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돌로 쌓아 만들어진 밭둑. 언제 이렇게 쌓았을까.

올해 초, 농림축산식품부에서 각 시도별로 논재배면적 감축 시행령이 내려왔다. 2025년부터 2029년까지 전국 논 재배면적의 약 11%를 감축하는데, 올해 8만ha로 시작하여 총 60만ha를 줄이기 위한 내용이다. 이유는 쌀소비가 감소에 따라 가격을 안정시키기 위함이라고 한다.

하지만 정말 농민에게 유익한 쌀값 안정 대책일까. 이미 농민들은 알고 있다. 무역협정에 따른 쌀 의무수입량과 거의 동일한 비율의 쌀 생산을 줄이기 위함이라는 것을. 전국 쌀 생산량이 한해에 약 400만톤이다. 외국에서 들어오는 쌀은 생산량의 약 10%인 약 40만톤이다. 의무수입은 판도라의 상자이기에 자국의 농민들에게 줄이라고 강요하는 꼴이다.

그나마 천만다행이라고 해야하나. 농민 개인의 입장에서 논벼 대신 콩, 팥 등의 밭작물로 재배작물을 전환할 경우에는 감축 의무가 사라진다. 그러나 농민의 재배작물 자유권이 무참히 묵살되는 격이다. 누구를 위한 ‘논재배면적 조정제’일까. 그리고 논으로 사용할 수 밖에 없는 농지는 어떤 선택을 해야 할까라는 궁금증이 들었다.

그러던 찰나 이번 정부가 들어오면서 했던 농지에 대한 폭력을 다시 한번 기사로 살펴보았다. 지금까지 농지에 농사용 농막 6평을 짓는 것까지 허용하던 것을 ‘농촌체류형 쉼터’라는 이름으로 10평까지 늘렸고 농지에 주차장까지 만들 수 있도록 했다. 농지에 대한 이해가 전무한 무지몽매한 처사이다.

그 중 단연 최악은 특별자치도 지정이다. 제주특별자치도를 제외하고 23년도 강원특별자치도, 24년도 전북특별자치도가 된 이유의 뒷면에는 정부의 철저한 개발논리가 숨겨져 있었다. 작년 11월 강원특별자치도에서 특례법으로 절대농지(농업진흥구역)의 약 18만평(축구장 85개 규모)이 해제가 되었다. 그 자리에는 파크골프장을 비롯한 편의시설이 들어올 예정이다.

특별자치도라는 명분 안에는 정부의 승인없이 특별자치도지사의 허가로 절대농지를 해제할 수 있는 권한이 부여된다. 상위법에 위배되지 않게 특별자치도지사의 승인으로 농지, 임야와 해상을 개발할 수 있기 때문이다. 농지태양광 시설, 임야에 풍력발전소, 바다에 해상풍력발전소, 골프장, 리조트 등 사업자들이 눈독을 들이고 있는 농산어촌의 피해는 뻔해질 수 밖에 없다.

내가 살고 있는 지역의 국회의원이 전라남도의 특별자치도 지정을 위해 발로 뛰고 있다고 한다. 개발, 발전이라는 이름 붙은 지역의 민간단체들은 두손 들고 환영하는 모양이다. 정말 그게 지역을 위한 일인지 의구심이 든다. 이러다가 온 지방이 특별자치도가 되면 어쩌나 걱정된다. 결국 ‘돈’ 때문이지 않는가. 주민들의 삶을 조금이라도 생각했으면 좋겠다.

▲ 농림축산심품부의 벼 재배면적 조정제 안내문

농촌의 인구감소와 관련하여 농림축산식품부에서 추진하는 법이 있다. ‘농촌 공간 재구조화법’이다. 인구의 감소로 나타나는 현상으로 마을 주변에 있던 가게도 사라지고 교통편도 감소하고 동네의원도 없어지고 있다. 그래서 마을의 인구를 거점마을을 조성하여 살도록 이주하고 병원, 편의시설을 이용하도록 하고 이주로 인한 나머지 농촌의 공간을 에너지발전공간, 축사공간, 농지공간 등으로 재편하도록 하는 법이다.

좋은 말로 보면 인구감소에 따른 농어촌 주민들이 복지에 소외되지 않도록 하는 방안으로 보인다. 하지만 이면에는 초고령화된 주민들을 강제이주하고 비워진 공간을 개발 하여 관리하도록 하는 방안이다. 정말 이것이 농어촌 인구 감소의 대응하는 최선의 방법일까.

도시를 보자. 도시의 크기는 점차 더 거대해지고 절대적인 에너지 소비 뿐 아니라 철저히 소비지로서의 기능만 남게 될 것이다. 수도권 및 도시의 인구 분산에 대한 고민은 1도 없이 오로지 농어촌만을 바꾸고자 하는 처사다. 면과 읍을 오가며 이용할 수 있는 병원과 도서관 등 편의시설이 가까이 있고, 마을주치의가 마을에 상주하고 안전하게 근처 마을과 면소재지를 다닐 수 있는 보행로가 확보되는 게 먼저가 아닐까. 마치 회사에 출퇴근하듯 농지를 출퇴근하도록 만드는 행위가 옳은 것이가. 문전옥답을 막는 구조는 결코 최선의 방안이 아니다.

무엇이 농어촌 공간을 파괴하는 것일까. 오랫동안 인간과 자연은 서로 공생의 관계였다. 생활에 필요한 것을 자연에서 얻었고 자연으로 다시 돌려 보내주었다. 자연을 자원재료로 보기 시작한 때부터 인간의 시각이 변화했다. 자연은 대량채취 및 생산의 기반이 되었고 인간은 자연이 스스로 회복할 수 있는 시간을 허락하지 않았다.

그 밑바탕에는 자본과 제국주의의 힘이 작용했다. 농어촌 공간을 보는 시각이 이렇게 잘못가고 있는 이유도 같은 선상에 있다. 끊임없이 소비를 위해 생산을 해야하는 공간으로 보는 것이다. 농어촌의 공간이 가지는 의미는 모두 사라지고 오로지 도시건설적인 의식으로 바라본다. 건물이 없다고, 휴경 중이라고, 도로가 없는 맹지라고 해서 농어촌 공간이 비어있지는 않다.

그 곳에선 인간에게 꼭 필요한 먹거리 뿐 아니라 생명이 꿈틀대는 공간이다. 잡목이 무성한 농지 옆 숲도 때로는 세찬 바람을 막아주는 역할을 한다. 사람도 힘들면 쉬듯이 휴경 중인 농지도 쉼을 갖는다. 자연과 마을, 인간을 이어주는 공간, 바다와 육지를 이어주는 생태적인 경계, 농사에 중요한 햇빛의 양과 바람을 적절하게 해주는 생태적 지위 등도 있다.

층층 계단처럼 놓여진 다랑치 농지들을 바라보면 저절로 숙연해진다. 어디에서 이 많은 돌을 가져왔을까. 어떻게 날랐을까. 마을 사람들이 함께 모여 쌓았을 논둑, 밭둑에는 그 무엇인가가 남아있다. 농부들이 몇 년만 농사를 짓지 않으면 농지는 발을 디딜 수 없는 곳이 된다. 그렇게 수십, 수백년 동안 공 들여 쌓아진 농어촌의 탑들이 무너뜨려지지 않길 바란다.

유대은(기장 총회사회선교사)  webmaster@ecumeni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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