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의 진실은 이 땅에 하나님 나라를 선포하고 몸소 보여 주신 것이었습니다(마가 1:1, 14~15). 예수께서 사람들에게 그 진실을 일깨우는 방식은 크게 두 가지였습니다. 비유를 통한 말씀, 그리고 몸소 행하신 기적이었습니다. 물론 그 모두를 포함한 삶 자체로 하나님 나라를 일깨우고 보여주셨지만, 특기할 만한 방법을 꼽자면 그렇습니다.

오늘 본문 말씀의 맥락을 살펴보면, 그 전형적인 두 가지 방식이 잘 드러나 있습니다. 먼저 씨뿌리는 사람의 비유로부터 시작하여(4:1이하) 일련의 비유로 사람들을 일깨운 이후, 본문 말씀이 시작되는 부분부터 기적을 행하신 것을 전하고 있습니다. 본문 말씀에 이어 병자 치유 기적 이야기가 나옵니다.

우리가 예수님께서 행하신 기적 이야기를 마주할 때 그 의미를 어떻게 새겨야 할까요? 그저 초자연적인 사건으로 여기며 예수님의 놀라운 능력만을 주목한다면 그 의미를 온전히 새길 수 없습니다. 언제나 기적 사건은 그 자리에 함께한 이들의 깨달음과 행동을 요청하는 성격을 지니고 있습니다. 구경꾼, 방관자가 아니라 참여자로 요청하는 성격입니다.

성서의 기적 이야기는 그저 초자연적 사건이 아닙니다. 사람들은 기적을 보고서야 믿으려 하지만, 예수님께서는 단지 과시적으로 기적을 행함으로써 사람들을 믿게 하려 하지 않았습니다. 예수님께서 일으키신 기적에는 항상 그에 관여된 주인공들이 있습니다. 기적은 예수님과 그 주인공들의 상호 관계 속에서 일어난 놀라운 사건이지, 그 관계를 떠난 객관적인 초자연적 사건이 아닙니다.

풍랑이 이는 바다 한가운데 움직이는 배 위에서 풍랑을 잠잠케 하신 기적을 전하는 본문 말씀 역시 그와 같은 성격을 지니고 있습니다. 그저 초자연적인 기적 이야기가 아니라 역사와 현실의 격랑 가운데 있는 오늘 우리에게 중요한 진실을 일깨워주는 이야기입니다.

예수님께서 사람들을 가르치신 이후 저녁이 되어 제자들과 함께 바다 건너편으로 이동합니다. 갈릴리 호수였지만, 그 호수가 크기 때문에 성서는 이를 종종 바다로 묘사합니다. 예수님과 제자들이 배를 타고 가는데, 그 바다에 풍랑이 일었습니다. 바다가 요동을 치고 따라서 배가 요동을 쳐서 결국 그 배에 탄 사람들도 안절부절 요동을 치는 상황입니다. 물이 배 안에까지 들이치는 상황이었습니다. 제자들은 배가 요동치는 대로 이리 쏠리고 저리 쏠리며 허둥댔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배의 고물 쪽에 편안하게 누워 주무시고 계십니다. 요동치는 바다 한가운데 떠 덩달아 요동치는 배, 그 배 밖에 계셨던 것이 아닙니다. 제자들과 똑같은 배 위에 계셨습니다. 한 배를 탔는데도 모든 사람이 허둥대는 데 반해 단 한 사람 예수께서는 평안하게 주무시고 계십니다. 요동치는 바다, 허둥대는 제자들과 달리 잠잠한 모습입니다. 제자들은 주무시는 예수님을 깨우며 다급하게 살려달라 호소합니다. 잠에서 깨어난 예수님께서 바람을 꾸짖으시고, 바다더러 “고요하고 잠잠해져라.”(4:39) 말씀하시자 바람이 그치고 바다가 고요해졌습니다.

제자들은 놀랍니다. 도대체 어떻게 그럴 수가 있을까요? 그렇게 놀라는 제자들을 향하여 예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왜들 무서워하느냐? 아직도 믿음이 없느냐?”(4:40) 아주 의미심장한 말씀이지만, 제자들은 여전히 그 의미를 깨닫지 못합니다. 그저 경이로워할 뿐입니다. “이분이 누구이기에, 바람과 바다까지도 그에게 복종하는가?”(4:41) 제자들이 그렇게 반문하는 것으로, 이 이야기는 마무리됩니다.

이 이야기는, 우리가 당연하게 생각하지만 지나치고 있는 중요한 진실을 일깨워줍니다. 요동치는 바다 한가운데 요동치는 배 안에서 허둥대는 것으로 사태가 수습되지 않는다는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오히려 그 안에서 잠잠함으로써만 그 사태를 수습할 수 있습니다. 격랑 한 가운데서 중심을 잡을 때 비로소 요동치는 상황을 수습할 수 있습니다. 제자들은 허둥댔고 예수님은 잠잠하였습니다. 제자들은 세태를 따르느라 갈피를 잡지 못했고 예수님께서는 중심을 지켰다는 것을 뜻합니다.

복음서는 아주 유사한 이야기를 다시 되풀이하여 전하고 있습니다. 물 위를 걷는 예수님 이야기입니다(마가 6:45~52).

세례 요한이 처형된 이후 예수께서는 갈릴리 호수 주변에서 오병이어의 기적을 보여 주셨습니다. 바로 그 놀라운 일이 있고 난 후 예수께서는 제자들을 먼저 배에 태워 보내십니다. 모여 있던 사람들을 돌려보내고, 당신은 남아 따로 기도하는 시간을 갖습니다. 예수께서 군중들 가운데 계시다가 따로 떨어져 기도하는 모습은 일관된 행동 양식입니다. 기도하며 성찰하는 모습입니다.

▲ Ludolf Backhuysen, 「Christ in the Storm on the Sea of Galilee」 ⓒArt in the Christian Tradition, a project of the Vanderbilt Divinity Library, Nashville, Tenn. Original source.

그즈음 제자들이 탄 배는 육지로부터 멀어지면서 풍랑에 시달립니다. 제자들이 두려워하고 있는데, 새벽녘 예수께서 물 위를 걸어 제자들을 향하였습니다. 제자들은 유령으로 여기며 깜짝 놀랐습니다. 그들을 보고 예수님께서는 말씀하십니다. “안심하여라. 나다. 두려워하지 말아라.”(6:50) 그리고 제자들이 탄 배 위에 오르자, 바람이 그칩니다.

제자들은 일단 안도하였을 것입니다. 그러나 여전히 믿기지 않은 상황에 당황하고 있었습니다. 이를 두고 마가복음서는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빵을 먹이신 기적을 깨닫지 못하고, 마음이 무뎌져 있었다.”(6:52) 이 이야기는 제자들이 자신들의 눈앞에서 벌어진 기적을 인지하지 못했다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그 사건이 함축하는 진실을 여전히 깨닫고 있지 못했다는 것을 뜻합니다.

이 이야기 또한 오늘 본문 말씀과 같은 의미를 지니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보여 주신 행보는 그저 초자연적인 기적 사건이 아니라 역사와 현실의 격랑 가운데 있는 사람들이 취해야 할 자세를 일깨워주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믿음의 실체는, 격랑이 일듯 요동치는 세태 가운데서 그것을 바로 잡을 수 있는 믿음의 중심 가치를 함축합니다. 그것을 몸소 보여 주신 예수 그리스도의 길을 따르라는 것입니다.

함께 살아가는 사람들을 서로 살리는, 놀라운 오병이어의 기적을 봤다면 마땅히 풍랑이 이는 바다 위를 태연하게 걷고 잠잠하게 하는 예수님의 발걸음의 의미 또한 깨달아야 한다는 것을 일깨워주고 있습니다. 마가복음은 그 진실을 깨닫지 못하는 제자들을 안타까워하고 있습니다.

“변하지 않는 것으로 변하는 것을 대처한다(以不變 應萬變).” 본래 불교의 화두로, 역사적으로 해방정국의 혼란기에 김구 선생이 그 의미를 다시 새기기도 하였습니다. 한국의 독립운동가 조소앙, 김규식 등과도 교분을 나눈 것으로 알려진 베트남의 지도자 호치민이 자신의 정치철학을 나타내는 좌우명으로 삼은 것으로도 잘 알려져 있습니다. 변화를 외면하고 거부하는 것이 아니라 변화에 가장 적극적이고 능동적으로 대처하는 지혜를 말합니다.

감각적으로 느껴지는 사태에 매몰되고, 즉각적으로 솟구치는 욕망에 매달리면 전체가 보이지 않습니다. 움직이는 대로 따라가면 움직이는 사물만 볼 수 있을 뿐 전모를 볼 수 없습니다. 마음에 변하지 않는 중심이 있어야 변하는 사태를 제대로 볼 수 있습니다.

밭갈이를 배우던 아들이 아버지에게 물었습니다. “어떻게 하면 아버지처럼 이랑을 반드시 일굴 수 있습니까?” 아버지가 말하기를 “앞을 똑바로 보고 가라!” 했습니다. 그런데도 아들이 일군 밭의 이랑은 삐뚤빼뚤했습니다. 아버지가 반문했습니다. “도대체 어떻게 했느냐?” 아들이 답하기를 “앞을 똑바로 보고 갔습니다.” 했습니다. “앞에 뭐가 있었느냐?” “바로 제 앞 소 엉덩이만 바라보고 좇아갔습니다.” “바로 저 앞에 나무를 기준으로 삼았어야지!” 같은 이치입니다.

좌표가 잘못 설정되면 모든 것이 어긋납니다. 역사도 개인의 삶도 그렇습니다. 오늘 격동하는 우리 사회의 현실에서 더욱 절감하는 진실입니다.

하마터면 깜깜한 암흑과 폭력의 야만으로 되돌아갈 뻔했던 사태를 우리가 어떻게 바로 잡았습니까? 무지막지한 권력이 인간의 삶을 멋대로 좌우해서는 안 된다는 믿음, 저마다 자기 삶을 스스로 결정하고 서로 협력하는 관계를 이뤄야 한다는 믿음, 누구나 마땅히 존중받고 서로 어울려 살아갈 수 있어야 한다는 믿음으로 행동했기 때문입니다.

민주주의와 인권에 대한 신뢰, 정의와 평화, 서로 사랑을 나누는 가운데 생명의 기쁨을 누리는 세계에 대한 갈망이 사람들 가운데 살아 있었기에 야만의 시대로 되돌아가는 사태를 막을 수 있었습니다. 그 믿음이 있기에 우리는 지금 눈앞에서 펼쳐지는 혼란스러운 상황 가운데서도 그 세태에 휩쓸리지 않고 정도를 향해 나아갈 수 있습니다.

마땅히 우리가 바라는 미래 세계를 위해서도 우리에게는 그 믿음이 절실합니다. 파당적인 이해득실을 따지기에 앞서 우리 사회가 지향해야 하는 공동선이 무엇인지 먼저 분명히 해야 합니다. 그 공동선이 무엇인지 헤아리는 것은 어렵지 않습니다. 바로 앞에서 말한 그대로입니다.

민주주의와 인권에 대한 신뢰, 정의와 평화, 서로 사랑을 나누는 가운데 생명의 기쁨을 누리는 세계에 대한 희망입니다.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전하여 주신 복음의 진실, 하나님 나라의 진실과 그대로 통합니다. 그 흔들리지 않는 좌표가 요동치는 세상 한가운데 요동치는 사람들을 구해내는 척도가 됩니다.

오늘은 특별히 우리 교단이 신학교육주일로 삼은 주일입니다. 신학교육 과정 가운데 있는 학생들을 독려하는 의미를 지니고 있을 뿐 아니라, 신앙생활과 교회생활에서 올바른 신학교육의 중요성을 환기하고자 하는 뜻을 지니고 있습니다. 바로 우리 이웃에 있는 한 학교에서 “신학은 학문이 아니다”를 표방하는 연구소를 열었다고 하여 세상의 웃음거리가 된 적이 있습니다. 이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입니까? 대꾸할 가치조차 없는 소리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선포하신 복음의 진실이 무엇인지, 하나님 나라의 진실이 무엇인지, 그것이 오늘 이 땅에서 어떻게 구체화하여야 할지 묻는 것은 끊임없는 성찰과 탐구의 대상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그것은 복음의 진실, 하나님 나라의 진실 그 자체를 묻는 것을 뜻하며, 더불어 반드시 이 땅의 사람들 가운데, 이 땅의 피조물 가운데 어떻게 구현되어야 하는 것인지 묻는 것을 포함합니다. 그것은 요동치는 세상의 실상을 직면하는 것을 뜻하며 그 가운데서 좌표를 분명히 하는 것을 뜻합니다.

우리가 그 물음을 분명히 하기를 바랍니다. 그저 자기가 믿고 싶은 대로 믿는 것이 신앙이 아닙니다. 그렇게 자기가 믿고 싶은 대로 믿는 이들이 사람들을 선동하고 세상에 난동을 피우고 있지 않습니까? 교회의 길이 아닙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전해주신 복음의 진실, 하나님 나라의 진실을 굳건하게 믿고, 요동치는 이 세상 한복판에서 그 뜻을 실현해 나가는 우리가 되기를 바랍니다. 우리 한 사람 한 사람, 우리의 교회 공동체가 좌초하지 않고 세상의 이정표가 되기를 기원합니다.

최형묵 목사(천안살림교회)  chm1893@cho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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