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통’의 국어사전적인 의미는 ‘막힘이 없이 서로 통함’ 또는 ‘서로의 의사가 잘 이해되어 흐리터분한 점이나 오해 등이 없이 잘 통함’이다. 남신도회 회보에서 ‘소통’이라는 주제를 정한 배경에는 우리 사회의 소통부재가 자리하고 있을 것이다.

‘소통이 되지 않으니 답답하다.’ ‘지나치게 일방적이다.’ ‘상대방에 대한 배려가 없다.’ 등등의 말들은 지나치게 자기중심적인 삶을 살아가는 사람에게는 자신을 비난하기 위한 음모가 들어있는 불순한 평가처럼 들려진다. 서로 소통하려고 의견을 내놓았다가 오히려 더 막혀버리는 경험은 사이버 상에서 늘 경험하는 일이기도 하고, 우리 사회 전반에도 이런 기류는 팽배해서 차라리 침묵하고 사는 것(담을 쌓고 사는 것=소통부재)이 지혜로운 것처럼 느껴질 때도 있다.

하나님께서는 모든 피조물이 소통하며 살아가도록 창조하셨다

하나님은 천지만물을 서로서로 소통하며 살아가는 관계로 피조물을 창조하셨다. 그러니 소통부재의 삶은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삶이 아니다. 소통의 영역은 크게 하나님과 인간, 인간과 인간, 자신과 자신, 인간과 자연이라는 네 가지 영역으로 나눌 수 있다. 이들 중 어느 것 하나가 막혀도 온전한 삶을 살아갈 수 없는 존재가 인간인 것이다.

오늘 우리가 경험하는 소통부재의 현상은 단순히 인간과 인간의 관계에 있어서의 소통부재인 것처럼 보이지만 그 내면에는 하나님과의 단절, 자신과의 단절, 자연과의 단절 등 다양하고도 복잡한 것들이 자리하고 있다.

하나님과 소통하지 못함으로 인간은 끊임없이 하나님께 요구하기만 하고, 더 나아가서는 자신의 뜻을 하나님의 뜻으로 착각하는 지경에까지 이르렀다. 사람사이의 소통의 부재는 결국 힘 있는 사람들의 뜻이 곧 정의가 되는 현상을 가져왔고, 자신과의 소통부재는 정신분열을 가져왔으며, 자연과의 소통부재는 자연을 죽이고 더 나아가 자연 없이는 살 수 없는 인간, 자신의 삶을 위협하는 지경에까지 이른 것이다.

나는 개인적으로 자연과 소통하며 하나님을 만나고 인간을 만나고 나를 만난다.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 고백하면서도 우리 기독교인들은 자연에 대해 너무 무지하고,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자연에 대한 무례를 범하면서도 죄의식을 전혀 느끼지도 못한다. 심지어는 자연을 통해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세미한 음성을 듣고자하는 시도를 샤머니즘으로 치부하기도 한다. 인간의 이기주의적인 욕심을 극대화시켜주는 경제개발은 지고의 선이 되어버렸으며, 창세기 1장 28절의 말씀은 왜곡되어 마치 자연을 함부로 파괴해도 좋은 것처럼 이해되었다. 자연은 더불어 살아가야할 존재가 아니라 인간의 소비욕망을 무한정 충족해주는 수단으로 생각한 결과 우리의 현실은 지구온난화로 인한 기후변화와 생태계의 위기 속에서 인간의 미래를 장담할 수 없는 지경에 처한 것이다.

인간의 손길이 닿지 않은 자연은 얼마나 아름다운가! 생명 충만 그 자체이다. 이것은 자연은 인간 없이도 살아갈 수 있다는 증거다. 그러나 인간은 자연 없이는 살 수 없는 존재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은 자연을 너무도 오만불손하게 대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인간의 삶의 방식을 근본적으로 바꾸지 않는 한 인류의 미래는 암울할 수밖에 없고,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맡겨주신 청지기의 사명을 제대로 감당하지 못한 죄과를 하나님 앞에서 토해내야 할 것이다. 교회가 환경 혹은 생태와 관련된 일에 무관심하면 안 될 이유가 여기에 있다.

자연을 통해 들려주시는 하나님의 세미한 음성을 듣다

나는 자연, 그 중에서도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들꽃을 통해서 하나님의 세미한 음성을 듣는다. 들꽃을 통해 들려주시는 하나님의 세미한 음성을 듣는 순간에서야 비로소 내가 눈 뜬 장님이었으며, 귀머거리였고, 벙어리였음을 깨닫게 되었다. 장님이 눈을 뜨고, 귀머거리의 귀가 열리고, 벙어리의 혀가 풀리는 기적은 그렇게 내게서 일어났다.

제주도 동쪽끝마을 종달리에 있는 종달교회에서 목회를 할 때의 일이다.
어느 이른 봄날, 새벽예배를 마치고 종달리를 감싸고 있는 지미봉자락으로 산책을 나갔다. 이른 봄이었지만 바닷바람이 제법 차가웠다. 제주도의 겨울, 육지에서는 따뜻한 남쪽이라 생각하겠지만 바람 때문에 체감온도는 육지에서 느끼는 추위보다 훨씬 춥다. 그런데 풀섶에 노란 꽃이 피어있는 것이 눈에 들어왔다. 그 꽃은 양지꽃이었다. 그리고 가만히 쪼그리고 앉아 양지꽃 근처를 보니 그야말로 이름 모를 작은 꽃들이 여기저기 피어있는 것이 아닌가!

양지꽃은 꽃 이름 그대로 햇살 바른 양지에 피는 꽃이고, 전국 각지에 서식하기 때문에 어린 시절에도 보았던 친숙한 꽃이었다. ‘언제 이 꽃을 보았더라?’ 생각해보니 유년 시절에 본 이후 처음인 듯 했다. 거의 30년 가까이 나는 그들의 존재를 잊고 살았던 것이다. 내가 그들의 존재를 잊고 살아갈 동안에도 그들은 여전히 피고지기를 반복하고 있었으며, 누가 봐주지 않아도 온 힘을 다해 피어나고 활짝 웃고 있었다는 생각을 하니 나도 모르게 미안해 눈물이 났다.

‘나의 삶은 그동안 끊임없이 남에게 인정받으려 하고, 누가 알아주지 않으면 서운해 하고, 실망하며 살아왔는데 그저 묵묵히 하나님의 일을 감당하면서 기뻐해야할 목사임에도 남이 알아주지 않으면 하나님을 원망했는데, 내가 저 작은 들꽃보다도 못한 삶을 살았구나!’

그 날 이후, 나는 들꽃을 찾아다니며 사진으로 담고 그들의 이름을 하나 둘 익혀가기 시작했다. 이미 들꽃에 관해 독보적인 길을 걸어가고 있는 많은 사람들이 있었지만 나는 들꽃을 창조하신 하나님의 뜻을 묻는 작업들을 시작했다. 흔하게 만날 수 있는 꽃들, 못생긴 꽃들, 작은 꽃들을 찾아다니며 그들에 대한 글을 쓰기 시작했다. 그들의 삶과 인간의 삶이 그리 다르지 않다는 것도 알게 되었고, 교인들이 밭이나 일상에서 흔히 만나는 들풀들을 소개하며 말씀을 나누었다. 말씀을 준비할 때마다 작은 풀꽃에 담긴 하나님의 사랑을 실감했고, 그 작은 풀꽃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 이후 풀꽃, 나무, 곤충, 새 등등 자연과 관련된 관심의 영역이 점점 넓어졌고 깊은 숲에 홀로 있을 때에는 그들이 내게 말을 걸어오는 듯한 착각을 하기도 했다.

성서의 언어를 일반의 언어로 말하라

어느 정도 들꽃에 대해서는 전문가 수준이 되었을 때 하나님은 이제 성서적인 언어를 일반인의 언어로 바꿔 말하라고 하셨다. 기독교적인 용어를 사용하지 않고도 기독교적인 내용을 담을 수 있는 작업은 쉽지 않았지만 하나님은 많은 이들에게 나의 글을 읽히게 하셨다. 이후에는 그것이 바탕이 되어 교회의 일을 하는데 교회에 나오지 않는 분들에게 조차도 물심양면으로 많은 도움을 받았다.

들꽃을 통해 들려주시는 하나님의 말씀은 무궁무진했다. 나는 결국 자연과 소통하면서 하나님과 소통을 하게 되었고, 하나님과 소통하면서 나 자신과 소통하게 되었던 것이다. 자연과 하나님과 나 자신의 소통이 이뤄지자 사람과의 관계에서의 소통은 물 흐르듯 자연스럽게 이어졌다. 그러면서 소통을 가로막는 것들, 우리가 버려야 할 것들과 취해야 할 것들이 어떤 것인지 명확하게 보이기 시작했다.

제대로 보는 순간, 해방이 될 줄 알았지만 그때부터 마음앓이도 생겼다. 하나님의 이름으로 신앙인의 자격으로 교회의 이름으로 행해지는 수없이 많은 일들이 사명감으로 행해지지만 하나님의 뜻과는 반대되는 길을 달려가는 일들이 비일비재하다는 것 때문이었다. 이미 맘몬의 노예가 되어 선과 악을 구분하지 못하고, 자신의 뜻을 하나님의 뜻으로 포장한 이들(안타까운 것은 그들은 자신들의 포장된 신앙을 알지 못한다.)이 회개할 기회조차도 없는 죄의 길을 달음박질하듯 달려가는 현실의 벽이 너무도 거대함을 경험했다.

소통의 부재였다. 그때의 좌절감, 그리고 현재도 여전히 굳건하게 서있는 장벽들은 여전히 나를 힘겹게 한다. 현실이라는 벽은 그렇게 나를 옥죄어 들어오며 타협을 요구한다. 마치 돌덩이를 떡으로 만들어 먹으라는 유혹처럼 말이다. 이미 돌덩이로 된 떡을 먹은 마음 차가운 이들이 판을 치는 세상인데 너 혼자 고고한 척 하지 말라고 유혹을 한다. 솔직하게 이 유혹에 일정정도 타협을 하기도 하고 거절하기도 하며 살아가기에 나의 모습에 염증을 느끼기도 한다.

그럴 때 나는 자연의 품에 안긴다. 자연의 품에 안기면 새록새록 그들이 들려주었던 이야기들이 들리고, 또 그 이전에 느끼지 못했던 것들을 다시 느낀다. 나는 그 모든 느낌들을 하나님께서 자연을 통해 들려주시는 세미한 음성이라고 고백하는 것이다.

신앙인은 세상에서 살아간다. 나는 신앙인들 스스로 ‘나는 신앙인이야!’하고 외치기보다는 일상의 삶을 살아가면서 다른 사람들이 ‘알고 보니 저 사람이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었어! 역시 뭔가 달라!’하는 이야기를 듣길 바란다. 그 정도의 신앙인이 되어야 할 터인데 무늬만 신앙인인 이들이 너무 많다. 그럼에도 여전히 희망을 품고 살아가는 이유는 여전히 하나님과 소통하며 살아가는 이들이 있기 때문이다. 묵묵히 그리스도의 향기를 품고 사는 사람들이 있어 나는 희망을 노래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자연과 소통하라

여름철이면 많은 이들이 휴가를 맞아 산과 바다로 향한다. 그들이 의식하듯 하지 못하든지 간에 자연의 품에 안겼다 돌아오면 여행길의 고단함을 상회할만한 힘을 얻고 온다. 그것이 자연이 주는 선물이며, 신앙적으로 풀면 자연이라는 매개체를 통해서 주시는 하나님의 선물인 것이다.

하나님은 소통하시는 분이시다. 자연과 인간과 하나님 자신과 소통하시는 분이시다. 막힘이 없는 분이시다. 그러니 자연과 소통하시는 하나님의 숨결을 자연의 품에 안겨 느낄 수 있음은 당연한 일이 아니겠는가?
이렇게 자연과 소통하게 되면 하나님, 인간, 자신과의 소통의 길이 열리게 되고 우리 사회전반에서 행해지고 있는 일들을 바른 눈으로 바라볼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죄 중에서 가장 무서운 죄는 알지 못하고 짓는 죄이다. 왜냐하면 알지 못하고 짓는 죄는 회개할 수 있는 기회조차도 없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이름으로 중무장하고 잘못된 길을 사명감으로 무장하고 목숨 걸고 달려간다면 이 얼마나 불행한 일인가! 더군다나 이렇게 잘못된 길을 걸어가는 이가 막강한 권력을 가지고 있거나 지도자의 위치에 있다면 그 조직은 또 얼마나 불행할 것인가!

‘하나님께서 천지를 창조하셨다!’고 습관적으로 고백하지만 말고 자연의 품에 안겨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그 자연을 한 번 깊이 바라보자. 그들이 말을 걸어오면, 소통하게 되면 하나님의 깊은 섭리를 깨닫는 순간이 올 것이다. 그때 비로소 막힌 담이 무너질 것이며 보이지 않던 것들, 들리지 않던 것들, 그래서 말하지 못했던 것들을 보고 듣고 말하게 될 것이다. 기적은 아주 가까운 곳에 있다. 일상에서 잠시 벗어나 쪼그리고 앉아 작은 풀꽃에 눈길을 주는 것, 그것도 아주 큰 기적인 것이다.

김민수 목사(한국기독교장로회 총회 문서선교부장)

* 이 기사는 한국기독교장로회 회보에 함께 실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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