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재명 민주당 대표가 국회 교섭 단체 연설에서 경제와 민생 부분을 강조하며 기본사회 구상을 밝혔다. ⓒ연합뉴스TV 갈무리

지난 2월 10일(월), 이재명 민주당 대표가 국회 본회의에서 44분간 국회 교섭 단체 연설을 진행했다. 이 대표의 연설은 현 대한민국의 상황 진단과 이에 대한 극복 방향이 주를 이루었다. 특히 연설의 중심은 ‘먹사니즘’(먹고사는 문제 해결)을 넘어 ‘잘사니즘’(모두가 함께 잘 사는 세상)을 새로운 비전으로 제시하고 이를 위해 사회적 대타협, 정치 개혁, 직접 민주주의 강화 등을 강조했다.

연설이 끝난 후 다양한 반응이 쏟아졌다. 그 중 핵심은 이 대표의 연설을 사실상의 대선 출마 선언으로 해석하고 조기 대선을 염두에 둔 ‘집권 플랜’이 아니냐는 것이다. 전문가들 역시 이 대표가 ‘회복과 성장’을 강조하며 중도층을 공략하려는 전략을 펼쳤다고 분석했다.

이러한 다양한 반응은 그만큼 이 대표의 연설이 반향을 이끌어냈다는 것이 중론이다. 특히 이 대표의 연설 중 많은 부분이 할애된 경제와 민생 부분은 여론의 주목을 이끌어냈다. 이 대표가 강조한 ‘기본사회’ 개념은 초미의 관심이 되었다.

기본사회 개념은 현실적인가

이 대표가 연설에서 강조한 ‘기본사회’ 개념은 단순한 복지 확대가 아니라, 사회 전반의 구조적 전환을 의미한다. 기존 복지제도가 노동 가능성을 전제로 하는 ‘선별적 복지’ 모델이었다면, 기본사회는 노동 여부와 관계없이 국민 모두에게 주거, 금융, 교육, 의료 등 기본적 삶을 보장하는 체계를 구축해야 한다는 구상을 담고 있다. 이 대표는 이를 통해 사회적 불안과 경제적 양극화를 완화하고, 지속 가능한 성장 기반을 마련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기본사회 구상은 단순한 복지 확대 차원을 넘어선다. 기존의 복지 모델은 실업자나 취약계층에 대한 지원을 중심으로 설계되어 왔지만, 이재명 대표가 제시한 기본사회는 모든 국민이 최소한의 삶을 영위할 수 있도록 사회가 공동 책임을 져야 한다는 점에서 한층 더 나아간 개념이다. 특히 저출생과 인공지능(AI)·자동화 시대를 맞아, 전통적 노동 개념이 변화하는 상황에서 새로운 사회 안전망이 필요하다는 인식이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

그의 연설에서 기본사회에 대한 철학적 배경도 드러난다. “출생과 양육은 이제 부모만의 몫이 아닌 공동체의 몫이어야 한다”는 발언은 기존의 개인 책임 중심의 사회 구조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이는 북유럽식 복지국가 모델과도 유사한 접근법이다. 또한, “국가가 국민의 생존과 기본적 삶을 보장하는 체계를 구축해야 한다”고 강조한 것은 사회적 연대와 집단적 책임을 강조하는 정치철학과 연결된다.

기본사회 실현을 위한 과제들은

하지만 기본사회 구상을 실현하는 과정에서는 여러 도전 과제가 있다. 가장 큰 문제는 재원 마련 방안이다. 복지를 확대하려면 정부 지출이 필연적으로 증가할 수밖에 없으며, 이를 감당하기 위해서는 증세가 불가피하다. 현재 한국의 조세부담률은 OECD 평균(약 34%)보다 낮은 20%대에 머물러 있다. 기본사회가 현실화되려면 실질적인 재원 확보 방안이 제시되어야 하고 세부적인 사항을 구체적으로 제시해서 기본사회 구상을 더 정교하게 발전시켜야 할 필요성이 있다.

또한, 복지 확대가 경제 성장과 노동시장에 미칠 영향도 면밀히 검토할 필요가 있다. 기본사회는 노동의 가치를 전면적으로 재조정하는 방향을 포함하는데, 이는 노동 유인 감소, 복지 의존 증가 등 부작용을 초래할 가능성이 있다. “노동시간 단축과 주 4일 근무로 나아가야 한다”는 주장과 결합될 경우, 노동시장 유연성과 생산성 확보 방안이 함께 논의되지 않으면 국가 경쟁력이 약화될 수 있다. 경제 성장과 사회 안정망 강화 사이에서 균형을 맞추지 않으면, 단기적 복지 확대가 오히려 장기적 성장 둔화로 이어질 수도 있다.

기본사회가 성공적으로 정착하려면 사회적 합의 과정이 필수적이다. 특히 중산층과 고소득층의 조세 저항, 기업의 투자 감소, 노동시장 변화에 대한 반발 등을 어떻게 극복할 것인지가 핵심 과제가 될 것이다. 기본소득 논의에서 이미 경험했듯, 전 국민 복지를 확대하는 정책은 경제적·정치적 갈등을 초래할 가능성이 높다. 따라서 단순히 이상적인 모델을 제시하는 것을 넘어, 점진적인 시행 전략과 실질적인 부담 분배 방안을 명확히 해야 한다.

기본사회는 기존 복지국가 모델의 한계를 극복하려는 새로운 접근법이라는 점에서 신선한 시도이지만, 현실적인 실행 가능성은 아직 불확실하다. 국가 재정의 지속 가능성을 보장하면서도 국민의 기본권을 확대하는 방향을 어떻게 설정할 것인지, 경제 성장과 복지 확대를 어떻게 조화시킬 것인지에 대한 구체적인 정책적 로드맵이 마련되지 않는다면, 기본사회는 하나의 구호로만 남을 위험이 있다. 이재명 대표가 제시한 비전이 실제 정책으로 구체화되려면, 조세 개혁, 노동시장 개혁, 산업 구조 변화에 대한 실질적인 해법이 함께 논의되어야 할 것이다.

성서가 강조하는 사회경제 공동체는

이재명 대표가 제시한 기본사회 구상은 모든 국민이 최소한의 삶을 보장받아야 한다는 원칙을 바탕으로 한다. 이는 현대 복지국가 모델과 연결되지만, 기독교 신학 전통에서도 중요한 시사점을 제공한다. 기독교는 경제적 정의와 사회적 연대를 강조하며, 인간 존엄을 지키기 위해 공동체가 함께 책임지는 구조를 지향해 왔다.

특히 성서는 부의 집중과 사회적 불평등이 심화될 때 이를 경고하고, 공정한 분배를 요구했다. 예언자들은 “가난한 자를 짓밟고 미천한 자의 권리를 짓밟는 자들”(아모스 5:11-12)을 비판했으며, 정의로운 경제 질서를 강조했다(이사야 10:1-2). 신약에서도 예수는 가장 약한 자에게 행한 것이 곧 하나님께 행한 것과 같다고 말한다(마태복음 25:35-40). 구약과 신약 모두 사회적 약자 보호를 신앙의 핵심으로 제시했다. 결국 성서는 경제적 풍요와 정의가 함께 갈 때만이 참된 평화가 가능하다고 가르친다.

이러한 관점에서 볼 때, 기본사회 구상은 성서적 가치와 어느 정도 맞닿아 있다. 그러나 그것이 단순한 국가 주도의 복지 확대가 아니라, 보다 정의로운 경제 질서를 구축하는 방식으로 설계될 필요가 있다. 국가, 시장, 공동체가 균형을 이루며 연대를 실현하는 구조를 지향한다.

복지가 지나치게 국가 주도로만 진행되면 개인의 자유와 책임이 약화될 위험이 있고, 반대로 시장 논리에만 맡겨질 경우 사회적 불평등이 심화될 가능성이 크다. 따라서 국가가 주도하는 복지 모델이 아니라, 국가와 시민 사회가 협력하여 ‘사회적 연대’를 구축하는 형태가 기독교적 이상에 더욱 부합할 것이다.

한편, 기본사회 구상이 실현되기 위해서는 필연적으로 재원 마련과 지속 가능성 문제가 뒤따른다. 기독교적 관점에서 경제 정책은 단순한 복지 확대가 아니라, 정의롭고 지속 가능한 분배 구조를 마련하는 방향으로 이루어져야 한다. 단순한 재정 지출 증가가 아니라, 장기적으로 경제 성장과 조화를 이루면서도 사회적 약자를 보호하는 균형 잡힌 정책이 요구된다.

그리스도인의 선택, 무엇을 고려해야 하나

빌 클린턴 전 미국 대통령이 처음 대통령 선거에 나섰을 때 사용했던 구호는 “It’s the economy, stupid!”(바보야, 문제는 경제야!)였다. 제도적 민주화를 이룬 1987년 이후 치뤄진 한국 사회의 모든 대선이 그랬지만, 현실화되고 있는 다가올 대선도 이에서 멀지 않을 것이다. 그렇다면 그리스도인은 어떤 선택을 해야 할까. 단순히 경제 제일, 민생 제일을 외치는 후보에게 표를 던지는 것이 신앙적 선택일까? 아니면, 이를 넘어 실현 가능성과 지속 가능성을 고려한, 경제 정의와 공공선이 조화를 이루는 정책을 제시하는 후보를 선택해야 할까?

결국, 기본사회는 단순한 구호가 되어서는 안 된다. 그것이 실현될 때, 단순히 국가가 복지를 책임지는 체제를 넘어, 모든 국민이 존엄한 삶을 유지할 수 있는 공정한 사회 구조를 만들어가는 과정이 될 수 있는가가 더 중요한 질문이다. 그리스도인의 선택은 단순한 경제 논리가 아니라, 정의와 연대, 지속 가능한 평화를 추구하는 방향에서 이루어져야 한다.

이정훈  typology@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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