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The wrath of Ahasuerus」 (anonymous, Rijksmuseum) ⓒWikipedia

페르시아 왕 아하수에로 왕이 연회를 베풀고 있었고, 왕후 와스디는 따로 여인들을 위한 잔치를 베풀고 있었습니다. 일주일이나 계속된 잔치 끝날 왕은 뭇사람들 앞에 자랑하고 싶었습니다. 이 잔치는 무려 반년 동안 계속된 대연회에 이은 잔치였습니다. 대제국의 위용을 당시로서는 온세계에 자랑한 대잔치였습니다.

잔치에 잔치를 이어 왕은 그의 업적과 위엄을 온세상에 다 보여주었습니다. 그런데도 그에게는 아쉬운 게 하나 있었나봅니다. 왕후를 모든 사람들 앞에 보여주고 자랑하는 것이 그에게는 그 어떤 것보다 더 큰 기쁨이고 더 큰 영예였던 것 같습니다. 아내 자랑이 하고 싶었습니다. 칭찬 듣기 좋아하고 뽐내고 싶어하는 왕 역시 평범한 사람입니다.

그런데 왕후가 이를 거절했습니다. 세계적인 대제국의 왕에게 싫다고 말할 수 있었다는 것이 놀랍습니다. 이것은 돌발적인 것이 아닐 수 있습니다. 그녀의 거절은 대제국의 왕조차 마음대로 할 수 없는 영역이 바로 가까이에 있었음을 보여줍니다. 왕후는 그의 신하가 아니었습니다. 왕과 왕비의 관계는 비교적 대등한 관계였고 모든 남편과 아내의 관계가 이와 다르지 않음을 뒤에서 알 수 있습니다. 우리가 오늘날 말하는 가부장적 관계와는 다른 모습이어서 뜻밖입니다.

자리가 자리인 만큼 왕은 체면이 말이 아니었을 것 같습니다. 모든 사람들 앞에서 망신을 당했다는 기분이었을 테니 울그락 불그락 분노 덩어리가 되는 것은 이해될 것 같습니다. 그래도 즉각 화를 터뜨리지 않고 소위 현자들에게 어떻게 하면 좋을까를 묻습니다.

이들은 왕의 기분을 먼저 살폈습니다. 바로 이것이 문제입니다. 윗사람의 기분에 맞는 답을 말하는 자들이 대거 권력자의 주변에 있을 때 권력의 일탈이 시작되고 돌이키기 어려운 결과를 초래할 수도 있습니다. 그들은 폐위를 건의했습니다. 이유가 좀 그렇습니다. 왕후의 예를 신분에 관계 없이 모든 부인들이 따라 하면 아내의 멸시가 끊이지 않고 아마도 그에 대한 남편들의 분노가 이어질 것이라고 저들은 생각합니다. 정말 그리 될까요?

이러한 생각을 왕이 거절할 수는 없었을까요? 판단하고 거절하는 것이 지혜일 것 같습니다. 그들의 대답은 왕의 분노를 덜어주는 것이 아니라 분노의 행동으로 가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왕후에 대한 조치는 모든 가정에서 아내가 남편을 존중하게 될 것이라는 미명 아래 신하들이 원하는 대로 되었습니디.

가정의 ‘사적인’ 질서가 왕의 명령에 의해 바뀔 수 있는 것은 결코 아닐 것입니다. 그럼에도 이를 법적으로 규제하려고 합니다. 공권력의 만행이라고 해야 할 것입니다. 이것이 역사적으로 얼마나 큰 영향을 끼쳤는지, 실질적으로 당시 가정의 수평적 질서가 수직적으로 바뀌었는지는 알 수 없습니다. 오늘날의 가정 내에서 남편과 아내의 관계는 어느 쪽에 가까울지요? 소통과 협력을 낳는 수평적 관계이기를 빕니다.

제한적인 환경에서도 주체적인 왕후 와스디를 왕의 분노가 무너뜨렸습니다. 그것은 악에 대한 마땅한 큰 분노가 아니라 사적인 상황에 대한 작은 분노입니다. 조절되고 통제되어야 할 그런 것이 이처럼 파괴적인 결과를 낳을 수 있습니다. 사랑과 이해의 폭을 넓혀 분노의 불길을 잡을 수 있는 지혜가 있기를 빕니다.

김상기 목사(백합교회)  webmaster@ecumenian.com

<저작권자 © 에큐메니안,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