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삶에서 ‘재미’가 가장 우선인 주인공 이정도가 성장하는 이야기를 그린 영화 <무도실무관>은 그저 이정도만의 이야기가 아니라 우리 사회에서 흔히 보게 되는 사회적 약자들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화면 갈무리

추석 명절이 시작되기 전부터 모 OTT 서비스에서 영화 한 편에 대한 광고가 SNS 상에 넘쳐 났다. 나도 꽤나 좋아하는 배우가 주인공으로 등장해 한껏 기대하게 되었다. 구독하는 OTT 서비스 하나 없는 내가 그 영화를 관람할 수 있는 방법은 동생네 집 뿐이었기 때문에 추석 명절 귀향에 또 하나의 구실이기도 했다.

신성한 소재, 몰랐던 세계

그 영화 제목은 <무도실무관>이었다. 영화 <무도실무관>은 태권도, 검도, 유도 도합 9단 무도 유단자인 이정도(김우빈 분)가 우연한 기회로 무도실무관이 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그린 액션 영화이다. 극중 이정도는 평범하고 속 편한 젊은이로, 친구들과 아지트에서 게임을 하고 술을 마시며 수다 떠는 일상을 보내고 있었다. 그러던 중 우연히 범죄자의 공격을 받던 무도실무관을 도와주게 되고, 보호관찰관 김선민(김성균 분)의 제안으로 임시 무도실무관 대행을 하게 된다.

극중에 등장하는 ‘무도실무관’에 대해 짧게나마 설명해야 할 것 같다. 사실 나도 이 영화를 통해 무도실무관이라는 직업을 처음 알게 되었으니 말이다. 무도실무관은 법무부 산하 보호관찰소에서 근무하는 실무직 공무원이다. 이들의 주요 임무는 재범 가능성이 높은 전자발찌 착용 대상자들을 24시간 모니터링 하는 것이다. 또한 전자발찌 훼손, 외출 제한 시간 위반 등 이상 상황 발생 시 즉시 출동하고 대상자의 이상 행동을 감지하고 대응해 재범을 방지한다.

다시 영화 이야기로 돌아가 임시 무도실무관을 맡은 이정도는 처음에는 생각과 다른 업무에 따분함을 느낀다. 하지만 영화는 이 따분한 모습을 몇 초 보여주지도 않는다. 사실 이 부분에서 조금 놀랐다. 즉 영화의 속도가 엄청나게 빠르게 진행된다. 후다닥 후다닥 영화가 진행되는데 지루할 틈이 없었다. 영화의 줄거리도 빈틈이 별로 없어 좋기도 했다.

영화의 줄거리는 이정도 마무리하는 것이 좋을 것 같다. 이미 관람한 독자 여러분도 계실 것 같지만, 아직 관람 전인 독자 여러분도 있으시니 더 이상 썼다가는 스포일러가 되기 때문이다. 하여간 작품성이라는 말이 너무 거창하지만 꽤나 탄탄한 구성을 이루고 있어 관람을 후회할 영화는 아니다. 그럼에도 영화의 큰 구성은 그리 새로울 것은 없다. 주인공에게 닥친 어려움을 풀어가는 방식이 더욱 그렇다.

정의가 무엇인지 깨달아 가고 있다

이제 이 영화에서 발견한 몇 가지 써볼까 한다. 영화에서 발견한 것 중 하나는 현재 한국 2-30대 청년들을 꽤나 사실적으로 그려내고 있는 점이었다. 특히 주인공이 신조로 여기는 “재미”라는 것이 과장된 면이 없지 않지만 정말 젊은이들의 삶을 관통하고 있는 것으로 보였는데, 이제 20살을 한 해 앞두고 있는 내 조카도 재미가 없으면 정말 아무것도 안 하려는 모습을 꽤나 자주 목격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내 조카도 재미는 없지만, 무언가 해야 한다는 결심을 하면 내가 알던 내 조카가 맞나 싶을 정도로 몰입하는 모습을 자주 발견했던 것처럼, 극중 이정도도 그랬다. 즉 이 영화는 이정도의 성장 스토리이다. 돈을 많이 벌어야 한다는 생각 자체가 없고, 극중 아버지를 도와 소소하게 알바를 하며 수입을 내는 것이 전부이다. 이렇게 손에 쥔 적은 수입으로 좋아하는 사람들과 재미있는 것을 하면서 살아가는 것이 이정도의 모습이다.

그런 이정도가 임시 무도실무관 직무를 대행하면서 다른 재미를 찾아가게 된다. 즉 정도가 찾은 또 다른 재미는 어려움에 처한 자신 주위의 사회적 약자들을, 표현이 조금 그렇지만, ‘돕는’ 재미를 알게 된다. 여기에, 좀 거창한 어휘인 것 같지만, ‘정의’라는 것을 알게 된다. 세상사가 명확하게 흑과 백으로 나뉠 수는 없지만, 이정도는 무엇이 옳고 그른지를 알게 되었다는 뜻이다. 자신이 살아가는 공간에서 이웃으로 살고 있는 사회적 약자들을 고통스럽게 하는 것이 ‘불의’라는 점을 깨닫는다.

그럼에도 악은 분명히 남자다

한 가지 내 눈에 들어온 사실 중 하나는 극중에서 고통당하는 이웃으로 등장하는 사회적 약자들이 누구냐는 점이었다. 이정도가 극중에서 ‘이모’라고 부르는 미용실 원장님, 흔하디 흔한 동네 고깃집에서 노동하는 이주여성노동자, 그리고 초등·중학생 여자 아이들이었다. 성범죄의 대상이 되는 여성들이 우리가 살아가는 공간에서 이웃으로서의 사회적 약자였다.

동어반복이지만, 이들을 자신들의 쾌락의 도구로 여기는 남자 성범죄자들, 특히 아동 성범죄자들이 극중에서 악 그 자체였다. 너무 극명한 흑백 논리가 깔려 있지만, 사실 이 이분법을 넘어설 수 없는 것이 우리네 현실이다. 여성가족부에서 지난 5월 10일 발표한 자료에 의하면 아동을 대상으로 한 성폭력범죄는 전체 성폭력범죄의 27.5%를 차지하고 있었다.

구성 비율 추세는 2014년 25.8%에서 2022년 29.0%로 9년 사이 증가했다. 아동 대상 성폭력범죄에서 가장 높은 비율은 차지하고 있는 범죄는 강제추행(73.9%)이고, 그다음은 강간(19.1%)이며 유사강간은 7.1%로 그 비율이 매우 낮았다. 지난 9년 동안 아동 대상 성폭력에서 유사강간은 증가한 반면, 강간은 등락을 반복하며 비율을 유지하고 있다.

또한 지난 6년간 전체 22,318명의 피해 아동·청소년 중 20,700명이 여성으로 92.8%의 압도적인 비율을 차지했으며, 성폭력범죄 유형별 여성 피해자 비율은 강간 99.6%, 강제추행 91.2%, 유사강간 83.6% 순이었다. 아동 피해자 중 남아는 9.6%였고, 청소년 피해자 중 남자 청소년은 5.4%로 청소년에 비해 아동 피해자의 남성 비율이 더 높았다. 남성 피해자 비율은 아동 대상 성폭력범죄(6.5%→7.8%)와 청소년 대상 성폭력범죄(3.5%→5.8%) 모두 소폭 증가다.

지난 9년간 아동·청소년 대상 성범죄로 신상정보 등록처분을 받은 총 26,842명 중 집행유예를 선고받은 범죄자의 비율이 49.2%로 가장 높았다. 그다음은 징역형 36.1%, 벌금형 13.8%, 기타 0.9%의 순이었다. 징역형(33.0%→38.3%)과 집행유예(44.1%→54.8%) 비율은 소폭 증가했으나, 벌금형(22.1%→6.3%)은 감소하며 최종심 선고형의 종류 중 가장 큰 변동폭을 나타났다.

그리고 아동·청소년 대상 성범죄로 신상정보 등록처분을 받은 성범죄자(26,842명) 중 최종심에서 징역형을 선고받은 성범죄자(9,676명, 무기징역 등을 선고받은 16명 제외)의 평균 징역형량은 46.1개월 즉, 3년 11개월이었다. 지난 9년 동안 평균 징역형량(49.1개월→47.3개월)로 줄어들었다. 징역형을 선고받은 아동·청소년 대상 성폭력 범죄자 7,608명의 평균 징역형량은 49.6개월로 4년을 약간 초과해 지난 9년 동안 평균 징역형량은 큰 변화가 없었다.

극중에서도 잠시 등장하는 내용이지만, 왜 이렇게 솜방이 처벌일까 하는 생각이 드는 부분이다. 판결을 다투는 논리 과정은 사실 법조인이 아니라면 납득이 안 되는 것이 사실이다. 속된 말고 ‘뭐? 고작?’이라는 분노가 터져 나오고 ‘더 무거워야 하는 것이 아니냐’는 비판이 계속되는 것도 사실 그렇다.

진부한 클리셰이지만, 그들은 온전한 인격체

또 하나 이 영화에서 등장하는 이정도의 친구들의 모습이 흥미로웠다. 극중 초반에 이정도와 함께 온라인 게임을 즐기는 친구들의 정보는 하나도 등장하지 않는데 영화가 끝날 때까지도 덮어둔다. 그런데 어느 순간 사건을 해결하기 위해 의기투합 하는 장면에서 이정도의 친구들의 남다른 능력들을 보여준다.

이런 장면이야 영화에서 자주 다루어지는 모습이다. 이렇게 흔히 보이는 이런 장면에서 내가 느꼈던 점은 내가 바라보는 2-30대 청년들에 대한 고정관념이었다. ‘아우, 쟤들 왜 저러고 미래도 없이 막 사냐? 그냥 막노동이라도 해서 먹고 살 생각은 안 하고 왜 저러고 살아?’ 하는 게 내가 가지고 있던 청년들에 대한 선입견이었고 나의 무의식의 밑바닥에 깔려 있는 것을 발견했다.

이정도와 함께 사건을 해결해서가 아니라, 이정도의 친구들에게 그냥 미안해졌다. ‘아, 정말 못된 꼰대 늙은이가 되었구나’ 하는 생각도 몰려왔다. 청년들의 입장에서 뭘 생각한적이 한 번도 없었기 때문이었다. 정말 반성 많이 했다. 내가 살아온 삶의 과정으로만 청년들을 판단했던 과거가 주마등처럼 지나갔다.

그리고 결국 울었다

마지막으로 조금 우스운 이야기를 해야겠다. 영화의 마지막에 이르러 사건을 해결하려고 분투하는 이정도의 모습을 보다가 결국 울었다. 사실 ‘저런 청년이 얼마나 되겠어?’ 하는 의문을 가지는 것 자체가 청년들에게 불경스러운 일이지만, 어쩌면 현실 속에서 소수일지도 모른다. 반대로 나와 같은 또래 중에는 많았나 하고 생각해 보면 그 숫자도 별반 다르지 않을 것은 확실하다.

그런데 우리 때는 마치 다수였고, 지금은 소수라고 생각하는 것 자체가 사실 어처구니 없는 과장이다. 예나 지금이나 정의가 무엇인지 분명하게 선을 긋고 그 정의를 행하기 위해 일어섰던 사람들은 늘 소수였다. 만약 다수였다면 지금 우리 사회를 둘러싼 모든 일들이 이 지경까지 흘러왔을까? 그럼에도 그 소수들의 눈물 겨운 희생으로 우리 사회는 한발 한발 걸어왔던 것 뿐이다. 그 희생이 안타까워지는 시절을 만난 것이다.

하여간 정의를 행했던 사람들이 다수였다는 환상은 이제 버려야 할 때이다. 아니, 나만 버리면 될 것 같다. 사회 곳곳에서 재미지게 살아가는, 그러나 꼰대들의 눈에는 그저 그런 청년들로 보이는, 그 청년들이 때와 장소와 기회가 생기면 정의의 사도가 될 것은 확실하다. 그저, 나와 꼰대들의 기준으로, 조금 느릴 뿐이다.

한 가지 조금 아쉬운 것이 있었다면, 이정도였다는 점이었다. 이정‘순’이었면 어땠을까?

이정훈  typology@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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