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한 자주정권이 독자적인 핵개발을 한다면

요즘 남한에서는 ‘북한의 급변사태’ 라는 말이 사라졌다. 애당초 정보가 아닌 망상에서 비롯된 개념이었지만, 남한 급변사태를 걱정해야 할 판국에 북한 급변사태 운운한다는 것 자체가 우스운 일이었으니 이 말이 사라진 건 이상할 게 없다.

지난 해 12 월부터 릴레이 선수들처럼 번갈아 가며 서울로 뻔질나게 날아오는 미국 관료들의 표정은 하나같이 굳어있고 뭔가 대한민국 정부에 하고 싶은 말을 시원하게 못하고 있는 낌새가 역력하다. 이들의 표정에는 뭔가 중요한 정보들을 감춘 채, 자기들이 ‘개떡같이’ 말하더라도 대한민국 정부가 ‘찰떡같이’ 알아듣고 뭔가 알아서 기어주기를 바라는 것 같은데 그게 잘 안 통하니 답답한 모양이다. 한 마디로 오바마 정부와 이명박 정부는 대북협상문제와 관련한 소통이 잘 안 되고 있는 것이 분명해 보인다.

지난 1월 5일 미국 국무부 대북정책 특별대표 보즈워스가 외교통상부와 청와대에서 짜증을 부리고 간지 21일 만에 이번에는 대북정책 총괄책임자인 제임스 스타인버그 국무부 부장관이 직접 날아와서 똑 같은 주제로 똑 같은 소리를 반복했다.

명색이 국무부에 소속된 각료급 외교관이라는 작자가 껄렁패처럼 호주머니에 손을 집어 넣은 채로 나타나 자기보다 직급이 높은 남의 나라 외교통상부 장관과 악수를 하는 둥 마는 둥 하더니 한국정부의 안일한 대북협상자세를 질타했다. 이번에는 표현이 좀 더 강경하고 분명했던 모양이다. 즉 한국정부가 현실을 바로 보고 대북협상과 대화에 유연한 자세로 전환해 줄 것을 직설적으로 요구한 것이다.

스타인버그의 질타가 있은 후 외교통상부 고위당국자는 “6자 회담 전제조건에서 연평도 포격과 천안함 사건에 대한 북한의 책임문제 거론을 제외한다”는 발표를 했다. 만일 이런 발표를 연평도 포격전 직후에 했더라면 비분강개 보수들의 아우성 때문에 이명박 정부가 결딴이 났을지도 모른다. 요새 사태가 돌아가는 꼴을 비로소 눈치를 챈 것인지 아니면 연평도에 포탄이 떨어지고 나서 두 달 이상 세월이 지나니 비분강개가 좀 가셨는지 별다른 반발이 없다.

조선일보 칼럼니스트 양상훈 씨는 12.21 포격훈련이 있던 바로 그 날 쓴 칼럼에서 “북이 3차 핵실험을 거쳐서 이를 실전 배치했다고 선언하고, 미국 정보기관이 이를 사실로 확인하게 될 경우 벌어질 상황은 지금과는 다를 수밖에 없다”는 말을 했다.

그러나 그의 이 같은 말은 잘못된 것이다. ‘벌어질 상황’이 다른 게 아니라 그가 그 칼럼을 쓴 시점을 포함해서 ‘현재 벌어지고 있는 상황’이 이미 예전과는 다르게 전개되고 있다.

미국 정보기관은 북의 핵 보유 여부는 말할 것도 없고, 실전배치여부를 이제 와서 새삼스럽게 확인 할 필요가 없다. 그들은 이미 북한이 플루토늄이 아닌 우라늄 농축을 통한 핵연료의 무한 재생산 능력까지 보유하고 있음을 재차 확인했다. 지금 문제는 핵이 아니라 북한의 미사일 전력이다.

결정적으로 미국의 대북태도를 변화시키고 있는 정보는 우라늄 농축기술 이외에 북한이 초음속으로 날아가는 장거리 순항미사일을 보유하고 있다는 것이다. 미국 정보기관이 북한이 보유하고 있는 것으로 추정하고 있는 미사일 무기체계 중에는 이지스 방어체계를 돌파해 항모강습단을 격파할 수 있는 수상밀착 비행 초저고도 초음속 순항미사일이 포함돼 있다. 현재 미국정보기관이 파악하지 못하고 있는 부분은 미사일에 탑재 가능한 경량화 핵탄두 보유여부인데, 이미 UEP 기술을 보유하고 있는 북한이 탄두경량화를 못 이룰 이유가 없다는 판단이 지배적이다.

한반도 근해로 접근하는 항모강습단을 파괴할 수 있는 미사일을 북한이 보유하고 있다는 것은 한미방위조약이 실제상황에서 무용지물이 될 가능성이 높다는 사실을 반증한다. 미국 대통령은 막대한 인명피해와 물자피해를 무릅쓰면서까지 유사시 한반도에 대규모 전력을 파견하려 하지는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런 판국에 더해, 요즘 미국은 남한 보수세력의 애처로운 눈길에 마음을 빼앗기고 있을 경황조차 전혀 없는 것으로 보인다. 중동 위기가 심상치 않기 때문이다. 레바논에서는 헤즈볼라가 사실상 집권했다. 튀니지, 요르단, 이집트에서 벌어지고 있는 반정부 시위사태는 이 나라들뿐 아니라 중동 전역에서의 미국의 기반을 송두리 째 뒤 흔들고 있는 형국이다. 까딱하다간 최후 보루인 사우디아라비아의 친미왕정마저 날아가 버릴지도 모른다. 이런 시기에 북한과 이란은 미국의 항모강습단을 타격 견제할 수 있는 군사력을 확보했다.

이상하게도 한국 언론에서는 별로 언급을 하지 않는 이야기가 있는데 그것은 첫째, 북한이 세계 일곱 번째로 독자적인 위성발사체 개발에 성공한 나라라는 사실이고, 둘째, 위성발사체 기술을 보유하고 있다는 것은 대륙간 탄도미사일을 비롯한 모든 종류의 미사일을 제작 운용할 수 있는 능력을 보유하고 있는 군사강대국이라는 엄연한 현실이다.

남한 보수정권의 군사정책입안자들은 달라진 현실에 대한 정면돌파, 즉 독자적인 핵개발 추진보다는 미국과 일본을 자극하지 않는 범위 내에서 그들의 처분만을 바라는 대북군사정책을 선택할 것으로 보인다.

이런 동향은 김태우 한국국방연구원 연구위원의 발언에서 잘 나타난다. 그는 지난 1월 27일 열린 한국경제연구원 안보 세미나에서 ‘한국의 국방력은 모자라지도 넘치지도 않아야 한다’는 요지의 발언을 했다’ 여기서 ‘넘치지도 않아야 한다’는 그의 말을 주목할 필요가 있는데 이 말은 미국 일본 등 우호국의 의사에 반해 독자적인 핵개발 같은 것은 하지 말아야 한다는 의미를 함축하고 있다.

북한의 핵무기 실전배치를 돌이키기에는 너무 늦어버렸다. 이명박 정권은 ‘공이 북한으로 넘어갔다’는 가당치도 않은 소리를 하고 있지만 실은 공이 북한으로 넘어간 게 아니라 상황을 재단할 수 있는 모든 주도권이 북한으로 넘어갔다고 해야 맞을 것 같다. 며칠 전 어느 배낭여행자 사이트에서 나는 이런 언급을 한 적이 있다.

“원론적인 한반도 평화보장은 북미수교와 북미평화협정, 남북한 상호불가침협정, 북한에 대한 금융제재와 무역봉쇄 해제와 같은 보다 현실적이고 상호 윈윈할 수 있는 상생구조를 마련하는 것에 의해 이루어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즉 북한이 더 이상 피해의식을 가지고 군사력 증강에 무리한 예산을 낭비할 필요가 없는 환경을 만들어 주어야 한다는 것 이지요. 이런 환경과 조건이 마련된다면 북한이 경제적인 재생산 구조를 이룰 수 있을 때까지 아주 많이 더 잘사는 남한이 북한을 대대적으로 지원할 수 있을 것 입니다.”

그러나 부시 집권 8년과 이명박 정권 3년 동안 우리는 이 기회를 ‘거의 완전히’ 놓쳐버렸고 나의 언급은 말 그대로 원론적인 리토릭 외에 아무것도 아니었다.

그렇다면 한반도 평화를 담보하기 위한 차선책은 무엇일까?

한반도 비핵화가 불가능해 졌다면 대칭균형을 통한 평화유지를 하는 수 밖에 없다. 대칭균형 전략을 추진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전제돼야 하는 필수 조건이 있다. 남한에 미국과 일본 등의 정치적 군사적 영향력에서 독립할 수 있는 자주정권이 들어서야 한다는 것이다. 남한의 자주정권이 균형전략개념으로서의 독자적인 핵개발과 전략미사일 개발을 추진한다면 나는 여기에 반대하지 않는다.

문제는 과연 미국이 제공하는 핵우산이나 전술핵의 재배치 카드 따위를 결연히 거부하고 남한 독자적인 군사정책을 선언할 용기와 강단이 있는 대통령 후보가 나와 국민의 지지를 받고 다음 정부를 인수할 수 있는지 여부다. 아울러 그 정부가 미국 등 강대국들의 외교적 물리적 위협으로부터 핵개발 지휘체계와 과학자들을 보호하며 새 과제를 추진할 수 있느냐 하는 것이다.

난세에 위태로워 진 규범과 가치를 보위할 수 있는 최상의 선은 일단 균형을 유지하는데 올인하는 것이다.

좀 멀리 보자.

강현 편집위원 sarnia@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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