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리스도교 공동체인 교회는 사랑의 실천에 있어 내외부를 나눌 수 없지만, 어느 곳보다 사랑은 충만해야 할 곳은 공동체 내이다. ⓒGetty Images

이 구절은 가깝게는 15,1-6의 포도원 비유에 이어 읽어야 하고, 좀 더 멀리는 그것이 13,34 이하부터 반복적으로 새계명을 다루는 말씀 ‘모음집’의 끝부분에 위치하기 때문에 이를 염두에 두고 읽어야 합니다. 그렇다고 이 구절의 의미가 그 자체로 이해되지 않는다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그 반대입니다. 그럼에도 함께 읽을 때 이 말씀의 깊이와 중대함이 충분히 인식될 수 있습니다.

예수는 여기서 그와 하나님의 관계에 비춰 그와 우리의 관계를 이야기합니다. 그리고 그 관계들의 성립·존속 요건을 계명에서 찾습니다. 예수는 하나님의 아들로서 이 땅에 왔음에도 아들과 아버지의 관계는 그에게 당연한 것이 아닙니다. 그 중심에 계명이 있고, 그 계명이 관계를 매개한다는 사실이 뜻밖입니다.

(율)법이 법 전체를 가리킨다면, 계명은 구체적인 법조항을 가리킨다고 해도 좋을 것입니다. 그러면 그 관계의 조건인 계명은 무엇인지요? (율)법 전체를 총괄하는 계명들은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이기에 이를 하나로 묶으라고 하면 사랑하라가 될 것입니다.

아버지의 계명은 구체적으로 언급되지 않지만 사랑하라는 것이 되지 않을까요? 세상을 사랑하신 하나님처럼 예수 역시 세상을 사랑하고 세상에 생명과 진리와 평화의 길을 내고 그 길 위에서 자기 목숨을 내주셨습니다. 예수는 그렇게 하나님의 사랑을 이어갔습니다.

그렇게만 말하면 잘 알려진 ‘고백’과 다를 바 없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함으로써 그는 아버지의 사랑 안에 머물 수 있었다면, 이는 충격에 가깝습니다. 아들이 그럴진대 하물며 사람이야 어떻겠습니까?

예수를 믿는다고 하는 사람들이 다 예수 안에, 그의 사랑 안에 머물 수 있을까요? 그렇게 되는데 아무 조건이 없을까요? 본문은 ‘내 계명을 지키면’이라는 단서를 분명하게 제시합니다. 13,34-35에서 예수는  우리에게 새계명을 주며 서로 사랑하라고 합니다. 그래야만 예수 안에, 그의 사랑 안에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여기서 주의해야 할 것은 ‘서로’라는 말이 사랑의 범위를 이를테면 교회 안으로 좁히는 것으로 이해되어선 안 된다는 것입니다. 15,1-6의 비유는 가지가 포도나무에 붙어 있으나 열매 맺지 못하면 잘려 버려질 것이라고 경고하며, 열매 맺기 위한 전제는 예수 안에 있어야 한다고 말합니다. 예수 안에 있다는 것은 예수를 따라 예수처럼 사는 것이고, 그 삶은 예수에게서 오는 사랑을 밖으로 내보내는 삶입니다.

이 삶을 공동체 내부로 한정시키는 ‘서로’라는 말이 그 삶과 어울릴 리가 없습니다. 그런데도 서로라는 말을 덧붙였다면, 그 이유는 그 공동체에 있어야 할 사랑이 더 이상 없어서 그런 것 아닌가 하는 의문이 생깁니다. 밖을 향해 사랑을 이야기하고 또 사랑을 해야 하지만, 서로조차 사랑할 수 없게 된 공동체의 현재인 것 같습니다. 서로 사랑하라는 것은 사랑의 회복을 위한 명령입니다.

사랑의 회복이 공동체의 회복을 가져오고, 공동체의 회복은 세상에 사랑의 미래를 가져오는 전령이 될 것입니다. 모든 사람들이 그 사랑 때문에 저들을, 그 공동체를 예수의 제자인 줄 알게 되고, 그 앎이 변화의 시작이 될 것입니다.

사랑을 잃은 사랑의 공동체는 포도나무에 붙어 있을 수 없는 가지이며, 예수 안에 그리고 하나님 안에 머물러 있을 수 없습니다. 사랑을 그 안에 가두는 것도 또한 가능하지 않은 일입니다. 그러면 공동체는 세상을 향한 예수의 시선과 하나님의 사랑을 가로막는 장애물이 되겠기 때문입니다. 내리 사랑이란 말을 빌어 비유하자면, 사랑은 흐름입니다. 하나님에게서 우리에게, 우리에게서 세상으로 이어지는 흐름입니다.

김상기 목사(백합교회)  webmaster@ecumenian.com

<저작권자 © 에큐메니안,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