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빈센트 반 고흐, <폭풍이 지나간 뒤의 밀밭> (1889. 6, 생레미, 캔버스에 유채, 70.5×88.5cm, 뉘 칼스버그 글리포텍에 장기 대여, 코펜하겐)

빈센트는 이사를 많이 다닌 화가이다. 자기 나이만큼 이사를 다녔지 싶다. 이사를 많이 다닌 것은 삶의 굴곡이 그만큼 심했다는 뜻이고 어디서도 정착하기가 어려웠다는 의미이다. 그런 버거운 과정은 변화와 성장의 밑거름이 되었다.

1853년 3월 30일 준데르트에서 태어난 그는 제벤베르겐에서 기숙학교를 다녔고, 틸뷔르흐에서 중학교를 다녔다. 그리고 1869년 헤이그의 구필화랑에서 첫 직장생활을 시작하였다. 1873년에는 아버지의 임지가 헬보르트로 바뀌었고 빈센트는 런던지점으로 옮겨 로이어 부인의 집에 하숙하였다. 하숙집 딸 유제니를 짝사랑하던 빈센트는 실연의 아픔으로 이듬해에 하숙집을 옮겼다.

1875년 구필화랑 파리지점으로 왔다가 다시 런던으로 갔다가 다시 파리로 오기를 반복하였다. 이 무렵 아버지는 임지를 에텐으로 옮겼다. 1876년 1월 구필화랑에서 해고되고 아버지의 집에 잠시 머물다가 영국 램즈게이트의 기숙학교에서 보조교사를 하며 몇 번의 이사를 하였다. 1877년에는 네덜란드 도르드레흐트의 서점에서 점원으로 일하다가 신학교를 가기 위하여 암스테르담으로 이사하였다.

신학교에 입학할 수 없게 되자 브뤼셀에 있는 플랑드르 전도사학교에 적을 두었다. 그리고 1878년 말에 보리나주 탄광촌 전도사 일을 시작하였는데 2년여 동안 3번 이사를 하였다. 그리고 1880년 8월에 화가가 되기로 결심하고 10월에 브뤼셀 왕립미술아카데미에 등록하였다. 1881년에 부모가 있는 에텐으로 돌아왔다. 연말에 헤이그로 갔다가 시엔 후르닉을 만나 동거한다. 이듬해 아버지의 임지가 누넌으로 바뀌었다.

1883년 화가의 길을 제대로 걷기 위하여 드렌터-니우암스테르담을 갔다가 다시 아버지의 집으로 돌아왔다. 아버지와의 불화로 작업실을 이웃에 따로 두었다. 1885년 안트베르펜을 거쳐 파리에서 동생 테오와 함께 생활하였다. 1888년 프로방스의 아를로 이주하여 노란 집을 꾸며 예술인 공동체를 구상하였으나 실패하였다. 자기감정을 주체하지 못해 귀를 자르기도 하였다.

1889년 5월 8일, 그는 자유를 포기하고 제 발로 생레미의 정신병원 생폴드모졸을 향했다. 곁에는 자신을 살뜰히 돌봐주는 프레드릭 살레 목사가 있었다. 생레미는 아를에서 두 시간 거리였지만 풍광은 전혀 달랐다. 아를은 평야인데 비하여 생레미는 산악지역이었다.

저지대 출신의 빈센트는 처음 보는 이 신기한 광경을 보고만 있지 않았다. 병원에는 빈방이 있었고, 빈센트는 병원 측에 작업실을 부탁하여 승낙을 받았다. 그는 병동에 스스로 가두었지만 작업실에서 자유를 누리며 창작에 몰두하였다. 그의 작업실은 정신장애를 앓는 다른 환자로부터 벗어날 수 있는 피난처이기도 하였다.

빈센트는 병원 창살 사이로 보이는 밀밭을 그린 <폭풍이 지나간 뒤의 밀밭>(1889)에 인간과 자연과 하늘을 담았다. 농부들의 가슴을 조마조마하게 하는 자연의 심술을 두꺼운 붓칠로 표현하였다. 한곳에 정착하지 못하고 유리한 빈센트의 삶처럼 보인다.

농부의 땀과 희망이 때로는 자연 앞에서 수포가 되기도 한다. 경계를 위해 세운 담은 폭풍으로부터 밀을 보호하는 구실도 하는데 밀밭과 인간이 만든 인공물 너머로 가파른 산지가 성실한 농부의 삶을 보호하는 듯하다. 그 위에 거대한 구름을 품은 푸른 하늘이 있다.

빈센트는 이 그림을 ‘지극히 단순한 풍경화’(1889. 6. 9일 편지)라고 하였지만 나는 이 작품을 ‘위대한 설교’라고 부른다.

최광열(기독교미술연구소 연구원)  webmaster@ecumeni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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