有朋遠來

한국에서 동티모르까지 오는 길은 쉽지 않다. 직항이 없으니 동티모르 딜리공항에 내리려면 인도네시아 발리공항이든 싱가포르 창이공항을 경유해서 와야 한다. 그러다 보니 하룻밤은 어디서든 보내고 와야 하기에 그녀는 발리에서 하룻밤을 지세우고 왔다.

딜리에서 많은 사람들의 염려 속에 잘 지내고 있다가도 “그대가 곁에 있어도 나는 그대가 그립다”는 유시화 님의 시처럼 마음이 허허로울 때 그녀가 온 것이다. 이 먼 길을 오라는 사람이나 오란다고 오는 사람이나. 그녀가 오니 마냥 좋았다. 오랫동안 돌림 당하며 지내던 아이에게 힘센 형이 나타나서 아이의 어깨에 힘이 들어 간 것처럼 나는 으쓱해졌다.

두 어 달을  안질 걸린 눈처럼 지금거리는 눈을 하고, 따뜻한 햇볕아래에서 졸고 있는 병아리처럼 힘없이 지내는 나를 지켜보던 선생님 한분이, 한국에서 가지고 온 체력이 떨어져 그런 거니까 이 나라 기후에 적응 되면 기운을 되찾게 될 것이라며 위로해 주셨다.

나는 그녀를 기다리며 이곳에 올 때 마른 김과 단무지를 가지고 오라고 했다. 단무지가 많이 들어 간 김밥 몇 줄 먹으면 힘이 날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녀는 내 마음을 알았는지 단무지를 팍팍 넣어 만든 김밥을 만들어 주었다. 우리는 그 김밥을 가지고 아따우로 섬으로 향했다.

아따우로 그 섬에 가다.

섬나라인 동티모르에는 또 다른 두 개의 작은 섬이 있다.
그 중 하나는 이 나라 최초로 국립공원으로 지정 된 무인도 자코섬과 딜리 앞바다에 서면 바로 앞에 그림처럼 보이는 아따우로 섬이다.

나는 항상 딜리 앞바다에 서서 “저 섬에 가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아따우로 섬에 가 볼 기회가 아주 없었던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좋은 옷을 아껴 두고 정말 입고 싶을 때 입고 나서듯, 빛깔 좋은 사과를 차마 먹지 못하고 바구니에 담아 두고 보기만 하는 것처럼 아따우로 섬을 그저 휑하니 그렇게 다녀오고 싶지는 않았다.

배편에 대하여 미리 알아보고 집을 나섰지만 막상 바닷가에 서니 어디서 어떻게 배를 타야 할지 망막했다.
그때 작은 쪽배에 사람들이 오르는 것이 보였다. 우리는 우리를 떼 놓고 가기라도 할까봐 물속으로  첨벙 첨벙 들어가 배에 올랐다. 오르고 보니 그 배는 딜리 시내에 나왔다가 들어가는 아따우로에 사는 주민들이 타고 다니는 배였다.

우리는 주민들과 한 배를 탄 사람으로서 사탕도 나누어 먹고, 한국 껌도 씹으면서 세 시간 가까이 되는 시간을 함께 했다. 쪽배에 스무남짓이나 되는 사람들이 작은 배에 옹기종기 모여앉아 포말에 튕기는 물방울에도 아이들이나 어른이나 깔깔거리며 웃다 보니 우리를 태운 배는 어느덧 아따우로 섬에 이르렀다.

우리가 짐을 푼 곳은 모래사장이 정원처럼 보이는 바닷가 작은 집이었는데, 나는 그곳에서 쿠바의 아름다운 바닷가에서 하얀집을 짓고 말년을 보냈다는 헤밍웨이가 생각났다. 우리는 헤밍웨이 부럽지 않다며 우리는 김밥을 꺼내 늦은 점심을 먹었다.

아따우로 섬은 대부분 높은 산이었고 주민들은 바닷가 쪽에서 옹기종기 모여 살았다. 마을길에는 어디나 잘 생긴 야자나무들이 늘어 서 있었다. 우리는 인도에서 탔던 락샤 같은 택시를 타고  아따우로 섬을 둘러보다가 운전 하던 청년에게 코코넛이 먹고 싶다고 말했다. 우리말을 들은 청년은 그럼 친구 칩에 코코넛이 있으니 그곳으로 가자고 하였다.

우리는 청년을 따라 가면서 친구의 집으로 갔다. 우리들이 코코넛을 마시고 싶어 한다는 말을 들은 친구는 집안으로 들어가더니 코코넛 대신 뭉툭하고 긴 칼을 들고 나와서 어딘가로 달려가기 시작하였다. 우리는 영문도 모르고 청년의 뒤를 따라 달려갔다.

청년은 아파트 10층 높이는 족히 될 것 같은 큰 야자나무 앞에 서더니 긴 칼을 허리춤에 차고 두 다리를 원숭이처럼 벌리더니 나무를 순식간에 오르기 시작하였다. 그리고는 들고 간 칼로 코코넛을 하나씩 땅으로 떨어뜨리기 시작하였다.

우리는 실감나게 코코넛 따는 현장을 볼 수 있다는 것이 마냥 재미있고 즐거웠다. 청년이 야자나무에서 내려왔을 때 우리는 청년을 향하여 아낌없는 박수를 힘차게 쳐 주었다. 그렇게 나는 동티모르에 와서 처음으로 즉석에서 딴 코코넛을 마셨고 그녀는 오자마자 마시는 행운을 누렸다.

우리가 남국의 정취에 흠뻑 빠져있는 동안 어느새 해는 저물고 하늘에 별들이 하나씩 나오기 시작하였다.

아 어쩌란 말이냐
내 평생에 보았던 별들을 다 모아 놓은 것처럼 아따우로의 밤하늘에 별들이 반짝였다. 춥지도 덥지도 않은 아따우로 밤바다 모래사장에 누워 별을 보다가 잠시만 해찰하다 하늘을 보면 별은 또 다른 모습으로 더욱 밝게 비추었다. 우리의 눈을 자신들만 보라고 말하는 듯이.
밤은 깊어 가는데 저 별들을 두고 어떻게 숙소에 들어간단 말인가.

새벽의 아따우로 바다는 어젯밤의 별만큼이나 경이로운 일출을 보여 주었다.
해가 떠오르고 주일 아침은 밝았다.

나는 아따우로 섬에 가면 꼭 토요일에 가서 주일을 지키려는 생각을 했었다. 왜냐하면 동티모르는 카톨릭 국가라고 할 수 있을 만큼 국민 대다수가 성당에 다닌다. 그런데 이 작은 아따우로 섬에 교회가 있고 주민 대부분이 개신교 신도들이라는 말을 들었기 때문이다.

예배는 아홉시에 드린다고 했다. 예배 시간에 맞춰 우리도 준비를 하고 길을 나섰다. 주민들이 사는 오솔길을 걸어 교회를 가는 길은 너무나 아름답고 평화로웠다. 깨끗한 마을길에는 식물원에서나 볼 수 있는 꽃들이 만발해 있었고,그 꽃길을 지나니 교회에 다다랐다.

교회 마당에는 아기를 안은 새댁들이 예배당에 들어서지 못하고 마당에서 함께 찬양을하고 있었다. 예배당에 들어서니 갑자기 가슴이 뭉클해지며 중국에서 한국으로 돌아와 처음 본교회를 들어섰을 때와 같은 마음이었다. 중국에서 살 때 인근에 교회가 없어 주일이면 인터넷을 통하여 예배를 드렸다. 그러나 인터넷 사정이 워낙 안 좋아 대부분 혼자 예배를 드렸다. 그러다 한국에 들어와 본교회에서 예배를 드릴 때 성도들과 함께 맘껏 찬양하며 예배를 드릴 수 있음이 너무 감사해서 눈물이 왈칵 나오던 그 마음을 그곳에서 느낀 것이다.

작은 교회는 성도들로 꽉 차 있었고 그들이 부르는 찬양과 기도소리는 크고 뜨거웠다. 예배를 마친 뒤 아따우로를 뒤로 하고 딜리로 오는 배에 올랐다. 지도상에 점으로도 표시가 안되는 아따우로 섬이지만 우리가 아쉬워하는 마음을 알았을까. 뜻밖에 우리 눈앞에 나타난 것은 무리를 지은 돌고래였다. 어디서 왔는지 돌고래 가족은 우리 앞에서 군무를 펼치더니  물속으로 사라졌고 바다는 다시 잔잔해 졌다.
그것은 아따우로 섬이 우리에게 주는 마지막 선물이었다.

배가 지나갈 때 마다 물보라로 생긴 무지개가 딜리 바다까지 우리를 따라 오고 있었다.

무지개는 우리에게 무슨 말을  하고 싶어 딜리까지 따라 왔을까.

임정훈  webmaster@ecumeni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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