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온 몸으로 물을 잡는 어린이 논학교 아이들 ⓒ정아롬

어린이 논학교의 손모내기를 마친 날이었다. 일을 마치고 4년째 참여하고 있는 한 친구와 대화를 나누었다. 모내기 하는 게 어땠는지 물어보니 굉장히 피곤하다고 했다. 그래서 평상시에 쓰지 않는 감각과 신경들을 사용해서 그렇다고 말해주었다. 맨발로 진흙을 밟으면 말초신경이 자극되어 매우 피곤해진다고 했다.

그러자 자기가 컴퓨터 게임을 좋아하는데, 어느 날은 게임을 하는 몇 시간 동안 배도 고프지 않고 피곤하지만 잠을 자지 않고 있다는 것을 알아차린 적이 있다고 했다. 그렇게 깨달을 수 있는 게 다행이라고 말해주었다. 그러면서 그런 영상은 몸을 쓰지 않고 뇌만 자극해 몸에 대한 감각을 상실하도록 한다고 이야기 해주었다.

생태텃밭 수업을 진행하는 학교의 전교생이 손모내기를 하는 날이었다. 아이들에게 모를 심는 방법을 설명을 해주고 써레질이 끝난 논에 아이들을 한 학년씩 들여보냈다. 처음 들어가본 어린 학생들은 자신이 표현할 수 있는 미끄러워요, 이상해요, 진흙 같아요, 기분이 이상해요 등 온갖 표현을 쏟아냈다. 모든 학년이 들어가니 10분간은 아이들이 외치는 온갖 소리에 귀가 먹먹할 정도였다.

작년의 경험으로 미리 선생님들에겐 이해를 당부한 뒤라 당황하진 않았다. 아이들은 생전 처음 접해보는 논에 대한 느낌과 기분을 본능적으로 표현을 한 것 뿐이다. 모내기를 마친 아이들이 삼삼오오 모여 마련해준 간식(수박과 감자)을 맛있게 먹었다. 평상시엔 안먹는 감자가 너무 맛있다고 하는 아이들도 있었다.

두 이야기가 아이들만의 상황을 말하는 것은 아니다. 자본이 인간의 삶에 깊숙이 들어오기 전에는 식의주(食衣住)라는 인간의 기본적인 생활에 필요한 것들을 ‘짓는 행위’를 통해 스스로 마련했다. ‘짓는 행위’는 ‘몸의 감각’을 끊임없이 깨웠다.

가령 밥을 짓는다고 해보자. 지금은 가스레인지에 불을 켜서 밥을 하거나 전기밥솥에 밥을 안친 뒤 버튼 하나만 누르면 된다. 그러나 과거에는 우선 불을 때기 위한 땔감을 구하기 위해 지게를 지고 산을 오르내린다. 톱이나 낫을 사용해 나무를 정리할 땐 다치지 않도록 적당한 힘을 조절한다. 땔감은 쉽게 사용할 수 있도록 차곡차곡 정리를 해두어야 한다. 다시 부엌으로 나른 뒤 불을 짚여 밥을 한다.

이 모든 과정이 몸을 사용해서 이루어진다. 몸은 삶과 필연적으로 연결되어 있었다. 그러나 ‘자본’은 인간에게 ‘몸의 감각’을 담보로 ‘시간’과 ‘편리’를 선물로 주었다. 개인이 해야 할 일을 자본을 대가로 일 관련 전문 집단이나 개인 또는 기계에게 전가했다. 대신 사용하지 않아도 되는 몸의 감각은 점차 쇠퇴하게 되었다.

무더위가 찾아온 장마철 마지막 1학기 텃밭수업을 하는 날이었다. 잠시 장마가 소강상태를 보인 뒤 햇빛이 밝게 비췄다. 높은 습도와 햇살은 아이들의 입에서 힘들다는 소리가 자동으로 나오게 만들었다. 신기하게 학년이 올라갈수록 아이들의 짜증이 심해졌다. 실내의 시원한 에어컨 바람 속에서 공부하다가 잠시 나온 텃밭 수업이 아이들에겐 얼마나 힘든 시간이었을까.

▲ 논의 물을 느끼며 심는 손모내기 ⓒ정아롬

그러나 의외로 유치원아이들은 덥다고 짜증을 내지 않았다. 생각해보니 학교건물 밖에서 노는 시간이 다른 학년들보다 월등히 많아서 인지 더운 날씨를 잘 견뎠다. 오히려 오랜만의 햇살이 반가운 얼굴이었다. 땀이 비오듯 쏟아지는 상황을 얼마나 경험해 보았을까. 시원함도 필요하지만 ‘편안함’을 위해 포기된 ‘감각’들이 무뎌지지 않았는지 살펴볼 필요가 있다.

스마트폰이 보편적인 정보통신의 수단이 되면서 미디어 노출과 기계 사용 시간이 길어지게 되었다. 눈이 나빠지는 것은 당연지사, 덕분에 몸은 더 편한 자세를 찾게 되고 감각이 점차 무뎌지게 된다. 모든 게 손 안에서 이뤄지니 몸의 편안함은 안일함을 수반하는 위험을 가지게 되었다. 또한, AI발달은 그림을 그리거나 음악을 만드는 등의 창작활동에 대한 감각이나 찾는 수고로움도 무뎌지게 만들어 가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농사를 짓는 것’을 다시 생각해 본다. 몸의 감각을 일깨워 주는 행위로서의 ‘농사’는 무엇일까. 논에 맨발로 들어가 모내기를 하고 김을 매는 것 뿐 아니라 밭을 일구고 손농기구를 사용하고 타작을 하고 갈무리를 하는 등 모든 과정이 몸에 의해 이루어진다. 텃밭을 가꾸는 학교생태텃밭 수업이나 도시농업이 중요한 것은 이러한 감각을 사용하기 힘든 상황에 놓인 틀에서 벗어나게 해주는 역할을 한다.

3월의 첫 텃밭 수업이 생각난다. 바람이 매섭게 불어 매우 추웠던 날이지만 아이들과 밭을 만들기 위해 삽으로 상토를 만드는 날이었다. 다음 수업 때 교장선생님께서 다음엔 추우면 안에서 동영상 시청을 하는 해서 아이들이 힘들지 않게 해달라고 이야기를 했다. 나는 앞에서는 알았다고는 했지만 아이들이 어떤 사람으로 자라기를 바라는 것이었는지 고민이 들었다. 힘든 상황을 견딜 수 있도록 하는 게 맞는지 아니면 피하게 하는 게 맞는지 말이다.

인간의 삶과 연결된 것엔 신기하게도 ‘짓다’라는 단어가 붙는다. ‘짓다’라는 사전적인 의미는 ‘만들다’라는 행위에 있다. 몸의 움직임이다. 인간이 살아갈 수 있는 원동력을 ‘짓다’로 표현한다. ‘집을 짓다’, ‘옷을 짓다’, ‘밥을 짓다’, 시를 짓다’, ‘농사를 짓다’. 모두 움직임과 관련되어 있다.

실제로 감각을 깨우기 위해 옷을 사는 것 대신 옷을 직접 지어보는 건 어떨까. 뜨개질도 좋다. 밖에서 사먹는 걸 줄이고 밥을 직접 지어 먹는 건 어떨까. 간단한 가구나 집을 지어보는 것도 괜찮다. 할 수 있다면 모두가 농사를 지으면 좋겠다.

결코 쉽고 편하지는 않다. 힘들고 땀을 흘릴 수도 있지만 그만큼의 가치가 있다. 뇌과학과 AI가 대세인 요즘이지만 얼마나 ‘짓는’ 행위를 하고 있을까. 기후변화는 ‘짓는’ 감각을 반드시 살려야 하는 시기로 이끌고 있다. 지금 우리는 어떤 것을 짓고 있는가. 잃어버린 감각들이 무엇인지 깨워보는 것은 어떨까.

일본의 농학자이자 교육가인 미야자와 겐지의 시의 앞 부분이 떠오른다.

비에도지지 않고
바람에도 지지 않고
여름 더위에도 지지 않는 튼튼한 몸으로
욕심은 없이
결코 화내지 않으며 늘 조용히 웃고…

유대은(기장 총회사회선교사)  webmaster@ecumeni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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