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하나님께서 왕 노릇’ 하신다는 말은 하나님 외에 결코 높은 것은 없다는 뜻이다. ⓒGetty Images

1.

지난 수요일에는 원래 이동환 목사님이 2022년에 받았던 정직 2년 판결에 대해 법원에 제기한 징계무효소송 1심 판결이 있을 예정이었습니다(판결은 8월 21일로 연기되었습니다). 이것 말고도 지난 3월에 있었던 출교 판결에 대해서도 당연히 법원에서 무효소송이 진행 중입니다.

사실 다른 변수가 없다면 당연히 무효 판결이 나와야 하는 건들입니다. 성소수자를 축복했다는 것이 징계 사유가 된다는 것도 말이 안 되는데 더군다나 정직 2년과 제명이라는 중징계 사유라는 것은 더더욱 말이 안 되는 건 당연하지 않겠습니까. 그 자체로 명백한 인권 침해죠.

다만 이게 ‘종교’ 영역에서 벌어진 일이라는 게 이 재판들에서 상당히 중요한 고려 지점이 되고 있습니다. 종교 영역에서 일어난 징계를 사법기관이 개입해서 무효화한다면 종교 영역에서 벌어지는 일에 국가가 부당한 간섭을 하는 것이 아니냐는 고민을 재판관들이 상당히 많이 하고 있다고 합니다.

종교 영역이든 뭐든 잘못된 일이 벌어진다면 국가가 간섭하는 게 당연한 거 아니냐 생각하실 수 있겠지만, 사실 우리의 현대사, 특히 민주화운동의 역사를 돌아보면 국가 권력의 소위 실정법에 어긋나는 행위더라도 그 행위를 종교 영역에서 실행함으로써 실정법의 적용을 피하는 효과를 거둔 적이 꽤 있었거든요. 그러니 조금 더 생각을 자세하게 해 볼 필요는 있겠습니다. 물론 그렇다고 정직 2년이든 출교든 무효가 되어야 한다는 당위가 달라지지는 않겠습니다만.

2.

차별금지법 반대 운동을 한다는 목사들이 종종 이런 기도를 올린다고 합니다. “인권이 왕 노릇하지 않게 하옵소서.” 이 글의 독자분들이라면 꽤 어리둥절해 하실 법도 합니다. 사람으로서 가지는 권리가 인권인데 그게 왕 노릇을 하니 마니가 도대체 무슨 얼척없는 소리인지.

며칠 전 감리교의 소위 동성애대책위라는 단체에서 6월 1일 퀴어퍼레이드에서 있었던 무지개 축복식에 참여한 감리교 목회자들을 또 교단 재판에 고발한다는 소식이 있었습니다. 그뿐 아니라 이동환 목사님 징계를 철회하라는 서명을 한 목회자들도 자격 심사를 청원하겠다느니 한다지요. 그 목회자들 중에 일부는 이미 협박 전화를 받고 있다고 하구요. 아마 고발이니 협박 전화니 한다는 사람들의 대다수가 저 “인권이 왕 노릇하지 않게 하옵소서.”라는 기도를 올릴 법 합니다.

위에 말한 것처럼 또 고발 운운하는 모습을 보이면서 저런 기도를 올리는 사람들은 아마 “인권이 아니라 하나님이 왕 노릇해야 하는 거 아니냐”라고 말을 하지 않을까 생각이 듭니다. 물론 이렇게 말한다고 해서 사람으로서 가지는 권리가 인권인데 그걸 두고 왕 노릇을 하니 마니 운운하는 게 얼척없는 소리라는 거야 달라지지는 않겠습니다만, 그걸 제쳐두고라도 한번 이렇게 따져 볼까요? 저런 사람들이 말하는 방식의 “하나님이 왕 노릇해야 한다”는 말은 과연 말이 되는지.

3.

“하나님이 왕 노릇해야 한다”는 말은 그리스도교인이면 당연히 고백해야 하는 말입니다. 그런데 그 말이 담고 있는 의미를 더 깊이 들어가 보면 이런 뜻이 되겠지요. 하나님 아닌 어떤 다른 것도 왕 노릇을 하면 안 된다. 말하자면 이 세상에 ‘왕 노릇’이란 건 아예 존재하면 안 된다는 이야기일 겁니다. 당연히 그리스도교인이 모였다는 ‘교회’도 ‘왕 노릇’을 하면 안 되겠지요. 교회야말로 이 세상에 왕 노릇이 존재하면 안 된다는 고백을 하는 사람들의 모임이니.

조금 옆으로 잠깐 새 보자면, 그리스도교인은 “모든 영광을 하나님께 돌린다”고 말합니다. 그렇다면 그것도 위와 비슷한 방식으로, ‘영광’이란 건 이 세상에 허용되어서는 안 되는 것이란 말이 될 겁니다. 그러니 그리스도교인이라면, 어떤 목사나, 어떤 정치지도자나, 혹은 인간이 아니더라도 국가나 자본 등등이 영광을 누리는 기색이 보인다면 단연코 그것에 저항해야 하겠지요.

다시 이야기를 더 이어나가면, 그럼 하나님의 ‘왕 노릇’은 어떤 것이었나요? 이 글의 독자분들이라면 다들 잘 아실 겁니다. 하나님은 스스로 인간이 되셨지요. 그냥 인간이 되신 것도 아니고 가난한 이들과 멸시받는 이들을 편들다가, 아니 스스로 그 중의 일원이 되어 고난을 받고 십자가에 처형당한 후 부활하는 그런 인간이 되셨지요. 그래서 가난한 이들과 멸시받는 이들, 죄인이라는 소리를 듣는 사람들에게 너 죄인 아니야라고 선언하셨죠. 그것이 하나님의 ‘왕 노릇’이었습니다.

서두에서 종교 영역에 대한 간섭을 피한 예로 교회의 민주화운동을 이야기했었습니다. 그 때 교회는 ‘왕 노릇’을 하려고 들지 않았습니다. 가난한 이들과 멸시받는 이들을 편들면서, 독재와 자본이 왕 노릇하는 데에 저항했습니다.

반면 이동환 목사님을 출교시킨 후에 다른 사람들도 재판을 하겠다고 덤벼들며 “인권이 왕 노릇하지 않게 하옵소서”를 말하는 사람들은 어떻습니까. 그들은 일단 사도신경에 나와 있는 “모든 성도가 서로 교통한다”에서 성소수자 성도를 마음대로 빼버리려고 합니다(지난 1월 칼럼 참조, “성소수자 성도가/와 서로 교통하는 것과…”). 이것부터가 벌써 “왕 노릇”일 겁니다.

그리고 명백한 인권 침해에 대해서 그게 싫으면 다른 데 가면 되지 않느냐는 핑계를 대놓고 댑니다. 뿐만 아니라 동료 시민인 성소수자에 대해서 그들이 동료 시민의 자격이 없는 타락하고 불건전한, 혐오 받아 마땅한 집단이라는 악선전을 거침없이 해 댑니다. 교회 집단 내의 권력행사를 정당화할 뿐만 아니라 이 사회의 규범에까지 자기들 맘대로 혐오를 끼워넣어야겠다는 것이죠. 이런 작태를 “교회가 왕 노릇하려는 것”이라 규정하는 것은 당연할 것입니다.

그러니 지금 한국 그리스도교인들의 기도 중 하나는 이런 것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교회가 왕 노릇하지 않게 하옵소서.”

황용연(사회적 소수자 선교센터 무지개센터 대표)  webmaster@ecumeni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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