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Jan Luyken, 「The Eleventh Hour Labourers」 ⓒGetty Image

우리가 사는 세상은 능력 위주의 사회이다. 오직 능력 있고 1등의 사람들이 힘을 갖고 또 그들에 의해서 지배되는 사회이다. 찰스 다윈(Charles Darwin 1808~1882)은 자연의 법칙을 약육강식, 적자생존으로 보았다. 따라서 환경에 적응하고 진화되어가는 종족만이 살아남고 그 종족은 번성한다고 생각했다. 이러한 생각이 오늘 우리가 사는 사회에도 그대로 적용되고 있다. 일명 사회적 다윈주의이다. 오직 경쟁에서 살아남는 자들만이 존중되고 인정받는 사회가 바로 다윈주의에 의해 움직여지는 세상이다.

오늘 신자유주의 정책과 지구촌 현상은 이러한 사회적 다윈주의를 전 세계로 파급시켰고 우리는 피나는 경쟁 속에서 살아가게 되었다. 그래서 누구든지 경쟁의 선두에 서기 위하여 갖은 노력을 다하고 그 과정에서 우정도 사랑도 인생의 기쁨도 다 포기한다. 우리는 오직 경쟁 사회에서 첫 번째로 선택받기 위해서 살아간다. 그런 과정에서 뒤에 처지는 사람들은 전혀 쓸모가 없는 사람들이 되어간다. 그들은 불필요한 잉여 존재이고 인간이다. 그들은 거추장스러운 존재로 취급되고 그렇게 전락되어 간다.

하나님 나라: 은혜로 사는 세상

그 반면에 하나님의 세상은 힘의 논리에 의해서 지배되는 세상이 아니라 은혜에 의해서 움직여지는 세상이다. 하나님의 세상은 경쟁의 논리에 의해서 능력 있는 사람만이 살아가는 세상이 아니다. 복음서에 기록되어 있는 예수의 비유 중에서 오늘 우리 사회 상황에서 가장 인기를 끌지 못할 이야기가 있다. 다름 아닌 마태복음 20장에 기록되어 있는 일꾼을 구하러 나간 포도원 주인의 이야기이다. 비유에 의하면 주인은 이른 시간에만 일꾼을 구하러 간 것이 아니다. 그는 도합 5번에 걸쳐 노동시장에 나간다. 그리고 그때마다 사람을 구해서 돌아온다.

주인은 첫 번째 선택에 들어선 능력 있는 사람들에게만 관심을 보이는 것이 아니다. 그는 소위 엘리트주의에 빠지지 않은 사람임을 알 수 있다. 엘리트주의에 빠지면 첫 번째 사람 외에는 아무도 보이지 않는다. 그 외 모든 사람은 잉여인간(剩餘人間)일 뿐이다. 그러기에 두 번째 그리고 세 번째 사람을 찾을 생각을 갖지 않는다. 엘리트주의는 소수만을 위한 사회를 추구한다. 그러나 결국은 이러한 생각은 소수도 살지 못하게 되는 결과를 낳게 됨을 알지 못한다. 엘리트주의는 오직 나 혼자만 살겠다는 생각을 갖게 만들지만 결국에는 자신도 살지 못하고 남도 살지 못하게 만드는 결과는 낳게 될 것이다. 결국에는 우리 모두가 함께 공멸하는 결과를 낳게 될 것이다. 그러나 예수의 포도원 주인이야기에 나타나는 주인공은 그러한 엘리트주의에 빠지지 않은 사람이다. 그는 1등뿐만 아니라 2등, 3등, 4등 심지어는 사회에서 소외되고 낙인 찍혀 버림받은 5등 인생들에게도 관심을 기울이고 그에게 기회를 주려고 하는 주인이다.

주인이 늦은 시간임에도 노동시장에 나가서 일할 사람을 찾은 것은 그의 농장에 할 일이 많은데 일할 사람이 없어서가 아니다. 그는 삶의 주변자리에서 서성거리는 불쌍한 인생들에게 관심을 보이려고 나갔다. 주변부의 사람들, 삶의 언저리에서 서성거리며 생의 위기를 당면하고 있는 사람들이 존재하는 한 그가 속해 있는 세상은 불행한 세상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주인은 그러한 주변 사람들을 만나서 그들에게 묻는다. “왜 당신들은 이렇게 하는 일 없이 빈둥거리고 있소?” “아무도 우리에게 일을 시켜주지 않아서 이러고 있습니다.” 이들은 모두 도대체 능력이라고는 없는 사람, 아무도 일을 시켜 주지 않는 ‘따라지 인생’들이다. 이들에게 주인은 말한다. “당신들도 포도원에 가서 일을 하시오” 얼마나 놀라운 초대입니까? 아무도 일을 시켜 주지 않는 사람들에게 주인은 가서 일을 하라고 일자리를 준다.

오늘 우리가 사는 세상은 주변의 사람들을 능력이 없는 사람들을 여지없이 잘라내는 세상이다. 그러나 포도원 주인은 일거리가 없어서 아니 일할 능력자체가 없어서 그냥 주위에서 서성거리는 사람들에게 일자리를 마련해 준다.

하나님의 마음이 있다면

작년 서초구 방배동 장애인 모자의 사건이 다시금 기억에 떠오른다. 가난과 장애라는 이중고에서 철저히 소외되었던 사람들의 삶을 다시 생각해 본다. 오늘 5등의 인생을 거두어 주시는 하나님의 사랑의 행위가 우리에게 조금이라도 있다면 우리의 사회는 이렇게까지 어렵게 되지는 않았을 것이다. 인간들을 마치 기계의 나사와 같은 소모품으로 생각하고 능력이 없으면 가차 없이 던져 버리는 이 세상을 향하여 하나님의 세상은 그렇게 살지 말라고 말한다.

우리가 오늘 이러한 하나님의 마음을 가지고 우리의 이웃을 바라보아야 한다. 하나님 앞에 간절히 기도드리는 것은 소위 한 나라의 정책을 결정하는 사람들에게 이러한 5등의 인생들의 사정과 어려움을 생각해 보는 마음이 있게 해 달라는 것이다. 일자리를 얻은 사람은 어떻게 해서 일을 얻었을까? 그것은 그의 능력 때문이 아니다. 이미 그들은 능력을 인정받지 못하고 있었던 사람들 아니었던가? 그들이 일자리를 얻게 된 것은 순전히 주인의 자비와 긍휼의 마음이었다. 그것을 우리는 은혜라고 말할 수 있다. 은혜는 나의 능력이나 혹은 공로가 아니라 순전히 베푸는 사람의 마음에 의한 것이다.

오늘 우리가 누리고 있는 모든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이라는 성서의 가르침이다. 마지막 시간까지 일할 자리를 얻지 못해 서성거리던 5등 인생과 같은 우리들에게 하나님의 은혜를 베풀어주신 것이다. 이처럼 하나님의 세상은 은혜로 이루어진 세상이다. 오늘 현대인들이 잃어버리고 있는 가장 중요한 덕목 중의 하나가 ‘은혜 사상’입이다. 은혜는 쉽게 말해서 공짜라는 말이다.

요즘은 공짜라는 것이 없어졌다. 모든 것이 대가를 치러야만 할 수 있는 것들이다. 그런데 공짜가 없는 세상은 살기 어려운 세상이다. 공짜가 많으면 많을수록 그것은 하나님의 세상이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모든 것을 공짜로 주시지 않았는가? 그런데 우리는 물도 돈을 주어야 사먹고, 공기도 돈을 주어야 하고 모든 것을 돈이나 혹은 어떤 대가를 치러야 얻을 수 있다.

주인의 내놓음

5등의 인생들이 일자리를 얻게 된 데에는 오늘 포도원 주인의 희생과 내놓음이 있었다. 주인의 자기 살깎음이 있었다는 사실을 보아야 한다. 오늘 포도원 주인은 일이 많아서 또 다른 일꾼들을 부른 것이 아님을 위에서 생각해 보았다. 그는 사람들을 불쌍히 여겨서 그렇게 한 것이다. 우리가 경제적으로 생각해보면 이런 어리석은 일이 어디에 있겠는가?

경제는 최소의 비용을 들여 최대의 이윤을 남기는 것이다. 되도록 일군을 덜 쓰고 인건비를 줄이고 기타 비용을 줄여야 한다. 이 세상의 모든 것은 경제적인 논리에 의해서 움직여지고 있다. 경제적이지 않으면 아무 일도 하지 않는다. 경제적이지 않으면 사람의 생명을 살리는 일도 하지 않는다. 경제는 모든 가치의 척도이다. 그런 면에서 보면 이 주인은 형편없는 사람일 수도 있다. 그러나 이 주인은 경제적인 논리에 의해 움직여지는 사람이 아니다. 그를 움직이는 다른 삶의 원리가 있다. 그것은 사람을 중심으로 발생하는 사람사랑과 이에 따른 희생과 자기 내놓음의 원리이다.

주인은 일꾼을 더 쓰기 위해 기존 일군의 임금을 깎지 않는다. 주인은 일이 끝난 후에 모든 사람들을 부르고 그들에게 똑같이 약속한 돈을 지불한다. 사람이 많으니 서로 고통분담을 하자는 얘기를 하지 않는다. 사람이 배로 늘어났으니 일군들과 약속한 금액을 12% 혹은 15% 삭감하자고 말하지 않는다. 예전과 마찬가지로 그대로 약속한 대로 지급한다.

가만히 생각해 보자. 일군들의 인건비를 삭감하지 않고 어떻게 이렇게 할 수 있는가? 이것이 가능하다고 상상이 되는가? 이 일이 가능하게 된 것은 오직 한 가지 주인의 희생이 있었기 때문이다. 주인은 일군의 임금을 줄이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이윤을 줄여 버렸다. 그는 사람을 살리기 위해서 자신이 얻을 수 있는 이윤의 폭을 대폭 줄여버렸던 것이다. 이러한 주인의 용단이 있었기에 그는 5등 인생에게도 은혜를 베풀 수 있었고 그 포도원은 하나님의 세상이 되었다. 주인의 이와 같은 결정은 결코 경제적이 될 수 없다.

그러나 그것은 하나님의 세상이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다. 이것을 마치 상상의 세계에서만 이루어질 수 있는 것이라고 보지 말자. 이 세상의 어떤 기업인들은 실지로 그렇게 하고 있다. 자신의 집을 줄이고, 자신의 이익을 줄이고, 오락생활을 줄이면서 자신의 직원들에게 피해가 가지 않도록 해주는 좋은 기업인들도 있다. 이런 기업인들은 부자이면서도 하늘나라에 들어갈 수 있는 좋은 기업인들이다. 좋은 부자들이다.

누가 먼저 내놓을 것인가?

오늘 우리가 함께 살아가는 하나님 세상은 이처럼 먼저 힘 있는 사람들의 양보와 자기 내놓음이 있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아무리 좋은 정책이라고 내놓아도 그것이 우리의 상황을 호전시키지 못할 것이다. 하나님은 자기 자신을 내놓으면서 우리를 사랑하고 계신다. 요즘처럼 어려운 시절에 어쩌면 내 자신이 5등 인생이 아닌가 하는 자괴감을 가질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5등 인생까지 사랑해 주시는 하나님, 그리고 어렵지만 그나마 우리에게 일자리를 주시고 살아가게 해 주시는 하나님에게 감사하고 위로를 받으시기를 바란다. 그리고 이웃을 향해 포도원 주인의 마음으로 서로를 대하게 될 때 우리의 세상은 하나님 세상이 될 수 있을 것이다. 하나님의 세상만 이루어진다면 눈물도 고통도 한숨도 없는 삶을 살아가게 될 것이다.

홍인식 대표(에큐메니안)  webmaster@ecumeni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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