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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 있을 때도 가끔씩 이러고 싶은 날이 있었다. 한 학기 수업을 잘 마쳤다거나 오랫동안 미루어 놓았던 일을 끝냈을 때처럼 내 작은 수고를 칭찬해 주고 싶은 날은 자신을 위하여 호사를 부여하고 싶었다.
가끔은 사소한 일로 오해가 생겨 누군가와 마음이 불편하거나 오랫동안 산모롱이 (대부도에서 살던 집 이름)에서 적조하게 지내고 있을 때도 휭 하니 시화 방조제를 넘어가 마음을 돌리고 제자리로 돌아오고 싶은 때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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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 며칠 동안 극장에 가서 영화를 한편 보고 싶었다. 그리고 입에 맞는 음식도 사먹고 싶었다. 특별히 호사를 누릴 만큼 장한 일을 한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한 학기 수업을 잘 마쳤고 더위를 먹고 배앓이를 하고 있어도 이나마 잘 견디고 살고 있으니 한번 쯤 그런 호사를 누려도 되지 않을까 싶기도 했다. 무엇보다도 딜리에 2개의 상영관을 갖춘 극장이 하나 있으니 극장을 한번 가보고 싶다는 마음이 언제나 숙제처럼 남아 있었다.
2012년에 딜리에 극장이 생겼다고 한다. 그 이전에는 영화를 어떻게 보았을까 살짝 궁금하다. 미크로넷 10번 버스를 타면 극장 앞에 내리니 용기 내어 한번 가 볼만도 하건만 낯선 곳에서 혼자 영화를 본다는 것이 즐거움 보다는 오히려 두려움이 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또한 딜리의 하루는 일찍 시작 된다. 새벽을 알리는 닭소리로 일제히 기상나팔을 불기 시작하면 여기저기서 매캐한 나무 때는 냄새와 함께 구수한 밥 냄새가 코끝에 스민다. 딜리는 이렇게 하루를 일찍 시작한 만큼 하루가 일찍 마무리 된다. 저녁 일곱 시가 되면 시내를 다니던 미크로넷은 거의 끊긴다. 택시 역시 밤엔 다니지 않는다.
미크로넷도 택시도 다니지 않는 밤에는 오직 차를 가진 자들만의 세상이 된다. 그래서 어두워진 이후엔 거의 밖에 나가 본적이 없다. 더구나 요즈음은 우기철이 시작되어 밤낮없이 비가 내리니 영화를 보러 갈 엄두도 못내는 것이 그 이유 중 하나이기도 하다. 그저 창밖으로 내리는 비를 보면서 내가 만든 여주 차를 한잔 마시며 마음을 달래는 것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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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티모르 사람들은 여주를 볶아서 반찬을 해 먹지만 나는 여주를 얇게 썰어 잘 말려서 살짝 볶아 두고 물병에 몇 개씩 넣어 차로 마신다. 여주차는 당뇨에 특히 좋다고 하지만 차의 쌉싸롬한 맛이 마음을 차분하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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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겨울은 춥기도 하지만 낯선 모습을 하고 있는 산모롱이에 정을 붙이려고 연탄 난로를 놓았다. 그리고 들통에 당귀와 감초를 넣어 곰국을 끓이듯 난로위에 올려 놓고 얼마만큼 시간이 지나면 산모롱이는 당귀향으로 가득 찼다.
난로 옆에 앉아 잘 우러난 당귀차 한잔을 마신다. 당귀차는 독특한 당귀 향과 함께 입안을 개운하게 하는 뒷맛이 좋다. 차를 다 마신 후에도 당귀향이 입안 그대로 향기로 남아 있다. 현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두려움을 주는 병중에 하나가 뇌경색, 뇌졸중 같은 뇌혈관질환이라고 하였던가. 당귀가 뇌혈관 질환을 뚫어 주는 가장 좋은 예방약이라고 하니 당귀차를 마시면 머릿속에 구석구석 쌓여있는 노폐물이 다 빠져 나갈 것 같은 기대로 기분까지 좋아진다.
영화는 뭘~
문득 자신을 격려하며 호사를 누리는 것도 스스로 만들어 할 일은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살다보면 생각지 않은 날 보너스처럼 생각지 않은 호사를 안겨주시는 날들이 있었다. 오늘은 그저 당귀차 한잔이 마시고 싶다. 당귀차 한 잔 마시며 감사로 한해를 정리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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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를 구주로 믿는 사람, 딜리의 한 고등학교에서 한국어를 가르치고 있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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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정훈 webmaster@ecumeni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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