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울 한 초등학교 운동회 모습 ⓒ연합뉴스

잠시 회사생활을 하다가 다시 복귀한 학교는 이전의 학교보다 조금 작은 규모였지만 운동장이 큰 게 마음에 들었다. 학교를 떠나 생활하는 동안 내가 진정으로 잘할 수 있는 일, 그리고 신념을 펼칠 수 있는 일이 무엇인지에 대해 확신을 가졌고 그래서 더욱 의욕이 넘쳤다.

당시엔 토요일에도 수업을 했지만 토요휴업일이라는 개념이 처음 들어온 시기라서 격주로 쉬는 토요일을 ‘놀토’라고 불렀다. 등교하는 토요일은 급식 없이 4교시 수업을 했는데, 아무래도 격주로 쉬는 날이다보니 토요일은 수업에 집중하는 분위기를 만들기가 어려웠다. 그래서 난 다른 때보다도 토요일은 꼭 ‘체육’, ‘스포츠리그’와 같은 신체활동을 위주로 시간표를 편성했었고 이 학교에서도 그렇게 활동을 준비했다.

사립학교는 옆반과 다른 활동을 하면 그것이 좋은 활동일수록 다른 반 학부모들의 민원이 생기기 때문에 동학년과 잘 협의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래서 토요일의 체육활동은 옆반까지 함께 지도하며 합동체육으로 운영하였고, 아이들의 반응은 가히 폭발적이었다.

하지만 다음 주에 교장실에서 호출이 왔다. 무슨 일인가 하고 내려가보니 토요일에 했던 학년 체육행사에 대한 이야기였다. 

“우리 학교는 독서중심의 학교입니다. 자꾸 체육같은 것을 하면 아이들이 들떠서 독서를 하지 않아요.”

다른 잘못을 한 것도 아니고, 아이들이 좋아하는 체육수업을 한 것 때문에 주의를 들어야한다는 사실이 좀 어이가 없었다. 아니 어쩌면 교장의 표현, ‘체육 같은 것’에 발끈했는지도 모른다.

“아니, 체육때문에 아이들이 독서를 안 한다고요? 외려 체육을 해야 두뇌도 활성화되고 독서의 능률도 오른다고 생각하는데요.”
“정해진 시간표대로 체육강사가 하고 있는데 왜 담임이 또 체육을 합니까?”
“사실 우리 학교는 주당 3시간의 체육시간을 2시간만 운영하고 있지 않습니까. 다른 과목들은 넘치도록 하고 있는데 체육도 최소한 국가교육과정의 시간만큼은 좀 해 줘야한다고 생각합니다.”
“학교의 계획이 이렇게 되어있는 것은 다 이유가 있는 것입니다. 선생님 혼자만의 판단으로 그렇게 멋대로 행동해버리면 체계가 다 무너지는 겁니다.”

로마에 가면 로마의 법을 따르라는 말이 있던가. ‘체육’이 ‘독서’를 방해하는 주범이라는 말을 도저히 납득할 수 없었지만 교장의 지시 사항이니 따를 수 밖에 없었다. 그리고 그날의 수업은 이 학교에서 처음이자 마지막 체육수업이 되었다.

‘체육에 대한 사람들의 인식은 아직도 제자리 걸음이니, 진짜 우리 교육은 갈 길이 멀구나. 인간의 가장 기본적 욕구인 신체활동의 욕구를 억압하고서 어떻게 교육이 될 수 있을까.’

텅 빈 운동장의 긴 한숨소리가 귓가에 들리는 듯 하여 더욱 마음이 쓰렸던 날이었다.

홍경종 교사  webmaster@ecumeni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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