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채수일의 기고만장입니다.

여러분은 혹시 ‘불합리하기 때문에 나는 믿는다.’는 말을 들어보신 적이 있습니까? 모든 것이 합리적으로 설명 가능해야 믿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이 말은 궤변(詭辯)처럼 들립니다. 기독교 신앙을 합리적이고 철학적으로 설명하려는 시도는 고대 기독교 역사의 처음부터 있었습니다. 대표적인 사람은 마르키온(Marcion, 85년경-160년경)이었습니다. 폰투스(Pontus)의 부유한 집안 출신이자 열렬한 기독교 신자였던 그는 120년대 로마로 간 바울의 추종자들 가운데 가장 뛰어난 신학자가 되었습니다. 그는 교회 문서들을 냉정하고 합리적으로 해석하면서 사랑의 철학을 주장했습니다. 바울 서신들 가운데 7개 만 바울의 진짜 서신으로 인정할 수 있다고 주장함으로써 성서에 대한 역사적이고 비판적인 해석을 시도한 최초의 성서학자이기도 합니다.(1)

그런데 문제는 마르키온이 구약성서를 인정하지 않는 것이었습니다. 구약의 하나님은 악을 창조하며 피 흘리기를 좋아하고 다윗과 같은 무법자들을 옹호하는 보호자인 반면에,(2)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드러난 신약성서의 하나님은 사랑의 하나님이시기 때문이라는 것이었습니다. 마르키온은 헬라 철학과 신학을 연결시킴으로써 기독교를 합리적인 종교로 변증하려고 했습니다.

이런 마르키온의 신학에 대해서, ‘아테네와 예루살렘이 무슨 관계가 있는가?’, ‘불합리하기 때문에 나는 믿는다.’고 반박한 신학자가 있었습니다. 떼르뚤리아누스(Tertullianus, 155년경-240)였습니다. 이 말은 기독교와 헬라 철학을 화해시키려고 했던 마르키온을 논박하기 위해 한 말이지요. 떼르뚤리아누스는 스토아적이고, 플라톤적이며, 변증법적인 기독교를 만들어내려는 지적인 시도들을 거부한 것입니다.

이렇게 지적인 태도를 경멸했지만, 그러나 떼르뚤리아누스도 만만치 않게 지적인 인물이었습니다. 그는 수사학과 논쟁의 대가였습니다. 나전어(라틴)와 헬라어에 능통했으며, 나전어(라틴)로 신학을 전개한 첫 번째 기독교 신학자였습니다.(3) ‘삼위일체’라는 신학용어도 그가 최초로 사용했다고 합니다. 그뿐 아니라 그는 불타는 신앙을 가지고 교회를 마르키온과 같은 영지주의자들, 이교와 이단으로부터 지키려고 온 정력을 쏟았고, 기독교 역사상 최초의 마녀사냥꾼이 되었습니다.(4)

떼르뚤리아누스가 활동할 당시, 즉 2세기 말과 3세기 초, 고대 서방교회는 영지주의(Gnostismus)(5)의 도전으로 크게 위협받고 있었습니다. ‘지식’이라는 뜻을 가진 헬라어 ‘gnosis’에서 온 이 단어는 ‘영적 지식’이 특수 계층의 사람들에게만 비밀리에 전해 오는 구원에 관한 지식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6) 영지주의자들의 이론 체계가 주장하는 사람마다 서로 달랐지만, 배타적인 이원론에 기초를 두고 있다는 점은 공통된 것입니다. 인간 영혼만 구원받을 수 있고, 육체의 구원 가능성은 철저하게 배제되어야 한다는 원칙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영지주의는 인간의 영혼과 육신 모두를 구원한다는 전인적 구원론을 근본적으로 부인했습니다. 영지주의는 상당한 수준의 이론체계를 세웠고 정통교회로부터 분리되어 자기들의 집단을 만들어나갔기 때문에 교회에 커다란 혼란과 위험을 초래했습니다.

떼르뚤리아누스는 그의 저서, 《그리스도의 육신론》(202-203년에 저술)에서 세 명의 대표적인 영지주의자들을 논박합니다. 그리스도의 육신이 아예 존재하지도 않았고 지상의 그리스도는 단지 환상에 불과했다는 ‘가현설’을 주장한 마르키온(Marcion, 85년경-160년경), 그리스도의 육신은 ‘별들에서 온 육신’이라고 주장한 아펠레(7), 그리스도는 ‘영(spiritus)에서 온 육신’ 또는 ‘영혼(anima)에서 온 육신’이라고 하면서(8), 그리스도는 우리의 육신이 아니라 영혼만을 구원하러 오셨다고 주장한 발렌띠누스(Valentinus, 100년경-160년경)가 그들입니다.(9)

떼르뚤리아누스는 ‘영혼-육신 혹은 육신-영혼은 하나라고 주장함으로써,(10) 이들 영지주의자들의 이원론적 주장을 논박하고 있습니다. 지금은 영지주의자로 자처하는 집단을 볼 수 없지만, 영지주의가 주장했던 영육이원론, 육체적인 것에 대한 경시와 억압이 구원에 이르는 길이라는 주장은 여전히 기독교만이 아니라 모든 종교들 안에 깊이 뿌리를 내리고 있습니다. 빛과 어둠, 구원과 파멸, 선과 악, 영의 세계와 물질의 세계 등 철저하게 대립적인 이원론의 세계관은 한편으로는 극단적인 금욕주의로 흐를 수 있습니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는 극단적인 윤리적 방탕주의, 즉 육체는 전혀 쓸모없는 것이기 때문에 어떤 짓을 해도 상관없다는 윤리적 무정부주의에 빠질 수 있습니다.(11)

그렇습니다. 어떤 형태의 극단이건, 종교건, 정치건, 이념이건, 좌파건 우파건, 극단은 서로 다른 극을 지향하고 있는 것처럼 보여도, 사실은 같은 뿌리에서 나온 것입니다. ‘상극적 이원론’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동양의 음양사상은 조화적이고 상호적이며 ‘간주체적’(intersubjektiv)이라는 점에서, 다시 말해 ‘불이론’(둘이 아니다)이라는 점에서 ‘상보적 이원론’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12)

채수일(전 한신대 총장)  sooilchai@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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