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Michael Wolgemut, 「Maria with the child between Saints Bartholomew, Helena, Barbara and Jodokus」 ⓒhttps://www.gnm.de/your-museum-in-nuremberg/research/research-projects/german-panel-painting-of-the-late-middle-ages

중세 후기에는 십자가 수난을 주제로 예수의 고통과 피 흘림을 강조한 예술작품들(종교화/성화, 판화, 조각 등)이 풍성하게 등장하였고, 이들 작품은 당시 대중의 신심을 반영하는 동시에 고양하는 중요한 수단이었다. 이들 예술작품은 종교예술 혹은 종교미술의 범주에 포함될 수 있으며, 특히 유럽의 경우는 미술사와 종교미술이 분리하기 어려울 정도로 밀접한 관계에 있었기에 –물론 예술이 교회의 통제에 놓여있었지만- 종교(기독교)는 예술의 창작성을 직간접적으로 촉진하고 주요한 종교적 상징들은 예술의 표현형식을 통해 다양하게 표현될 수 있었다.

동시에 종교미술은 일반 신자들의 궁극적 관심사와 세계관을 나타내면서 종교(교리)와 신도를 연결해주는 중요한 통로이기도 하였다. 무엇보다 중세 후기 종교미술에 커다란 관심이 쏠리는 것은 이들 작품이 ‘예수의 수난’이나 ‘수유하는 성모’를 주요 주제로 다루면서 일반적으로는 강한 혐오를 일으키는 아브젝트- 피, 젖, 상처 등–를 작품의 핵심 요소로 구성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예수와 마리아의 이미지에 왜 아브젝트가 차용되며, 이는 또 어떤 효과를 가져오는지에 대한 논의가 필요할 것이다. 이를 위해 우선 중세의 종교미술 또는 종교화가 ‘예수의 십자기 수난’을 주제로 시기적으로 그 표현 방법이 어떤 변화를 거쳤는지 간략하게 기술하고자 한다.(1)

중세, 이미지를 통해 신심을 강화하다

우선 비잔틴 미술은 콘스탄티노플을 중심으로 5~6세기 전성기를 거쳐 12세기경까지 번성하였는데, 이 시기 종교화는 수난(고통)보다는 절제된 감정으로 그리스도의 권위를 나타내는 데 무게를 두었으며, 그리스도는 강력한 지배자나 통치자의 이미지로 표현되었다. 그 뒤 로마네스크 미술(11세기~12세기 말까지)은 그림을 통한 교리 전달에 치중하였고, 예수의 수난도 – 당시 높은 권위를 구가하던 교회의 지배적인 교리 해석에 따라 – 그의 고통을 묘사하기보다 그의 고통을 뛰어넘는 초월적 성격을 드러내며 이상적인 모습으로 표현되었다.

이어서 고딕 미술은 유럽 전역에서 약 300년간(12세기 중반~14세기) 번성하였고, 15세기 초 이탈리아를 중심으로 르네상스 문화가 등장한 이후에도 지리적으로 르네상스의 영향에서 멀리 있던 북유럽의 고딕 시대는 16세기까지 지속되었다. 고딕 미술에 이르러서야 예수의 인간적이고 감정적인 면이 표현되었고, 이와 함께 예수의 수난이 회화의 주요 주제로 등장한다. 이러한 변화는 당시 그리스도를 본받는다는 의미에서 예수의 수난을 강조하는 가운데 그의 고통에 동참하려는 새로운 신앙의 흐름이 있었기에 가능한 것이었다.(2)

여기서 강조할 것은 중세시대 성화(聖畫)나 성상(聖像)은 단순한 감상용이 아니라 묵상의 수단이고 기도의 대상이며 종종 절대자 그 자체를 의미하였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중세시대 열렬한 신자들을 종교화나 조각이 묘사하는 성서적 사건이나 기적을 묵상이나 기도를 통해 생생하게 이미지화하고 느끼면서 신성과 감각적이면서 감정적인 소통을 추구했다는 것이다. 따라서 중세시대 예수나 성모 마리아를 다룬 미술품은 신앙의 내용이자 신앙의 대상이며, 종교체험에 필요한 (성서의) 이야기를 시각적으로 전달하는 역할을 하였다고 할 수 있다.(3)

무엇보다 중세 후기 예수의 상처와 피가 강조된 십자가 수난을 주제로 한 미술품들은 그의 육체적 고통과 절망을 드러내면서 예수의 인성을 부각하고 있다는 것이다.(4) 즉 중세 기독교 미술에서 구원자를 묘사하는 데 동원된 육체와 관련된 다양한 아브젝트들– 피, 젖, 벌어진 상처 등–은 구원자의 취약하고 인간적인 면모를 강조함으로써 신자들의 동정과 연민을 끌어내어 궁극적으로 구원자와 소통 할 수 있도록 하는 장치라고 할 수 있다.

무엇보다 중세 후기에는 감정/감성을 인간이 절대자와 소통하는 데 매우 중요한 매개체로 간주하였고, 이는 ‘정동적 신심(affective piety)’이 당시 대중적 인기를 누렸던 ‘경건 문학(devotional literature)’에도 커다란 영향을 주었음에도 확인된다.(5) ‘정동적 신심’은 예수의 인성–주로 예수의 십자가 수난–이나 동정녀 마리아의 슬픔과 기쁨에 초점을 맞추고 여기에 자신의 감정을 일체화시키는 고도로 감정적인 헌신의 한 형태이다. 여기서 신자들은 예수나 마리아와 관련된 성서적 사건이나 (경건)문학에 묘사된 장면 등을 생생하게 시각화하여, 해당 장면에 마치 물리적으로 존재하는 것처럼 참여하면서 강렬하고 다양한 감정들을 끌어냈다고 한다.

이처럼 중세 후기에 이미지는 묵상, 기도, 내면화(Verinnerlichung)에서 결정적인 역할을 하면서 절대자와의 감정적/감각적 소통을 가능케 하는 매개체로 작동했으며 특히 아브젝트를 전면에 배치하고 있는 종교화의 경우 이 과정은 보다 촉진되었다고 할 수 있다. 이런 의미에서 중세시대는 ‘말씀’보다 이미지와 시각적 신심이 지배한 시대라고 할 수 있다.(6)

동원된 성스러움

앞서 다룬 중세시대 종교미술은 근대 이전 종교/신앙과 예술이 얼마나 밀접한 관계에 있었는가를 보여준다. 따라서 본 글에서는, 종교와 예술을 분리하여 다루려는 기존의 아브젝트 이론을 보완하기 위해, 아브젝트 논의에 종교와 예술이 결합된 형태인 종교미술을 적극적으로 포함하였다. 주지하다시피 (기독교뿐 아니라) 모든 종교는 교리를 전파하고 신자들의 신앙심을 높이기 위해 다양한 시각적 이미지를 사용한다.

특히 중세 후기에는 예수와 성모가 사후 하늘로 올라가 지상에 육체적 잔해를 남기지 않았다는 믿음으로 인해 예수의 피, 눈물, 땀 그리고 성모의 젖은 이들의 육체적 실재를 확인시켜주는 성유물로 공경 되었고, 기독교 미술이나 성화/성상에서는 특히 예수의 수난과 고통을 강조하기 위해서 그의 피와 상처가 매우 대담하게 묘사되었다. 이렇게 중세 후기 성유물과 관련된 신심과 순례가 확산하고 피를 강조한 예수의 수난 그림이 증가한 데에는 당시의 대중적 신심이 절대자의 실재에 대한 시각적 확인과 함께 이들의 이미지를 통해 이들의 고통/감정과 적극적으로 동참하고자 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여기서 중세 후기 예수와 성모의 이미지에 왜 아브젝트가 중요 요소로 차용되었으며, 이는 또 어떤 효과를 가져오느냐는 질문으로 다시 돌아갈 필요가 있을 것이다. 여기서 부언할 것은 중세는 문자보다 이미지가 지배적인 시대였으며 아브젝트는 언어가 아닌 무의식의 차원에서 작동하고 있다는 것이다. 무엇보다 중세 후기 선호되었던 피 흘리는 예수의 이미지는 그의 신성이나 완전함을 강조하기보다 그의 인성 혹은 취약함을 부각하면서 신자들이 감정적 그리고 감각적 차원에서 그와 소통할 가능성을 열어주었다고 할 수 있다.

동시에 육체의 내부와 외부가 만나고 동시에 분리되는 ‘상처’로부터 분출되는 예수의 피는 양면성- 삶과 죽음, 분리와 귀환/복귀, 단절과 지속–을 보이면서 그의 초월성을 드러낸다고 할 수 있다. 더 나아가 성혈은 ‘살아있는’ 피로 묘사됨으로써 예수가 신자들의 현재/현실에 능동적으로 관여하고 있으며, 이로써 현재의 세속적 세상/질서를 벗어날 수 있다는 희망을 선사함으로써 체제전복적인 함을 가지고 있다고 할 수 있다. 무엇보다 예수의 ‘살아있는’ 피는 물질이면서 살아있고, 물질이 가진 가변성을 나타내는 동시에 불변의 신성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긴장 관계를 내재하고 있다. 다시 말해 신과 완전히 다른 차원에 있는 물질에 신이 임재한다는 교리는 물질이 구원을 가능하게 하는 것이면서 동시에 가변성 때문에 구원을 위협한다고 할 수 있다.(7)

바로 이러한 양가성이 기존 질서에 대한 위협으로 작동한다고 할 수 있다. 이러한 기존 질서에 대한 저항성은 성직자/신학자들의 성혈/성유 유물에 대한 이중적 태도에서도 간접적으로 확인된다. 즉 이들 종교권위자는 성혈과 성유 유물을 교회의 세력 확장과 신앙의 대중화를 위한 수단으로 긍정적으로 받아들이는 한편, 이들 물질에 대한 대중들의 지나친 관심과 헌신을 이교도의 영향을 받은 우상숭배로 경계하였던 것이다.

유사한 맥락에서 바이넘은 성혈 유물은 성직자들이 타 세력을 통제할 수 있는 도구인 동시에 대중들의 종교적·사회적 저항의 수단이었다고 주장한다.(8) 그렇다면 종교예술에서 예수와 마리아의 이미지에 아브젝트를 차용함으로써 보다 이들을 성스럽게 만든 것이 아니라, 오히려 이들의 성스러움 또는 구원의 힘을 드러내기 위해 피와 젖과 같은 강력한 아브젝트가 동원되었다고 하는 것이 더 적절한 표현이라고 할 수 있다.

우혜란 박사(서울대 종교문제연구소)  woohairan@hot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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