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골프장사업이 취소된 산 자락 위에 새해 첫 해가 뜨고 있다. ⓒ정아롬

3년 전 어느 날, 내가 살고 있는 마을 앞산 전체에 골프장을 짓겠다고 군에서 발표했다. 30만 평 부지에 18홀짜리 골프장을 계획하고 있고 리조트와 관광단지를 함께 조성하겠다는 것이다. 제주의 한 골프장 업체와 군이 함께 협약을 맺는 눈치였다. 군은 발 빠르게 해당 면민을 대상으로 설명회를 개최하고, 해당 업체는 골프장 조성을 위한 사무실을 설치했다.

도면을 보니 피해가 예상되는 마을은 우리 마을을 포함하여 5개 마을이었다. 밭에 올라서서 앞산을 바라보자니 화가 치밀어 올랐다. 도대체 무슨 생각으로 하는 짓인지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다. 마을에서 평생을 살고있는 분들에게 이게 무슨 날벼락인가. 마을 아재들께 골프장 관련된 일을 여쭈어보았다. 골프장이 들어설 예정인 산은 거센 바닷바람을 막아주는 방파제 역할을 한다고 한다. 그래서 산이 깎이고 나무가 몽땅 베어지면 농작물과 마을에 피해가 클 거라고 예상하셨다.

드디어 본격적인 사업을 진행하기 전 피해가 예상된 5개 마을에 주민설명회가 열렸다. 우리 마을 설명회 때 나는 반박 내용을 작성하여 참석하였다. 면장과 군의원들도 참석하여 골프장 유치에 찬성하도록 도모하였다. 주민들의 삶보단 고작 군 발전과 성과에 치중하는 것을 보니 분노가 치밀어 올랐다. 골프장이 들어서면 무조건 발전한다는 생각은 어디에서 오는 것일까. 마을에 골프치는 분이 한 명도 없는 마당에 무슨 헛소리인지. 군의 발전에 관한 일이라고 생각하고 마을 몇몇분도 일부 찬성하는 모양이었다. 결국 이런 큰 사업들이 생기면 주민 간의 분열이 생기는 것은 뻔한 일이었다.

업체의 설명이 끝나고 질의 시간이 되었다. 농사를 걱정하는 분들은 물을 사용하는 골프장으로 인해 관정의 수위가 낮아지는 것을 염려하였다. 나도 환경영향평가 기준과 주변 피해사례를 조사해 준비해온 내용을 가지고 질문하였다. 마을과의 직선거리가 가까운 곳은 50미터도 안 되는 것을 이야기하며 야간의 빛 공해, 소음 피해, 심리적 피해를 지적하였다. 잔디 농약의 비산으로 근처 마을 상수도가 오염될 수 있다는 내용, 근접한 바다의 오염 문제도 빼지 않았다.

우리 마을은 이미 근처 퇴비장의 냄새 피해를 받아 왔기에 골프장 운영시에 나올 쓰레기, 폐잔디 같은 폐기물처리에 대한 문제도 이야기 하였다. 마지막 질문은 업체의 재무상태와 공사 예산을 어떻게 마련할 건지를 물었다. 모든 골프장 공사는 빚으로 시작한다는 것을 설명회에 모인 사람들에게 알려주고 싶었다. 골프장 관계자들은 지역의 발전과 보상비용에 대한 내용으로 설득하였지만 탐탁치 않았다.

5개 마을의 주민설명회가 모두 끝난 뒤 오만가지 생각에 불안했다. 어떻게든 막아보려고 군수에게 직접 민원을 넣기도 하고 지역의 환경운동연합의 조언을 구하기도 했다. 만약 공사가 시작되면 이사를 가야 하나, 농사는 어떡해야 하나 수많은 고민에 매일 신경이 날카로워졌다. 매일 고민이 머리를 뒤흔들고 있을 때, 업체에서 해당 사업을 포기하겠다는 것을 군에 통보했다는 소식이 날아왔다. 천만다행이었다. 내 생각엔 주민의 의견보다는 얼마 남지 않는 군수선거와 코로나로 대출이율이 높았던 때라 업체의 공사 부담이 컸기 때문이라고 추측했다.

그 다음 날 기분 좋게 집을 나서는데 소스라치게 놀랐다. ‘일부 주민의 반대로 골프장 건설을 취소합니다’라는 현수막이 마을 입구에 걸려 있었다. 면 소재지 사거리에도 동일하게 있었다. 현수막의 출처가 골프장을 추진한 군청 문화관광과였다. 쩨쩨하게 우리 마을 앞에 현수막을 걸었네 하며 어이가 없었다. 당장 전화하여 주민들을 갈라치지 말라고 항의하고 현수막을 당장 철거 하라고 민원을 넣었다. 그날 오후 바로 철거가 되었다. 그렇게 골프장 문제는 우리 동네에선 사라졌지만 다른 동네로 옮겨 지금도 계속 진행 중이다.

▲ 아름다운 논 경관이 파괴되지 않기를 바란다. ⓒ정아롬

왜 이런 문제가 도시보다 농촌 같은 시골지역에 발생하는 걸까. 처음에는 땅값이 비교적 저렴하고 인구가 적어 민원이 적은 지역이기 때문이라고만 생각했다. 하지만 농생태학 모임에서 강의를 듣고 공부를 하다 보니 다른 관점으로 이해가 되었다. 이는 도시와 자연, 농어촌의 ‘경계’에 대한 문제였다. 일반적으로 ‘경계’는 두부 자르듯 선으로 정확히 나뉜 것으로 이해한다. 하지만 생태학에서 ‘경계’란 각 구역이 서로 맞닿아 있는 ‘가장자리 공간‘을 이야기 한다. ’경계‘는 두 구역간의 통로이고, 다양한 성질이 존재하는 동시에 사라지기도 하는 곳이다. 한마디로, 서로 다른 구역이 ‘교류하는 공간’이다.

만약 도시에 나무가 빽빽이 서 있는 숲이 곳곳에 있어 언제든지 자연을 만날 수 있고, 유휴부지 마다 아스팔트 대신 공원이 존재해 산책할 수 있고, 도시텃밭이 잘 조성되어 흙을 밟고 만질 수 있다면 위와 같은 상황이 발생하지 않을 거라 생각한다. 왜냐하면 경계를 자주 접하기 때문이다. 자연과 흙의 맛을 언제든 충분히 맛본 인간은 자연을 파괴해서 만든 골프장 같은 시설들을 찾을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도시에 자연을 만날 수 있고 놀며 쉴 수 있는 ‘경계’를 지속적으로 늘려야 농어촌의 경관이 파괴되는 것도 줄어든다. 그래서 대도시 뿐 아니라 읍내에도 작은 숲과 공원들, 텃밭들이 늘어나야 한다. 도시와 자연의 가장자리인 ‘경계’를 늘려 사람들이 자연과 교류하는 공간을 만들어 주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내가 살고 있는 지역구 국회의원이 농민들에게 경제적으로 이익이 된다고 생각했는지 농지 태양광이 가능하도록 하는 법을 만들려고 하고 있다. 농지 태양광이 무슨 말인지 쉽게 이야기하자면, 논 위에 기둥을 높이 세워 듬성듬성 태양광시설을 설치한다는 말이다. 태양광 발전을 통해서 얻은 수익이 농민에게 당장 도움이 되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

발전한 전기를 송전하기 위한 선로를 증설해야 한다. 단지에서 나오는 전자파는 큰 문제가 되지만 눈에 보이지 않는다. 농어촌은 도시보다 전기를 많이 필요로 하지 않는다. 결국 공장단지와 인근 도시로 전기를 보내야 한다는 말이다. 농지 위에 태양광 전지판이 놓인 경관을 생각해보았는가. 농촌의 경관은 파괴될 것이고 태양광이 땅과 작물에 미치는 영향 같은 보이지 않는 문제가 점점 드러날 것이다.

차라리 그런 법안 보단 마을살이를 풍요롭게 하는 것이 더 좋다. 자가용이 없어도 언제든지 병원에 갈 수 있도록 대중교통 시설부터 무료로 늘려야 한다. 자전거, 보행보조기구가 안전하게 다닐 수 있는 도로망을 구축하고, 면마다 도서관을 만들어 아이들과 주민들이 언제든지 책을 접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더 나가자면, 마을숲을 조성하여 주민들과 자연의 경계를 늘려주는 것이 더 현실적인 도움이 된다.

집 옆에 대규모 돈사가 들어서는 문제로 고민해 보았는가. 집 앞 바다에 거대한 풍력 발전소가 들어올까봐 전전긍긍해보았는가. 마을 건너편이 골프장의 빛으로 밤에도 대낮같이 환해질까봐 스트레스를 받아 보았는가. 국립현충원이 들어선다고 평생 일군 농지를 떠나보내야 하는 마음을 아는가. 지금 이곳에 일어나는 일이다. 고민하지 않아야 할 고민이 너무 많다. 멈추면 좋겠다.

유대은(기장 총회사회선교사)  webmaster@ecumeni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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