여 더웁지도 아니하고 차지도 아니하니, 내 입에서 너를 토하여 내치리라(계 3:15-16).”라고 합니다. 사실, 정의는 당파성을 가지는 것입니다. 양비론은 비겁합니다. 정의롭지 못합니다.

5. 진보 보수 기독교인, 곧 ‘더불어 국힘당’

▲ 칼 트루먼, 『진보 보수 기독교인』 표지

미국 필라델피아 웨스트민스터 신학교의 칼 트루먼 교수의 『진보 보수 기독교인』(지평서원, 2012)이라는 책이 있습니다. 원제가 ‘Republocrat’, 곧 ‘공화당과 민주당’이니, 우리말로는 ‘더불어 국힘당’ 정도 되겠습니다. 당파성 없이 이랬다 저랬다 하는 것을 뜻합니다. 이 책에서 트루먼 교수는 민주주의는 정확을 기하는 곳이 아니라고 합니다. 책의 내용을 질문과 대답의 형식으로 요약해 보겠습니다.

질문: “보수적인 신학은 종종 신학적인 정확성에는 매우 신경을 쓰면서도, 정치 문제에 대해서는 상당히 단순하며 흑백논리적이고 상투적으로 접근하는 성향이 있다. 왜 정치 이야기만 나오면, 마니교적까지는 아니더라도 매우 단선적인 흑백논리로 생각하는지?”

대답: “민주정치가 작동하기 위해 필요한 절차들 때문에 민주정치가 단순화되고 미묘하게 파괴되기 때문이다. 정치 전체는 과학이 아니라, 일종의 예술이며 개별 정치 철학들은 대체로 절충적이다. 따라서 대의 민주정치(정당의 활동으로 이루어지는)가 필요한데, 지금껏 이것은 정치적 섬세함을 이끌어 내지 못했다. 처칠의 말대로 ‘민주주의는 나쁜 체제이지만 지금까지 시도해 본 다른 어떤 체제보다 낫다.’라는 한계와 장점이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시민으로서 부담하는 의무들에 대해 진지하게 검토하고, 정확히 잘 알고 있는 상태에서 지성적으로 행동해야 한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등장한 것이 ‘미적 개념’입니다.

질문: “TV토론(1960년 미국 닉슨&케네디)은 외모가 주장(논증)보다 중요한 시대를 반영하며 정치 자금 대부분을 TV 광고에 쓰이고 있는데?”

대답: “영국 작가 조지 오웰의 말처럼, ‘전형적인 미국 잡지에는 추한 사람의 사진이 하나도 없다.’ 이미지 정치, 곧 미적 개념이 정치에 등장한 것이다. 가령, 2000년 미국 대선에서 통계를 제시하고 명석한 논리와 주장을 펼친 앨 고어와 그의 통계를 ‘모호한 산수’라고 조롱하며 내용 없이 ‘웃기는 말 몇 마디에 좋은 이야기가 더 잘 먹히므로 논증을 하려고 애쓸 필요가 전혀 없음을 아는 사람’인 부시의 대결에서 부시가 승리했다. TV에 비치는 이미지가 정치인의 주장과 담론보다 중요한 세상이 되었다.”

지금 오만한 권력이 자신을 비판하는 이들을 “사회 내부에 암약(2)하는 반국가세력”으로 규정하고 있는 것을 보세요. 그리고 이를 받아 쓰는 언론의 무지성을 보세요. 검찰개혁보다 언론개혁이 먼저인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결국, 트루먼 교수는 담론 논증보다는 그저 듣기 좋은 이야기 정치가 민주주의를 망친다고 생각합니다.

질문: “TV가 오늘날의 문화를 지배하듯, 이야기(story, 스토리와 감동이 있는 진실+허구의 서사)가 사실과 논리, 구식 논증보다 더 나은 시대가 되었는데?”

대답: “통상적이고 논리적인 분석에 맞지 않은 이야기인데 추종자들에게 강한 영향력을 행사한다.”

그렇습니다. 태극기 부대 어르신들에게 박정희 시대는 그들이 가장 빛나던 시절이었습니다. 공장 재봉틀 앞에서, 그리고 뜨거운 아랍의 사막에서, 독일의 탄광에서 자신들의 청춘을 다 보냈지만, 적어도 그때는 자신들이 사회의 주인공이었다는 생각이 있었습니다. 따라서 박정희(와 그의 딸)를 부정하는 것은 자신들의 청춘, 나아가 지신들의 모든 삶을 부정하는 것과 같습니다.

이들에게 실질적인 팩트를 들이대는 것은 무의미합니다. 그들의 내면에는 자신을 ‘산업역군’으로 불러준 지도자와 함께, 대한민국의 고도성장 시대를 이끌었다는 자부심, 혹은 판타지가 깔려 있습니다. 이것이 이야기의 힘입니다. 이들에게는 논증과 팩트가 필요 없습니다. 확증편향으로 남겨진 삶을 그리 살다 갈 것입니다. 따라서 ‘내러티브 정치’에 대해서 비판적인 시각을 가질 필요가 있는 것입니다. 물론 이를 위해 우리에게는 의지와 고된 노력과 지적인 헌신이 필요합니다.

▲ 오페라 <전함 피나포어> 포스터와 레코드 앨범

트루먼 교수는 아서 설리반이 작곡하고 윌리엄 슈웽크 길버트가 대본을 작성한 2막의 희극 영어 오페라 <전함 피나포어>의 주인공 조셉 포터 경의 노래를 소개합니다(1878년 5월 25일 런던의 오페라 코미크 극장에서 처음 연주되었습니다).

“나는 부유하게 자라나 작은 선거구에서 의회로 보내졌네.
나는 언제나 내 정당의 요구에 따라 투표할 뿐, 절대 스스로 생각해 본 적이 없었네.
나는 거의 생각하지 않았고, 그들은 나에게 보답하여
나를 여왕의 함대를 지휘하는 사람으로 임명해 주었네!”

여왕의 함대를 지휘하는 사람으로 전락하지 말라는 뜻입니다. 따라서 트루먼 교수의 생각을 네 가지 정도로 정리해 봅니다. 이것은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어떻게 이 사회에서 정의롭게 살아가는지를 보여주는 조언이 됩니다.

“첫째, 서로 지성적으로 대화하고, 공적인 토론에서 그리스도인들이 조장하는 흑백논리적인 당파성을 극복해야 한다.
둘째, 무엇보다 그리스도인들은 정치에 참여할 때 깊이 생각해야 한다.
셋째, “우리가 남이가!”라고 말하면서 옳든 그르든 내 정당이라는 식의 태도를 취해서는 안 된다.
넷째, 민주주의 사회에서 정치 참여는 당원으로든 유권자로든 불가피하게 한 정당에 참여할 것을 요구한다. 그러나 만일 우리가 모든 당원이나 지지자들이 반드시 이러저러한 것을 믿어야 한다고 가정하는 함정에 빠져든다면, 그 순간 우리는 단순히 상투적인 구호를 따를 뿐인 무뇌아(조셉 포터 경과 같이)가 되고 말 것이다. 따라서 시민사회에서 그리스도인들은 최악의 시민의 모습을 강화하는 것이 아니라, 최선의 시민의 모습이 어떤 것인지를 보여 주는 모범을 제시해야 한다. 그리고 이것이 정치적인 범주를 넘어 적용되어야 한다.”

▲ [초갈등 사회 예수가 답하다] <1부> 초갈등사회, 교회는 어디에 ③ 숫자로 본 갈등과 한국교회, 국민일보(2020.01.15.)

국민일보 2020년 조사를 보면, 그리스도인이건 아니건 간에 자신을 중도라 생각하는 이들이 많습니다. 이들이 캐스팅보트(Casting Vote)입니다. 따라서 양비론이 아니기를 바랍니다. 옳은 것은 옳다 하고 잘못된 것은 잘못되었다고 하는 예언자 정신이 필요합니다. ‘진보보수 기독교인’, 곧 ‘더불어 국힘당’은 애매합니다. 따라서 트루먼 교수의 고민이 오늘 한국교회의 고민과 그리 멀지 않습니다. “미국에서 복음주의 교회가 보수적 정당 정치와 기독교적 충성을 너무나 밀접하게 연결시킴으로써 복음주의 교회에 속한 많은 사람들, 특히 젊은이들이 교회를 등지는 위험을 초래하게 되었다는 나의 확신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성령께서 임하는 은혜의 해는 진보보수 기독교인이 흑백논리를 벗어나 무엇이 하나님 나라를 위한 제대로 된 정치인지를 고민할 때 시작될 것입니다. 여왕의 함대를 지휘하는 어리석은 사람이 되어서는 안됩니다. 이것은 결국 다음 세대를 위한 일이기도 합니다. 우리 대한민국호와 한국교회 함선을 제대로 이끌어 가야 합니다. 우리의 손에 정의의 노를 잡고 있으면 성령께서 우리를 도우십니다. 그 일에 힘껏 노를 젓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미주

(1) 기원전 8세기를 ‘황금시대’라고 합니다. 다윗과 솔로몬 시대 이래, 가장 넓은 영토를 확장하여 정치적으로 안정되고 경제적으로는 번영한 시대이기 때문입니다. 특히 ‘집약농업(Intensive farming)의 역학’은 이스라엘 사회를 변화시킨 주요 원인입니다. 이 방식은 농지 면적 당 입·출량 수준이 높은 편인데, 땅을 놀리는 비율이 적고, 자본과 노동이 들어가는 부분이 높아 단위면적당 작물 생산량이 높은 편입니다. 원래 이스라엘 공동체는 사사 시대처럼, 반-왕정 시대입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이 왕정을 구성하게 된 주요 원인이 바로 이 집약농업 때문이었다는 주장이 있습니다. 따라서 주전 8세기는 이스라엘 역사상, 집약농업 역학이 가장 극심하게 작용했던 시대였습니다. 사실, 초기 이스라엘은 중앙 산지에 정착하면서 자급자족하는 농촌경제를 형성하였습니다. 그러나 인구증가와 토지의 부족, 블레셋의 침략이 이스라엘을 왕정 체제로 변하게 하였습니다. 이때 등장한 이가 사울과 다윗이죠? 잘 아시다시피, 왕정은 궁전과 중앙 성소의 건설 및 기념비적 건축물과 함께 관료들이 상주하는 중앙의 도시를 형성시킵니다(다윗이 예루살렘으로 법궤를 옮기고 성전을 만들려고 했던 이유입니다). 따라서 인구와 용역과 농산물의 중앙 집중화가 이루어졌습니다. 이러한 중앙 집중화는 도시와 농촌의 구분은 물론, 상류층과 하류층의 계층도 형성하게 만듭니다(지금, 수도권의 과밀 현상과 지방 소멸을 보세요). 또한, 빈번한 전쟁으로 인해 젊은이들이 전쟁에 차출되자, 농촌 사회는 일손 부족 현상이 심했으며 중앙의 노동하지 않는 관료 계급의 등장으로 이전에 없던 조세제도까지 생겼습니다(세금을 거둬 이들을 먹여 살리기 위해서). 결국, 도시 경제를 유지하기 위해 시골 마을 경제는 자급자족하던 생산량에서 잉여생산량까지 확보해야만 하는 상황에 부닥치게 되었습니다. 그것도 제도적, 법적 압력에 의해서! 기막힌 것은 왕이 충성하는 신하들에게 토지를 보상으로 하사하는 제도(prebendal system)를 시행함으로 관료들은 도시에 거주하면서 원거리의 시골에 있는 자신의 토지에서 생산되는 농산물의 이익을 챙기는 부재지주 역할도 하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부족한 노동력과 잉여생산의 압력은 농촌의 농민에게 반강제적으로 집약농업을 실시하게 했습니다. 주전 8세기의 경우, 동서남북으로 넓은 영토를 확장하는 데 성공한 북이스라엘의 여로보암 2세와 남유다의 웃시야는 자매 국가로서 국제무역에 활발히 참여하였습니다. 두 왕실은 현금 가치가 높은 포도주와 감람유 생산에 열을 올렸고 곡식도 보리보다는 단위 생산가가 높은 밀 생산에 주력하였습니다. 특히 남 유다의 웃시야 왕은 제도적으로 전 국토를 1/3로 나누어 ① 밀, ② 포도주와 기름, 그리고 ③ 축산물 생산지역으로 나누는 왕실 주도의 의무 경제 정책을 시행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정책으로 인해 농민들은 특정 지역에 특정 농산물만을 재배하여 토질 저하는 물론, 생산 저하를 가져 왔으며, 결국에는 마을의 ‘자율적 교환경제’를 ‘도시 중심의 시장경제’로 내모는 결과가 되었습니다. 농민들에게는 경제와 노동에 많은 부담이 있었으며 나라 전체적으로는 경제적 악순환의 일차적 원인이 되었습니다. 특히, 경제적 부는 상류계층에만 집중하게 되었고, 하층민은 가난과 억압에 시달리는 구조로 변하게 되었습니다. 평등 공동체를 지향하며 출애굽 하여 가나안에 정착하였지만, 다시금 애굽의 계급 구조로 변한 것입니다. 이러한 정치-경제적 정황 전체를 가리켜 ‘집약농업의 역학’이라고 합니다. 이 정책 아래 신음하는 백성들을 위해 야훼 하나님이 예언자를 보내 예언을 선포하게 하고, 또 그들의 예언을 문서로 남겨 오늘, 같은 상황에 사는 우리에게도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하고 계신 것입니다. 따라서 주전 8세기 남북의 예언자들은 허덕이는 농민들에게 채무불이행을 단죄하여 그들의 재산을 압류하고 권리를 박탈하는 세상(인간)의 법정(왕실, 성소, 지방 법정) 앞에 맞서서 저항하였습니다. 임상국, 「주전 8세기 예언의 사회학적 이해」, 『신학과세계』 41 (감리교신학대학교, 2000), 36-52 참조. (2) 암중비약(暗中飛躍)의 약어로, 사전적 의미로는 ‘어둠 속에서 날고뛴다’라는 의미입니다. 풀어쓰자면 ‘아무도 모르게 맹렬히 활동하는 것’을 일컫습니다. 이 말은 2024년 8월 19일 윤석열 대통령이 국무회의에서 한 발언입니다. 그는 “사회 내부에 암약하는 반국가세력”에 대한 “국민적 항전 의지”를 강조했습니다. 지난 15일 광복절 경축사를 통해서도 “반자유·반통일·검은 선동세력”에 맞서 싸워야 한다고 강조했으며, 다시 나흘 만에 강도 높은 ‘내부 사상전’을 공개 주문한 것입니다. 야당은 이를 ‘북풍 몰이’라고 반발했습니다.

최병학 목사(종교인문학연구소 소장)  hak-99@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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