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해 12월 13일 저녁 울산시 남구 롯데백화점 앞 광장에서 열린 ‘울산시민대회’에 참가한 시민이 피켓과 응원봉을 흔들며 윤석열 대통령의 탄핵을 촉구하는 구호를 외치고 있다. ⓒ연합뉴스

1.

그 동안 이른바 ‘내란성 불면증’을 호소하시는 분들이 꽤 있었는데 일단 윤석열이 체포되면서 뭔가 한 고비 넘은 것 같습니다. 개인적으로는 지난 국회 탄핵 의결부터, 조금 과감하게 이야기하자면 12월 3일 당일 계엄이 바로 해제되던 그 때부터 윤석열 탄핵/퇴진 관련 상황은 일종의 잔적 소탕에 가까운 상황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고 있기도 합니다.

8년 전 박근혜 탄핵 때와 비교해 보면 집회에서 나오는 발언들이 상당히 다양해지고 여성/퀴어들이 더 적극적으로 발언할 수 있게 되었다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물론 그러면서 어김없이 페미니즘이 어떻고 퀴어가 어떻고 하는 시비를 거는 사람들도 있고, 트랜스젠더에 대한 혐오 발언들이 꽤 나오고 있다는 말도 들리지만 말입니다. 특히 트랜스젠더에 대한 혐오 발언들은 자칭 ‘페미니스트’들에게서도 나온다는 게 더 문제이기도 하겠고요.

저런 시비와 혐오를 내세우는 사람들이 많이 입에 담는 이야기 중의 하나가 지금은 오직 ‘윤석열 탄핵’ 이거 하나로 최대로 모여야 할 시기인데 페미니즘이니 퀴어니 트랜스젠더니 논란이 많은 이슈를 꺼내면 최대로 모이는 데 방해가 되지 않겠냐는 것이지요. 물론 저런 이야기를 하는 사람들이 다 시비와 혐오를 하려는 사람들은 아니라는 것은 이미 학교 수학 시간에 명제와 역명제에 대해서 배우면서 알게 되는 것이겠습니다만.

‘논란’이 많은 이슈를 꺼내면 최대로 모이는 데 방해가 된다 이런 걱정을 하고 있다면 그렇게 해서 ‘최대’로 모여 봤자 뭘 하겠냐는 생각도 듭니다만, 기본적으로 저런 이야기를 듣고 있으면 드는 생각은 논란이 많니 뭐니 무슨 말을 붙이더라도 있는 사람 없다고 할 수는 없잖아 하는 생각입니다. 있는 사람은 있는 사람대로 자기를 드러내고 참여하게 마련이니 말입니다.

2.

그런데도 불구하고 “최대로 모여야 한다”는 말로 마치 있는 사람을 없다고 할 수 있는 마냥 하는 말이 돌아다닐 수 있는 이유가 무엇일까 생각해 보다가 생각이 미치는 지점이 있습니다.

이 글의 독자분들도 많이들 느끼시겠지만 한국 사회의 갈등 구조에 대한 인식은 흔히 두 개의 큰 진영이 대립하는 그림으로 그려집니다. 그 두 진영을 하나는 보수진영이라고, 하나는 민주진보진영이라고 이름을 붙이는 것이 익숙한 입버릇이 되었습니다. 과거에는 특히 후자의 진영에 속해 있는 분들이 반민주진영과 민주진영이라고 이름을 붙이는 경우가 많았고 이번 계엄내란 상황을 통해 다시금 이런 이름이 맞는 것 아니냐는 말까지 나오고 있기도 하지요.

뭐라고 이름을 붙이든 간에 두 개의 큰 진영이 대립하는 그림이다 보니 한국 사회의 모든 갈등은 대체로 그 갈등의 당사자들이 이 두 진영 중에 어디에 속하느냐라는 식으로 이해되기가 십상입니다. 그러다 보니 그 갈등을 두고 말하는 언행들중에 상대 진영에 대해 어떻게든 흠을 잡으려는 말들이 많이 나오게 되고, 흠을 잡다 보니 억지를 쓰게 되는 경우도 많습니다. 무려 대통령이 계엄을 했다는 근거라고 대놓고 말하는 부정선거 운운하는 음모론이 그런 억지의 대표적인 경우겠고, 사실 부정선거 음모론은 이른바 ‘민주진보진영’에서도 많이 썼던 억지이기도 했죠. 이런 현상을 두고 어떤 책에서는 “저쪽이 싫어서 투표하는 민주주의”라는 말을 하기도 합니다. 윤석열에 대해서는 부정적 의견이 더 많아도 정당 지지도는 오히려 보수진영 쪽이 만만치 않게 나오는 여론조사들이 많은데 이런 현상이 벌어지는 큰 이유가 “저쪽이 싫어서 투표하는 민주주의”에 있겠다 싶습니다.

그런데 앞에서 언급한 페미니즘이니 퀴어니 트랜스젠더니 하는 이슈들에 대해 살피다 보면 느끼는 게, 이런 이슈들은 보수진영과 민주진보진영의 갈등이라는 그림에는 잘 들어맞지 않고 삐걱거리더라는 겁니다. 물론 굳이 따진다면야 보수진영보다는 민주진보진영 쪽이 더 우호적인 반응을 보이긴 하고, 보수진영에서 특히 보수 기독교 같은 경우에는 아예 지난 달에도 이번 달에도 연속으로 출교를 남발하기까지 하는 수준의 적대적인 반응도 보이긴 하죠. 그렇지만 민주진보진영이라고 적대적인 반응이 안 나오는 것도 아닌데다가, 그렇지 않더라도 예를 들어 차별금지법은 ‘먹고 사는 이슈’가 아니니 지금 추진할 때가 아니다(이재명) 이런 식으로 찬밥 신세가 되는 경우가 대부분이죠. 최대로 모여야 하는데 운운하는 말이 나도는 것도 이런 삐걱거림의 한 예가 아닐까 싶습니다.

그리고 사실은 이런 삐걱거림이 가장 크게 나타나는 건 노동자들의 경우가 아닐까 합니다. 말 그대로 보수진영 정부가 집권해도 얻어맞고 민주진보진영 정부가 집권해도 얻어맞으니 말입니다. 그러니 이런 삐걱거림을 두고서 다시금 이런 말을 할 수밖에 없겠죠. 페미니즘, 퀴어, 트랜스젠더, 노동자들 등등, 엄연히 있는 사람을 없는 셈 칠 수는 없다면, 사실은 보수진영과 민주진보진영이라는 이 그림 자체가 잘못된 거 아니겠느냐고 말입니다.

3.

이번 계엄내란 사태 이후 공화주의와 민주공화정 등에 대한 이야기들이 많아졌습니다. 계엄내란이란 공화주의와 민주공화정에 대한 심각한 위반일 수밖에 없으니 저런 이야기들이 많아지는 건 당연할 겁니다. 그래서 그런지 이 계엄내란 사태를 우두머리와 관계자들, 동조자들의 일벌백계로 해결하여 공화주의와 민주공화정의 원칙을 세워야 한다는 말들을 많이 봅니다.

물론 우두머리인 윤석열을 비롯해 일벌백계라는 말에 어울리는 중벌을 반드시 받아야 할 사람들이 있지요. 그런데 왠지 저는 이런 생각이 자꾸 듭니다. 과연 공화주의/민주공화정 등이 저런 말들처럼, 그에 어긋나는 사람과 행동을 벌하고 없앰으로써 정립될 수 있는 것일까 하는 겁니다. 덧붙여서 말하면 이런 생각까지도 해 보게 됩니다. 저 공화주의/민주공화정 등에 대해 하는 말들의 속뜻의 큰 부분은, 현재의 민주진보진영이 현재의 보수진영을 공화국에 존재해서는 안 되는 진영으로 낙인찍기에 성공할 수 있고 성공해야 한다는 말이 아닐까 하는 겁니다.

물론 현재의 보수진영은 해방 이후 지금까지 민주주의, 정확히 말하면 자유민주주의라는 것을 자기들의 독점물로 이해해 왔고 아예 현재의 한국에서는 자기들(만)이 디폴트 상태이며 상대 진영인 민주진보진영을 그 디폴트 상태를 변화시키려는 불순세력으로 몰아온 진영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공화국에 존재해서는 안 되는 진영이라고 누군가 말한다면 당연히 동의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앞에서 말한 “저쪽이 싫어서 투표하는 민주주의”가 엄존하고 있다면 한 쪽 진영에서 다른 쪽 진영 낙인찍기한다고 그게 순순히 통할 리도 없겠다는 생각이 먼저 들기도 하거니와요. 자기들이 낙인찍기의 정당한 주체라고 믿고 있는 소위 민주진보진영 역시 앞에서 이야기했던 삐걱거림과 있는 사람 없는 셈 치기를 하는 건 마찬가지라면 공화주의와 민주공화정 등등에 그만큼 결격이긴 마찬가지 아닐까 싶은 겁니다.

그래서 이런 생각도 해 보게 됩니다. 정말 공화주의란 것을, 정말 민주공화정이란 것을 하고 싶다면, 그 적이 누군지를 찾아서 억누르는 것도 억누르는 거지만, 그보다 먼저 필요한 것은 바로 “있는 사람 없는 셈 치기”를 안 하는 것이 아닐까 하고 말입니다. 사실 있는 사람 없는 셈 치려고 하는 게 무슨 ‘민주’주의겠습니까. 그래서 보수진영/민주진보진영이라는 이 그림 자체를 깨고 “있는 사람 없는 셈 치기”를 당했던 사람들이 한 자리를 차지하는 그림이 새로 나와야 그 그림에 익숙해진 사람들이 공화주의건 민주공화정이건 할 수 있지 않을까. 그런 생각을 해 보게 된다는 말입니다.

황용연(사회적 소수자 선교센터 무지개센터 대표)  webmaster@ecumenian.com

<저작권자 © 에큐메니안,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