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검철에게 주어져 있는 초법적인 권력을 제어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화면 갈무리

법신학의 빈곤

정의와 법은 서양 교회사에서 신학의 핵심 주제였고, 법신학은 법철학 못지않게 큰 영향력이 있는 학문이었다. 그러나 어찌 된 영문인지 한국 교회와 신학은 그 주제를 등한시해 왔다. 디지털 논문 포털을 샅샅이 뒤져 보아도, 정의와 법을 주제로 다룬 법신학 논문들은 몇 편 되지 않는다.

지난 몇 주 동안 국가 형벌권의 핵심을 이루는 수사권과 기소권의 제도적 분리를 둘러싸고 사회적 논쟁과 정치적 투쟁이 치열하게 벌어졌는데도, NCCK나 그 어떤 교단 총회도 그 이슈에 대해 그 흔한 성명서조차 내지 않았다. 형사사법 제도는 정의를 실현하고 인권을 보호하는 데 근간이 되는 제도이다. 그렇기에 형사사법 제도의 변경에 교회가 철저히 침묵한 것은 이해하기 어렵다. 그것은 교회가 형사사법 제도에 관한 법률 개정이 교회의 일이 아니라고 생각했거나, 그 사안에 대한 교회의 의견을 논증하고 정당화할 채비가 갖추어지지 않았다는 뜻일 텐데, 그럴 수는 없는 일이다.

형사사법 제도의 변경에 관한 교회의 침묵은 정의와 법이 한국 교회에서 낯선 주제가 되다시피 한 것과 무관하지 않다. 한국 교회가 정의와 법을 제대로 다루지 못한 까닭은 두 가지다. 하나는 한국 교회가 율법의 신학적 용법에 치중했기 때문이다. 율법이 인간의 죄인임을 깨우치고 구원을 갈망하게 한다는 점만 부각한 나머지 법이 정의의 매체라는 점을 놓치고 만 것이다. 하나님의 정의와 인간의 정의, 하나님의 법과 인간의 법이 구약과 신약을 꿰뚫는 핵심 주제라는 인식이 한국 교회에서는 희박했다.

다른 하나는 교회와 국가의 관계에 관한 신학적 성찰이 한국 교회에 제대로 자리를 잡지 못했기 때문이다. 오랫동안 한국 개신교의 지배적인 분파는 정교 이분법을 내세우면서 겉으로는 정부가 하는 일에 오불관언의 태도를 보이고, 속으로는 정부에 굴종하며 종교 특권을 유지하는 데 급급했다. 그 분파는 교회와 국가의 관계를 제대로 형성하면서 교회가 국가에 대해 파수꾼의 역할을 해야 한다는 의식이 아예 없었다. 반면에 한국 개신교의 소수 분파는 민주화·인권 운동을 이끌면서 독재 체제를 비판과 타도의 대상으로 여겼다. 그 당시에는 독재 권력에 대한 예언자적 비판을 앞세운 정치참여가 절박한 과제였기에 교회와 국가의 관계를 법신학의 틀에서 고찰할 여유가 없었다.

그렇기는 해도, 민주화·인권 운동에서 한국적 법신학의 싹이 텄다는 것도 잊어서는 안 된다. 민중신학자들은 지배자의 법이 민중을 죄인으로 낙인찍어 기득권 체제 바깥으로 내쫓는 불의를 자행한다고 지적했다. 정의와 법이 충돌하고, 법이 정의를 구축한다. 이를 온몸으로 체험한 민중신학자들은 민중의 관점에서 정의와 법을 생각하면서 법신학을 이끌어가는 결정적인 단서를 마련했다.

법신학의 한 주제인 국가 형벌권

국가 형벌권은 법에 따라 범죄를 처벌하여 정의를 세우는 국가의 일이다. 국가는 형벌권을 행사하면서 사람의 자유를 빼앗고 재산은 물론이고 심지어 생명까지 빼앗을 수 있다. 국가의 형벌권 행사는 정의를 실현하기 위해 인간의 권리를 실체적으로 제한하는 가장 강력한 권력 행사이다. 이러한 국가 형벌권에 대해 교회는 어떤 태도를 보여야 하는가?

1) 바울의 국가 형벌권 주장

국가 형벌권은 교회가 태동할 때부터 신학적 주제였다. 그 주제를 최초로 다룬 사도는 바울이었다. 그는 정부가 선행을 장려하기 위해 칭찬하고 악한 행위를 징벌하기 위해 폭력을 행사한다고 말하고, 교회가 이를 받아들여야 한다고 가르쳤다. 그러한 주장을 뒷받침하기 위해 그는 형벌권을 행사하는 정부의 권위가 “하나님에게서 온” 것이라고 논증했다.(로마 13:1) 그는 “기존의” 정부들도 마찬가지라고 덧붙임으로써 로마 제국 정부도 하나님에 의해 세워졌다는 것을 분명하게 밝혔다. 그러한 논증은 매우 복잡한 문제를 포함하고 있지만, 두 가지는 확실하다. 하나는 국가가 형벌권을 행사하여 악을 억제하는 것이 하나님이 국가를 세운 의도라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형벌의 기준을 정하는 것은 국가라는 것이다. 국가가 선과 악을 규정하고 형벌권을 행사하는 근거는 인정법, 곧 실정법이다.

바울의 국가 형벌론은 법에 대한 비판적인 인식을 전제하고 있다. 그의 법 이론은 전혀 단순하지 않다. 그는 권위와 폭력에 근거한 법이 정의와 충돌한다고 인식했다. 악을 징벌하고 정의를 세우기 위해 사람들이 제정하여 강제로 집행하는 법이 정작 정의를 부정하는 역설적인 상황이 예수의 수난과 죽음에서 생생하게 드러났다. 하나님의 아들 예수는 율법에 따라 정죄당했고, 로마법에 따라 십자가에서 죽임을 당했다. 하나님은 법을 통해 부정되었고, 죽음이 하나님과 세상의 관계를 단절했고, 하나님이 만물 사이에 세운 바른 관계도 무너졌다. 정의가 죽은 것이다. 그렇기에 바울은 세상을 다스리는 “나라와 권위와 권력”이 사탄의 무기로 사용된다고 증언했다.(고전 15:24)

2) 교부들로부터 현대신학에 이르기까지 국가 형벌권에 대한 논의

법에 대한 바울의 문제의식은 교부들에게 계승되었다. 교부들은 인정법에 근거한 국가의 통치와 형벌권을 받아들였지만, 인정법을 자연법에 비추어 상대화했다. 자연법은 인정법을 비판하고 교정을 요구하는 논거의 위상을 가졌다. 그들은 거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자연법이 인간의 이성과 양심에 반영된 신법이라고 봄으로써 자연법마저도 상대화했다. 아우구스티누스로부터 아퀴나스의 토마스를 거쳐 오캄의 윌리엄에게 이어지는 기독교 자연법론은 인정법의 절대성 주장을 제한하는 데 초점을 맞추었다고 볼 수 있다.

종교개혁자들은 자연법을 양심에 새겨진 법으로 보고 중시하였으나, 국가의 통치와 형벌권은 인정법에 근거한다는 점을 강조했다. 그들은 하나님이 세상을 다스리기 위해 교회와 국가를 세웠다고 보았다. 하나님이 세운 두 정부는 그 역할이 서로 구별되지만, 하나님의 통치를 위해 서로 협력한다. 국가의 역할에 관련해서 루터는 하나님이 국가를 다스리는 자에게만 칼을 맡기고 법에 따라 질서를 지키고 정의와 평화를 수립하기 위해 그 칼을 쓰도록 허락했다고 못을 박았다. 그렇다면 교회는 국가의 통치와 형벌권을 바라보기만 하면 되는가? 그렇지는 않다. 교회는 율법설교를 통해서 국가의 일을 감독하는 파수꾼의 역할을 맡아야 한다. 만일 국가 권력을 장악한 자가 법을 무시하고 자의적인 폭정을 일삼을 때 교회는 율법을 바르게 해석하여 국가 권력을 행사하는 자를 깨우쳐야 한다. 율법을 설교하는 교회는 국가를 비판하고 감시하는 위치에 선다. 필요한 경우, 교회는 사회와 정치의 문제를 해결하는 데 필요한 법을 제안하는 데 망설이지 않아야 한다. 실제로 루터는 고리대금과 매점매석을 근절하는 법을 제안했고, 사회복지 실행에 관한 법안을 제출했다.

법의 제정과 집행에 관련해서 캘빈은 더 적극적인 태도를 보였다. 그는 법률을 전공한 신학자답게 율법의 셋째 용법을 고안하여 신자들에게 법을 교육하여 이를 자발적으로 지키게 하는 일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그는 국가가 법을 바르게 제정하여 이를 엄정하게 집행할 것을 촉구했다. 그는 법을 제정하는 원칙과 절차에 관해 깊은 관심을 가졌고, 공화주의적 법 제정을 옹호했다. 그는 도시국가 제네바의 사회법 제정에 깊이 관여했고, 많은 경우 법률안 초안을 작성했다. 교회의 징벌권을 규정한 교회법 제정을 둘러싸고 캘빈과 제네바 의회가 벌인 논쟁은 캘빈에게서 법신학적 사유를 첨예하게 가다듬는 기회가 되었다.

현대신학에서 법신학은 파울 알트하우스, 베르너 엘러트, 발터 퀸네르트 같은 보수적인 질서신학자뿐만 아니라, 칼 바르트, 디트리히 본회퍼, 라인홀드 니버, 하인츠-디트리히 벤들란트, 아르투르 리히, 귄터 브라켈만 같은 비판적 현실주의 신학자들에게도 핵심 주제였다. 현대 법신학의 관심사를 가장 잘 보여주는 디트리히 본회퍼의 견해를 살펴본다면, 그는 “자연적 생명의 권리”가 의무에 앞선다고 주장했다. 권위와 폭력에 근거한 법이 인간의 “정신적 생명의 권리”와 “신체적 생명의 권리”를 보호하지 못하는 한 정의를 실현할 수 없다는 뜻이다. 인권 보호가 법의 실체다. 인권을 보호하지 못하는 법은 법을 참칭한 불법이고 날것의 폭력이다. 그 법은 정의를 죽인다. 신학적 권리장전에 바탕을 둔 본회퍼의 법신학은 야만적인 히틀러 독재 체제에 저항하는 과정에서 성숙했다. 법이 국가 폭력을 전제하고 국가가 법을 통해 형벌권을 행사하는 한, 본회퍼의 인권 중심 법신학은 교회가 국가의 법률 제정과 집행에 개입하는 근거가 된다.

교회는 최근의 형사사법 제도의 변경에 침묵할 수 없다

앞에서 간략하게 살핀 법신학적 통찰로부터 결론을 이끈다면, 교회는 국가의 법 제정과 집행에 관여하고, 국가 형벌권에 개입해서 적극적으로 의견을 내야 한다. 그 논거는 세 가지다. 첫째, 교회는 악을 징벌하기 위해 법을 제정하고 국가 폭력을 통해 법을 강제하는 국가의 일을 감독하는 파수꾼의 역할에 충실해야 한다. 둘째, 정의를 신앙의 과제로 받아들이는 교회는 정의가 권위와 폭력에 근거한 법 없이는 실현될 수 없다는 것을 인정하지만, 법이 정의를 죽이는 상황을 방관해서는 안 된다. 셋째, 칭의의 사건에서 인간 존엄성의 근거를 찾는 교회는 인권을 보호하지 못하는 법은 법을 참칭한 불법이고 날것의 폭력이라고 지적해야 한다.

한국 교회는 최근 수사권과 기소권의 제도적 분리를 목표로 추진되는 검찰개혁 입법에 대해 법신학적 판단을 내려야 한다. 검찰개혁 입법의 초점은 형사소송법과 검찰청법 개정이고, 이 두 가지 입법은 국가 형벌권의 조직과 행사를 변경하는 국가 중대사이다. 만일 교회가 그러한 국가 중대사를 외면하고 의견을 제시하지 않는다면, 교회는 법신학적 책무를 다하지 못한 것이 된다.

1) 수사권과 기소권 분리의 시대적 요청

수사권과 기소권을 한 손에 움켜쥔 검찰 권력을 해체하는 것은 우리 시대의 피할 수 없는 과제가 되었다. 지난 호 <에큐메니안>에 실린 “민중신학자의 눈으로 세상 읽기 (47): 수사권과 기소권 분리는 시대의 요청이다”에서 상세하게 살핀 바와 같이, 수사권, 기소권, 구형권, 영장청구권, 형 집행권 등의 권한을 한 손에 거머쥐고, 기소독점과 기소편의주의의 특권으로 무장한 검찰의 적폐가 쌓일 대로 쌓였기 때문이다. 선별 수사, 편파 수사, 조작 수사, 과잉 수사, 제 식구 감싸기, 기소를 위한 수사, 정치 편향 등 검찰의 수사가 공정하지 않고, 기소가 정의롭지 않다는 주장은 검찰 권력의 해체를 요구하는 가장 강력한 논거였다. 인권 보호와 정의실현을 최고의 가치로 내세운 검찰이 수사와 기소를 통해 인권을 유린하고 정의를 짓밟는 일을 버젓이 자행했던 것이다.

2) 박병석 국회의장의 중재안

지난 4월 15일 더불어민주당이 검찰로부터 수사권을 완전히 박탈하는 것을 목표로 국회에 검찰개혁 법안을 제출하자, 국민의힘은 이에 거세게 저항했다.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힘의 충돌은 양당이 지난 4월 22일 박병석 국회의장이 내놓은 검찰개혁법 중재안을 수용하면서 일단 해소되었고, 검찰개혁 입법은 새 국면을 맞이하게 되었다. 물론 어느 한 정파가 합의를 깨면, 중재안은 좌초될 수 있다. 유감스럽게도 국민의힘이 그런 조짐을 보이고 있다.

국회의장의 검찰개혁 입법 중재안은 검찰의 직접수사권과 기소권을 분리하고, 검찰의 보완수사권을 유지한다는 것이 그 대강(大綱)이다. 소절(小節)로 들어가서는 중대범죄수사청을 설립할 때까지 부패범죄와 경제범죄에 대한 검찰의 직접수사권을 한시적으로 유지하고, 검찰의 보완 수사에서 별건 수사는 금지한다고 했다. 또한, 중재안은 수사 권력과 기소 권력을 통제하고 감독하는 제도적 장치를 연구하고 법제화하는 것을 장기 과제로 추진한다고 명시했다. 그러한 국회의장의 중재안은 국가의 배타적인 형사소추를 근간으로 한 대륙 형사사법 제도의 틀에서 수사권과 기소권의 분할과 상호견제를 추구한 것이어서 그 나름대로 의미가 있다. 중재안은 최선의 법제안은 아니지만, 중간 수준의 법제안으로 평가될 수 있다.

국회의장의 중재안이 나오자 법조계와 보수 언론은 중재안이 정치적 야합이라고 비난하고 검찰개혁 입법이 수사 역량을 훼손할 것이라는 기술적 측면에 초점을 맞추어 중재안을 비판했다. 인권 보호와 정의실현의 본질적인 측면에서 중재안의 문제를 지적한 의견은 없었다. 검찰개혁에 대한 법조계와 보수 언론의 의견이 이 정도밖에 안 된다는 것은 실로 개탄스러운 일이다. 검찰은 중재안을 받아들일 수 없다고 주장했을 뿐 검찰개혁 입법이 추진되는 까닭을 들여다보면서 반성하고 성찰하는 기색이 없었다. 검찰의 기득권을 건드리는 것은 도저히 용납할 수 없다는 태도다. 소장 검사들조차 마치 검사의 수사권이 헌법에 규정되어 있기나 한 것처럼 무지하기 짝이 없는 주장을 앞세우며 검찰 특권을 유지하는 데 골몰했을 뿐이다. 그러니 검찰의 미래가 어둡다고 말하지 않을 수 없다.

국회의장의 중재안은 정치적 타협의 산물이다. 더불어민주당은 검찰로부터 수사권을 완전히 박탈하겠다는 주장을 관철할 수 없었지만, 직접수사권과 기소권을 제도적으로 분리한다는 원칙을 세우는 성과를 거두었다. 국민의힘은 대륙 형사사법 제도의 골간을 훼손하지 않도록 검찰의 보완수사권을 보장할 수 있었다. 그러나 검찰개혁 입법에 대한 정치적 타협은 여러 가지 아쉬운 점을 남겼다.

3) 검찰개혁 입법에 관한 법신학적 판단

법신학의 관점에서 검찰개혁 입법의 몇 가지 측면을 살피고 의견을 제시한다. 첫째, 법신학은 국가가 형사사법 제도를 채택할 권한이 있다고 보고, 대륙법을 따르는가, 영미법을 따르는가, 아니면 양자를 혼합하는 법제를 마련할 것인가는 국가의 결정에 맡겨져 있다고 본다. 우리나라가 대륙 형사사법 제도를 채택하고 있기에 그 법제의 틀에서 검찰개혁을 추진하는 것은 법신학의 관점에서 문제될 것이 없다.

둘째, 검찰개혁 입법을 4월 임시국회 회기 내에 완료하겠다는 더불어민주당의 계획과 이를 수용한 중재안은 불가피한 측면이 있지만, 무리한 일이다. 검찰총장 출신의 대통령이 임기를 시작하면, 수사권과 기소권의 제도적 분리를 골자로 한 검찰개혁법안이 입법에 성공한다고 하더라도, 대통령으로서 법률거부권을 행사하리라고 예상되었다. 그렇기에 검찰개혁 입법의 급속한 추진은 무리한 일이지만, 검찰 수사권과 기소권의 분리가 절박한 시대적 요청이었기에 불가피하다고 생각되었다. 그러나 국가 형사사법 제도의 골간을 바꾸는 검찰개혁 입법이 공화주의적 입법 절차에 따라 충분한 사회적 논의와 정치적 합의를 거치지 않는 것은 전혀 바람직하지 않다. 그것이 법신학적 판단이다. 법신학은 법안을 공개하여 사회적 공론을 거쳐 법안의 내용을 비판적으로 검증한 뒤에 입법의 길로 가는 공화주의적 입법 절차를 수용한다. 따라서 교회는 법신학의 판단에 따라 4월 국회에서 검찰의 수사권과 기소권을 재할당하는 입법을 한 뒤에도 국가가 나서서 형사사법 제도 전반의 개혁을 공화주의적 입법 절차에 따라 추진할 것을 요구해야 한다.

셋째, 형사사법 제도 전반의 개혁을 추진할 때, 그 초점은 인권 보호와 정의실현이다. 법은 권위와 폭력을 바탕에 두고 있다. 정의의 실현을 위해 법을 제정하지만, 법은 정의를 죽일 수 있다. 인권을 보호하기 위해서는 법이 필요하지만, 법은 인권을 짓밟는 수단이 되기도 한다. 법에 따른 국가 형벌권의 행사는 언제든 인권을 침해하고 정의를 짓밟을 위험이 있다. 그것이 법신학이 중시하는 법 현실의 문제다. 따라서 교회는 법신학의 판단에 따라 인권 보호와 정의실현의 계명 아래서 수사권과 기소권의 행사를 통제하고 감독하는 제도적 장치를 만드는 것이 형사사법 제도 개혁의 목표라고 주장해야 한다.

넷째, 법신학은 “나라와 권위와 권력”이 사탄의 무기로 사용될 수 있다고 전제한다. 사탄은 모든 관계를 파괴하고 정의를 죽인다. 정의가 법을 요구하지만, 법은 국가가 권위와 권력에 바탕을 두고 제정한 것이다. 따라서 법의 제정은 말할 것도 없고, 법을 행사하고 형벌권을 행사하는 권위와 권력이 정의를 짓밟지 않게 통제해야 한다. 현대 국가에서 권위와 권력을 나누고 부분 권력을 민주적으로 통제하지 않고서는 권위와 권력의 부패를 피할 수 없다. 따라서 교회는 형사사법제도의 전면적인 개혁에 관련해서 검찰총장, 지방검찰청장, 경찰청장, 지방경찰청장 등의 수사 권력과 기소 권력의 최고 담당자들을 민주적으로 선출하고 소환하는 제도를 도입할 것을 요구해야 한다.

교회는 오늘 여기서 정의와 법의 현실에 대해 “제때 바른말”을 해야 한다. 그렇게 해야 교회는 국가 형벌권의 핵심을 이루는 형사사법 제도의 개혁에 관하여 시민사회에서 공론을 이끌고, 세상을 형성하는 역량을 발휘할 수 있다. 이를 위해 한국 교회와 신학은 법신학 역량을 최대한 키워야 한다.

강원돈(길마루글방지기/민중신학과 사회윤리)  kwdth55@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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