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태어나기 전부터 예수는 유대인의 왕이라는 이야기를 들었지만, 세상이 생각하는 왕이 아니었다. ⓒGetty Images

예수의 나심을 알리는 동방 박사 이야기는 누가복음의 목자 이야기가 그의 나심을 ‘모든 백성에게’라는 말로 수신자의 입장에서 보도하는 것과 달리 ‘유대인의 왕’이라는 말로 예수의 관점에서 보도합니다. 빌라도는 예수를 심문하며 유대인의 왕이냐고 물었고, 십자가에는 그의 죄목으로 ‘이는 유대인의 왕이다’는 패가 붙여졌습니다. 예수는 스스로를 왕이라고 하지 않았지만, 그는 그러한 자로 태어나고 죽었습니다.

당시 로마가 있고 그 아래 헤롯이 있던 상황에서 유대인의 왕으로 불리는 자가 나온다는 것은 용납될 수 없는 불온한 일입니다. 그러니 예루살렘이 소란스러워지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더구나 박사들이 별을 따라 왔으니 성문은 닫혀 있었을 것입니다. 문을 지키는 자들에게 유대인의 왕으로 태어난 이가 어디 있느냐고 물었다면, 그 소식은 곧 궁중에까지 전달되었을 것입니다.

그러면 헤롯은 이 소식을 듣고 어떻게 했을까요? 그는 마치 유대인들의 메시아 대망을 알고 있었던 것처럼 그리스도의 나심으로 이해하고 대사제들과 율법학자들을 소집하여 그가 태어날 곳이 어디인지를 묻습니다. 그가 이후 어떻게 행동을 하는지는 차치하면 에돔 출신의 헤롯이 동방박사들의 이야기에서 메시아 곧 그리스도를 연상한 것은 놀랍기만 합니다.

유대인의 왕, 그는 이스라엘이 기다리던 해방의 메시아였고, 새시대를 열어줄 주님이었습니다. 그가 태어났고, 그 비밀이 ‘이방의’ 박사들에 의해 포착되고 전해졌으며, 비유대계 왕 헤롯에 의해 밝혀졌습니다. 비록 아기이지만 메시아의 출현은 왕권의 입장에서는 위협일 수 밖에 없습니다. 이는 거꾸로 메시아로 태어난 아기 예수에게 위험이 닥칠 것을 암시합니다.

어둠을 밝히는 빛 가운데 나시고 그 빛의 축하를 받지만, 아기 예수가 메시아에 대한 기대를 실현시키기까지는 적지 않은 해를 기다려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는 이집트에서 난민생활하는 것으로 그 기다림의 시간을 시작합니다. 그의 삶은 베들레헴에서 울부짖는 소리들과 함께 열립니다. 세상 권력의 폭력성과 야만성이 극적으로 드러납니다.

빛-위기-난민-울부짖음으로 이어지는 그의 출생 소식은 그에게서 구현될 메시아상이 어떤 것일지 짐작하게 하지 않을까요? 그는 군림하고 폭력적인 ‘유대인의 왕’일 수 없습니다. 그는 지배하는 권력자일 수 없습니다. 그는 전리품이나 기념품을 나눠주고 ‘기쁜 소식’을 베푸는 자비한 자 행세하는 군주일 수 없습니다. 아기로 태어나 우리에게 오신 메시아는 섬김과 높임을 받는 그런 폭력적인 권력질서의 종말을 꿈꾸게 합니다.

그렇지만 그러한 권력질서의 해체는 동일한 유형의 권력질서에 의해 이루어질 수 없습니다. 메시아에 의한 그 질서의 전복은 ‘섬기는 다스림’의 변증법에 의해 이루어질 것입니다. 그는 섬김을 받기 위해 온 것이 아니라  섬기려고 왔습니다(마 20,28; 막 10,45). 그래서 울부짖는 이에게 위로가 있습니다. 폭력과 억압에 신음하는 이에게 해방이 있습니다. 거처할 곳을 잃은 이에게 안식이 있습니다. 섬기는 메시아, 그는 새로운 질서의 표상입니다. 구질서의 전복과 새로운 질서의 도래를 그의 나심에서 볼 수 있고 거기에서 하늘이 기뻐하는 평화를 발견하기를 빕니다.

김상기 목사(백합교회)  webmaster@ecumeni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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