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년 5월 20일은 내국인과 외국인 사이의 문화적 소통을 위해 정부가 지정한 세계인의 날이다. 원래는 유엔이 정한 세계 문화다양성의 날인 5월 21일을 세계인의 날로 하려고 했으나, 부부의 날과 겹쳐 5월 20일이 세계인의 날이 되었다.

그리고 이 날은 재한외국인처우기본법에 의해 지정되었기 때문에 법에서 정한 재한외국인의 정의대로 한다면 미등록체류 외국인은 대상에서 제외되고 있다. 사실상 지정된 날짜나 적용 범위를 생각한다면 미완의 세계인의 날인 셈이다. 전 세계인이 온전한 문화적 소통과 차이를 넘어 더 가까이 가기 위해서는 체류자격 때문에 문화적으로 소외되는 사람이 없어야 한다.

▲ 사진출처 / NEWSIS(뉴시스)

세계인의 날 행사가 다양하게 펼쳐지고 있는 오늘도 세계에는 관심과 구호가 필요한 안타까운 이면도 존재하고 있다. 진도 7.8의 강진 이후에도 진도 6이 넘는 강한 여진으로 아직까지 구호와 복구가 어려운 지경에 처한 네팔이나, 일상이 전쟁이 되어버린 팔레스타인 사람들, 난민 신세로 바다 위를 떠돌며 절망의 나날을 보내고 있는 로힝야(Rohingya)족 등이 있다.

특히 지난 5.18민주화운동의 날에는 한국의 시민단체들이 공동으로 성명을 발표하고 한국정부를 비롯하여 태국, 말레이시아, 인도네시아 정부 등 국제사회를 향해 로힝야족에 대한 즉각적인 인도적 지원과 구조를 촉구하기도 하였다.

한국에서는 로힝야족이 생소하지만 미얀마 아라칸 지역에 거주하는 이슬람 소수종족 로힝야 사람들은 수백년 전부터 차별과 억압 속에서 고통 받아 왔다. 아라칸 지역은 방글라데시 국경과 맞닿아 있는 미얀마 국가 안에 있는데, 로힝야 족은 몇 백년 전부터 그 지역에 살고 있었다. 그러다가 영국 식민지 시대가 끝난 이후 국경이 생기면서 벵갈족 출신으로 이슬람 종교를 갖고 있는 그들은 불교 국가인 미얀마 지역에 남게 되면서 갈등이 시작되었다. 그 후 현재까지 방글라데시와 미얀마 정부는 서로 이들을 떠넘기는 상황이 계속되고 있다.

최근 태국 정부가 미얀마 난민캠프를 폐쇄하면서 8,000여명의 로힝야 난민들이 바다위에서 오도 가도 못하는 상태에 놓여있지만 이들에 대한 지원이 전무한 상황이어서 대규모 참사가 예상되고 있다. 더욱이 브로커들이 고기잡이 배에 취직시켜 준다고 속여서 로힝야 난민들에 대한 인신매매도 자행되고 있다고 한다.

인도네시아와 말레이시아 당국은 지난 5월 9일과 10일 이틀에만 1천500명의 난민들이 자국 해안으로 밀려오자 12일엔 더 이상 보트피플을 받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배가 가라앉는 등 위험한 경우가 아니라면 필수품만 제공하고 바다로 되돌려 보내겠다는 것이다. 이 로힝야 난민 보트피플 상황은 현재 국제사회에서 가장 심각한 인권 침해 문제로 부각되고 있다.

우리센터에는 방글라데시에서 온 이주노동자와 미얀마에서 온 이주노동 모두 찾아오고 있다. 오래된 역사적인 문제와 외교적인 문제로 로힝야 난민 문제에 대한 견해도 서로 다를 수밖에 없다.

미얀마에서 이주노동자로 왔다가 난민 인정을 받은 버마족 출신 U 씨는 미얀마에 135개 이상의 민족이 있는데, 어떤 민족도 차별하지 않고 있지만, 로힝야족은 미얀마에 구성하는 종족으로 인정되지 않고 있기 때문에 미얀마에서 그들은 책임질 이유가 없다고 한다. 미얀마의 군사정부가 민주화를 요구하는 국민들에 대응하느라 국경관리를 제대로 하지 못하고 있을 때 방글라데시나 인도 쪽에서 국경을 넘어온 벵갈족이라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미얀마 아라칸 지역에 불을 지르고 원주민을 몰아내고 거주하면서 불교국가인 미얀마에 위협적인 이슬람 근본주의자들이기 때문에 시민권을 줄 수 없다고 주장한다.

실제로 1970~80년대 미얀마가 경제적으로 부유했을 때는 인도나 방글라데시의 대부분 이주노동자들이 당시 버마 수도인 양곤에 가서 일하는 것이 꿈이었다고 한다. 로힝야족이 1960년대만 해도 10만 명 이하였는데 현재는 100만 명이 넘게 살고 있어, 오히려 미얀마가 위협적으로 느끼고 있는데 유엔에서는 이슬람국가가 많아 미얀마가 로힝야족을 받을 수 없는 현실보다는 로힝야족의 인권탄압만 부각되고 있다고 불만을 토로하기도 하였다.

반면 방글라데시에서 이주노동자로 왔다가 귀화한 T 씨는 로힝야족은 인도가 영국식민지가 되기 전부터 그 지역에 살고 있었고 지금도 살고 있기 때문에 미얀마에서 거주하는 것이 맞다는 것이다. 벵갈족이기 때문에 방글라데시가 책임져야 한다는 것은 억지이며, 방글라데시는 1971년에 파키스탄으로부터 분리 독립했기 때문에 영국 식민지시절 벵갈족이 아라칸지역으로 강제 이주되었다고 해도 방글라데시가 로힝야족을 책임질 이유는 없다는 것이다.

더구나 1991년 미얀마 정부가 로힝야족 25만명을 방글라데시로 강제 송환 했을 때도 인도적으로 받아들였기 때문에 방들라데시가 로힝야족으로 인해 비난받아서는 안 된다고 하였다.

이렇듯 두 나라의 오랜 역사의 틈바구니에서 로힝야족은 설 땅을 잃어가고 있다. 그러나 역사적 갈등이 로힝야족의 인간으로서의 생존권마저 빼앗을 수는 없다.

다행히 이번 달 29일에 방콕에서 미얀마·말레이시아·방글라데시·인도네시아·호주 등 15개국 고위관료들이 참석하는 국제회의가 개최되고 대책을 논의한다고 하지만, 앞으로 대책이 마련되는 기간 동안 얼마나 많은 생명이 바다위에서 사라질지 모른다.

문화다양성과 세계인이 소통하는 세계인의 날이 의미를 가지려면 우리나라에서 뿐만 아니라 세계 어느 곳에서든 어떤 이유로든 생명이 죽어가는 것을 방치해서는 안 된다. 좀 더 인간답게 살아보겠다는 희망을 품고 절박한 마음으로 배에 오른 로힝야 난민들에게도 미래가 있는 삶이 보장되어야 한다. 세계인권선언 제14조가 규정하고 있는 “모든 사람은 박해를 피하여 타국에서 피난처를 구하고 체재할 권리를 가진다.”는 원칙이 로힝야 난민들에게도 적용되기를 바란다.

이재산 목사(서울외국인노동자센터 소장)  jasonfile@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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