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방을 벗고 배낭을 매자

성공회대학교 정문을 들어서니 플래카드가 있었다. ‘가방을 벗고 배낭을 매자!’ ‘아, 이 학교 학생들은 마음을 열 준비가 되어있구나’ 라는 생각을 하며 건물에 올라왔다. 그런데 이번에는 신입생들이 취업, 진로, 장학금, 학점 상담 부스에서 상담을 하는 모습이 보였다. 정작 현실은 암울 그 자체였다.

한국인은 대개 성격이 불같고, 기본적으로 화병을 갖고 있다. 남보다 먼저 달리기 위해 급해지고 조급해진다. 청년들도 바쁘게 살아간다. 사회도 그렇다 보니 공동체의식은 점점 사라져가고 있다. 

기성세대들은 경제적으로는 조금 힘들었을지 몰라도 마음만은 여유로웠다. 취업, 공부, 진로에 얽매이지 않았다. 대학입시는 공교육에서 다 해결해 주었다. 예전에는 지금에 비해 ‘더불어 함께’ 사는 경향이 컸다. 공동체 의식도 강했다. 하지만 지금은 많이 파편화되었다. 대학에서도 아름다운 공동체 문화가 사라졌다. 소통의 방식에서 나를 열어놓고 다가가지 못하는 문화가 되었다. 경직되었다. 

국정교과서와 암기교육

중국은 관계를 중시한다. 중국인들은 한국에서처럼 그 사람이 얼마나 많은 돈, 권력, 지위를 갖고 있느냐를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는다. 예전부터 관계를 쌓아오고, 신뢰를 맺어온 사람들을 더 신용한다. 그래서 유교 사상이 태동할 수 있었다. 

한국인은 ‘관계’보다 ‘관심’에 중점을 둔다. 타인에 대한 관심이 많다. 한국인들은 누군가를 처음 만날 때 나이, 이름, 주거지 등을 물어본다. 중국은 땅이 너무 넓어서 어디서 오는지 관심이 없다. 사람과 사람의 마음이 서로 통하는 소통에 중점을 둔다. 소통 보다는 일방적으로 상대방을 알려하는 경향이 있는 우리와는 다르다. 

유교를 바탕으로 한 과거제도는 지금으로 말하면 국정교과서다. 주자가 집필한 사서에서 모든 시험문제가 나오니까, 사람들은 사서를 열심히 공부하고, 암기했다. 그때부터 암기식 교육이 전통으로 자리 잡게 되었고 이것이 지금까지 이어졌다. 유교가 갖고 있는 가장 큰 맹점이다. 조선시대 때 유교로 인해 고착된 것이 또 하나 있다. 바로 지식이 권력이 되었다는 것이다. 지식은 권력을 낳았다. 그 폐해를 우리는 지금도 많이 느끼고 있다. 

대동소이(大同小異)의 자세

결국은 공동체라는 조직보다는 의식이 중요하다. 어떤 의식을 갖느냐에 따라 생각이 달라지기 때문이다. 생각이 달라지면 행동이 바뀐다. 마찬가지로 우리가 공동체를 만들기 위해서는 우선 생각과 의식을 바꾸어야 한다. 이를 ‘플라톤의 동굴’에 비유하면 이해가 쉬울 것이다. 동굴 안의 공동체가 볼 수 있는 것은 세상 밖에서 들어오는 그림자뿐이다. 인식의 폭이 매우 좁다. 그런데 어느 날 한 사람이 공동체를 이탈해 동굴 밖으로 빠져나와 찬란한 빛을 보고서 동굴 안 공동체에게 동굴 밖 이야기를 한다면 그들은 믿지 않을 것이다. 달리 인식하기 때문이다. 

결국은 어떻게 인식할 것인가(how), 무엇을 인식한 것인가(what)에 대한 것이다. 앞으로 여러분들이 아시아에 대해서 무엇을 어떻게 인식할지, 우리가 갖고 있던 시점, 관점, 의식을 한 번 돌아보자는 것이다. 대동소이(大同小異)의 관점을 받아들이자는 것이다. 작은 차이들을 받아들여 크게 조화해야 한다. 우리보다 앞서 18-19세기를 살았던 분들 중 이렇게 인식했던 분들이 있다. 홍대용과 최한기가 대표적이다. 유교가 주장하는 것은 편협된 동굴에서 살아가자는 것이 아니다. 동굴 밖에서 살아가자는 것이다. 대동소이의 관점으로 살아가자는 것이다. 

인식의 전환이 없이는 실질적으로 공동체를 만들지 못한다. 청년들이 대동의식 즉 크게, 더불어, 같이 하자는 의식을 가졌으면 좋겠다. 마음을 열고 먼저 다가가면 상대편도 그럴 것이다. 성경에 나오는 황금률과 비슷하다. 공자가 말한 ‘자기가 서고자 하면 타인을 먼저 세워주어야 한다. 또 내가 먼저 도달하고자 한다면 남을 먼저 도달하게 해주어야 한다.’ 이 구절을 마음에 새겼으면 좋겠다. 물론 이렇게 살아가다보면 손해를 볼 수도 있다. 그렇지만 그럴 때 그냥 과감하게 마음으로 다가가라. 이러한 시각으로 가면, 평화로운 동아시아, 세계화 평화로운 공동체를 만들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 질의응답 >

최미지 : 동아시아에 한.중.일만 해도 문화 차이가 큰데 이런 차이는 학습을 통해 내면화 된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교육제도가 개편되어야한다고 생각한다. 이상적인 교육제도는 무엇인가? 

신현승 교수 : 한국의 초중고 교육방식에 대해 염증이 느껴진다. 수용만 해서 암기하는 교육방식은 지양해야 된다. 여러분은 외국어를 암기하며 배웠겠지만, 말이라는 것은 글 잘 쓰는 사람이 있고, 잘 알아듣는 사람이 있고, 말 잘하는 사람이 있다. 근데 우리는 일괄적으로 시험용으로 사용한다. 최소한 전면적인 것은 못해서 소프트웨어적인 것은 할 수 있다. 교육방법, 방식, 교수법을 바꾸어야 한다. 

이찬수 교수 : 토론수업이 잘 되었으면 한다. 생각하는 시간을 많이 주고 토론을 했으면 좋겠다. 쉽지는 않다. 선생님들조차 익숙하지 않은 분들이 많다. 가령 북한에서는 토론과 자기 주장하는 것을 어렸을 적부터 교육시킨다. 대체로 정답이 있다는 게 문제지만, 어떻든 자기 입으로 발언을 많이 하는 것은 굉장히 중요한 교육이다. 고등학교 때 수학 선생님이 공식을 알려주시는데 나는 공식이 어디서 나왔는지가 더 궁금했다. 그런데 선생님들이 그런 것을 잘 알려주지 않았다. 학생 입장에서는 공식에서부터 출발하니 암기하면서 시작할 수밖에 할 수 없었다. 어떤 수업이든 지금 들은 이야기의 근본에 대해 다시 묻는 그런 토론이 많아져야 한다.

최인규 : 다양한 직접경험을 통해 기존에 가졌던 인식을 바꾸라고 하셨는데 나는 도리어 여행을 통해 인식이 더 안 좋아진 경험이 있다. 가령 중국은 공공장소에서는 시끄럽고, 자리가 더러웠다. 여행을 통해 부정적으로 경험한 것만으로 중국인을 일반화시켜서는 안 된다고 생각은  하지만, 어떻게 해야 인식을 긍정적으로 할 수 있는가?

답변 : 그것은 사람마다 다를 것이다. 내 개인적은 경험으로는 중국의 모든 것이 좋았다. 여행 중에서 짜증도 나고 미워도 하지만 결국 어떤 마음으로 받느냐에 따라 다르다. 나는 긍정의 마인드를 갖고 있다. 부정적 측면보다 긍정적인 면을 보고자 한다. 그러다보니 그 면이 아름다운 추억으로 남게 된 것 같다. 사람의 가치관은 변한다. 국가를 바라보는 관점, 자신의 삶을 바라보는 관점 등이 다 다르고 도 달라진다. 간단한 예로 초등학생 때 이상형이라고 생각했던 사람과 중고등학생 때 이상형이라고 생각했던 사람이 달랐을 것이다. 그 변화를 받아들여야 한다. 나는 그런 변화를 받아들이자는 생각으로 산다. 긍정의 시각으로 바라보아야 한다.

김예빈 : 동아시아에서 일본이 근대화를 가장 먼저 이룩했다. 그런데 성리학은 한국, 중국에 비해 덜 발전했다. 일본이 근대화를 가장 먼저 이룩한 것과 관계가 있는가.

신현승 교수 : 일본의 유학은 임진왜란을 통해 우리가 전해주었다고 하는데,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일본은 그 전에 이미 한자에 대한 습득력이 뛰어났다. 우리와 다른 점은, 우리는 그대로 받아들이지만, 일본은 의심을 품는다는 것이다. 그러다보니 성리학뿐만 아니라 양명학도 발달했고, 다양한 학문을 발전시켰다. 주자는 비유하자면 강원도 감자골 스타일이다. 책을 좋아한다. 왕양명은 강남스타일이고, 칼, 토론을 좋아한다. 주자는 지식 위주이고, 양명학은 삶의 지혜 위주이다. 동아시아가 양명학 체계로 갔으면 한중일의 교육시스템이 바뀌었을 것이다. 

조재인 : 공동체 의식이 일어나려면 지금과는 다른 경험을 많이 해야 한다. 그렇다고 모두가 다 여행을 갈 수는 없을 것이다. 직접 경험 없이 다수의 인식을 전환할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일까

답변 : 간접경험이 있다. 양명학 같은 경우 직접경험에 포커스를 두고 성리학은 간접경험에 포커스를 둔다. 양명학은 현장주의고, 성리학은 강의식이다. 날 가슴 뛰게 하는 곳으로 가라. ‘오늘은 ~day’로 생각하며 이벤트를 많이 만들어라. 그것이 현장주의식 교육이다. 그것이 더 빨리 체험이 된다. 외국어도 현장주의적으로 익혀야 한다. 글자부터 배우기보다는 말부터 시작하고 배워야 한다. 토익 같은 책 당장 덮어라. 학습방법을 바꾸어 보아라.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인식이 바뀐다. 그런 방법을 추천하고 싶다. 

김현수 : 중국가면 중국사람, 일본가면 일본사람이 되고 싶다고 하셨다. 나는 시화호 근처에 사는데 중국인, 동남아 사람이 많이 산다. 무서울 정도로 외국 사람이 많아져 익숙해지지 않는다. 거기에서 갈등이 많이 발생한다. 오히려 외국인과 한국인의 경계가 선명해진다. 실생활에서는 도리어 외국인들과의 갈등이 많이 발생하게 되는 것 아닐까. 인력시장에 가면, 한국인들이 할 일을 중국, 동남아 사람들이 많이 차지한다면서 거기서 박탈감을 느끼는 사람이 많다. 

신현승 교수 : 왜 반감을 갖을까? 상권을 중국가게에 많이 빼앗겨서? 그것은 중국, 베트남인의 탓이 아니다. 그 사람들이 많이 살면서 타운이 형성되니까 외견상 배타적인 감정이 그냥 드는 것 아닐까. 배타성은 교육 때문이다. 사회적으로 다문화 교육이 활성화되고 있는데, 더 활성화 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시민대학, 열린 강좌가 계속 생겨나야 한다. 소통과 대화를 해야 한다. 외국인 노동자 많은 곳에 ‘만남의 카페’ 같은 것을 많이 만들어야 한다.  

이명진 : 외교관계는 가장 평화로워야 한다고 생각한다. 예민하기 때문이다. 사실 이해관계를 따지다 보면 이기적으로 되기 쉽다. 다른 문화와 역사에 대해 어떻게 이기적으로 굴지 않고 이해할 수 있을까.

신현승 교수 : 진정한 대화밖에 없다. 진실성 있게 몇 번이고 대화를 시도해야 한다. 대화 없이는 좁혀갈 수 있는 틈이 없다. 만나서 이야기를 들어봐야 한다. 밀당을 잘 해야 한다. 그것은 어느 집단에서든 마찬가지이다. 외교적으로 첨예하게 대립하는 것은 극단을 달리고 있기 때문이다. 그럴 때 중간 조정자가 필요하다. 대화밖에 방법이 없다고, 더 설득하는 방법밖에 없다. 이를 위해 발로 뛰어야 한다. 외교관계를 트기 위해서는 직접 움직여야 한다. 그럴 때 서로가 윈윈하는 방법을 찾게 된다. 

이시연 : 지식인과 권력이 분리되어야 한다고 하셨는데 어떤 사람이 권력을 쥐어야 하는지 궁금하다.

신현승 교수 : 중국은 국회의원을 교수, 학생, 스포츠, 노동자 등 다양하게 선출한다. 비례대표와 비슷하다. 그런데 한국의 국회의원을 보면, 돈 있고, 지식 있는 사람밖에 없다. 골고루 가졌으면 한다. 

최영선 : 한국사회는 관심사회라고 하셨다. 관심이 수용하고 받아들이는 것에 도움이 될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신현승 교수 : 우리에게는 진보 아니면 보수의 논리로만 가득하다. 양쪽을 다 수용하면 따돌림 당하기 십상이다. 그런데 모든 것이 그런 것은 아니다. 난 네덜란드가 좋다. 암스테르담 공원에서 여기가 내 고향이라고 생각한 적이 있다. 그곳에는 언어, 식당이 상당히 많다. 인구 천만 조금 넘는데 많은 문화가 섞여있다. 개방적인 태도, 열린 사고를 가졌기 때문에 전 세계에서 사람이 몰려 왔다. 이것이 도리어 복지국가로 가는 길이 되었다고 생각한다. 

20대에는 뭘 해도 괜찮다. 얼마든지 돌아올 수 있고, 다른 길로 갈 수 있다. 꽃길만 걷는다고 생각하지 말아라. 눈길도 가고 산길도 가보아라. 다양함을 경험하라.

(정리 : 손영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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