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마틴 니묄러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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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주간 우리는 당황스럽고 놀라운 한 주를 보냈습니다. 각자의 자리에서 여러 가지 모습으로 애태우고 가슴 졸이고, 혹은 답답해하고 분노하고 걱정하고, 무엇보다도 깊이 기도하셨을 줄 압니다. 비상계엄이 선포된 화요일 밤부터 수요일 아침까지 한밤을 꼬박 새웠습니다. 역사의 한 장면이 될 시간을 제 두 눈으로 꼭 보고 기억해야만 할 것 같았습니다.

한편으로는 두려웠어요. 총칼이 두려운 게 아니라, 제가 믿고 신뢰하는 역사의 주관자이신 하나님께서 이번에도 역시 항상 그러셨던 것처럼 잠잠히 계실까 봐, 하나님 도대체 어디 계시냐고 하나님 도대체 뭐 하고 계시냐고 수많은 사람들이 역사의 현장에서 눈물로 부르짖을 때마다, 우리의 눈에 하나님은 그냥 가만히 계신 것만 같았어요. 하나님은 항상 그런 식이셨으니까요.

종교는 정치하고 그 영역이 다릅니다. 현실 정치에 끼어들어서 이러쿵저러쿵 훈수를 두는 것은 종교가 해야 할 일은 아닙니다. 정치가들의 정략적인 싸움에 뛰어들어서 네 편 내 편을 가르는 그런 것은 종교가 아닙니다.

그런데 종교는 반드시 정치를 이야기해야만 합니다. 왜냐하면, 종교의 핵심은 진리이고 정의이기 때문이죠. 그리고 현실 세계에서 그 진리와 정의를 이루는 많은 부분을 정치가 담당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사실 종교는 정치를 말할 수밖에 없습니다. 다만 그 발언이 사소한 정치적인 의견을 말하는 게 아니라 근본적인 진리와 정의를 말할 때에만 종교의 발언이 의미가 있는 것이죠. 오늘 우리는 그 진리와 정의를 이해 몇 시간 동안 깊이 묵상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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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은 많은 것을 가지고 싶어합니다. 가진 것이 많아야 많은 것을 할 수 있죠. 내 마음속에 어떤 꿈이 있고 이상이 있고 대단한 뭔가를 품고 있어도, 가진 게 없으면 이룰 수가 없어요. 때로는 재물이기도 하구요. 지식이기도 하고 권력이기도 합니다. 건강도 가져야 되고, 인간관계도 좋아야 됩니다. 감성도 풍부해서 예술과 여가를 즐길 줄도 알아야죠. 탄탄한 내면의 영적인 힘도 가지고 있어야 합니다.

누구나 이 모든 것들을 가지기 위해서 여러 가지로 노력합니다. 가져야 할 그것들 자체를 위해서 노력하기도 하고, 그것을 가지기 위한 능력을 키우기 위해서 노력하고요. 이미 가지고 있는 것을 잃어버리지 않기 위해서도 노력하죠. 열심히 공부합니다. 열심히 일합니다. 열심히 운동도 합니다. 주어진 시간을 성실히 살아냅니다. 종교활동도 신앙생활도 열심히 하죠.

그런 진실한 노력들은, 비록 그 노력이 성취되지 않는다 하더라도, 흔히 이야기하는 열매를 성과를 내지 못한다 하더라도, 그 노력 그 자체로 아름답죠. 가지기 위한 노력이었는데 가지지 못하게 되더라도 아름답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내가 가지고자 한 것이 추한 욕망으로 썩어버리지 않고 아름다운 성실함으로 승화되기 때문이죠. 그 성실하고 진실된 노력. 그것은 꿈꾸지도 못했던 새로운 값진 것을 우리에게 선물로 선사해 줍니다. 우리는 그것을 두고 삶 자체의 보람이라고 말하죠.

그런데 다른 한편으로는 그런 아름다운 노력이 아니라 더럽고 추한 노력도 있습니다. 아름다운 성실함으로 승화되는 것이 아니라, 가져야만 하겠다는 그 욕망에 붙잡힌 썩어버린 노력들 말이죠. 그런 노력은 보람없는 헛된 짓에 불과합니다.

성경을 읽어보면, 하나님은 우리에게 끊임없이 무언가를 포기하라고 말씀하셔요. 버리라고 이야기하셔요. 저는 그 이야기가 마냥 ‘검소하게 살아라’라고만 들릴 때가 있어요. ‘그저 욕심을 접어라. 네가 손해 봐야지. 그저 용서해라. 그저 사랑만 해라’ 이렇게 야속하게 한편으로는 섭섭하게 들릴 때가 많아요. 가진 것이 많아야 좋고, 하나님도 우리에게 은혜를 풍성히 주신다고 하셔 놓고는, 왜 가지라고 하지 않고 ‘버려라. 포기해라. 남 줘라’ 말씀하실까?

그런데 그 말씀을 더욱 깊이 묵상해보면, 하나님의 말씀은 가지지 말아라 하시는 그 표면적인 의미가 전부가 아닌 것을 우리는 깨닫게 됩니다. 삶의 진실된 노력, 그 성실한 노력, 그 자체로서의 아름다움, 그것을 우리가 얻지 못하면, 한순간이라도 그 노력으로 인한 결과에만 집착하게 되면, 그 열매 그 이득 거기에만 눈이 멀어 있으면 안 된다는 하나님의 경고의 말씀이죠.

그래서 우리에게 그 결과 그 열매 그 이득을 끊임없이 버릴 수 있는 연습과 훈련을 하라는 겁니다. 성실하게 삶을 살아가되 그 성실함으로 얻어지는 열매에 집착해서 너의 삶에 성실함이 썩어지지 말도록 하여라. 이것이 하나님이 우리에게 ‘버려라. 포기해라’ 하시는 말씀의 깊은 뜻인 줄 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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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성경 말씀을 보니까 이스라엘 백성들이 시내산에서 내려온 모세의 명령에 따라서 하나님을 모시는 성소와 성막을 만들기 시작합니다. 그래서 그 일에 필요한 모든 것을 백성들이 헌물하는 중입니다. 필요한 물건이 뭡니까? 조금 길지만 제가 일부러 읽어보겠습니다.

“당신들은 주님께 예물을 가지고 오십시오. 금과 은과 동과 청색실과 자주색 실과 홍색 실과 가는 모시실과 염소 털과 붉게 물들인 숫양 가죽과 돌고래 가죽과 아카시아 나무와 등잔용 기름과 예식용 기름에 넣는 향품과 분향을 향해 넣는 향품과 에봇과 가슴받이에 박을 홍옥수와 그 밖의 보석들입니다(출35:21).” 

여러 가지로 어렵고 힘든 과정이 예상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이런 귀한 물건들을 많이 가지고 있었을까요? 충분하게 그들에게 있었을까요? 설령 있더라고. 하더라도 그 양이 얼마나 되었을까요? 이집트에서 도망 나온 백성들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보았듯이 귀한 것 다 모아서 금송아지를 만드는 데에 다 썼습니다.

가지고 있다 하더라도 백성들이 기꺼이 바치려고 했을까요? 뒷주머니에 숨겨놓고 감추지 않았을까요? 성막과 성소의 중요함과 하나님을 모시는 일에 대해서 가르쳐야 하고, 백성들에게 물품을 잘 바칠 수 있도록 설득하고 권면하는 일도 필요하고, 물품이 모자라거나 그 모집이 더딜 때를 대비해서 대책도 세워 놓아야 합니다.

그런데 놀라운 일이 벌어집니다. 백성들이 필요한 물품들을 예물로써 가지고 오기 시작하는데, 매일같이 차고 넘치게 가져옵니다. 더 이상 가지고 오지 말라고 명령할 정도로 차고 넘치게 백성들이 물품을 주님께 기쁜 마음으로 바칩니다.

이게 어떻게 된 일일까요? 우리는 오늘 이 줄애굽기의 말씀을 통해서 하나님의 역사가 어떻게 이 땅 위에 어떻게 실현되는가를 배웁니다. 하나님의 역사는 항상 우리가 알지 못하는 방식으로 일어납니다. 우리는 어렵고 힘들 것이라고 걱정하고 준비합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우리가 알지 못했던 곳에서 미처 생각지도 못했던 곳에서 이미 모든 일을 완성시켜 놓고 계신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오늘 이 말씀을 읽을 때 머릿속으로 걱정합니다. 모세와 똑같은 걱정을 합니다. 물품에 대해 걱정합니다. 금이 필요합니다. 은이 필요합니다. 동이 필요합니다. ‘백성들에게 금은동이 있을까? 광야에 유랑하는 내 백성이 필요한 재물을 충분히 가지고 있을까? 청색실, 자주색실, 홍색실, 가는모시실... 이런 귀한 물품이 있을까? 염소털, 붉게 물들인 숫양가죽, 돌고래 가죽, 등잔용 기름, 예식용 기름, 수많은 보석들...’ 우리의 관심은 물질에 가 있어요. 그런데 하나님은 전혀 다른 곳에서 이 문제를 이미 해결해 놓으십니다.

앞부분을 읽어보겠습니다. 35장 21절입니다. “마음이 감동되어 스스로 그렇게 하기를 원하는 사람은 모두 나서서 회막과 그곳의 제사에 필요한 모든 것과 거룩한 옷을 만들 수 있도록 갖가지 예물을 주님께 가져왔다.” 어떤 사람이요? ‘마음이 감동되어 스스로 그렇게 하기를 원하는 사람’입니다.

하나님이 백성들에게 지금 무슨 일을 해 놓으셨나요? 이들에게 금은동을 풍부하게 제공해 주셨나요? 청색실, 자주색실, 홍색실, 염소털, 양가죽, 돌고래 가죽 이런 물건을 마련할 수 있는 방도를 일러주셨나요? 돌고래 가죽을 도대체 어디서 구했을까요? 수많은 보석들 어디에 가면 어디에 가면 캘 수 있다 알려주셨나요?

아닙니다. 하나님은 물질을 준비해 주신 것이 아니라 사람들의 마음을 감동시켜 놓으셨습니다. 마음으로부터 감동되어 스스로 그렇게 하기를 원하는 사람들로 만들어 놓으신 것입니다.

하나님 나라에 필요한 사람, 하나님의 일에 감동된 사람, 그렇게 되기를 원하는 사람, 하나님의 나라를 간절히 소망하는 사람, 마음으로부터 진리와 정의에 가득 차 있는 사람, 지금이라도 하나님이 일어나라 하시면 명령대로 따라나설 사람, 하나님의 뜻대로 일할 사람, 하나님의 진리를 실현할 사람, 마침내 하나님의 나라를 이루어 갈 사람! 그런 사람들을 하나님이 만들고 계신 것입니다.

그 사람들이 누굽니까? 헐리우드 영화처럼 하늘에서 그런 사람들이 영웅처럼 뚝 떨어집니까? 브살렐, 오홀리압 하는 그런 사람들처럼 재주 있고 능력있는 사람들만입니까? 오늘 필요한 예물들을 누가 가지고 옵니까? 생각지도 못했던 다른 나라 사람들이 대단한 예물을 들고 갑자기 등장합니까?

아닙니다. 바로 이스라엘 백성입니다. 별 볼 일 없던 바로 그 사람들, 매일매일 하나님께 원망하고 매일매일 투정 부리던 그 사람들, 하룻밤만 지나면 또 원망하고 또 투정부리던 사람들, 그러다가 마침내 금송아지까지 만들었던 바로 그 사람들, 지지리도 못난 바로 그 백성이 어느샌가 하나님께서 준비한 마음으로 충만한 하나님의 백성이 되어 있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원하시던 바로 그 일을 차고 넘치게 해내는 훌륭한 백성이 되었던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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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우리는 우리의 마음을 돌아볼 수 있기를 바랍니다. 우리 안에 뭐가 보입니까? 처음 탁 들여다보면 참 못난 모습이 보입니다. 하나님 앞에 마실 물이 없다고 투정하던 그런 모습이 보입니다. 먹을 것 없다고, 고기 먹고 싶다고, 차라리 이집트의 고기 가마가 더 그립다고 말하는 그런 모습이 우리 안에 보입니다. 우리도 다른 신 섬기는 사람들처럼 재물도 넘치게 가지고 싶고 권력도 누리고 싶다고 이야기하는 우리의 마음이 먼저 보입니다.

그러나 그런 마음들을 하나하나 헤집고 더 깊은 곳으로 들어가보면, 우리 안에 하나님을 진실로 사랑하는 참된 마음이 있는 것을 발견할 줄 믿습니다. 참으로 하나님의 진리에 감동되어 있는 우리 마음들을 발견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마르틴 니묄러(Martin Niemöller)라고 하는 목사님이 있습니다. 이분은 독일 나치에 항거했던 분인데요. 이분이 ‘그들이 처음 왔을 때’라고 하는 글을 썼습니다. 원래 쓰신 글은 오늘 소개하는 것보다는 짧은 글인데, 이 글이 유명해지면서 많은 사람들이 원래 글보다 더 멋지게 시처럼 각색했습니다. 그 글을 함께 나누고 싶습니다.

처음에 나치가 왔을 때 그들은 공산당원을 잡아갔다.
그때 나는 침묵했다. 나는 공산당원이 아니었으니까.
다음에 나치는 사회주의자들을 덮쳤다.
그때 나는 침묵했다. 나는 사회주의자가 아니었으니까.
어느 날 나치가 유대인들을 끌고 갔다.
그때 나는 침묵했다. 나는 유대인이 아니었으니까.
그리고 나치는 가톨릭 신자들을 잡아갔다.
그때 나는 침묵했다. 나는 가톨릭 신자가 아니었으니까.

마침내 나치가 나에게 찾아왔다.
이런! 나를 위해 나서줄 사람이 아무도 없구나.

오늘 역사 앞에서 우리는 무슨 말을 해야 합니까? ‘그것은 나의 일이 아닙니다. 그건 나하고 상관없습니다’ 하고 침묵해야 합니까? 아닙니다. 모든 일이 우리의 일입니다. 침묵하시는 것만 같았던 주님께서, 항상 잠잠히 계시고 방관만 하시는 것 같아 야속했던 주님께서, 사실은 열심히 일하고 계셨던 것을 우리는 깨닫습니다.

무슨 일을 하십니까? 지금 우리에게 진리를 일깨워 주시고, 지금 우리에게 정의가 무엇인지 평화가 무엇인지 올바른 것이 무엇인지 깨달으라고 우리를 인도하고 계십니다. 침묵하지 말라고, 그 모든 것이 우리의 삶이라고, 그 삶에 진리를 가지고 뛰어들라고! 그것이 주님께서 일하시는 방식입니다. 필요한 금은보화를 우리의 마음속에 가득가득 채워주셔서 바로 우리가 역사의 부름에 응답하게 하시는 것입니다.

2024년 겨울, 우리는 하나님의 역사를 목도합니다. 바로 우리를 통해 일하시는 하나님의 섭리를 체험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은혜를 베푸시고 진리를 가르치시고 참됨을 일깨우신 것은, 바로 이날에 우리가 일어나 일하게 하기 위함인 것을 고백합니다. 황량한 광야에서 아름다운 성소를 만들어낸 이스라엘 백성처럼, 메마른 역사의 한 복판에서 아름다운 대한민국을 세워가는 자랑스러운 그리스도인들이 되기를 기도합니다.

주재훈 목사(생명교회)  lewisciper@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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