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중산간지대로 피신한 제주사람들 ⓒ제주 4.3 사건 진상조사보고서

제주4·3사건에서 양민이 희생된 까닭을 묻지 않을 수 있는가?

올해 열린 제주4·3사건 희생자 추념식에는 극우보수당 출신 대통령 당선자 윤석열이 참석했다. 민주당 계열의 대통령 노무현이 2006년에 참석했고 문재인이 2018년과 2020년에 참석한 적이 있었지만, 극우보수당 출신 대통령이나 대통령 당선인이 이 추념식에 참석한 것은 처음 있는 일이다. 윤석열 당선자는 추념식에서 “4·3 희생자들과 유가족들의 온전한 명예회복”을 위해 노력하고 희생자들과 유가족들에게 ‘합당한 보상’이 이루어지게 하겠다고 약속했다. 그는 지난 2월 5일 대통령 후보로서 제주를 방문했을 때 제주4·3사건에서 “이유 여하를 막론하고 양민이 무고하게 희생”된 것에 대해서는 그 넋을 기리고 추모하는 게 국민의 도리라고 말한 적이 있다. 그런데 제주4·3사건에서 양민이 무고하게 희생된 까닭을 놓고 ‘이유 여하’를 묻지 않는다고 하면서 어떻게 “4·3 희생자들과 유가족들의 온전한 명예회복”을 하겠다는 것인가? 더구나 ‘보상’은 국가의 적법한 행위에 따른 손실이 발생했을 때 그것을 처리하는 절차가 아닌가? 제주4·3사건에서 국가의 행위는 적법했는가?

제주4·3사건이라는 명칭은 이 사건의 성격 규정이 아직 공식적으로 정리되지 않았다는 것을 뜻한다. 그것은 오랫동안 광주 5·18 민주화 항쟁이 ‘광주사태’로 지칭된 것과 마찬가지다. 제주4·3사건이라는 무미건조한 표현은 그 사건이 민중항쟁의 성격을 띠고 있고, 군경과 서북청년단 등이 합세하여 그 항쟁을 무자비하게 진압하고 3만 명 정도로 추정되는 양민을 무차별적으로 학살한 국가범죄가 벌어졌다는 사실을 감춘다. 그러면서도 제주4·3사건 희생자 추념식이 매년 열리는 것을 보면, 사건의 진상을 제대로 밝히지 않은 채, 용서와 화해의 국가 의식을 통해 국민적 통합을 도모하려는 정치적 의지가 작동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한국 현대사에 깊고 깊은 상처를 남긴 ‘제주4·3사건’을 그런 방식으로 처리한다면, ‘용서와 화해’를 너무 값싼 것으로 만들지 않을까?

‘제주4·3사건’과 대학살

‘제주4·3사건’은 어느 날 갑자기 일어난 사건이 아니다. 그 사건은 지방 차원의 인민자치와 국민 차원의 통일국가를 실현하기 위해 제주도민들이 펼친 일련의 운동에서 비롯되었다. 일부 학자들은 ‘제주4·3사건’이 마치 1948년 4월 3일에 일어난 사건인 양 서술하지만, 그날 일어난 인민봉기는 1954년 9월 마지막 토벌 작전이 벌어질 때까지 계속되었다. 심지어 최후의 빨치산이 체포된 것은 1957년이었다. ‘제주4·3사건’에서 대량학살이 일어난 때는 1948년과 1949년이었다.

해방 후 제주도민들은 생활 수준의 향상, 인민에 의한 지방정부의 자주적 구성, 전국 차원의 합법 정부 수립을 기대했다. 그런 기대는 얼마 지나지 않아 깊은 실망으로 바뀌었다. 한반도는 일본 전쟁에서 승리한 외세들에 의해 남북으로 분단되었다. 반도의 남반부는 미군정(USAMGIK)의 지배 아래 들어갔고, 제주도 역시 지방 군정이 장악했다. 미군정은 친일경찰을 재배치하고, 미곡 징발 정책을 무리하게 펼치고, 밀수와 약탈을 무시했다. 제주도 미군정은 제주도 인민위원회와 일시적으로 협력하기도 했으나, 인민위원회가 미군정의 정책 실패에 저항하자 1945년 말 모든 인민자치조직을 불법화했다.

1947년 제주도 인민은 미군정에 반대하는 시위를 펼치기 시작했다. 시위는 3·1절을 기념하는 날 벌어졌다. 제주북국민학교에 집결한 3만 명이 넘는 사람들은 집회를 마친 뒤에 거리를 행진하며 구호를 외쳤다. 미군 당국은 이 스펙타클한 행사를 보기 위해 학교 앞에 모여 있던 사람들에게 발포했다. 여성과 어린이를 포함해서 여섯 명이 그 자리에서 숨졌다. 그 사건으로 인해 미군정에 대한 도민들의 분노는 빠르게 널리 퍼졌고, 항의시위가 잇달아 벌어졌다. 미군정은 3월 1일 발포 사건에 대한 책임을 지려고 하지 않았다. 도리어 미군정은 이 사건을 이용해 시위자들을 체포해 기소하고, 제주도를 ‘붉은 섬’으로 규정하고, 제주도민 70%를 ‘빨갱이’나 ‘용공분자’로 낙인찍었다.

제주4·3사건이 민중항쟁의 성격을 띤다는 것은 제주도민 대다수와 미군정 사이의 긴장과 그 사이에서 일어난 일련의 사태를 살필 때 비로소 분명하게 드러난다. 많은 제주도민이 보기에 미군정은 인민의 삶을 극도로 비참하게 만들고 인민의 의지를 조직적으로 억압하는 제국주의의 상징이었다. 1948년 5월 10일 제헌국회를 선출하기 위해 남한 단독 선거가 시행된다고 공포되자, 많은 제주도민은 외세와 그 부역자들에 맞서 싸우기로 마음을 먹었다. 그들은 인민의 더 나은 삶, 자치적인 지방정부, 전국 차원의 통일 정부가 함께 가야 한다고 믿었다. 그들은 그러한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필요하다면, 미군과 그 부역 단체들에 대항해서 무장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들은 1948년 4월 3일 여러 곳에서 동시에 봉기를 일으켰다.

4월 말까지 이어진 인민봉기의 1단계에서 미군정의 온건파와 정부군은 저항군과 협상을 하고 평화협정을 맺는 전략을 택했다. 그러나 이에 불만을 품은 강경파는 작은 마을에 대한 공격을 시작하여 주민 2명을 죽이고 12채의 집을 불태웠다. 그들은 그 사건이 무장 저항군의 소행이라고 주장했다.(1) 그 사건 이후 인민봉기는 빨치산 투쟁의 2단계로 발전했다. 미군군사고문단(PMAG)의 강력한 영향 아래 있었던 정부군은 한라산에 은신처를 마련하고 몸을 숨긴 ‘빨갱이’ 게릴라들을 토벌하는 작전을 벌였다. 토벌 작전은 1948년 5월부터 1949년 6월까지 집중적으로 벌어졌다. 토벌대는 사람들을 체포하고, 분산 수용했으며, 마을들을 불태우고, 무수한 사람들을 학살했다.

그러한 토벌 작전은 인종박멸 전쟁이나 집단 학살의 모델을 따라 설계되었다. 토벌 작전이 벌어지는 기간에 169개 마을에서 학살이 이어졌고, 학살 희생자들은 3만 명 이상이 되는 것으로 추산된다. 제2단계 인민봉기가 전개되었을 때, 미군정과 정부군은 산속에 약 1천5백 명의 빨치산이 활동하고 있다고 추정했다. 그들은 한라산 기슭의 마을들에 은신했다. 빨치산 토벌 작전에서 3만 명 이상이 희생되었다는 것은 빨치산이 은신한 마을의 무고한 사람들을 모조리 죽이는 학살이 조직적으로 자행되었다는 뜻이다.

제주도 대학살의 진상을 규명하려는 노력

2000년 1월 국회는 「제주4·3사건진상규명및희생자명예회복에관한특별법」(법률 제2000호, 2000년 1월 12일. 이하 「특별법」)을 제정했다. 「특별법」은 남아프리카공화국의 넬슨 만델라가 추구했던 ‘진실을 통한 화해’를 모델로 했고, 그것은 한국 민주화를 투쟁에서 고난과 희생을 당했던 김대중 전 대통령이 염두에 두었던 모델이기도 했다. 「특별법」에 따라 정부는 4·3·대학살의 진상을 규명하는 일을 지원할 수 있게 되었다. 그러한 진상규명이 공식적으로 이루어지기까지 50년 이상이 걸린 것은 만시지탄이지만, 다행스러운 일이다. 그러나 나중에 지적하겠지만, 「특별법」의 한계 역시 뚜렷했다.

오랫동안 ‘제주4·3사건’에 대해 말하는 것은 금기였다. 한국전쟁 이후 반공주의는 국시의 지위를 가졌다. 한국인들은 레드콤플렉스 증후군에 사로잡혔다. ‘빨갱이’의 낙인이 찍힌 사람과 그 가족들은 반공 연좌제에 묶였다. 그들은 한국 사회에서 그 어떤 기회도 얻지 못했다. 독재자 이승만은 4·3 인민봉기를 이북의 공산 정권과 소련(USSR)이 선동한 공산주의 반란으로 규정했다. 그러한 정치적, 이데올로기적 지형이 굳어져 있던 시기에 ‘제주4·3사건’에 접근해서 그 진상을 규명하는 일은 불가능했다.

1960년 4월 혁명 이후 수립된 제2공화국 시대에 몇몇 사람들은 ‘제주4·3사건’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기 시작했다. 1961년 제2공화국이 군부 쿠데타로 무너지자 ‘제주4·3사건’에 대해 견해를 밝혔던 용기 있는 사람들은 투옥되었다. 군부가 강화한 반공주의 일색의 국가보안법은 역사적 진실을 찾고자 하는 국민의 눈과 입을 막았다. ‘제주4·3사건’에 대한 완전한 침묵과 무지가 강제되었다. 일부 소설가와 시인들만이 개인적인 고난을 무릅쓴 채 그 사건을 묘사하고 작품화했을 뿐이다.

1987년 한국 사회가 악랄한 군사 독재에서 해방되면서 사람들은 이제까지 터부시되었던 역사적 이슈들을 끄집어내고 숨겨진 진실을 조사하기 시작했다. 제주도민들도 제주 대학살사건의 진실을 찾기 위해 움직였다. 제주4·3연구소는 증언을 수집하고, 연구를 조직하고, 관련 단체들 사이에 네트워크를 구축하고, 지방정부와 중앙 정부의 협력을 끌어내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1992년 대선과 1997년 대선에서 ‘제주4·3사건’의 진상규명은 전국적인 이슈가 되었다. 김대중 대통령 후보는 ‘제주4·3사건’의 진상을 규명하고, 피해자의 명예를 회복하고, 제주도를 평화의 섬으로 발전시키기 위한 법을 제정하겠다고 선언했다. 1997년 대선에서 당선된 김대중 대통령의 정치적 의지는 2000년 「특별법」으로 결실을 보았다.

「특별법」에 근거해서 설치된 「제주4·3사건진상규명및희생자명예회복위원회」는 대규모 조사를 거쳐 2003년 3월 29일 『제주4·3사건진상조사보고서』(이하 『진상조사보고서』)를 제출했다. 이를 검토한 학자들은 『진상조사보고서』에 가해자의 정체가 정확하게 명시되지 않았다고 지적한다. 학살당한 사람들도 단지 ‘희생자들’로 지칭되었을 뿐이다. ‘희생자’라는 개념은 그들을 죽인 사람들이 누구인가를 전혀 암시하지 않는다. 그 개념은 그 사람들이 혼돈의 소용돌이 속에서 희생 제물이 되었음을 시사할 뿐이다. 따라서 「특별법」과 『진상조사보고서』는 제주 대학살 시기의 정부와 더 나아가 미국이 이 사건에 대해 사과하고 무고한 희생자들에게 ‘배상’해야 할 책임을 면제해 주고 있다. 「특별법」과 『진상조사보고서』는 대학살의 모든 측면을 국가 폭력을 통한 인권 침해로 축소하려고 했다. 그러한 축소주의적 관점은 역사적 사실과 진실에 제대로 접근할 길을 열 수 없다. 바로 그것이 「특별법」의 한계이다.

「특별법」의 한계는 2021년 2월 국회에서 「특별법」의 전부개정이 이루어졌어도 바뀌지 않았다. 희생자로 결정된 사람에 대한 위자료 등의 특별 지원, 4·3사건 희생자 특별재심, 추가 진상조사 심의·의결, 행방불명으로 결정된 희생자 실종 선고 청구 특례, 제주4·3사건 트라우마 치유 사업의 근거 규정 등이 「특별법」 전부개정법률에 담겼으나, 거기서도 ‘제주4·3사건’의 성격을 재규정하려는 시도는 아예 없었다. 따라서 ‘희생자’만이 부각할 뿐 가해자의 정체는 여전히 어둠 속에 잠겨 있다.

굿을 통한 해원과 화해의 한계

‘제주4·3사건’에 대한 침묵이 강요되는 동안, 굿은 그 사건에 대한 기억을 이어가고 그 사건이 남긴 트라우마 경험을 소화하는 데 그 나름대로 역할을 했다. 굿이 참을 수 없이 억울해도 그 억울함을 말로 표현할 수 없어서 마음에 맺힌 한을 푸는 기능을 수행하고, 그러한 한풀이를 통해 사람들 사이에서 화해를 이루는 효과를 발휘한다는 것은 잘 알려져 있다. 그러한 굿은 ‘제주4·3사건’을 현재화하는 데 적지 않은 공헌을 하였다. 그러나 나중에 보겠지만, 그 한계도 분명하다.

제주도는 샤머니즘이 살아 있는 섬이다. 마을마다 여러 채의 무당집이 있고, 신력이 뛰어난 무당이 든 집이 그 중심을 이룬다. 제주도에서는 지금도 굿이 자주 벌어진다. 굿은 제주 대학살과 한국전쟁 이후에 더 크게 성행했다. 대학살과 전쟁이 사람들에게 남긴 트라우마가 갖가지 신경증과 신경정신병 등으로 발현했기에 치병굿이 자주 벌어졌다.

굿에서는 트라우마를 일으킨 장면이나 상황에 맞닥뜨리게 하는 것이 중시된다. 트라우마는 어떤 장면이나 정황과 결합하기 마련이지만, 트라우마의 경험은 기억되지 않는 경우가 흔하다. 이처럼 트라우마를 의식의 영역에서 추방하는 것은, 그렇게 하지 않고서는, 일상생활을 꾸릴 수 없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해서 마음과 몸에 새긴 트라우마가 사라지지는 않는다. 트라우마를 지닌 사람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트라우마가 발현되어 고통과 장애를 겪지만, 자신이 왜 그러한 장애와 고통에 사로잡히는지 알지 못한다. 그는 트라우마에 시달리면서도 트라우마에서 벗어날 길이 없다. 그러한 환자를 치유하기 위해 무당은 의식 바깥으로 쫓아낸 트라우마를 불러들여 환자가 트라우마의 현실을 직시하게 함으로써 환자를 트라우마에서 벗어나게 한다. 그것이 치병굿에서 무당이 하는 일이다.

제주도에서 흔히 벌어지는 치병굿의 한 예를 들어본다. 열여섯 살 먹은 한 남학생은 오랫동안 악몽에 시달렸다. 그는 고아였고, 할머니 손에서 자랐다. 그는 온몸이 피범벅인 채 출몰하는 두 형상에게 괴롭힘을 당했다. 그는 그 형상이 누구인가를 전혀 알 수 없었다. 치병굿을 하러 온 무당은 가족력을 ​살피다가 그 남학생의 부모가 마을에서 학살이 벌어질 때 칼에 찔려 죽었다는 사실을 알았다. 학살이 벌어질 때, 소년은 고작 두 살이었다. 무당은 굿을 벌이면서 죽임을 당한 사람들의 혼을 불러냈다. 그는 죽임을 당한 사람들을 하나하나 불러내어 죽은 자가 겪었던 두려움과 패닉, 공포와 분노, 슬픔과 고통을 그대로 재연하고, 고인을 대신해서 고인의 목소리로 그가 유족들에게 전하고 싶은 메시지를 전했다. 죽은 사람들과 살아남은 사람들이 무당을 통해 서로 소통하게 된 것이다. 살아남은 사람들은 고인을 위로하고 저승에서 복을 받기를 기원했다. 그렇게 하자 죽은 사람은 마음의 한을 풀고 영원한 안식을 취하기 위해 저승으로 갔다. 남학생은 그를 괴롭혔던 형상이 누구인가를 깨닫게 되었고, 그들에게 어떤 일이 일어났는가를 알게 되었다. 그는 트라우마의 현실을 마주함으로써 트라우마에서 해방될 수 있었다.

샤머니즘을 연구하는 학자들은 굿이 치병뿐만 아니라 화해를 이루는 효과가 있다고 지적한다. 굿은 죽임을 당한 사람들과 죽인 사람들, 피해자들과 가해자들을 화해시키는 다리를 놓을 수 있다는 것이다. 마을굿이나 추모굿이 그러한 역할을 한다는 것이다. 마을굿을 벌일 때, 무당은 죽은 사람들의 혼을 불러내고 마을 사람들과 소통하게 한다. 그러한 소통은 죽은 사람들과 살아 있는 사람들의 묵은 감정이나 원한을 해소하는 효과가 있을 수 있다. 어쩌면 마을굿에 참여하는 사람들 가운데는 피해자들의 가족들과 살육을 벌인 자들도 있을 것이다. 무당은 그들이 트라우마 경험에서 벗어나게 해 달라고 기원한다. 그는 피해자들과 가해자들이 화해하고 조화로운 세계에서 살기를 간절히 기도한다.

그러나 그렇게 굿을 벌이면서 화해를 기원한다고 해서 화해가 실제로 이루어지겠는가? 사람들 사이의 관계를 왜곡되거나 파괴하는 힘들과 구조들과 요인들이 그대로 남아 있는데, 어떻게 그 관계가 회복되었다고 말할 수 있는가? 가해자들의 정체가 밝혀지지 않았고 가해자들이 그들의 범죄에 대해 책임지겠다는 용의를 밝히지 않았는데도, 대학살의 가해자들과 피해자들 사이의 화해를 말하는 것은 정의의 요구에 반한다. 사정이 그러한 데도, 대학살의 숨겨진 가해자들과 노출된 피해자들이 화해해서 조화로운 세상에 살 수 있기나 한 것처럼 말하는 종교는 아편의 역할을 한다고 말해야 한다.

성서는 정의가 바른 관계라고 가르친다. 바른 관계없이는 화해도 없고, 평화도 없다. 화해는 가해자가 자신의 정체를 드러내고 죄를 고백하여 용서를 받을 때 비로소 이루어지고, 평화는 죽은 사람들이나 살아 있는 사람들이나 사람들 사이에 정의가 세워질 때 실현된다. 죽은 사람들이 마음에 한을 품고 고통스러운 모습으로 출몰하고 있는데, 그 한이 맺힌 사연을 낱낱이 듣고 그 한을 푸는 정의로운 조처를 하지 않고서 어떤 화해와 평화가 수립되겠는가?

죽은 자의 부활과 최후의 심판

‘제주4·3사건’의 진상을 규명하고 희생자들의 명예를 회복하려는 이제까지의 노력은 그 나름대로 의미가 있다. 그러나 ‘제주4·3사건’의 성격은 아직 규정되지 않았고, 대학살을 벌인 장본인들의 정체는 여전히 드러나지 않았다.

이제까지 ‘제주4·3사건’의 성격을 해석하려는 시도는 크게 네 가지 유형으로 나뉜다. 이남의 반공 정부들은 그 사건이 북한과 소련의 음모에서 비롯된 공산주의자들의 반란이라고 규정했다. 이북 당국은 인민민주주의 혁명 전략에 따라 제주도 토착 사회주의자들이 이끌어간 혁명운동이라고 주장했다. 이 두 가지 해석 패러다임에서 민중은 운동의 주체가 아니라 동원된 대상으로 여겨지는 경향이 있다. 민주화 과정 이후에 제시된 셋째 해석 패러다임은 ‘제주4·3사건’의 성격을 민중의 저항운동 내지는 민중봉기로 규정한다. 그러한 진보적인 해석은 한국 사회에서 소수 의견으로 남아 있다. 넷째 해석 패러다임은 학살당한 사람들이 혼돈의 소용돌이에서 희생당한 사람들이라는 데 초점을 맞춘다. 그것은 학살을 심각한 인권 침해로 보는 관점이다. 그러한 해석은, 이미 앞에서 본 바와 같이, 「특별법」과 『진상조사보고서』의 바탕을 이룬다.

그 모든 해석 패러다임들은 ‘제주4·3사건’의 역사적 진실을 밝히기에 충분하지 않다. 그 해석들이 서 있는 자리가 서로 다르고 멀리 떨어져 있기에 그 해석들은 서로 수렴되기 어렵다. 아마도 그러한 차이는 해석자의 관점을 형성하는 데 영향을 미치는 권력의 배치와 그 효과에서 비롯되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어떤 해석이든 그 해석자가 속해 있는 권력 배치의 효과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권력의 배치가 바뀌면, 하나의 해석은 다른 해석에 그 자리를 양보하기 마련이다. 권력의 배치가 끊임없이 변화하는 이 세상에서 과연 역사적 진실에 도달할 길이 있겠는가?

학살당한 사람들의 유가족들은 가해자들이 자신이 범한 범죄를 고백하고 사과하고 배상할 준비가 되어 있어야만 화해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한 과정은 물론 살아남은 사람들이 깨뜨러진 관계를 회복하고 더불어 살아가는 데 필요하다. 그러나 학살한 사람들과 학살당한 사람들은 어떻게 화해할 수 있는가? 치유굿과 한풀이굿이 그러한 화해의 길을 열어준다고 기대되어 오기는 했지만, 그 굿은 살아남은 사람들과 유가족들과 가해자들에게 위로와 격려를 가져다줄 뿐이지, 학살당한 사람들과 학살한 사람들 사이의 화해를 수립한다고 볼 수 없다. 굿은 학살당한 사람들이 살아 있는 사람들에게 출몰하여 그들을 더 괴롭히지 못하도록 저승으로 보내는 절차이다. 학살당한 사람들은 살아 있는 사람들의 세계에서 분리되어야 한다. 그렇게 굿을 통해 영역을 분리함으로써 비로소 산 자와 죽은 자 사이의 평화가 수립된다. 그러나 그 평화가 정의로운 평화인가? 

그러한 문제를 푸는 데 죽은 자의 부활과 최후의 심판이라는 신학적 주제가 도움이 될까? 죽은 자의 부활이 신학적 주제로 부각한 맥락에 주목한다면, 그 질문에 대한 의미심장한 해답을 얻을 수 있을 것 같다. 안티오쿠스 4세에 맞선 마카베오 전쟁에서 무수히 많은 사람이 전사했을 때 어머니들은 전사한 아들들이 죽임을 당한 바로 그 자리에서 부활할 것을 간절하게 바랐다. 부활 대망의 그 맥락은 부활을 신학적으로 해석할 때 거의 잊혔다.

사도 바울은 부활을 날것의 폭력이 난무하는 현실의 맥락에서 재음미했다. 바울에 따르면, 죽은 자의 부활은 세상에 대한 그리스도의 주권에 맞서는 사탄과 그의 가장 강력한 무기인 죽음이 권세를 잃은 뒤에야 일어나는 사건이다. 죽음은 만물이 바른 관계 속에서 충만한 생명을 누리게 하려는 하나님의 의지를 거역하는 사탄의 가장 파괴적인 폭력이다. 사탄의 세력이 하나님의 아들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아 죽임으로써 하나님 없는 암흑의 세상을 가져왔듯이, 오늘 사탄의 가장 강력한 폭력인 죽음은 인종차별, 성차별, 계급차별, 군국주의, 제국주의, 대량파괴 무기 확산, 전쟁, 집단 학살, 생태계 위기 등등을 통해서도 맹위를 떨치고 있다. 그러나 사탄과 그것의 가장 강력한 무기인 죽음이 이 세상에서 최종적인 말을 할 수 있는가? 예수는 죽은 사람들 가운데서 다시 사심으로써 죽음의 힘을 무력화하고 심판했다. 죽음은 만물을 향한 마지막 말이 아니다. 죽음의 권세를 꺾은 예수의 부활을 경험한 사람들이 죽은 자의 부활을 말하는 것은 너무 당연하지 않은가?

죽은 자의 부활은 만물이 정의와 평화 가운데서 충만한 삶을 누리게 하려는 하나님의 의지를 꺾을 수 있는 것은 전혀 있을 수 없고, 하나님은 이 세상에서 작동하는 죽음의 힘을 해체하기 위해 삼위일체의 노역을 감행한다는 신앙의 가장 생동적인 고백이다. 그러한 신앙고백을 하는 사람들은 하나님이 세상에서 정의와 평화를 수립하기 위해 펼치는 활동에 기꺼이 동참할 것이다. 그들은 부당하게 죽임을 당한 사람들, 특히 학살당한 사람들이 다시 살아나 하나님 안에서 생명을 누리기 위해 돌아오리라는 절절한 바람을 갖고서 그들이 죽임을 당한 바로 그 자리와 그 자리에서 작동하는 폭력 관계를 똑바로 응시할 것이다.

최후의 심판은 어떤 해석적 관점도 역사적 사실과 진실에 접근하기에 충분하지 않다는 것을 시사한다. 역사가 끝날 때, 살아 있는 사람들과 죽었다가 다시 살아난 사람들은 모두 심판자 앞에 서게 될 것이다. 심판자는 그 사람들이 세상에서 한 일에 따라 심판할 것이다. 그의 판단은 공정하고 정의로울 것이다. 학살당한 사람들의 손상된 명예가 회복되고, 그들의 눈에서 눈물이 닦아질 것이다. 오직 그럴 때 그들은 하나님 안에서 안식과 영생을 누릴 것이다.

죽은 자의 부활과 최후의 심판은 아직 사탄의 세력이 지배하는 이 세상에서는 대망의 형식을 취한다. 그 대망은 이미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사탄의 지배가 하나님의 통치로 전환하였다는 인식에 바탕을 둔다. 따라서 그 대망은 그리스도 예수에서 이미 실현된 현실에 대한 기억이다. 그 기억이 역사의 진실에 접근할 수 없도록 가로막는 해석의 틀을 깨뜨리고, ‘제주4·3사건’을 정의로운 화해의 원칙에 따라 해결할 길을 찾게 한다.

‘제주4·3사건’에서 학살당한 사람들의 자리에서 작동한 폭력 장치와 그것을 움직인 세력을 일일이 호명할 수 없는 한, 오늘에 이르기까지 그것을 제대로 호명하지 못하도록 가로막는 불투명한 폭력과 그 폭력을 행사하는 세력을 드러내 보일 수 없는 한, 따라서 그 세력이 대학살에 대한 책임을 지도록 할 수 없는 한, 학살당한 사람들의 신원은 아직 이루어진 것이 아니다.

강원돈(길마루글방지기/민중신학과 사회윤리)  kwdth55@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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