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6일 헌법재판소 탄핵심판 변론에 출석한 윤석열은 다시 한번 비상계엄 당시 “국회의원들을 끌어내라고 한 적 없다”고 주장했다.

지난해 12월 3일 윤석열 대통령은 비상계엄을 선포하면서 대한민국 국민을 향한 전쟁을 시작했다. 우리는 그 선포 전 ‘바이든’의 ‘날리면’으로의 둔갑을 보면서도, 윤석열과 그 일당, 국힘당과 수구 언론의 정신과 의식이 요즈음 헌법재판소 탄핵심판 변론 등에서 드러나는 정도로 망가져 있을 줄은 생각지 못했다. 당시 김은혜 국힘당 홍보수석이 기자회견장에 나와 해명하는 것을 들으면서 참으로 궁색하고 불쌍하다고 생각했고, 대통령의 언어생활이 평소 얼마나 거칠면 ‘한 걸음 내디디고 입 한번 여는 사이’(一投足一開口之間)에 그 정도로 덕없음이 적나라하게 드러나는가 생각했었다.

그러나 이번에 우리는 다시 비상계엄의 주범들이 ‘의원’을 ‘요원’으로 둔갑시키고, ‘인원’과 ‘사람’을 교묘히 나누면서 우리 언어생활의 보편과 상식을 뒤흔드는 것을 보았다. 그리고 “호수 위의 달 그림자”를 운운하며 스스로 행한 일과 그 결과의 실제를 부인할 뿐 아니라, 오히려 반대의 비현실을 사실인 것처럼 태연히 주장하는 것까지 보았다. 그러면서 우리는 어쩌면 이제까지 우리의 이해와 상상이 닿는 수준의 악과 대면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그보다 더 심각한, 아니 우리 언어가 도달하기 어려운 초현실적 차원의 부패와 망령 앞에 서 있는 것이 아닌지 하는 생각을 했다.

20세기 여성 정치철학자 한나 아렌트는 19세기 후반 유럽 국민국가에서 부르주아 계급의 부에 대한 무한 팽창 욕망으로 해외뿐 아니라 대륙 내에서 식민지 쟁탈과 갈취, 배타와 혐오의 제국주의 정치가 어떻게 일어났는지, 그로부터 20세기 두 차례의 세계대전을 몰고 온 파시즘과 나치즘, 스탈린과 같은 전체주의 괴물이 전 인류의 삶을 상상조차 어려운 파국으로 어떻게 이끌어 갔는지를 이해해보려고 했다. 그녀는 먼저 부의 무한 팽창을 추구하는 제국주의 정치가 의회 민주주의를 붕괴시키면서 자신들을 모든 ‘정당’ 위에 두려는 ‘정당 위(above parties)’의 정치를 휘두르는 폭압이었음을 밝혔다. 파시즘은 거기서 나와서 자신들을 ‘국가’ 위에 두려는 ‘국가 위(above the state)’의 독재였고, 그로부터 전체주의자들은 입만 열면 자신들이야말로 진정 혁명적으로 국민을 위하고, 소외되고 낙오된 사람들을 위한다고 말했지만, 실상은 그 국민도 짓밟고 국가를 붕괴시키면서 무소불위의 권력자로 등극하는 ‘국가와 국민 위(above state and people)’의 초시간적 폭력자로 군림하는 시도였음을 밝혔다.

대화와 타협의 일인 정치와는 전혀 무관한 삶을 살았던 윤석열이 갑자기 한 정당의 대선후보로 세워져 대통령이 된 후, 그는 민주주의의 정당정치를 무시했고, 비상계엄으로 국가의 법을 무력화시키면서 국가 위에 서고자 했다. 요즈음 우리가 보는 대로, 그는 국가의 최고 법적 권위를 지닌 헌법재판소에 나와서 온갖 기만과 거짓, 황당함과 안하무인으로 행보하면서 그 권위까지 흔들고 있다. 이러한 모습은 스스로가 국가(법) 위에 있다고 주장하는 초국가적 파시스트의 모습 바로 그것이다.

그런데 지금 윤석열과 그 일당은 대한민국 국민이 일상에서 지극히 자연스럽고 순하게 매일 써오던 상식과 보편의 언어를 뒤흔들고 있다. 그래서 상식과 보편에 서 있는 사람들의 정신을 어리둥절하게 하고, 말문을 막히게 하고, 판단을 흐리게 하면서 우리 사회와 공동의 삶을 극심한 혼란과 분열에 빠뜨리고 있다. 아직 대통령인 사람이 대한민국 국민 누구도 경험해보지 못한 비상식으로 일상의 언어를 뒤트는 것을 보면서 사람들은 이제 매일의 언어생활에서조차 안정과 안심, 자연스러움을 잃고서 언제나 전전긍긍 노심초사하고, 호시탐탐 상대를 의심하면서 자신들의 언어생활을 하나의 전쟁터로 여기게 되지 않을까? 상대에게 책잡히지 않도록, 지지 않고, 아니 어떻게든 이기려고 술수와 거짓으로 치장하면서 진의를 감추면서 모두 좀비처럼 살아가게 되는 것은 아닐까?

한 사람에게 마지막으로 남는 것이 언어라고 한다. 언어가 깨지는 것은 현실과 실제와 관계 맺는 마지막 끈을 놓아버리는 것이고, 그래서 판단과 감각과 상상은 어디로 날아갈지 모르게 된다. 언어가 깨지는 것은 사유를 그치는 것이고, 양심이 더 이상 작동하기 어렵다는 것이며, 남는 것은 지독한 불신과 공포, 만인 대 만인의 싸움과 거친 폭력과 혼란뿐임을 의미한다. 윤석열이 이러한 정도로 우리 공동체적 삶의 근본과 토대를 흔들고 있으니, 그는 분명 모든 생명과 삶을 불식시키는 전체주의적 망령에 사로잡힌 사람이라고 말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런데 어떻게 그와 같은 망령이 21세기 대한민국에 등장하게 되었을까? 어떻게 그리도 많은 사람이, 정당과 법과 학계와 기업, 또는 종교계의 엘리트들조차 그와 같은 망령을 여전히 두둔하고 추종하며 환호하고 있을까? 아렌트가 암시했듯이, 나치와 같은 전체주의 등장의 어두운 심연에 배타적으로 변해버린 유대기독교의 근본주의적 초월 신 이해가 흐르고 있었다면, 오늘 우리도 전광훈류의 극우기독교를 성토하면서도 유사하게 쓰고 있는 스스로의 기독교적 언어를 함께 검토하고 성찰해야 하지 않을까? 오늘 전 세계를 휘감는 신제국주의적 시장 자본주의를 포함해서 서구 문명을 연 유대기독교의 절대주의적 초월 신 이해는 그런 의미에서 어쩌면 자신의 생명력을 다했는지도 모르겠다. 신학(神學)에서 신학(信學)으로 전환은 그 길 위에서의 고투이다.

이은선 교수(한국信연구소 소장)  webmaster@ecumeni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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