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Domenico di Michelino, 「La commedia illumina」 (1464) ⓒWikipedia

안녕하세요, 채수일의 ‘기고만장’입니다.

오늘은 지난 시간에 이어 단테의 《신곡》 가운데 《천국편》을 알아보겠습니다. 

단테는 지옥과 연옥에서의 고통과 정화를 넘어, 이제 천국에 도착합니다. 눈부신 빛과 아름다운 노래 속에 베아트리체는 하늘들을 응시하고, 단테는 태양에서 거둬들인 눈빛을 베아트리체에게 고정하고(1), 하늘로 날아오릅니다. 하늘에서 단테는 ‘모든 것을 움직이시는 분의 영광’을 봅니다. 거대한 불꽃과 신비로운 소리에 놀라 그 이유를 알고 싶은 욕망에 사로잡힌 단테에게 베아트리체는 ‘모든 만물에는 서로의 사이에 질서가 있으니, 그것은 우주가 하느님을 닮은 형상’이라고 말합니다.(2)

인간의 천국에 대한 묘사가 태양보다 더 빛나는 빛, 아름다운 소리, 우주적 조화와 연결되어 있는 것은 거의 모든 종교 전통에 상응하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단테는 당시 가톨릭의 공식 우주관인 클라우디오스 프톨레마이오스(Ptolemy, 83년경-168년경)의 견해에 따라 천국이 아홉 개의 하늘로 이루어졌다고 믿었습니다. 고대 그리스의 수학자이자 천문학자, 지리학자이자 점성학자였던 프톨레마이오스는 지구가 우주의 중심이라는 천동설을 주장했고 지구가 둥글다는 것을 증명하려고 노력했습니다. 태양계는 달, 수성, 금성, 태양, 화성, 목성, 토성의 순서로 자리하고 있다고 보았습니다.

프톨레마이오스의 저서들은 그 후 이슬람과 유럽의 과학발전에서 매우 중요한 영향을 미쳤는데요, 태양중심설을 주장하여 근대 자연과학의 획기적인 전환을 가져온 니콜라우스 코페르니쿠스(Nicolaus Copernicus, 1473-1543) 이전 시대 최고의 천문학서로 인정받고 있는 《천문학 집대성》(알마게스트란 이름으로 더 알려져 있음), 《지리학》 등의 저서가 있습니다. 《천문학 집대성》은 140년경 편찬되었는데요, 827년경에 아랍어로 번역되었다가 12세기 후반에 아랍어에서 라틴어로 재번역되어 유럽에 알려지기 시작했습니다.
 
단테는 프톨레마이오스의 우주관을 수용한 가톨릭의 공식 우주관에 따라, 우주는 지구를 중심으로 투명한 아홉 개의 공이 겹겹이 둘러싸고 서로 다른 속도로 회전하고 있는 형상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지구에서 가장 가까운 달의 하늘을 비롯하여, 수성, 금성, 태양, 화성, 목성, 토성, 붙박이별들의 하늘, 그리고 모든 하늘들을 돌리는 최초 움직임의 하늘, 즉 원동천으로 구성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아홉 품계로 구별되는 천사들이 고유의 정해진 하늘을 관장합니다. 마지막으로는 그 너머에 하느님이 계신 최고 빛의 하늘, ‘엠피레오’(Empireo)가 온 우주를 움직이며 생명을 부여하고 있습니다.(3)

최고의 하늘인 ‘엠피레오’(Empireo)는 라틴어 엠피리우스(empyrius)에서 나온 말로, 프톨레마이오스의 우주관에 의하면 ‘불의 하늘’, 즉 불처럼 눈부시고 순수하며 가장 높은 하늘을 가리킵니다. 이 최고의 하늘은 ‘최초 움직임의 하늘’인 원동천을 둘러싸고 있는데, 원동천은 지구에서 가장 멀리 떨어져 있고 따라서 가장 빠르게 회전합니다.(4)

그런데 여러분은 천사를 보신 적이 있으신지요? 단테는 아홉 개의 공으로 구성된 천국에서 아홉 품계를 가진 천사들이 각각의 하늘에서 어떤 역할을 하는지 명확하게 구분하지는 않습니다. 다만 단테는 ‘천사’들이 천국에서 다양한 역할을 수행하는 것으로 묘사합니다. 천국의 문을 열어주거나, 시인을 인도하고, 신의 섭리를 설명하는 등의 일을 한다는 것이지요. 흥미로운 것은 천사들 사이에도 계급이 있다는 것이고, 더 높은 천사일수록 더욱 빛나고 아름다운 모습으로 묘사된다는 것입니다.

신의 뜻을 전달하는 사자로서 신과 인간 사이를 연결하면서 신의 메시지를 전달하고, 신의 뜻을 행하면서, 신의 백성을 보호하는 역할을 수행하는, 신성과 인간성의 경계 존재인 천사는 거의 대부분의 종교전통에서 등장합니다. 예컨대 유대교에서 미카엘 천사는 이스라엘을 수호하는 천사로, 가브리엘은 좋은 소식을 전하는 천사로 알려져 있지요. 유대교에서는 각 개인에게 수호천사가 있다고 믿지만, 천사는 예배의 대상이 아닙니다. 이슬람도 천사의 존재를 인정하는데요, 흥미로운 것은 사탄을 자만심으로 인해 타락한 천사로 이해한다는 점입니다. 사탄은 인간을 유혹하고 신을 대적하는 악의 근원을 상징합니다.

19-20세기 신학의 거대한 산맥으로 불리는 칼 바르트(Karl Barth)도 그의 《교회교의학》에서 천사에 대해 언급하는데요, 그는 천사의 존재론적 특성보다는 하느님의 말씀을 전달하고 증언하는 기능에 초점을 맞춰 천사를 이해합니다. 즉 하느님의 계시와 인간의 구원이라는 신학적 맥락에서 천사의 역할을 이해한 것이지요. 천사의 존재를 믿지 않는 사람들도 있겠지만, 신이 각 사람에게 수호천사를 보내 지켜주고, 신의 뜻을 전하면서, 그것을 실현하도록 도와주신다는 믿음을 탓할 이유는 없을 것 같습니다.

우리는 신과 인간 사이의 중간 존재인 천사가 어떻게 생겼는지 잘 모르지만, 그리스도교 미술작품에 등장하는 천사는 주로 날개를 단 사람 모양을 하고 있지요. 그러나 우리는 우리의 일상생활 속에서 인간 천사, 천사같은 인간이 얼마나 많은지 알고 있습니다. 굳이 먼 하늘에서가 아니어도, 우리는 사실 매일 가까운 곳에서 천사를 만나는데, 다만 몰라볼 뿐이지요.

하늘 여행을 베아트리체의 안내로 시작한 단테는 먼저 빠른 속도로 첫째 하늘인 ‘달의 하늘’에 도착합니다. 달의 하늘에서 단테는 도나티 가문의 피카르다를 만나는데, 그녀는 순결의 서원을 했지만 타인의 폭력으로 인해 서원을 완전히 채우지 못한 영혼들이 ‘달의 하늘’에 있다고 설명해줍니다.(5) 단테는 ‘달의 하늘’에서 왜 서원을 지키지 못한 영혼들이 복을 덜 받고 있는지, 그리고 왜 영혼들이 플라톤의 이론을 따르는 것처럼 보이는지 차마 묻지 못하지만, 베아트리체는 그의 마음을 읽고 설명해줍니다.(6)

단테는 플라톤(Plato, 기원전 428/427년 또는 424/423년-기원전 348년/347년)이 영혼을 어떻게 이해했다고 생각했을까요? 플라톤은 영혼들이 별들로 되돌아간다고 생각했습니다.(7) “영혼이 별로 돌아가는 것은 자연이 형상에게 영혼을 부여할 때 영혼이 별에서 나왔기 때문”이라는 것이지요.(8)

플라톤은 인간의 영혼을 단순한 생명력을 넘어, 이데아라는 완전하고 절대적인 실재를 향한 동경을 지닌 존재로 보았습니다. 플라톤은 그의 작품, ‘국가’에서 인간의 영혼을 이성(logos), 기개(thymos), 그리고 욕망(epithymos)으로 나누어 이해했습니다. 이성은 영혼의 가장 고귀한 부분으로, 지혜와 진리를 추구하며 이데아 세계를 향해 나아가는 힘입니다. 기개는 용기와 명예를 추구하며 사회를 위해 봉사하는 힘이고, 욕망은 물질적인 욕구를 충족시키려는 힘이지요. 플라톤은 이 세 가지 부분이 서로 조화를 이루어야 인간이 행복하게 살 수 있다고 보았습니다.

플라톤은 영혼의 불멸성을 주장했는데요, 영혼은 인간의 죽음 이후에는 육체라는 감옥에서 해방되어 이데아를 직접 경험하게 된다고 생각했고, 영혼이 다른 육체로 다시 태어나는 윤회를 믿었습니다. 이전 생의 행위에 따라 다음 생의 삶이 결정된다고 보았고, 끊임없는 윤회를 통해 영혼은 정화되고 완성되어 나간다고 생각했던 것이지요.

그런데 아리스토텔레스(Aristoteles, 기원전 384년-기원전 322년)는 플라톤과 달리 영혼은 육체와 분리될 수 없고, 육체에 의존하여 존재하며, 육체와 함께 소멸될 수 있다고 보았습니다. 플라톤이 영혼을 이데아를 동경하고 추구하는 힘으로 이해했다면, 아리스토텔레스는 영혼을 육체의 생명활동을 가능하게 하는 원동력으로 이해한 차이가 있습니다. 플라톤은 영혼과 육체를 이원론적으로 보고, 영혼을 육체보다 우월한 존재로, 육체를 영혼의 감옥으로 이해한 반면, 아리스토텔레스는 영혼과 육체를 일원론적인 관계에서 파악합니다. 영혼은 육체의 형상이며, 육체와 함께 작용하며, 육체의 기능을 실현시킨다는 것이지요. 플라톤이 영혼의 윤회를 주장한 반면, 아리스토텔레스는 영혼이 육체의 소멸과 함께 사라진다고 생각하여 윤회를 부정했습니다.

흔히 윤회설은 인도의 베다 시대부터 등장하여, 힌두교, 불교 등 다양한 인도 종교의 핵심적인 교리라고 알고 있습니다. 맞는 말입니다. 그러나 윤회설은 사실 어느 특정 종교에서 처음으로 주장되었다고 단정하기 어렵습니다. 고대 이집트 신화에서도 죽음 이후의 세계와 영혼의 환생에 대한 믿음이 있었고, 고대 그리스에서 피타고라스 등 철학자들도 영혼불멸과 윤회를 주장했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교는 역사적으로 때로는 플라톤의 입장을, 때로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입장을 취했지만, 성서의 가르침과 교회의 전통에 맞춰 재해석하고 발전시켜왔습니다. 영혼 불멸 신앙, 이데아와 천국의 관계, 이원론적 경향은 플라톤의 영향이라고 본다면, 영혼과 육체의 일원론적 사유와 자연신학은 아리스토텔레스로부터 영향을 받은 것이라고 하겠습니다. 이 자리는 단테가 이해한 천국이 무엇인지를 살펴보는 곳이기에, 영혼에 대한 논의는 다른 자리를 빌려 후에 더 상세하게 다루어보겠습니다.

첫째 하늘에 이어 단테와 베아트리체는 둘째 하늘, ‘수성의 하늘’로 들어갑니다. 그 곳에서 단테는 이 세상에서 큰 뜻을 품고 일했던 영혼들을 만납니다. 그중에서 단테는 유스티니아누스(Iustinianus, 482-565) 황제와 대화를 합니다. 유스티니아누스 황제는 로마 법전을 편찬한 인물이지요.(9) 단테는 마음속으로 인간의 죄에 대해 의문을 품게 됩니다. 단테의 마음을 알아차린 베아트리체는 그리스도의 강생과 수난, 그리고 지상의 모든 창조물과 원소들이 썩어 사라지는 이유와 육신의 부활에 대하여 이야기합니다.(10)

이제 셋째 하늘, ‘금성의 하늘’로 올라갑니다. 여기서 단테는 사랑에 사로잡혔던 영혼들을 만납니다.(11) 단테는 이탈리아 북부 지방 사람들의 부패와 타락, 탐욕스럽고 부패한 성직자들에 대한 비난을 듣습니다.(12)

단테는 넷째 하늘 ‘태양의 하늘’로 올라갑니다. 그곳에는 철학과 신학분야에서 이름을 떨쳤던 영혼들이 있는데, 그들은 왕관처럼 둥글게 모여 노래하면서 빙글빙글 돌고 있습니다. 그중에서 토마스 아퀴나스(Thomas Aquinas, 1224/1225?-1274)가 참다운 사랑에 대해 이야기하고 곁에 있는 열두 명의 영혼들을 소개합니다.(13) 단테의 마음속에 의혹이 일어나는 것을 알아차린 토마스 아퀴나스는 그 의혹들을 풀어주고, 성 프란체스코(Francesco, 1181/1182?-1226)의 위대한 업적과 그의 제자들을 찬양합니다. 아퀴나스는 도미니쿠스회 소속 수도사였지만, 오히려 도미니쿠스회 수도사들의 타락한 생활을 비판합니다.(14)

그러자 프란체스코 수도회 소속이었던 보나벤투라(Bonaventura, 1221-1274)가 오히려 성 도미니쿠스(Sanctus Dominicus, 1170-1221)의 공덕을 찬양하고, 프란체스코 수도회의 부패를 개탄합니다. 토마스 아퀴나스의 프란체스코 수도회 찬양에 보답하려는 것이지요.(15)

토마스 아퀴나스는 계속해서 단테의 두 번째 의문에 대해 설명합니다. 그는 아담과 예수가 부여받은 인간의 본성과 솔로몬의 현명함에 대하여 이야기합니다.(16) 베아트리체는 영혼들에게 그들의 육체가 부활한 뒤에 어떤 상태가 될 것인지 설명해 주라고 부탁합니다. 이에 대해 솔로몬이 부활 후에는 하느님의 축복이 더욱 커지고 완벽해질 것이라고 대답합니다.(17)

단테와 베아트리체는 다섯째 하늘 곧 ‘화성의 하늘’로 올라갑니다. ‘화성의 하늘’에는 믿음을 위해 싸웠던 영혼들이 십자가 형태를 이루면서 눈부시게 빛납니다.(18) 십자가 모양을 이루고 있던 영혼들 가운데 하나가 단테를 반갑게 맞이하는데, 그의 고조부 카차구이다의 영혼입니다. 그는 자기가 살던 시대 피렌체의 검소한 생활을 이야기하면서 자신이 십자군 원정에 참가했다가 순교하여 곧바로 천국으로 올라오게 되었다고 합니다.(19)

카차구이다는 단테의 조상들에 대해 설명하고 12세기 당시 피렌체의 유명한 가문들과 뛰어난 인물들이 왜 쇠퇴하고 몰락했는지 이유를 설명합니다.(20) 단테는 카차구이다에게 자신의 미래 운명을 알려 달라고 부탁합니다. 이에 대해 카차구이다는 단테가 힘겨운 망명생활을 하게 될 것을 예언하면서, 저승세계를 두루 둘러본 다음 두려워 말고 모든 것을 그대로 시로 적어 사람들에게 도움을 주라고 권합니다.(21)

카차구이다의 말을 들은 단테가 당황해하자 베아트리체가 위로하면서 여섯째 하늘 ‘목성의 하늘’로 올라갑니다. 그곳에서는 정의로운 영혼들이 날아다니며 독수리 형상으로 모입니다.(22) 단테는 그리스도를 믿지 않았으나 훌륭한 덕성을 가졌던 사람들도 구원을 받을 수 있는지 질문합니다. 독수리는 하느님의 정의가 인간의 지성으로 헤아릴 수 없다고 대답하면서, 여러 나라 군주들의 부패와 타락을 일일이 열거하며 비난합니다.(23)

그리스도를 믿지 않았으나 훌륭한 덕성을 가졌던 사람들도 구원을 받을 수 있는가? 이 질문은 지금도 많은 사람들이 제기하는 질문입니다. 그리스도교가 들어오기 전에 죽은 조상들은 구원받지 못했는가? 지금도 그리스도를 믿지 않으면 구원받지 못하는가? 하는 질문이지요.

▲ Gustave Dore, 「Dante and Beatrice gaze upon the highest Heaven, The Empyrean」 (1850) ⓒWikipedia

단테는 ‘세례도 받지 않고, 믿음도 없이 죽은 사람은 어떤 정의가 그를 처벌하는가?라는 질문에 대해 독수리같은 형태로 보이는 축복받은 영혼들은 이렇게 말합니다.: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못 박하시기 이전이나 이후에, 그분을 믿지 않은 자는 이 왕국에 오르지 못했다. 하지만 보아라, ‘그리스도여, 그리스도여!’ 외치는 많은 사람들이 심판 때는 그리스도를 몰랐던 자보다 그분에게서 더 멀리 있게 될 것이다.” 그리고 오히려 믿지 않는 이교도들이 부패하고 타락한 그리스도교인들을 처벌할 것이라고 합니다.(24)

단테와 베아트리체는 일곱째 하늘 ‘토성의 하늘’로 올라갑니다. 그곳에서 최고의 하늘까지 이어진 끝없이 높은 계단 위로 관조의 삶을 살았던 영혼들이 오르내리고 있습니다. 그중에서 성 다미아노의 영혼이 하느님의 심오한 뜻에 대해 이야기한 다음, 성직자들의 타락에 대해 한탄합니다.(25) 성 베네딕투스의 영혼이 다가와 관조의 영혼들을 소개합니다. 그리고 처음에는 훌륭한 뜻으로 시작되었던 수도원의 타락에 대해 한탄합니다.(26)

단테와 베아트리체는 여덟째 하늘인 ‘항성천’으로 올라가, 아래의 일곱 행성과 조그맣고 보잘 것 없는 지구를 내려다봅니다. 항성천에서 단테는 그리스도가 내려오는 것을 봅니다.(27) 뒤이어 아름다운 장미 같은 성모 마리아, 백합꽃 같은 그리스도의 사도들이 나타납니다. 하지만 단테는 눈부시게 찬란한 그리스도의 빛을 직접 바라볼 수가 없습니다. 그리스도는 위로 올라가고, 가브리엘 천사가 성모 마리아 주위를 돌며 노래합니다. 베아트리체의 부탁으로 축복받은 영혼들의 무리가 단테를 반갑게 맞이합니다. 베아트리체는 성 베드로에게 단테를 시험해 보라고 부탁합니다.

베드로는 믿음에 대하여 질문하고, 단테는 삼위일체의 교리에 맞게 대답합니다. 만족스러운 대답에 베드로는 단테를 축복해줍니다.(28) 단테는 고향 피렌체로 돌아가 시인으로서 월계관을 쓰고 싶은 희망을 표현합니다. 야고보는 단테에게 희망의 덕성에 대해 질문하고, 단테의 만족스러운 대답에 영혼들이 노래합니다.(29)

성 요한은 단테에게 사랑의 덕성에 대해 질문합니다. 단테는 사랑의 대상이 무엇인지, 사랑은 어디에서 시작되고, 어떻게 완성되는지 대답합니다. 단테의 대답에 축복받은 영혼들이 노래로 화답합니다.(30) 다시 시력을 회복한 단테는 아담의 영혼이 오는 것을 보고 여러 가지 궁금한 것을 질문하고 그 대답을 듣습니다.

그리스도교에서 장미와 백합은 빈번히 등장하는 상징입니다. 장미는 아름다움과 신성함을 동시에 상징하는데요, 성모 마리아와 관련해서는 순결과 동정을, 그리스도와 관련해서는 예수 그리스도의 고난과 희생적인 사랑, 장미의 가시는 그리스도의 가시관을 연상시키기 때문입니다. 또 장미의 아름다움과 향기는 천국의 기쁨을 상징하며, 영원한 행복을 나타냅니다. 또한 장미의 다섯 꽃잎을 완전한 숫자로 해석하면서 예수 그리스도의 다섯 가지 상처를 의미하는 것으로 봅니다. 백합꽃은 순결과 정결, 특히 성모 마리아의 순결함을 상징합니다. 또한 그리스도의 순결한 희생과 부활, 천국의 아름다움을 상징하는 꽃입니다.

그런데 베드로는 믿음을, 야고보는 희망을, 요한은 사랑을 상징하는 것은 언제부터 그리스도교에서 생겼을까요? 세 제자가 각각 믿음, 희망, 사랑을 상징하게 된 정확한 시기를 특정하기는 어렵습니다. 세 제자의 상징성은 그들의 각기 다른 성격과 특징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입니다. 베드로는 열정적이고 용감한 면모를, 야고보는 의로운 성품을, 요한은 예수님을 가장 사랑한 제자로 성서가 묘사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열 두 제자들 가운데 하필 베드로, 야고보, 요한, 세 사람의 이름이 부각된 것은 아마도 이들이 초대 교회에서 지도자 역할을 수행했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리고 믿음과 소망과 사랑은 매우 중요한 그리스도인의 덕목이라는 것을 강조하려는 의도가 반영된 것이라고 보입니다.

베드로의 영혼은 교회와 성직자들의 부패를 꾸짖습니다. 이어 사도들의 영혼은 위로 올라가고 단테는 다시 한 번 지구를 바라봅니다. 그리고 단테와 베아트리체는 아홉째 하늘인 ‘원동천’으로 올라갑니다.(31) 원동천에서 단테는 처음으로 하느님이 있는 곳을 바라보는데, 너무나도 강렬한 빛에 눈을 감을 수밖에 없습니다. 베아트리체는 하느님을 중심으로 둘러싸고 있는 아홉 하늘들의 움직임과 상호 관계들에 대하여 설명합니다. 그리고 아홉 하늘에 배치된 아홉 품계의 천사들에 대해 설명합니다.(32) 특히 무엇 때문에 일부 천사가 반역하였는지, 천사들의 본질적인 성격은 무엇인지 이야기합니다. 그리고 천사에 대하여 그릇된 관명을 퍼뜨리는 학자와 설교자들을 비판합니다.(33)

단테와 베아트리체는 최고의 하늘 엠피레오로 올라갑니다. 그곳은 눈부시게 빛나는 빛의 강물 같고, 거기에서 생생한 불꽃들이 튀어나옵니다. 한 가운데의 빛을 중심으로 천사들과 축복받은 영혼들이 장미꽃 같은 형상으로 둘러싸고 있는데, 베아트리체는 단테를 그 안으로 데려갑니다.(34) 축복받은 영혼들은 새하얀 장미모양으로 하느님을 에워싸고 있고, 그 사이로 천사들이 날아다니고 있습니다. 단테가 넋을 잃고 바라보는 동안 베아트리체는 자기 자리로 올라가고, 성 베르나르두스(St. Bernardus, 1090-1153)가 나타납니다. 단테는 베아트리체에게 감사의 말을 올린 다음, 성 베르나르두스의 권유에 따라 장미 사이에서 성모 마리아를 봅니다.(35)

성 베르나르두스는 최고의 하늘 엠피레오에서 새하얀 장미 속에 있는 축복받은 영혼들을 소개해 줍니다. 하와와 베아트리체를 비롯하여 성서에 나오는 위대한 인물들과 성인들입니다. 또한 죄 없이 죽어 구원받은 어린아이들의 영혼들도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성 베르나르두스는 단테에게 성모 마리아의 은총을 기도하라고 권유합니다.(36)

그리고 성모 마리아의 은총을 기도하는 단테가 하느님을 직접 볼 수 있게 해달라고 성 베르나르두스는 성모 마리아에게 기도합니다. 그러자 눈이 더욱 맑아진 단테는 드디어 하느님의 빛을 직접 바라봅니다. 그리고 그 안에서 삼위일체의 신비를 관조하게 되고, 태양과 모든 별을 움직이는 하느님의 사랑을 봅니다.(37)

이렇게 단테의 긴 여행은 막을 내립니다. 지옥과 연옥을 거쳐 마침내 도달한 천국에서 단테가 원했던 마지막 소원이자 성모 마리아의 은총을 힘입어 이루고자 했던 기도, 그것은 하느님의 빛을 직접 보는 것이었습니다.

살아서 하느님을 본 사람이 없고, 하느님을 본 사람은 반드시 죽는다고 하지만(출 33,20), 신앙생활의 마지막 소망은 하느님을 얼굴과 얼굴을 마주하여 직접 뵙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도 고린도 전서에서 말했습니다. “지금은 우리가 거울로 영상을 보듯이 희미하게 보지마는, 그 때에는 얼굴과 얼굴을 마주하여 볼 것입니다. 지금은 내가 부분밖에 알지 못하지마는, 그 때에는 하나님께서 나를 아신 것과 같이, 내가 온전히 알게 될 것입니다.”(고전 13,12).

그렇습니다. 천국은 죽은 후든 아니면 살아서든, 어쩌면 우리가 하느님과 얼굴을 마주하여 보는 곳(공간)이고, 하느님께서 우리를 아신 것같이, 우리 자신에 대하여, 인간이 무엇인지, 세계는 왜 그런지, 우리가 제기했던 모든 질문에 대한 답을 온전히 알게 되는 때(시간)일 것입니다.

채수일(전 한신대 총장)  sooilchai@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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