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Jacques Bellange, 「Samson」 (16세기 후반-17세기초) ⓒMet Museu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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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라엘 백성들이 출애굽하여 하나님의 인도하심에 따라서 광야를 지나 약속의 땅으로 가는 중입니다. 이 과정에서 하나님은 백성이 자기들 좋은 대로 어떻게든 가기만 하면 되는 것으로 놓아두지 않으십니다. 하나님은 백성들을 하나님의 백성으로 다시 조직하십니다. 마음의 조직도 하고, 영적인 조직도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으로 새롭게 태어날 수 있도록 새사람을 만드시는 것입니다. 겉으로도 군대적인 조직을 만들고, 내면적으로는 영적인 조직을 만듭니다. 오늘은 바로 그 영적인 조직이야기를 나누려고 합니다.

오늘 함께 읽은 민수기 6장의 말씀 속에 나실인이라는 사람들이 등장합니다. 이들은 하나님의 공동체 안에서 특별한 일을 담당합니다. 군사적인 질서를 가지고 세상과 맞서서 싸울 수 있도록 외적인 조직을 다 완성했고, 그 조직 안에 하나님만을 섬기는 특별한 사람들로 레위인들을 세우는 일도 다 마쳤습니다. 그런데 또다시 나실인이라는 새로운 존재가 등장합니다.

레위인은 ‘내가 하나님의 일을 하겠습니다’ 하고 스스로 결단한 사람들이 아닙니다. 나의 뜻과 상관없이 하나님께서 부여하신 임무입니다. 그런데 나실인은 다릅니다. 나실인은 자기 스스로 하나님께 헌신하겠다는 특별한 서원을 한 사람입니다.

이들은 하나님께 헌신하면서 세 가지의 특징적인 규칙이 있었습니다. 첫째는 포도주와 독주를 멀리하는 것입니다. 오늘날에도 그렇습니다만, 포도주와 독주는 세상의 쾌락과 향락을 상징하죠. 세상 즐거움을 일부러 끊고, 하나님의 거룩함을 유지하는 삶을 살라는 것입니다. 두 번째는 참 특이한 규정인데, 머리카락을 자르지 말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구별된 존재라는 것을 상징하는 것입니다. 삼손 이야기를 통해 잘 알려져 있지요.

셋째는 시체를 가까이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죽음과 부정을 멀리하고 생명의 하나님과 동행하라는 상징적인 의미가 있습니다. 나실인은 하나님께 자기 삶을 드리는 사람입니다. 하나님께 자신을 드리면, 금욕적인 생활을 하면서 개인적인 경건함을 지켜가는 삶으로 충분하지 않습니다. 내 존재가 온전히 하나님의 것이 되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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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현실속의 우리들은 그런 온전함을 지켜가기 어렵습니다. 대표적인 나실인인 삼손의 삶만 보아도 확실합니다. 구별되고 거룩한 사람이라기보다는, 자기에게 주어진 힘만 믿고 제멋대로 하는 망나니 같은 사람입니다. 포도주와 독주를 멀리하기는커녕, 삼손은 늘 술에 취해 있습니다. 머리를 자르지 않는 것이 거룩한 규례이지만, 그 비밀을 너무나도 소홀하게 발설합니다. 하나님께 한 서약을 별일 아닌 것처럼 생각합니다.

그런데 삼손의 삶의 하이라이트는 결정적인 한 장면에 있습니다. 삼손이 자신의 온 생애를 후회하며 하나님 앞에 회개하는 장면입니다. ‘하나님, 다시 한 번 힘을 주시면, 온 평생을 다해서 내 멋대로 살았고 온 인생 동안 하나님의 뜻대로 산 것 한 번도 없지만, 단 한 순간 하나님의 뜻대로 살아보겠습니다.

삼손의 이야기를 읽으면서 우리는 삼손에게 주신 엄청난 힘에만 관심을 가집니다. ‘나귀턱뼈로 천 명이나 죽였다더라. 맨손으로 사자를 찢어 죽였다더라’ 하는 그런 놀라운 일에 관심을 갖습니다. 그러나 진짜 중요한 것은 하나님과 삼손이 어떤 관계를 가졌느냐 하는 것입니다. 내가 하나님의 나실인이라는 것을 망각하고 살았을 때, 하나님과의 약속을 소홀히 여기고 무시하고 뒷전으로 미루어 놓았을 때, 하나님과의 관계가 내 삶에서 별로 중요하지 않은 관계가 되어 버렸을 때, 삼손의 삶은 겉으로는 그럴 듯하여 세상의 주목은 받았을지 모르지만 그의 삶은 하나님에게서 멀어져 가고 있었습니다. 그의 삶은 가장 중요한 행복에서 떠나 있었습니다. 마침내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능력마저도 잃어버리게 됩니다.

삼손이 ‘내가 과연 하나님의 사람이구나’ 하는 것을 깨달았을 때 삼손에게 다시 힘이 생깁니다. 그리고 삼손은 그 힘을 과연 하나님의 사명을 위해서만 사용합니다. 삼손이 평생을 자기의 힘을 자랑하면서 살았을 그 모든 순간순간들은 다 부질없었지만, 마지막 하나님의 뜻대로 그 힘을 사용하는 순간 그의 삶이 아름답게 빛나는 것을 우리는 보게 됩니다.

우리의 삶의 아름다운 순간은 언제인가요? 우리의 삶의 전성기는 하나님께서 나에게 허락해 주신 생명과 능력 가지고 하나님의 일에 헌신하는 순간입니다. 나의 생명 가지고, 나의 호흡 가지고, 나의 능력 가지고 하나님 기뻐하시는 일을 해내는 순간입니다. 대단한 일, 위대한 일이 아니더라도,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작고 소중한 것을 해 내는 순간입니다.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바로 그 순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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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이 나실인 이야기가 왜 뜬금없이 이 민수기 6장에 위치하고 있을까요? 민수기의 앞부분은 이스라엘 백성을 조직적으로 정비하는 이야기입니다. 인구조사를 통해서 지파의 병력을 조사하고, 군대 행군 질서를 확립하고, 레위인을 따로 떼어 놓아서 하나님의 일에 봉사하게 합니다. 세상의 일과 하나님의 일을 철저하게 구분합니다. 이런 이야기의 흐름 속에서 하나님은 한 발 더 나가십니다. 하나님께 특별히 헌신된 사람들 이야기를 하십니다.

이들은 군사적 질서와는 다른 방식으로 하나님의 나라를 이루어가는 사람들입니다. 광야를 통과하면서 하나님이 주신 가나안 복지를 향해 나아갈 때, 일차적으로는 세상과 맞서 싸워야 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하나님이 주신 힘을 가지고 세상과 맞설 우리의 군대를 잘 정비해야 합니다.

그런데 그게 끝이 아니라 세상적인 질서 위에 근본적이고 초월적인 하나님의 나라를 위한 질서 또한 확립해야 합니다. 이스라엘은 단순히 세상과 맞서 싸우는 전쟁집단이 아니라, 하나님의 거룩함을 이루어가는 공동체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에게 주시는 가나안 땅은 전쟁으로 얻어내는 ‘땅덩어리’가 아니라, 거룩함을 통해서 이루어가야 하는 ‘하나님의 나라’이기 때문입니다. 그 공간을 어떻게 살아가야 할 것인가를 준비하게 하십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허락하신 세상에서의 삶을 살아갈 때 세상과 맞서 싸울 세상적인 준비가 우선적으로 필요하지만, 하나님과의 관계 속에서 승리하는 영적인 준비가 필요하다고 나실인을 통해 우리에게 말씀해 주시는 것입니다.

아무리 그럴 듯한 군대를 만들어 놓더라도 그 군대가 마침내 하나님의 공동체로 바로 서기 위해서는 하나님께 온전히 헌신된 사람, 하나님과 온전한 관계를 유지하는 사람들이 있어야 된다고 우리에게 말씀해 주시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이 나실인이 될 수 있을까요? 누구라도 마음에 헌신하는 마음과 결단이 있으면 나실인이 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거룩함은 특정 계급의 특권이 아니라 모든 백성에게 열려있는 보편적인 구원입니다.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모두 거룩해야 한다’ 하고 레위기에서 말씀하시듯이 우리들 모두가 거룩해져 가는 그 통로를 열어놓으시는 것입니다. ‘너희들 모두가 나실인 되어라. 너희들 모두가 하나님의 사람 되어라. 너희들 모두가 나와 긴밀한 관계를 맺는 거룩한 사람 되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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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약의 규례를 겉으로만 지키는 것이 나실인은 아닙니다. 하나님의 임재를 중심으로 살아가는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내 안에 모시고 하나님과의 약속을 하나님과의 관계를 나의 삶의 핵심으로 삼고 살아가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이 진의 중심에 주님을 모신 성막을 모셨던 것처럼, 우리의 삶의 중심에 하나님을 모시고 나의 가장 중요한 부분을 따로 떼어서 하나님을 모시는 나로 만들고, 그것으로 되었다 하는 것이 아니라 나의 모든 부분들이 내 존재의 모든 부분들을 하나님의 것 되게 사는 것입니다.

나는 하나님의 사람이죠. 내 말도 하나님의 것이죠. 내 행동도 하나님의 것이죠. 내 숨 쉬는 것도 내 생각하는 것도 내 손길도 내 발길도 모두 하나님의 것이죠. 그렇게 하나님께 모든 것을 드릴 수 있는 그런 사람 될 수 있겠냐? 오늘 민수기가 우리에게 묻는 물음입니다.

세상에서 성공하기 위해서 겉으로만 그럴 듯한 군대 조직 세워놓고 겉으로만 대단한 능력 뽐내면서 삼손처럼 턱뼈로 천 명을 죽일 수 있다고 자랑만 하는 것이 아니라, 내 안에 하나님을 온전히 모시는 간절한 마음으로 하나님과 하나 될 수 있느냐? 우리에게 묻고 계신 것입니다.

에베소서 6장을 보면 바울이 ‘하나님의 전신 갑주’라는 표현을 합니다. 진리의 허리띠로 허리를 묶고, 정의의 가슴받이로 버티어 서고, 발에는 평화의 복음으로 신을 신고, 믿음의 방패를 손에 들고, 구원의 투구를 쓰고, 성령의 검을 손에 움켜쥐라고 말합니다. 세상과 싸워 이기라는 게 아니라 세상에 나의 능력을 뽐내라는 것이 아니라, 온전히 하나님의 뜻대로 바쳐진 나로써 세상 안에서 거룩하게 구별된 사람이 될 수 있느냐는 것입니다. 그럴 때 여러분 모두가 하나님의 군대요, 그럴 때 여러분 모두가 하나님께 바쳐진 자요, 그럴 때 여러분 모두가 하나님이 기뻐하는 하나님의 사람입니다. 그런 사람 됩시다! 오늘 나실인 이야기를 통해 성경은 오늘날 우리에게 이런 권면을 하고 있는 것 아닐까요?

그 권면에 응답해서 고민하고 결단하고 실천할 수 있는 저와 여러분 모두가 될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주재훈 목사(생명교회)  lewisciper@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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