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왼쪽부터) 충암고등학교 선후배인 김용현 국방부 장관, 윤석열 대통령,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 ⓒ연합뉴스

지금 대한민국은 지옥 끝까지 추락했다가 열흘 만에 다시 살아난 감격을 맛보고 있다. 이러한 반전이 어찌 가능했을까. 누가 무어라 해도 국가 정변을 남의 일로 여기지 않고 목숨 걸고 거리로 뛰쳐나온 민주시민들의 공이다. 더구나 달아보고 세어봐도 더는 용납할 수 없어 사악한 윤석열 정권의 목숨줄을 끊기로 작정한 보이지 않는 그분의 손(단 5장)을 우리는 분명히 체험했다. 지난 1년 넘게 촛불이 이어져 왔지만, 끝내 임계점을 넘지 못하던 탄핵 열기를 내란의 수괴가 된 대통령 자신이 더는 막을 수 없게 전국으로 확산시켰다. 계엄령 해제 후 국회 탄핵 표결에 부족했던 정족수도 그의 가증스러운 변명 한 번으로 꽉 채워졌다.

대통령의 친위 쿠데타는 완벽하게 실패했지만, 그동안 일어난 숨겨진 행간들을 들여다볼수록 가슴 철렁한 지점이 한둘이 아니다. 성공 여부를 떠나서 그들의 시나리오는 너무 위험하고, 끔찍했다. 문민 시대 이후 안기부로 대변되는 정보기관과 군대로 대변되는 무력기관을 대신해서 검찰이 정권의 사냥개를 넘어서 살아 있는 최고 권력 자체로 변신했다. 서울중앙지검장과 검찰총장을 역임한 윤석열이 대통령이 되면서 검찰 공화국은 상징이나 비유가 아니라 현실이 되었다. 지난 2년 남짓 검찰은 군대나 안기부처럼 직접 물리력을 행사하지는 않았지만, 윤석열을 우두머리로 해서 기소독점권이라는 합법성에 기대어 공권력을 자의적으로 행사하며 국정에 개입했고, 통치에 관여했다.

또한 우리는 군사독재 종식 이후에 놓친 게 하나 있었다. 군 통수권자이지만 특별히 군대 기반이 없는 5년 단임의 민간 대통령에 의해서 군사 쿠데타가 더는 불가능할 것이라는 낙관이었다. 그러나 대통령 윤석열을 정점으로 행정안전부 장관 이상민, 국방부 장관 김용현, 경찰 101경비단장 황세영, 국군 방첩 사령관 여인형, 777 사령관 박종선 등이 포진해서 행정부와 군에 ‘하나회’와 같은 사조직 ‘충암파’를 만들어가고 있었다. 특히 지난 10월 초에는 평양 상공에 한국군의 드론이 나타나 김여정 북한 노동당 부부장이 엄중히 경고하는 사태까지 벌어졌는데, 이번에 그것이 대통령의 비호 아래 김용현 국방부 장관의 짓으로 확인되었다. 남북 간 긴장을 통해서 정국을 통제해 보려던 위험천만한 발상이었다.

윤석열은 계엄선포 담화문에서 그 흔적을 여지없이 드러냈다. “북한 공산 세력의 위협으로부터 자유 대한민국을 수호하고 우리 국민의 자유와 행복을 약탈하고 있는 파렴치한 종북 반국가 세력들을 일거에 척결하 … 기 위해 비상계엄을 선포합니다.” 계엄사령관 명의의 계엄포고령 역시 같은 맥락이었다. “자유 대한민국 내부에 암약하고 있는 반국가 세력의 대한민국 체제 전복 위협으로부터 … 지키기 위해 …포고합니다.” 국민의 안전과 평화를 지켜야 할 정부가 군대를 통해 군사적 위기를 조성하여 계엄에 활용하려 했던 섬뜩한 시도가 확인된 것이었다. 만약 이번에 계엄령이 실제로 성공했다면, 한반도 전체가 전쟁의 참화로 이어질 만한 정변이 계속됐을지도 모를 일이다.

윤석열이 대통령으로 재임한 지난 2년 반 동안, 국가안보와 평화, 세계 주요국과의 협력, 경제위기와 빈부격차, 기후 위기와 친환경 전환 등 모든 분야가 신속히 망가졌다. 국정 지지율이 20%대를 벗어나지 못했던 대통령 자체가 모든 국정의 최대 리스크로써 존재했다. 그런데도 그는 한 번이라도 반성하기는커녕 오히려 국민을 겁박하며 가르치려고만 했다. 그의 계엄 쿠데타로 가뜩이나 어려운 국가 신인도와 경제 상황은 악화일로에 있고, 특히 미국의 트럼프 당선 이후 급변할 국제정세에 대해서 대비하기 힘든 상황이 되었다. 이번 정변을 통해서 우리가 얻은 교훈은 참으로 크다. 무엇보다 구시대의 일로 치부되었던 정치 정변과 군대 동원이 여전히 가능한 현실임을 직시하면서, 군대가 정권이나 특정 정치지도자가 아닌 국민의 군대가 되도록 엄정한 중립과 감시, 문민화를 구축해야 한다는 것이다. 다시는 안보 상황과 남북관계를 정권 보위에 악용하는 사례가 일어나지 않도록 제도를 정비해야 한다는 것이다.

우리 민주시민들은 드디어 윤석열 탄핵을 이루어냈다. 그러나 이는 시작일 뿐 완성이 결코 아니다. 우리 민주시민들의 목표와 임무는 윤석열을 대신할 대통령을 다시 뽑는 데만 있지 않다. 이제 대한민국의 재구성과 국가적 대전환을 심도 있게 논의해야 한다. 특히 이번 계엄 사태에서 확인되었듯이, 국가 지도자가 될 능력과 인성을 결여한 자라도 대통령의 자리에 앉아 무엇이든 할 수 있는 무소불위 권력의 제왕적 대통령제를 시대적 요구에 맞게 헌법을 개정해야 한다. 2016년 촛불로 탄생한 문재인 정부가 무책임하고 무능력한 국정을 운영한 것이 결과적으로 윤석열이라는 괴물 정권을 탄생시켰다는 사실을 철저히 복기하고, 다시는 비극의 역사가 재발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 탄핵 성공, 지금이야말로 정신을 차려야 할 때이다.

구교형 목사(십자가로교회)  webmaster@ecumeni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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