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James Tissot, 「Expulsion from Paradise」 (1896–1902) ⓒWikipedia

선과 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

에덴의 이야기는 유프라테스 강 발원지의 숲의 이야기만이 아니다. 에덴은 창조된 인간의 원형 즉 원래 인간의 모습을 담고 있다. 남자와 여자는 에덴에서 추방되어 인간의 세계를 이루게 된다. 이 두 세계는 무척이나 대조적이다. 이 이야기는 현재의 우리가 추방된 인간임을 알려준다.

인간이 에덴에서 추방된 이유는 다음과 같다. 간교한 들짐승인 뱀이 여자를 유혹하였다. 뱀은 하느님이 정말로 동산의 모든 나무를 먹지 말라 하였냐고 질문한다. 여자는 말하기를 아니다. 동산 나무 열매는 먹어도 되지만 선과 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는 만지지도 먹지도 말라 하셨다고 대답한다. 먹으면 죽기 때문이다.

뱀은 다시 말한다. 절대 죽지 않을 것이다. 오히려 열매를 먹으면 눈이 밝아지고 하느님들처럼 되어 선과 악을 알게 된다는 것을 하느님이 아시고 그렇게 말씀하셨다. 여자가 보니 그 열매는 보기도 좋고 먹음직해 보였고, 뱀의 말처럼 사람을 슬기롭게 할 것처럼 탐스러웠다. 여자가 그 열매를 먹고 남자에게도 주었다. 그 열매를 먹은 남자와 여자는 눈이 밝아져서 수치심을 알게 된다. 이들은 하느님이 동산을 거니시는 소리를 듣고 얼른 숨었다.

하느님이 남자를 부르시고 어디에 있느냐고 물으셨다. 남자와 여자는 선과 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를 먹은 것을 실토하였다. 하느님은 뱀과 여자와 남자를 벌하셨다. 뱀은 흙을 먹고 기어 다녀야 한다. 여자의 후손이 너의 머리를 상하게 하고 너의 여자의 후손의 발꿈치를 물 것이다. 여자는 해산의 고통을 당하고 남편을 지배하려 해도 남자의 지배를 받을 것이다. 남자는 저주받은 땅에서 죽는 날까지 수고를 해야 땅에서 나는 것을 먹게 될 것이다. 이제는 나무의 열매가 아니라 푸성귀를 먹을 것이고 흙에서 나왔고 또한 흙이니 흙으로 돌아갈 것이다. 추방당한 남자와 여자는 생명나무의 열매를 먹고 끝없이 살게 해서는 안 되기 때문에 하느님은 이들을 에덴에서 추방하고 그룹들을 세워 생명나무로 가는 길을 지키게 하셨다.

인간의 타락이라고 불린 이 이야기는 인간의 인격에 외적으로 수치의 마음이 나타나고 속마음은 하느님들처럼 되고자 하는 욕망이 이중적으로 작동하는 것을 알려준다. 현대 분석심리학은 문명 속 인간의 무의식 속에 병리적으로 작용하는 자아도취적 또는 자기애적 현상에 주목하고 있다. 증상이 심할 경우 인격장애로 불리는 이 현상은 자기의 존재를 매우 특별하게 구분 지으려는 욕망을 가리킨다. 모든 인간은 동일하다는 보편 명제에 대항하여 자아의 특별함, 타자에 비해 우월하려는 욕망을 구현하기 위해 지배, 성취, 압박, 속임수를 포함한 모든 수단을 다 사용하는 병리적 경향을 지칭한다. 이 나르시시즘은 수치심을 가장 견디지 못한다.

불교에서는 만물의 생성과 소멸을 알지 못하고 자신이 관찰 가능한 현상을 가지고 판단하는 것을 분별지라고 부른다. 불교는 분별지는 괴로움의 근원이 된다고 말한다. 이를 성경에 적용하면 만물이 하느님에 의해 지어졌음을 알지 못하고, 자신만의 판단으로 자신의 안목과 욕망 안에서 시시비비 즉 옳고 그름, 선과 악을 분별하려는 시도인 셈이다.

고대로부터 현대까지 문명이 중병을 앓고 성쇠를 반복하는 이유는 에덴에서 추방될 때 일어난 사건이 인류를 지배하고 있기 때문이다. 인류가 문명에 접어든 이후 지배자와 피지배자, 많이 가진 자와 못 가진 자의 순환적 반복을 보여준다. 또 불완전한 법률과 인격의 원천의 근원에 신들처럼 되고자 하는 숨겨진 욕망과 그것이 부정되었을 때 나타나는 수치심에 의한 폭력이 반복되고 있음을 또한 우리는 통찰할 수 있다.

모든 폭력은 폭력 행위 주체의 정당성을 목표로 한다. 심지어 정의를 위한 폭력이라는 제한되고 절제된 폭력조차도 그 행위의 결과는 상대방의 굴복이다. 즉 상대방에게 굴욕과 수치심을 강요하는 것이다. 어떤 형태의 정의와 선과 악의 논쟁이 바탕이 되어도 그 결과물은 상대방을 무력화하고 수치심을 안기고 행위 주체는 신과 같은 전능감과 자기 의를 성취하려 하는 것이다.

우리가 아는 문명은 이것을 반복하여 왔고 구약성경의 역사 기록은 그 관점에서 이스라엘의 역사를 보여준다. 하느님만이 유일한 이스라엘의 왕이라는 출애굽의 약속은 왕조시대가 되면서 내우와 외환의 파국의 길을 걸어간다. 이스라엘의 역사는 모든 다른 민족과 문명의 역사에 대한 예증일 뿐이다. 그 일은 동일하게 반복된다. 아합 왕은 연산군이고 카리굴라이며 히틀러의 파시즘이고 군국주의이며 스탈린의 볼셰비즘이다.

에덴의 기억과 구원

에덴은 네 강의 발원지를 가리키는 고유명사이며 동시에 하느님이 창조하신 자연적 존재로서의 인간에 대한 보통명사이기도 하다. 아담이 아담이며 동시에 인류이듯이. 문명과 지식의 담론이 지배하는 이 시점의 세계에 원초적 삶을 유지하는 이들이 있다. 예일대학교 인류학 교수인 제임스 스콧의 연구에 따르면 문명의 확장과 지배를 피해서 숨어 사는 소수 부족들이 많다는 것이다. 그는 이러한 문명을 회피하는 부족을 연구하였다. 그와 동시에 문명의 상징인 국가가 반복적으로 실패하는 이유를 또한 연구하였다.

문명을 수용하지 않거나 피하거나 거리를 두고 사는 이들은 아직도 에덴의 삶의 양식을 따르고 있다. 《총·균·쇠》라는 책의 저자로 유명한 제레드 다이아몬드는 기후변화로 인해 서구 문명이 붕괴된다면 그는 그가 연구하는 파푸아뉴기니로 가서 구석기인들과 함께 살 것이라고 단언한 바 있다. 이들은 수 천 년 전에 인류의 다수가 스스로 문명을 만들기 훨씬 전의 생활을 이어오고 있다.

문명화 이전의 에덴의 삶에는 지배계급이 없다. 경찰과 감옥이 없고 폭력이 없다. 대량 살육도 없고 전쟁으로 인한 멸절도 없고 따라서 항복의 굴욕도 없다. 자연이 주는 것에 만족하도록 길들여진 이 삶들은 종교 이전의 영적인 정신 상태도 보여준다.

현대문명이 과도하게 폭주하는 것은 사실이지만 이것을 모두 청동기 이전으로 되돌릴 방법도 마땅하지 않다. 우리는 다른 방안을 찾아야 한다. 신약성경은 수 천 년 또는 수 만년 지속되었던 에덴의 기억을 가져온다. 하느님이 처음 세계를 만들었을 때의 영적, 사회적 인간의 조건을 알려준다.

창조의 두 이야기는 인간의 먹거리 즉 경제가 하느님이 주신 나무의 열매와 씨 맺는 채소를 먹거리로 주셨다. 이것은 자연과 생명 세계가 신약성경의 용어로 은혜의 세계임을 알려준다. 거대한 생명 세계의 은혜 위에 정의 곧, 공평이 가능하다는 것을 또한 알려 준다. 은총은 사유물의 잉여를 분배하는 것이 아니라 원천적 조건을 변경하는 것이다.

구약성서의 안식일법, 안식년법 그리고 희년법은 에덴의 기억 즉 모든 인간의 삶의 토대는 하느님이 만드신 자연과 그 생명력의 토대 위에 있고 인간의 생활은 자연을 통해 하느님이 베푸신 결실의 결과임을 알리는 한편 그것이 이스라엘의 정의의 토대임을 알려준다. 토지를 이스라엘 구성원이 공평하게 사용하여야 하는 것은 인간이 창안한 이상적 법의 효력이 아니라 그렇게 인간이 창조되었기 때문이다. 그 혜택은 토지와 토지에 거하는 모든 동물과 식물에게도 해당된다. 안식일과 안식년은 사람뿐 아니라 가축과 토지도 쉬어야 한다는 데 그 증거가 드러난다.

서구의 자연법사상은 자연법의 자연적 기초가 인간의 이성이라고 주장한다. 토마스 아퀴나스부터 헤겔까지 자연법사상은 인간의 이성 안에 내재한 선과 악의 기초가 있다고 한다. 그러나 성경은 이렇게 말한다. 정의와 공평함은 자연을 통해 알 수 있다.

하느님은 비가 악인과 선인에게 똑같이 해를 비추시고 의로운 자나 불의한 자 모두에게 비를 내리신다. 너희를 사랑하는 사람만 사랑하면 무슨 상을 받겠는가? 자연법은 자연적 이성에서 기원하는 것이 아니라 그가 만드신 자연과 그 섭리를 보고 수만 수천 년 동안의 인류의 삶을 통해, 에덴의 기억을 통해 축적된 이성의 결과라 보아야 할 것이다.

현재 인류가 경험하는 재앙은 에덴에서 추방당한 자들의 지식, 분열된 그리고 자아에 갇히고, 체제와 이념에 의해 억압당한 지식에 근거한 것이다. 신약성경의 저자들이 끌어오려는 것은 인류가 만든 선과 악의 구조물에서 그 모든 것의 근원이 되는 창조의 능력, 자연의 세계 생명 세계의 복원이며 그럼으로써 자아 중심의 세계를 허무는 것이다.

현대 철학은 인간의 자율성의 한계를 보여준다. 인간의 지성으로 세계를 구성할 수 없다는 명제는 타당하다. 인간만이 생각하는가? 예전에는 그렇게 여겼으나 이젠 아니다. 우리는 자연의 생각, 다른 피조물의 생각, 비언어적 생각, 다른 생명의 생각과 말을 들어야 할 때가 되었다. “이 세상이 창조 때부터 하나님의 영원하신 능력과 신성을 그가 지으신 만물을 보고 깨달을 수 있습니다.”(로마서 1:20)

박종현(전 관동대 교수)  cuchi@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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